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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들과 새벽 사이에서

“보라, 산들을 지으시며 바람을 창조하시며 사람에게 그의 생각이 무엇인지를 알게 하시며 아침을 어둠으로 바꾸시고 땅의 높은 곳들을 밟으시는 이, 그의 이름은 만군의 하나님 여호와시니라.”아모스 4:13 (KJV) 아모스 4:13만 따로 떼어 벽 장식의 문구로 읽는다면, 이 구절은 자연 가운데 나타난 하나님의 위대하심을 찬양하는 평온한 찬송처럼 보인다. 그러나 실제 문맥 속에서 읽어 보면, 그것은 훨씬 더 무시무시한 것이다. 이는 마치 전투를 앞둔 군사 보고서와도 같다. 이 구절은 “보라”(For, lo)라는 의미심장한 연결어로 시작되며, 아모스 4:12에서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에게 던지신 최후통첩과 직접 연결된다. “이스라엘아 네 하나님 만나기를 예비하라.” 이 장 앞부분에서 주님은 자신이 보낸 점진적인 ..

인생 최대의 수확을 뒤로하고 떠나다

“그들이 다른 배에 있는 동무들에게 손짓하여 와서 도와 달라 하니, 그들이 와서 두 배에 채우매 잠기게 되었더라.”(누가복음 5:7) 누가복음 5:7에 감추어진 강렬한 장면을 자세히 보라. 고기가 너무 많이 잡혀 두 배가 모두 “잠기기 시작했다.” 여기서 사용된 헬라어 동사는 뷔티조(bythízō) 로, 문자적으로는 “물속에 가라앉게 하다, 깊은 곳으로 끌어내리다” 라는 뜻이다. 이 단어는 신약성경 전체에서 단 두 번만 사용된다. 첫 번째는 여기서, 엄청난 양의 물고기가 배의 옆면을 수면 아래로 끌어내릴 만큼 쏟아져 들어온 장면이다. 두 번째는 디모데전서 6:9에서 바울이 재물에 대한 탐욕이 사람들을 “멸망에 빠뜨린다(drown)” 고 경고하는 장면이다. 이 언어적 연결은 갈릴리 호수 위에서 실제로 무슨..

가려진 영광의 무게

『이스라엘의 하나님이 이스라엘 회중 가운데서 너희를 구별하여 자기에게 가까이하게 하사 여호와의 성막 일을 하게 하시며, 회중 앞에 서서 그들을 섬기게 하심이 너희에게는 작은 일이더냐?』 — 민수기 16:9 고라는 하나님의 현현하신 임재 바로 곁에서 평생을 보냈으나, 바로 그것이 결국 그를 무너뜨린 것이다. 그는 고핫 자손이었다. 이스라엘 진영이 광야에서 행진하기 위해 이동할 때, 다른 레위 가족들은 휘장과 널판들을 수레에 실었다. 그러나 고핫 자손들에게는 수레가 주어지지 않았다. 그들의 임무는 『지극히 거룩한 것들』(코데쉬 하코다쉼qôdesh haqqŏdāšîm)을 자기 어깨에 직접 메고 운반하는 것이었다(민수기 4:4-15). 그들은 언약궤를 메었다. 금등잔대를 메었다. 진설병 상을 메었다. 그러나 그..

싸울 수 없는 전투를 위해 무장되다

『그러나 하나님이 백성을 홍해 광야 길로 돌려 인도하셨으므로 이스라엘 자손이 무장하고 애굽 땅에서 올라오니라.』(출애굽기 13:18, KJV) 출애굽기 13:17에서 하나님께서는 먼 길을 택하신다. 하나님께서는 의도적으로 이스라엘을 해안가의 빠른 대로에서 벗어나게 하신다. 왜냐하면 그들의 마음 상태를 아셨기 때문이다. 만일 그들이 블레셋 수비대와 맞닥뜨려 전쟁을 보게 된다면, 두려움에 사로잡혀 곧바로 바로에게 돌아가고자 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바로 다음 절인 출애굽기 13:18은 전혀 어울리지 않는 것처럼 보이는 한 단어를 던져 놓는다. 『이스라엘 자손이 무장하고 애굽 땅에서 올라오니라.』 여기서 『무장하고』로 번역된 말은 히브리어 하무쉬(châmush) 이다. 이 단어는 히브리어 숫자 『다섯』과 ..

탈취물을 얻고 하나님께 감사하기

“그 소유자들은 그것들을 죽이고도 죄가 없다고 여기며, 그것들을 파는 자들은 ‘여호와를 찬송할지로다, 내가 부하게 되었도다’라고 말한다. 그들 자신의 목자들조차 그들을 불쌍히 여기지 아니한다.”(스가랴 11:5, KJV) 도둑인 것도 문제이지만, 탈취한 전리품을 얻고 하나님께 감사하는 도둑인 것은 또 다른 차원의 문제이다. 스가랴 11:5에서 선지자는 종교적 착취의 끔찍한 장면 뒤에 숨겨진 실상을 드러낸다. “그 소유자들은 그것들을 죽이고도 죄가 없다고 여기며, 그것들을 파는 자들은 ‘여호와를 찬송할지로다, 내가 부하게 되었도다’라고 말한다. 그들 자신의 목자들조차 그들을 불쌍히 여기지 아니한다.” 사람의 걸음을 멈추게 하는 구절은 바로 이 경건해 보이는 짧은 송영이다. “여호와를 찬송할지로다, 내가 ..

