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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덕 위의 사자

“슬프다 아리엘이여, 아리엘이여, 다윗이 진 치던 성읍이여! 해마다 절기를 지키며 제사를 드릴지어다.”(이사야 29:1) 이사야는 이 예언을 시작하면서 예루살렘을 ‘아리엘’(히브리어 ’ărî’ēl)이라는 수수께끼 같은 이름으로 부른다. 히브리어에서 이 단어는 분명히 명예로운 칭호이다. 아리’ărî (“사자”)와 엘’ēl (“하나님”)이 합쳐진 말로, 아리엘은 “하나님의 사자(Lion of God)”를 뜻한다. 이것은 예루살렘이 가장 자랑스럽게 여기던 이름이었다. 곧 다윗 왕조의 난공불락의 요새이며, 역사적 힘을 포효하는 도시라는 의미였다. 그러나 그 왕다운 칭호 아래에는 또 다른, 더 어두운 의미가 숨어 있었다. 성전 용어에서 아리엘은 또한 제단의 화덕(altar-hearth) 을 가리키는 말이었다. 그..

손에 힘을 빼고, 주님의 손에 맡기라

“엘리사가 이스라엘 왕에게 이르되 ‘활을 손에 잡으소서’ 하매 왕이 그것을 손에 잡으니, 엘리사가 자기 손을 왕의 손 위에 얹으니라.”(열왕기하 13:16, KJV) 요아스 왕은 죽어가는 선지자 앞에 서 있는 군인이었다. 엘리사가 열왕기하 13장 16절에서 그에게 활을 들라고 했을 때, 요아스는 활쏘기에 대해 설명을 들을 필요가 없었다. 사실 엘리사가 사용한 히브리어 명령은 매우 생생한 표현이다. 그는 왕에게 활을 라카브(rākab) 하라고 말하는데, 이는 문자적으로는 전쟁마를 타듯이 활을 “타다”, “올라타다”, “다루다”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요아스는 군사력을 잘 아는 군주답게, 숙련된 손으로 그 무기를 움켜잡았다. 그런데 그다음에 이상한 일이 일어났다. 엘리사는 죽음을 앞둔 병상에서 손을 내밀어 ..

거짓된 펜과 철필의 끝

“너희가 어찌 말하기를, ‘우리는 지혜롭고, 주의 율법이 우리와 함께 있다’ 하느냐? 보라, 진실로 서기관들의 펜이 그것을 거짓으로 만들었도다.”예레미야 8:8 KJV 예레미야는 예루살렘의 종교 학자들을 향해 놀라운 고발을 던졌다. 킹제임스성경이 예레미야 8:8을 “서기관들의 펜이 헛되도다”라고 옮길 때, 영어 번역은 파괴적인 의미를 다소 완화하고 있다. 히브리어 단어는 셰케르(sheqer)로, 거짓말, 허위, 의도적인 기만을 뜻한다. 예레미야는 죄와 정면으로 마주하지 않도록 성경을 전문적으로 다루며 왜곡하게 된 신학자들의 에트 셰케르(‘ēṭ sheqer, “거짓된 펜”)을 고발하고 있는 것이다. 이 비극은 바로 앞 절에서 더욱 선명해진다. 황새와 산비둘기와 제비는 단 한 권의 두루마리도 없이 자신들에게..

자기의 하나님을 아는 백성

나는 은혜의 복음을 두고 교회 고위 인사들과 대립함으로 학문적 출세의 가능성을 사실상 몰수당한 한 학자와 함께 햇살 아래를 걸었다. “하지만 상관없다.” 그가 이어서 말했다. “나는 하나님을 알고 그들은 알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 언급은 단순한 삽구(괄호)이자 내가 한 말에 대한 지나가는 한마디에 불과했으나, 내 마음에 남아 나를 생각에 잠기게 했다. 우리 중 자기들이 하나님을 알아 왔다고 자연스럽게 말할 사람은 많지 않으리라 생각한다. 그 단어들은 우리 대부분이 솔직해진다면 여전히 생소하다고 인정해야만 하는 명확성과 경험의 사실성을 암시한다. 우리는 어쩌면 간증을 가지고 있다고 주장하며 그들 중 최고와 함께 자신의 회심 이야기를 거침없이 읊어댈 수 있을 것이다. 우리는 하나님을 안다고 말한다 – 결국..

깨어 있는 자들의 침묵

“이 일은 깨어 있는 자들의 명령으로 말미암은 것이요, 이 요구는 거룩한 자들의 말로 말미암은 것이니, 이는 지극히 높으신 이가 사람의 나라를 다스리시며 자기 뜻대로 그것을 누구에게든지 주시며 또 가장 비천한 자를 그 위에 세우시는 줄을 살아 있는 자들로 알게 하려 함이니라.”다니엘 4:17 (KJV) 하나님의 유일한 주권을 끊임없이 강조하는 다니엘서에서, 다니엘 4:17은 뜻밖의 표현으로 독자를 놀라게 한다. “이 일은 깨어 있는 자들의 명령으로 말미암은 것이요, 이 요구는 거룩한 자들의 말로 말미암은 것이니”라는 구절이다. ‘깨어 있는 자(watcher)’에 해당하는 아람어는 이르‘îyr’로, 문자적으로는 ‘잠들지 않는 자’, ‘깨어 있는 자’를 뜻한다. 이 단어는 다니엘 4장에만 등장한다. 이들은 ..

