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Brethren/연(輦)모임 메시지

구원 –영, 혼

Hernhut 2014. 10. 4. 21:00

 

창세기 1:1~2:3절에서 거룩하게 계시된 구원

성경은 구속의 책입니다. 구속을 둘러싸고 있는 기본적이고, 변할 수 없는 가르침이 이 책에 설명되어 있습니다. 맨 처음부터 이 책에 드러내기 위한 목적은 구속에 대한 가르침입니다.

 

창세기 첫 장에서 하나님은 그분과 그분의 무한하신 지혜, 지식 안에서 변할 수 없는 방식을 말씀하셨고, 황폐한 창조를 회복하셨습니다. 거기엔 특별한 패턴을 따르는 회복사역이 있습니다. 그 방식은 거룩한 개입을 통해 완전하게 이루어졌습니다. 이 변할 수 없는 패턴 안에는 맨 처음에 정해진 것이 있습니다. 하나님은 황폐하게 된 창조가 꼭 회복되어야 할 것을 계시하십니다. 그것은 거룩한 개입을 통해 어떤 순서에 따라 6일 간(6,000년 동안) 회복되어야 했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핵심적인 구원과 관련 있는 사람을 세우겠다는 생각은 창세기에서 시작해야 합니다. 오류의 견해를 붙잡는 모든 사람들이 구원에 대한 것이 창세기 1장에서 시작했고, 하나님께서 황폐화된 창조가 회복 되는 것과 관련해 맨 처음 정하셨다는 것을 이해하고 고수 한다면 구원과 관련된 잘못된 견해가 오늘날 존재하지 않을 것입니다. 잘못된 견해가 존재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구원과 관련된 특별한 생각에 더하여지는 것은 영의 구원에 적용될 뿐만 아니라 혼의 구원에도 동등하게 적용된다는 것입니다. 이 기본적인 틀의 구조 안에 있는 영의 구원(오늘날 우리가 소유하고 있는 구원)은 맨 처음 6일 동안에 알았지만 혼의 구원(믿음의 결국에 일어날 구원)은 계속해서 진행되는 과정이요, 6일 끝나는 시점, 일곱 번째 날에 만 알게 됩니다(벧전 1:5, 9).

 

이런 점에서 사실상 구속과 관계가 있는 변할 수 없는 기본적인 모든 것은 사람(영과 혼)이 창세기 1:1~2:3절에서 시작되었다는 것입니다. 사람이 그 올바른 관점으로 구원을 이해하고 오류를 버릴 것이라면 그들은 창세기 1:1~2:3절에서 시작해야 합니다. 여기에서만 사람이 변할 수 없는 기초를 볼 수 있고, 변치 않을 수 있고, 실행해 나갈 수 있습니다.

 

 

영의 구원

히브리서 4:12절을 읽읍시다. “[하나님]의 말씀은 살아 있고 권능이 있으며 양날 달린 어떤 검보다도 예리하여 혼과 영과 및 관절과 골수를 찔러 둘로 나누기까지 하고 또 마음의 생각과 의도를 분별하는 분이시니 여기서 사람의 혼과 영 사이를 통과하여 나누는 것을 계시합니다. 이것은 창세기 맨 처음 구절에서 다루어진 가르침입니다. “하나님의 백성들앞에는 안식이 정해져 있는 것과 같은 것입니다(12:4, 9).

 

하나님의 성령은 창세기 1:2b절에서 움직이시고, 하나님은 3절에서 말씀하십니다. 사람의 구원과 관계있는 것은 이 부분입니다. 나누는 것은 사람의 혼과 영 사이에 만들어져 있습니다.

 

하나님의 성령은 움직이셨고, 하나님은 말씀하셨으며, 빛은 생겼습니다. 창세기 2b~3절은 하나님의 신격의 행동을 처음 기록합니다. 이 부분의 기록은 황폐화된 물질적인 창조를 회복하시는 아버지, 아들, 그리고 성령께서 참여하신 움직이심입니다. 성령께서 움직이셨고, 하나님은 말씀하셨으며, 또 요한복음 1:3절에 의하면 아들 없이는 창조할 자가 아무도 없다고 증명합니다.

 

사람의 구원 체험에 대한 틀 안에 있는 문제는 동일합니다. 하나님의 신격의 움직이심이 있어야 합니다. 이는 하나님께서 창세기에 있는 말씀에 황폐화된 창조를 회복하시는 사역을 하셨다는 것 때문입니다. 이것은 또한 나중 사역을 위해 변할 수 없는 패턴을 세우시기 위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성령은 예표에서나 실제에서도 성령은 움직이시고, 하나님은 말씀하시고, 빛은 생깁니다. 모든 것은 갈보리에서 아들의 마지막 사역에 기반을 둡니다. 성령께서 움직이시고,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는 것은 2,000년 전에 일어났던 것에 근거합니다.

 

아드님께서 십자가에서 다 이루었다, 끝냈다”(19:30, 23:46)고 외치셨을 때 그분께서는 정확히 그것을 의미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가 아들의 마지막 사역에 완전하게 바탕을 둔 신성(神性)의 구원을 갖는다는 것을 계시하셨을 때 하나님의 말씀은 정확히 그것을 의미합니다.

