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Brethren/연(輦)모임 메시지

소망

Hernhut 2014. 10. 7. 16:30

 

하나님께서 주신 격려와 동기부여

베드로전서 3:15절에 의하면 그리스도인들은 오직 너희 마음속에서 [] [하나님]을 거룩히 구별하고 너희에게 너희 속에 있는 소망의 이유를 묻는 모든 사람에게 온유함과 두려움으로 대답할 것을 항상 예비되어야 합니다. 이것은 삶에 속해 있는 소망, 살아있는 소망이라고 불립니다. 죽은 자들로부터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벧전 1:3)을 통해 이루어진 것입니다. 그리스도는 그분께서 부활하심으로 사시고, “그리스도 안에 있는자들은 그분과 함께 영광 가운데 살게 되었습니다.

 

베드로전서에 있는 소망은 상속”(1:4), 미래의 구원성도들의 혼의 구원”(1:5, 9), “예수 그리스도께서 나타나실 때에 칭찬과 존귀와 영광”(1:7, 4:12~13)과 관계있습니다. 그리스도께서 나타나실 때 그리스도인들은 영광 안에서 그리스도와 함께 나타날 것입니다. 이 모든 문제에 대한 다른 측면은 그리스도와 함께 하는 공동상속자로서 다스리는 것과 그 상속자들의 구원을 아는 것입니다. 이것은 그리스도인들이 그들 속에 있는 소망의 이유를 묻는어떤 사람들에게 답할 준비를 촉구한 것입니다.

 

히브리서 6:11~12절에 있는 그리스도인들에 의해 붙잡혀 있는 소망은 아주 간단한 방식으로 설명되었습니다. 오늘날의 믿음과 인내를 통한 소망을 가진 그들은 미래에 약속을 상속받을 수 있을 것입니다.

 

 

믿음을 발휘하는 것은 단순하게 믿는 것입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어떤 문제에 관해 말씀하셔야 함을 믿는 것입니다. 따라서 믿음 행위를 발휘하는 사람들 안에서 결과를 낳게 됩니다. 히브리서 11장은 믿음의 장입니다. 모든 믿음의 선진들 앞에 믿음으로~”라는 단어가 있는 것으로 이것을 증명합니다. 바로 직후 히브리서 12장은 모든 문제의 절정이 있습니다.

 

 

다섯 가지 중요한 경고 중 다섯 번째이며, 마지막 경고는 맏아들의 권리에 대한 직접적인 언급입니다. 전체적인 주제의 다른 측면으로 보였지만 모든 경고들은 이 권리와 관계있습니다. 그리스도인들은 그들이 어느 날 이러한 권리들을 깨닫는 특권을 갖게 될 방식에 따라 그들 앞에 놓인 경주를 완주하도록 촉구를 받습니다.

 

인내를 훈련하는 것은 성도들이 경주를 하는 방식과 관계있습니다(12:1). 이 경주는 그리스도인 생활에서 계속해서 달려야 하는 믿음의 경주입니다(딤전 6:12, 1:3). 이 경주는 단거리가 아닌 장기간에 걸친 경주입니다. 이 경주를 하는 사람들은 마라톤을 하는 사람과 같습니다. 그리스도인들은 그들이 완전한 경주를 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그들 스스로 합당하게 속도를 냅니다.

 

앞에 있는 경작되지 않은 상속은 그리스도인들의 소망이요, 목적입니다. 이 소망은 하나님께서 약속하셨다는 것을 어느 날 알 것입니다. 이것은 믿음의 경주하는 인내를 통해 이루어지게 되는 것입니다. “믿음인내는 약속들을 상속하는 방식에 따라 불가분하게 연결되어있습니다.

 

히브리서 10:23~25절에 같은 말씀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23절에 있는 그리스도인들은 “(약속하신 분께서 신실하시니) 우리의 믿음(소망)의 고백을 흔들림 없이 굳게 잡고라고 말했습니다. 문맥적으로 오늘날 함께 모이는 그리스도인들 뒤에 있는 모든 생각은 이 소망을 가지고 서로를 생각하는 것이요, “서로 사랑을 불러일으키는 것이요, “서로 선한 일을 하는 것입니다(25).