지금까지 알려진 가장 위대한 능력

믿음의 추가는 사랑의 능력을 혁명적으로 변화시킨다. 한 호텔의 아름다운 볼룸은 1,300명이 넘는 대학생들과 간사들로 가득 차 있었다. 나는 내가 했던 가장 흥분되는 영적 발견 중 하나인, 믿음으로 사랑하는 방법에 대해 설명했다. 수년 동안 나는 사랑이라는 주제에 대해 강연해 왔다. 나에게는 단순한 4가지 개요가 있었다. · 하나님께서는 당신을 무조건 사랑하신다.· 당신은 다른 이들—하나님, 당신의 이웃들, 당신의 원수들—을 사랑하라는 명령을 받았다.· 당신은 당신 자신의 힘으로는 다른 이들을 사랑할 수 없다.· 당신은 하나님의 사랑으로 다른 이들을 사랑할 수 있다. 그러나 사랑에 관한 대부분의 설교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무언가가 빠져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수년 전 이른 아침 시간에 나는 깊은 잠에..

압제하는 자와 압제당하는 자를 비추시는 빛

“가난한 자와 속여 빼앗는 자가 서로 만나거니와, 여호와께서는 그들의 눈을 모두 밝히신다.”(잠언 29:13) 언뜻 보면 잠언 29:13은 잠언 22:2의 말씀을 되풀이하는 것처럼 보인다. “부자와 가난한 자가 함께 살거니와, 그들 모두를 지으신 이는 여호와시니라.” 그러나 히브리어 원문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이 장면은 훨씬 어두운 의미를 품고 있다. 두 번째 인물은 단순히 부유한 이웃이 아니다. 그는 ‘이쉬 트카킴’(’îš təkākîm)이다. 이 단어는 성경 전체에서 단 한 번만 등장하며, 그 어원은 ‘짓누르다’, ‘억압하다’, ‘부수다’라는 뜻을 가진 동사에서 나왔다. 즉 그는 약자의 것을 쥐어짜 자신을 이롭게 하는 고리대금업자요, 착취자이며, 무력한 사람을 희생시켜 성공하는 사람이다. 이 둘이 만..

저수지와 여행자

“이스라엘의 소망이시요 환난 때의 구원자이신 주여, 어찌하여 주께서는 이 땅의 나그네 같으시며 하룻밤 묵으려고 길을 벗어난 여행자 같으시나이까?”예레미야 14:8 (KJV) 예레미야 14장에서 땅은 구운 진흙처럼 갈라져 있다. 귀족들은 종들을 물웅덩이로 보내지만, 그들은 빈 그릇만 들고 돌아온다(예레미야 14:3). 들나귀들조차 모든 풀이 말라 버렸기 때문에 황량한 산등성이에 서서 바람을 헐떡이며 들이마신다(예레미야 14:6). 이 숨 막히는 가뭄의 한가운데서 예레미야는 하나님을 향해 영어 번역에서는 점잖은 추상적 표현으로 가려진 한 표현을 사용한다. 곧 “이스라엘의 소망”이라는 말이다(예레미야 14:8). “소망”으로 번역된 히브리어는 미크베(miqveh)이다. 이 단어는 영적인 의미로 신뢰나 기대를 ..

오래된 빵 냄새가 나는 함정

오래된 빵 냄새가 나는 함정 “우리가 당신들에게로 오려고 집에서 출발하던 날, 이 빵을 뜨거운 상태로 양식으로 가지고 나왔습니다. 그러나 이제 보십시오. 이것은 말라 버렸고 곰팡이가 생겼습니다.”여호수아 9:12 (KJV)기브온 사람들은 병거나 전차로 이스라엘을 정복한 것이 아니라, 하나의 소품으로 정복했다. 여호수아 9:12에서 그들은 여호수아 앞에 서서 바스러질 듯한 빵 껍질을 내보인다. 그들은 치밀하게 준비된 이야기를 들려준다. “우리가 집에서 출발할 때 이 빵을 뜨거운 상태로 양식으로 가지고 나왔지만... 이제 보십시오. 이것은 말라 버렸고 곰팡이가 생겼습니다.” 여기서 “곰팡이가 생긴”으로 번역된 히브리어는 니쿳드(niqqud)로, 얼룩지고 바싹 말라 부스러진 상태로 부패한 빵을 묘사하는 단어이..

오래된 원수를 향한 눈물

“내 마음이 모압을 위하여 부르짖으리니, 그의 도망자들은 소알로, 삼 년 된 암송아지에 이르기까지 달아날 것이다. 그들이 루힛 비탈길로 올라가면서 울 것이며, 호로나임 길에서는 멸망의 부르짖음을 일으킬 것이다.”이사야 15:5 모압은 이스라엘의 옆구리에 박힌 오랜 가시와 같은 존재였다. 그들의 근원은 근친상간으로부터 시작되었고(창세기 19:37), 하나님의 백성을 저주하기 위해 발람을 고용하기도 하였다(민수기 22장). 그들은 대대로 이어진 적대자였다. 그렇기에 이사야 15장에서 그들을 향한 멸망의 신탁이 시작될 때, 우리는 승리감이나 통쾌함을 기대하게 된다. 그러나 대신 들려오는 것은 한탄의 울음이다. “내 마음이 모압을 위하여 부르짖으리라”(이사야 15:5). 선지자는 예의상 애도를 표하는 것이 아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