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텅 빈 요새

“그들이 거주하는 땅이 좋은지 나쁜지, 또 그들이 거주하는 성읍들이 어떠한지, 장막에 사는지 견고한 요새들에 사는지를 보라.”(민수기 13:19, KJV) 모세가 약속의 땅이 "좋은지 나쁜지"를 물었다는 것은 선지자가 하기에는 놀라운 질문이다. 하나님께서는 이미 수십 년 전에 떨기나무 불꽃 가운데서 그 평가를 확정하셨다. 그것은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었다(출애굽기 3:8). 하나님의 계시는 이미 논쟁의 여지를 끝내 버렸다. 그런데 여기 민수기 13:19에서 모세는 열두 명의 정탐꾼을 보내어 하나님의 선물을 다시 조사하게 한다. 그는 그들에게 주민들이 개방된 진영(마하네machăneh)에 거주하는지, 아니면 견고한 요새들(미브차르mibtsâr)에 거주하는지를 살펴보라고 지시한다. 왜 하나님께서 이미 보증하..

비 오는 것을 보지 못하는 눈

“그는 사막의 떨기나무 같아서 좋은 일이 오는 것을 보지 못하고 광야의 메마른 곳, 건건한 땅, 사람이 살지 아니하는 소금 땅에 거하리라.”(예레미야 17:6) 예레미야 17:6에 나오는 광야의 떨기나무의 비극은 비가 내리지 않는 땅에서 굶주린다는 데 있지 않다. 진정한 비극은 문장 한가운데 숨어 있는 이 짧은 말씀에 있다. “좋은 일이 오는 것을 보지 못하고.” 예레미야는 소금 평원의 바위틈에 매달려 사는 왜소한 향나무, 곧 아르아르(ʻarʻâr) 를 두 절 뒤에 나오는 또 다른 식물과 대조한다. 이 대조는 단어 하나하나까지 의도적으로 배치되어 있다. 강가에 심긴 나무는 “더위가 올지라도 알지 못하며” (예레미야 17:8)라고 기록되어 있다. 그 나무는 깊이 뻗은 뿌리가 보이지 않는 물을 마시고 있기 ..

빌려온 믿음의 위험

“그 신하들이 일어나 반역을 꾀하고 실라로 내려가는 밀로 궁에서 요아스를 쳐 죽였더라.” — 열왕기하 12:20 겉으로 보기에는 열왕기하 12:20이 평범한 궁중 쿠데타를 기록하는 것처럼 보인다. 신하들이 음모(케셰르, qesher)를 꾸미고, 예루살렘의 요새 안에서 왕을 쳐 죽이며(나카, nākāh), 왕관은 그의 아들에게 넘어간다. 열왕기는 차가운 정치적 사실만을 기록하지만, 한 가지 불편한 질문을 남겨 둔다. 왜 그의 신하들이 자기 왕을 죽였는가? 그 답은 역대하 24:25를 펼칠 때에야 드러난다. 그곳에서 역대기 기자는 하늘 법정의 휘장을 걷어 올린다. “제사장 여호야다의 아들들의 피로 인하여 그의 신하들이 반역하여 그를 침상에서 죽였더라.” 이것은 우연한 반역이 아니었다. 이것은 순교자의 기도에..

숯불 냄새

“그 때가 추운 고로 종들과 하속들이 숯불을 피우고 서서 쬐니 베드로도 함께 서서 쬐더라.”요한복음 18:18 요한복음 18:18에서 우리의 시선을 붙드는 것은 추위가 아니라 숯불이다. 요한은 여기서 "숯불"을 가리키기 위해 매우 드물게 사용되는 헬라어 안트라키아ἀνθρακιά(anthrakia)를 사용한다. 이 단어는 신약성경 전체에서 단 두 번만 등장하며, 두 번 모두 요한복음에 기록되어 있다. 첫 번째는 바로 이 장면이다. 베드로는 적대적인 성전 경비병들 사이에 서서 손을 녹이고 있었고, 안에서는 결박당한 예수님께서 심문을 받고 계셨다. 그곳에서 그는 자신이 그분을 안다고 세 번이나 부인하였다. 숯이 타들어 가는 소리, 유황과 연기의 냄새, 불씨 주위를 맴도는 차가운 밤공기. 이 모든 감각적 경험은..

탄생 이전의 진통

“내가 오랫동안 잠잠하였고 고요하며 스스로 참았으나 이제는 해산하는 여인 같이 부르짖을 것이라. 내가 숨을 헐떡이며 한꺼번에 삼키고 멸하리라.”이사야 42:14 이사야 42:13에서 하나님은 막강한 용사로 전장에 등장하신다. “여호와께서 용사 같이 나가시며 전사 같이 열심을 발하실 것이라. 외치시며 크게 부르짖으시고 그의 원수들을 크게 치실 것이라.” 그분은 멸망을 집행할 준비를 갖춘 전사이시다. 그런데 바로 다음 절인 이사야 42:14를 읽어 보면 놀라운 변화가 나타난다. 아무런 예고 없이 갑옷 입은 전사는 사라지고, 진통 중인 산모의 모습이 눈앞에 나타난다. “내가 오랫동안 잠잠하였고 고요하며 스스로 참았으나 이제는 해산하는 여인 같이 부르짖을 것이라. 내가 숨을 헐떡이며 한꺼번에 삼키고 멸하리라.”..