우상을 굶겨 죽이는 법

『너희가 이 사람들을 여기로 끌고 왔으나, 이들은 신전의 물건을 훔친 자들도 아니요, 너희 여신을 모독한 자들도 아니라.』 — 사도행전 19:37 세속적인 도시 행정관 한 사람이 울부짖는 원형극장을 진정시키며 사도 바울을 변호하고 있다. 그런데 그 변호의 내용은 예상 밖이다. 그는 말한다. 『이 사람들은 히에로수로스hierosylos가 아니다.』 성경(KJV)은 이를 『교회의 도둑』으로 번역하지만, 헬라어의 의미는 훨씬 더 구체적인 것이다. 히에로수로스hierosylos란 신전 약탈자를 가리킨다. 어둠을 틈타 성소에 침입하여 은과 봉헌물과 금을 훔쳐 가는 신성모독적 약탈자다. 도시 서기관의 공식적인 증언은 거기서 그치지 않는다. 그는 또한 사도들이 그들의 여신을 모독한 적도 없다고 선언한다(사도행전 19..

웅크리고 엎드린 저주

『여호와께서 반드시 그를 용서하지 아니하시리니, 여호와의 진노와 질투가 그 사람을 향하여 연기처럼 타오를 것이요, 이 책에 기록된 모든 저주가 그 위에 머무를 것이며, 여호와께서 그의 이름을 천하에서 지워 버리실 것이라.』(신명기 29:20) 영어 번역으로 읽으면 이 구절은 거의 수동적인 표현처럼 들리는 것이다. 『이 책에 기록된 모든 저주가 그 위에 머무를 것이다.』 마치 오래된 법률 문서가 조용히 탁자 위에 놓이는 모습이나, 어떤 짐이 사람의 어깨 위에 걸쳐지는 모습을 떠올릴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이 번역 아래에는 히브리어 동사 라바스rābaṣ가 숨어 있으며, 그것은 결코 수동적인 표현이 아닌 것이다. 라바스rābaṣ는 네 발 달린 짐승이 땅에 바짝 몸을 낮추고 웅크리고 있는 자세를 가리키는 말이..

다락방의 잔, 영원한 새 언약

다락방의 고요한 불빛 아래 나누는 마지막 식사,출애굽의 옛 노래가 십자가의 구속으로 이어지고.주님의 거룩한 손길이 유월절의 잔을 높이 드실 때구원의 새 역사가 역사의 수평선 위에 피어난다. “이것은 많은 사람을 위하여 흘리는 내 언약의 피라.”짐승의 피로 봉인된 옛 약조의 한계를 넘어질적으로 완벽하고 우월한 은혜의 새 언약(Kainos).차가운 돌판이 아닌 우리 마음에 깊이 새겨지도다. 율법을 향한 유약한 순종이 아닌 아들의 순전한 피로,반복되던 붉은 제사의 굴레를 영원히 끝내신 사랑.연약하고 죄 많은 자들을 두루 품으시는 무한한 속죄가시대를 넘어 멸망의 밤을 거룩한 빛으로 덮는도다. 더 이상 다른 희생도, 자격의 증명도 필요치 않나니십자가의 보혈로 성취된 완전한 화목의 은혜.아버지 앞에 바로 선 ..

지나치게 큰 은혜의 무게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복을 주셨을 때에, 그 택하신 곳이 네게서 너무 멀고 길이 너무 멀어 그것을 가지고 갈 수 없거든』 — 신명기 14:24 신명기 14:24의 농경 사회에 관한 율법 속에는 뜻밖의 위기가 숨어 있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너무나 선하게 베푸셨고, 예배의 자리까지 가는 길은 너무나 먼 것이다. 둘째 십일조의 규례에 따라, 이스라엘 백성은 곡식과 새 포도주와 가축의 십분의 일을 중앙 성소로 가지고 가서 하나님 앞에서 잔치를 베풀어야 하였다. 그런데 본문은 한 가지 장애물을 예상한다. 『길이 네게 너무 멀어(라브rab) 그것을 운반할(사아śā’ā) 수 없게 되거나…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복을 주셨을 때에(바라크bārak).』 우리는 보통 피로와 탈진의 원인을 결핍에서 찾는 것이다...

절뚝임을 왕의 식탁으로 가져오라

“왕이여 내 주여, 내 종이 나를 속였나이다. 주의 종이 이르기를 ‘내가 나귀에 안장을 지워 타고 왕과 함께 가리이다’ 하였사오나, 주의 종은 다리 저는 자이기 때문이니이다.”(사무엘하 19:26) 므비보셋은 사무엘하 19:26에서 자신을 변호하는 말을 한마디도 꺼내기 전에 이미 그의 모습 자체가 모든 이야기를 말해 주고 있었던 것이다. 성경은 다윗 왕이 예루살렘을 떠난 날부터 므비보셋이 그의 옷을 빨지 아니하였고, 수염도 깎지 아니하였으며, 그의 발도 돌보지 아니하였다고 기록한다(사무엘하 19:24). 여러 달 동안 그는 씻지 않은 애도자의 모습으로 예루살렘에 머물며, 쫓겨난 왕을 위하여 상한 마음으로 슬퍼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마침내 다윗이 돌아왔을 때, 그는 이미 중상모략에 물든 왕과 마주하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