the Brethren/연(輦)모임 메시지 515

창세기 1-4장에서(b)

(성경의 완전한 이야기는 사탄, 그리스도, 그리스도인, 이스라엘, 그리고 나라들에 관한 것으로서, 예표로서 사무엘상하에 있는 사울과 다윗에 대한 기록에 나타나 있다. 사울은 이스라엘 왕으로 기름부어졌지만(사무엘상 10:1) 아말렉을 멸하고, 그들의 소유물을 취하라(사무엘상 15:1-35)는 하나님께서 명령하신 것을 거절함으로 스스로 왕위를 빼앗겼다. 그래도 사울의 통치는 계속됐다. 그리고 사울은 하나님께서 그를 대신할 사람을 택하신 사람이 그 현장에 있을 뿐만 아니라 왕위에 오를 준비가 될 때까지 계속 다스렸다. 이것은 사탄이 땅 위를 다스리도록 기름부어진 왕이었다(에스겔 28:14). 사탄은 하나님께서 정하신 입장을 넘어 그의 다스릴 확장하려고 함으로 스스로 자격을 빼앗겼다(이사야 14:13-15). ..

창세기 1-4장에서(a)

창세기는 성경 전체에 걸쳐 펼쳐지는 모든 과정을 완전한 그림 형태로 제공함으로써 열린다. 성경을 뒤로 읽어가면서 창세기에 접목해 나갈 때 놀라운 그림을 그리게 되며, 한결 쉽게 접근해 갈 것이다. 처음 34절(창세기 1:1-2:3)은 골격 형태만을 제공하지만, 처음에 계시된 골격 틀에 입을 수 있는 힘줄, 살, 피부를 덧붙여 성경의 나머지 부분에서 다양한 해석을 통해 세부적이고 사실적인 완전한 말씀 그림을 그리게 할 것이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약 1,500년 넘게 40여 명의 다른 사람들을 사용하신 후 결국에는 완전하고, 복잡하게 세밀해진 말씀 그림이 될 것이다. 이 완전하고 세밀해진 말씀 그림은 정확히 하나님께서 사람이 그분의 계획과 목적을 세밀하게 살펴보기 원하셨다. 창세기 2:4- 4:26에 대한 ..

모형이나 그림자를 따른 전조 — 문자에서 영으로

창세기 처음 몇 장은 하나님의 창조, 회복, 구속적 움직임과 관계가 있다. 이런 일들은 사람과 땅과 관련이 있고, 지나칠 정도로 가득하다. 이 장들을 구성하는 자료들은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이 그분의 영을 통해 인간에게 그분의 계획과 목적을 계시하시려고 사람에게 호흡하셨고, 맨 처음 부분에 두셨다. 창세기 1장은 하나님께서 인간이 그분의 계획과 목적을 알고 이해하기 원하신다는 것을 알려준다. 이 계시는 하나님께서 이 일들을 사람과 교제하기를 갈망하신다는 것을 방식에 따라 공급하셨다. 하나님께서 성경 주제를 그분의 말씀의 첫머리에 배열하시고, 하나님께서 이 주제에 중점을 두시는 곳과 함께, 창세기의 처음 열 아홉 장이 신성하게 배열되었고, 그 구조에 대한 중심적인 특징들이 먼저 영향을 주기 시작할 것이다. 그..

사도행전시대(서문)

사도행전(AD33-AD62) 내용은 이스라엘 민족에게 하늘의 왕국을 재제안 하는 일에 중점을 두고 있다. 본래 하늘의 왕국을 이스라엘 민족에 제안한 것은 복음서에서 약 3년 반 정도였다. 그리고 재제안이 있었는데 약 29년 동안 사도행전에서 다뤄졌다. 사도행전에서 왕국에 대한 재제안을 정확하게 이해하는 것은 복음서에서 왕국 제안을 제대로 이해하는 데 달려 있다. 복음서에서의 이전 제안을 정확하게 이해하는 것은 창세기 첫 장에서부터 모세로 시작해 왕국이 구약성서 전반에 걸쳐 차지하는 위치를 제대로 이해하는 데 달려 있다. 구약성경을 제외하고 성경의 이 부분을 이해하고 해석하려고 할 때, 그리스도인들은 복음서와 사도행전에서 항상 잘못되어 서신서로 연결된다. 그리고 이것이 사람들이 이 메시지와 무관한 수많은 ..

사도행전 시대

본서 처음 6장은 그 자체로 사도행전 시대와 거의 관련이 없다. 오히려, 첫 장은 배경이며, 29년 기간의 배경과 관점을 볼 수 있게 한다. 처음 세 장은 창세기 전반부 25장에서 다루어진 것에 대한 전체적인 그림이며, 다음은 성경 전체를 제대로 이해하고 해석할 수 있게 한다. 모든 것은 모세의 시작으로 세워졌으며, 이것은 이미 확립된 기초, 또는 전체적인 기초를 넘어서는 성경의 어느 지점에서도 어떠한 변화도 일어날 수 없다. 오히려, 이후의 모든 성경은 모세의 시작으로 세워진 성경과 완전히 일치해야 한다. 그러므로 모세에게 계시된 처음과는 반대로 모세 이후 어리석음의 시작을 쉽게 볼 수 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말씀을 구성하신 방식을 따라 성경을 해석하는 데 있어 모세 이후에 적절한 해석의 문제가 있다..