 

그리스도인들은 앞에 놓인 것을 논의하고, 서로를 위해 기도하고, 서로 권면하기 위해 함께 모입니다. 그들이 그날이 다가오는 것을 보는 것처럼 더 더욱 모이는 것입니다(24~25). 우리의 소망을 깨닫게 될 그날이 다가오고 있습니다.

 

이것은 디도서 2:13절에 있는 축복된 소망이요, 순수하게 된 소망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이 어느 날 이 소망을 알도록 하기 위해 오늘날 세상에서 술 취하지 않고, 의롭고, 경건하게 살도록 권면 받습니다(12).

 

그 복된 소망은 그 자체가 그리스도의 재림이 아닙니다. 특히 오늘날 제도가 끝날 무렵 그리스도인들을 위한 그리스도의 재림이 아닙니다. 오히려 그 복된 소망은 대환란 끝 무렵 그리스도의 재림 때까지 드러나지 않을 영광이요, 크신 하나님, 우리 구원자 예수 그리스도의 영광스런 나타나심과 관계있습니다(13).

 

헬라 원문 해석은 바로 앞 구절을 이해하게 합니다. 헬라 원문에서 영광의 나타남그 복된 소망에 대해 더 설명하는 것입니다. 헬라 원문에서 이 구절의 후반절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위대하신 하나님에 대한 것을 더 설명하는 것과 같습니다.

 

이러한 점을 염두에 두면, 그 구절은 그 복된 소망을 기다리는 것은 우리의 위대하신 하나님과 우리 구세주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영광을 나타내는 것이라고 번역하는 것이 더 나을 수 있습니다. 소망은 디도서의 중심적인 가르침으로서 오늘날 그리스도의 영광의 부분을 갖는 그리스도인들의 생각을 에워싸고 있습니다.

 

 

큰 기쁨과 확신을 갖고

그리스도인들은 계시된 두 가지 방식 즉 확신과 큰 기쁨을 따라 그들 앞에 놓인 소망을 굳게 받습니다(3:6). “확신이라는 단어는 헬라어 파레시아parresia의 번역입니다. “파레시아parresia는 모든 것(pan)과 말하다(레인rein)의 합성어로 어떤 문제에 관해 담대하다, 용감하다, 열다, 드러내 놓다, 명백히 하다를 의미합니다. “큰 기쁨이라는 단어는 헬라어 카우케마kauchema입니다. 그 단어는 뽐낼 수 있는 것을 가진 사람이 어떤 것을 자랑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파레시아parresia는 문제들에 관해 열다”, “밝히다”, “드러내다의 의미로 신약성경에서 수없이 사용했습니다. 이 단어는 숨긴 것이 아무것도 없다는 의미요, 담대하게 말하다라는 의미입니다. 예수님은 솔직하고, 담대하게 그분의 제자들과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말씀하셨습니다(8:32, 16:29, 18:20). 이것은 예수님에 대해 민족의 거절 때문이지만 그 날은 그분이 유대인들 가운데 드러나게 다니지 아니하셨을 때왔습니다(11:54). 그것은 예수께서 이미 비유를 사용하여 가르치시기 시작하셨던 이런 거절 때문이었습니다(13:10~15).

 

파레시아parresia는 신약성경에서 문제들에 관해 용감하다, 용감한라는 의미로 여러 번 사용되었습니다. 베드로와 요한이 대제사장 안나스와 다른 사람들 앞에 서서 베드로가 용감히말을 했습니다. “그들이 예수와 함께 있었기때문에 이런 덕을 가졌다는 것을 알고서 베드로에게 듣고 있던 사람들은 놀라워했습니다.”(4:5~13, 31)

 

바울은 에베소서 끝에서 대신 기도해 주기를 요청했습니다. 또 나를 위하여는 내게 말하는 것을 허락하사 내가 담대히 입을 열어 복음의 신비를 알리도록 구하라.”(6:19) 밝히는 것”, “드러내는 것에 대한 생각은 앞 구절에 있는 용감함으로 전달된 것으로 보아야 합니다(고후 3:12, 7:4, 1:20, 딤전 3:13, 4:16).