닫힌 문이라는 자비

“그 때에 블레셋 사람들이 그들의 군대를 모아 이스라엘과 싸우려고 하였더라. 아기스가 다윗에게 이르되, 너와 네 사람들이 반드시 나와 함께 전쟁에 나갈 줄을 알라.”(사무엘상 28:1) 다윗은 더 이상 둘 곳이 없는 지경에 이르러 있었다. 그로부터 18개월 전, 사울의 끈질긴 추격에 지치고 쇠약해진 그는 절망에 굴복하였다. “내가 후일에는 사울의 손에 망하리니 블레셋 사람들의 땅으로 속히 피하여 들어가는 것보다 더 좋은 것이 내게 없도다.”(사무엘상 27:1) 가드에서 살아남기 위해 그는 위험한 이중 전략을 펼쳤다. 아기스 왕의 보호 아래 시글락에 머물면서 그는 국경 지대의 약탈자들을 진멸하였으나, 정작 자신의 주인에게는 유다 남쪽에 있는 자기 동족들을 공격하고 있다고 거짓 보고하였다(사무엘상 27:10..

지워버릴 수 없었던 이름

“바로가 요셉의 이름을 사브낫바네아라 하고, 또 온의 제사장 보디베라의 딸 아스낫을 그에게 아내로 주매, 요셉이 애굽 온 땅을 순행하니라.”(창세기 41:45) 바로는 히브리 사람 요셉을 완전히 애굽 사람으로 동화시키고자 하였다. 그는 요셉에게 세마포 옷을 입히고, 금 사슬을 목에 걸어 주었으며, 애굽 태양 숭배의 중심지인 온(On)의 제사장 딸 아스낫을 아내로 주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새로운 제국의 이름인 사브낫바네아를 부여하였다(창세기 41:45). 이것은 철저한 동화 정책의 일환이었다. 훗날 바벨론이 다니엘과 그의 친구들의 이름을 바꾸었던 것처럼, 바로는 한 망명자의 언약적 정체성을 벗겨내고 그를 애굽 궁정의 사람으로 재편입시키려 하였다. 그러나 그 이름은 바로의 의도대로 되지 않았다. 초대 신약..

나사렛의 걸림돌

“거기서는 아무 권능 있는 일도 행하실 수 없으시고 다만 소수의 병자들에게 안수하여 고치셨을 뿐이더라.”(마가복음 6:5) 마가복음 6:5의 헬라어 본문에는 후대 필사자들이 베껴 쓰기를 주저했을 만큼 대담한 구절이 있다. 우크 에뒤나토 에케이 포이에사이 우데미안 뒤나민ouk edynato ekei poiēsai oudemian dynamin. 마가는 능력을 뜻하는 동사를 권능을 뜻하는 명사 바로 앞에 배치하여, 문자 그대로 주님께서 “권능을 행할 수 없으셨다”라고 말한다. 즉, “거기서는 아무 권능 있는 일도 행하실 수 없으시고”라는 것이다. 바로 앞 장에서 이 주님은 단 세 마디 말씀으로 광풍을 잠잠하게 하셨으며, 귀신 군단을 쫓아내셨고, 죽은 소녀의 손을 잡아 일으키셨다. 그런데도 마가는 이 놀라운 ..

재 가운데서 승리의 환호는 없다

“그들을 죽일 때에 내가 홀로 남았으므로 내가 얼굴을 대고 엎드려 부르짖어 이르되 슬프도소이다 주 여호와여! 주께서 예루살렘에 주의 분노를 쏟아 부으실 때에 이스라엘의 남은 자를 다 멸하려 하시나이까?”에스겔 9:8 집행자들은 방금 성전 안뜰을 휩쓸고 지나가며, 현관 앞 바닥을 예루살렘 장로들의 시체로 가득 채워 놓았다(에스겔 9:6, 7). 그리고 그들의 발소리는 성문을 지나 도시 전체로 퍼져 나가면서 점차 사라졌고, 그 뒤에는 텅 빈 적막만이 남았다. 그 소름 끼치는 침묵 속에서 에스겔은 놋제단 주위로 고여 있는 피를 내려다보며 자신이 완전히 혼자 남았음을 깨달았다. “그들을 죽일 때에 내가 홀로 남았으므로...”(에스겔 9:8) 히브리어 본문에는 가슴 아픈 언어유희가 담겨 있다. 에스겔이 “내가 홀..

진리를 요구하며, 미혹을 갈망하다

“왕이 그에게 이르되 내가 몇 번이나 너로 맹세하게 하여 네가 주의 이름으로 오직 진실한 것만 내게 말하게 하겠느냐?”역대하 18:15 아합 왕의 궁정 선지자 사백 명은 방금 길르앗 라못 전투에서의 대승을 약속하였다. 그러나 유일한 반대자 미가야가 왕들의 보좌 앞으로 끌려와 궁정의 아첨을 비꼬듯 그대로 따라 말하자, “올라가서 형통하소서.”(역대하 18:14) 아합은 발끈하였다. “내가 몇 번이나 너로 맹세하게 하여 네가 주의 이름으로 오직 진실한 것만 내게 말하게 하겠느냐?”(역대하 18:15) 여기서 사용된 동사는 샤바(shābaʿ) 이다. 이는 거룩한 맹세로 묶다, 엄숙히 선서하게 하다는 뜻이다. 아합은 에메트(ʾĕmeth), 곧 절대적인 진리를 요구하였다. 그것도 야훼의 언약적 이름을 불러가며 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