감사 찬송(1)

“감사함으로 주께 노래하며 하프에 맞추는 노래로 우리 하나님을 찬양할지어다.”(시편 147:7) 우리가 다룬 내용에 따라 찬송을 살펴보아야겠다. 좋은 찬송은 영감을 주고, 아름답고, 영적인 감정을 표현한다. 예를 들어, 찬송가를 예로 들자면, “모든 이들 중 가장 소중한 분은 그분”을 생각하면 가장 소중한 분은 그분이시며, 내가 가장 사랑하는 분; 모두가 구해야 할 그분을 띠고, 그리고 마침내 그분께 의지하세. 나의 모든 필요를 공급하고, 연약함 속에서 그분은 지탱하시네. 나에게 가장 공평한, 항상 신실하신 그분은 남아 계신다네. 그분, 우리의 기쁨은 끝없이 모든 시험을 통해 같다네. 가장 소중한 분은 그분. 그분은 내가 가장 사랑하는 사람이라네. 이 찬송가를 부를 때, 주님이 너무 선하시다는 것을 느낀..

영감(靈感)으로 곡을 쓰라.

“시와 찬송과 영적 노래로 서로에게 말하며 너희 마음속에서 주를 찬양하고 아름다운 곡조를 만들며”(에베소서 5:19) 우리 가운데 찬송 작가가 더 많아지기를 바란다. 찬송을 부르는 법을 배우는 것뿐만 아니라 영감을 적어 두라고 권하고 싶다. 이러한 영감은 체험하거나 또 성경을 읽을 때 계시에서 나올 수 있다. 이런 식으로 훈련하면 결국 찬송을 쓸 수 있다. 처음에 찬송이 단순할 수 있다. 처음에 간단한 찬송을 쓰면 결국 더 깊은 것을 쓸 수 있다. 예를 들어, 찬송 “이삭의 제물”을 예로 들어 본다. 이 찬송의 개념은 매우 깊다. 그것은 영적 감정에 따라 쓰였다. 작가가 창세기에 관한 메시지를 전할 때, 그는 이삭의 제물에 관해 이야기했다. 그는 그 당시 “주님, 제가 원하는 모든 것을 당신께 드려야 합..

찬송을 감상하는 것을 배우라.(2)

“그러므로 주의 구속받은 자들이 돌아오리니, 기뻐서 외치며 시온으로 올 것이요 또 영원히 지속하는 기쁨이 그들의 머리 위에 있으리이다. 그들은 기쁨과 즐거움을 얻을 것이며 슬픔과 탄식은 멀리 달아나리이다.”(이사야 51:11) 좋은 찬송에는 영감과 체험이 있지만, 또한 진리에 기초해야 한다. 진리 자체는 찬송을 작곡할 수 없지만, 진리가 없으면 찬송은 좋지 않을 것이다. 찬송이 즐거운 이유는 영감이 가득하고 진리에 기초하기 때문이다. 영감만 있을 뿐 진리와 체험이 부족한 찬송을 계속 부를 수는 없다. 우리는 쉽게 지루해질 것이고, 그 찬송을 노래해도 우리를 더 깊이 데려가지 못할 것이다. 좋은 찬송의 곡은 가사와 일치해야 한다. 좋은 찬송에는 좋은 곡이 있어야 한다. 그러나 곡은 나이에 따라 바뀐다. 최..

규모 있게 생활하라.

젊은 가족이 좋은 집을 원하는 것은 확실히 합법적이며, 가족이 성장함에 따라 더 큰 집이 필요할 수도 있다. 그러나 더 큰 집이 뿌리를 내리고 우리 안에서 자라는 욕망이 사로잡기는 쉽다. 그런 다음 그것은 필요를 넘어 세상의 지위의 영역으로 들어간다. 더 큰 집을 얻으려면 더 많은 돈을 벌기 위해 더 오랜 시간을 일해야 한다. 우리는 더 대출받아야 하고 더 많은 빚을 져야한다. 그것은 이제 우리 교회와 성도들의 삶에서 시간을 빼앗아 가면서 우리에게 저주가 되었다. 주님은 우리와 함께 무언가를 하기를 원하시지만, 너무 늦었다. 가시가 너무 두꺼워서 우리가 풀려나기에는 너무 두꺼워졌다. 자동차, 옷 또는 이생의 어떤 필요에도 똑같은 일이 일어날 수 있다. 얼마나 많은 가시가 있는지 믿을 수 없다. 가시의 유..

찬송을 감상하는 것을 배우라.(1)

“주께서 나를 구원하시리니, 우리가 주의 집에서 우리 평생 현악기에 맞춰 내 노래를 노래하리로다.”(이사야 38:20) 우리는 찬송을 감상하는 법을 배울 필요가 있다. 찬송을 감상하는 법을 아는 사람은 영감으로 가득하다. 영감이 부족한 이들이 주님을 잘 섬기는 능력이 있다는 것은 의심된다. 사실, 우리가 구원받기 위해서는 영감이 필요하다. 주님을 만지고 우리 영 안에서 움직였을 때 구원을 받는다. 이것이 영감(靈感)이다. 왜 주님을 사랑하는지 묻고 싶다. 주님을 사랑하는 것 역시 영감(靈感)이다. 주님을 사랑하는 삶은 영감 속에 있는 삶이다. 종교적이고, 교파적인 사람은 영감이 필요 없다. 만약 단지 만남을 즐기는 사람이라면, 찬송을 부르거나 감상할 필요가 없다. 성경책의 먼지만 닦아내고 매주 모임에 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