 

카우케마kauchema기쁨으로 번역되었습니다. 이 단어의 동사형 카우카오마이kauchaomai에서 파생된 단어입니다. 이 단어들은 신약성경에서 여러 번 사용되었습니다. 이 단어는 성경에서 3번 다른 방법으로 번역되었는데 뽐내다”, 자랑하다, 뽐내다를 의미하는 영광”, 그리고 기뻐하다입니다(2:23, 4:2, 5:2, 고후 1:14, 5:12, 9:3).

 

카우케마kauchema에서 유래되었다기보다는 기쁨에 대한 생각이 이 단어가 의미하는 것의 결과로부터 나온 것으로 보입니다(3:6, 1:26, 2:16). “카우케마kauchema어떤 것에 관해 뽐내는 것에서 나오는 어떤 것을 자랑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기쁨은 이 위치에 있게 된 사람에게서 나옵니다.

 

그리스도인이 “........너희 속에 있는 소망의 이유를 묻는 모든 사람에게 ........ 대답할 것을 항상 예비하며”(벧전 3:15)라고 말했을 때 그는 어떤 일을 뽐내기 위해 문제에 관해 열려있습니다. 말의 담대함으로 전합니다. 그 자신을 표현함으로 용감하고, 담대해지고, 자랑합니다. 그는 그분의 왕국에서 그분과 함께 하는 공동 상속자로서 다스리기 위해 왕들 중에 왕, 주들 중에 주와 보좌에 오르기를 초대받았었습니다. 그는 성경이 아주 큰 구원이라고 부르는 하나님께서 구속된 사람을 위해 설계하셨던 가장 큰 소망을 소유하고 있습니다(2:3).

 

이것은 그리스도인들이 어떤 일에 관해 열려있고, 분명히 하는 것입니다. 그들은 다른 사람들이 말하는 것과 생각할 수 있는 것에 관해서 분명하게 말하는 것입니다. 그들은 그들이 어떤 것에 관해 뽐낼 수 있고, 헤아릴 수 없는 가치를 아는 것을 담대하고 용감하게 말하는 것입니다(10:32~33, 딤후 2:10~13).

 

끝까지 견고하게 하라

이스라엘 사람들은 구약성경에서 볼 수 있는 것처럼 많은 체험을 했습니다. 이 모든 체험 가운데 이집트에서의 맏아들의 죽음도 경험을 했습니다. 모든 것들이 나온 것은 목적을 위해 이끌려진 것이요, 일어났던 것입니다. 그 목적은 가나안 땅을 알게 하는 그들의 부르심에 대한 목표와 관계가 있었습니다.

 

맏아들의 죽음, 홍해를 건넘, 그리고 광야여행은 보기에 한 가지 목적을 가지고 일어났습니다. 단 하나의 체험을 가진 이스라엘 사람들은 이 한 가지 목표에 그들의 눈을 계속 고정해야 했었습니다. 그들은 그들의 코스를 곧게 해야 했었고, 그것을 붙잡아야 했었으며, 빗나가지 말아야 했었습니다. 그들은 어느 날 그들이 그들의 부르심의 목표를 알게 될 끝까지 견고하게 하는 방식을 따라 그들의 코스를 붙잡아야 했었습니다.

 

이것은 오늘날 그리스도인들이 체험하는 관점에서 똑같습니다. 이스라엘사람들처럼 그리스도인들은 또 다른 땅을 소유하도록 부르시는 목표를 아는 것과 관계있는 소망을 소유합니다. 그리스도인들은 이 목적을 위해 구원 받았었고, 생활 속에서 모든 체험을 했었고, 이 한 목표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리스도인들은 자신들의 코스를 곧게 해야 하고, 그것들을 붙잡아야 하며, 그 길에서 벗어나지 말아야합니다. 그리스도인들은 어느 날 그들이 그들의 부르심의 목표를 알게 될 끝까지 견고하게 하는 방법을 따라 그들의 코스를 붙잡아야 합니다(3:6). 主護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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