 

사람이 동산에서 죄를 지었을 때 영적으로 죽었습니다. 돌이킬 의지가 없는 범죄 함과 죄들로 죽은 사람(2:1)이 오늘날 삶을 얻었을 때 그는 영적으로 삶을 얻은 것입니다. 황폐화된 창조 회복을 위해 성경의 움직이심(1:2b)과 하나님의 말씀하심(1:3)은 동시에 일어난 사건들입니다. 성령님은 구속받지 않은 사람 안에서 초자연적인 사역을 효과적으로 수행하시기 위해 하나님의 호흡으로 된 말씀을 사용하십니다. 이 부분에서 하나님의 호흡을 통해 생명은 생명이 없었던 것에 전달되었습니다.

 

죽은 자 안으로 들어오는 하나님의 호흡은 사람이 살게 하고 활발하게 합니다(2:1, 5). 하나님의 호흡으로 된 말씀을 사용하시는 성령님은 아들의 마지막 사역에 근거를 두십니다.

 

이 부분에서 성령은 어둠에서 빛이 비추게 하십니다(고후 4:6). 성령은 나누는 것이 빛과 어둠 사이에 있게 하십니다(1:4). 어둠은 빛에 대한 공포나 이해력에 대한 것이 없습니다(1:5, 고전 2:14).

 

이 부분은 사람의 구원 안에서 영이 혼으로부터 분리되는 부분입니다. 구원받지 않은 사람 안에 있는 은 죽어 있습니다. 그것은 전적으로 타락한 사람이요, “죽은 몸을 가진 사람이요, “선한 것이 없는 것이 거하는 부분입니다(7:18, 24). 하나님의 호흡으로 된 말씀을 사용하시는 성령의 움직이심으로 사람의 영은 살아나게 되었고, 동시에 혼으로부터 분리 되었습니다.

 

은 어두운 영역에 남아있습니다. 헬라어 프슈키코스psuchikos혼적인 천연적인 사람하나님의 성령의 것들을 이해할 수 없는 이유입니다(고전 2:14). 어두운 곳에 남아 있는 것은 어둠에서 빛이 비치게 된다는 것을 이해하거나 두려움을 갖지 못합니다. 두 사이를 혼란이 없도록 하나님께서 세우신 나누심이 있습니다(16:26).

 

 

혼의 구원

앞의 과정은 아담의 되의 결과로 온 타락한 상태에서 영을 건지시려고 사용하시는 방식입니다. 영이 건져졌었기 때문에 다시 한 번 하나님과 연합될 수 있습니다.

 

사람은 이제 영적인 것들을 이해할 수 있습니다. 이제 진보적인 것이 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사람이 6일 끝, 6,000년 끝에서 차지하는 것을 하나님께서 선포하신 곳으로 건지실 수 있도록 하기 위해 사람 안에서 하나님의 성령으로 계속해서 사역하셨습니다.

 

창세기 1장에 있는 틀 안에는 전조하는 것이 있습니다. 이것은 어떤 회복적인 과정이 일어날 수 있기 전에 죽음에서 생명으로통과해야 하고, 사람이 살아나야 했기 때문에 처음에 정해졌어야 합니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세우신 패턴에 따라 사람의 완전한 회복, 영과 혼과 몸을 갖게 하는데 쓰였던 맨 처음 6일을 말합니다(살전 5:23). 타락한 사람에 대한 하나님의 완전한 회복을 간단하게 묘사하는 것은 창세기 1장에서 황폐화된 물질적인 창조에 대한 하나님의 완전한 회복을 따른 패턴입니다. 이 패턴은 두 가지가 있습니다. 회복은 6일 동안 일어났습니다. 회복의 모든 과정은 일곱 번째 날의 안식으로 이끌려 졌습니다.

 

사람의 영의 구원과 관련하여 첫날부터 일어났고, 혼의구원과 관련해서는 6일 중 둘째 날에 일어났습니다. 영의 구원은 사람이 죽음에서 생명으로통과하는 즉각적인 사건이지만 혼의 구원은 그렇지 않습니다. 혼의 구원은 점진적인 사건입니다. 혼의 구원은 사람이 영적으로 살아나게 되었던 부분에서 시작하는 것이 분명합니다. 혼의 구원은 회복의 사역 6, 6,000년이 끝날 때까지 알지도, 완전하지도 않을 것입니다.

 

 

오늘날 제도 끝에서 그리스도의 심판대 문제는 6, 6,000년 끝에서 일어날 것이고, (생명)의 구원이나 잃음을 둘러싸고 있는 문제들과 관계있을 것입니다. 혼의 구원은 사람이 혼(생명)의 구원을 깨닫거나 깨닫는 것을 실패하기 전까지는 심판대에 없을 것입니다.

 

 

영의 구원이 창세기에 있는 회복의 날이 첫날부터 일어났던 것이 정확한 복사를 제외하고는 일어날 수 없기 때문에 6일 중 둘째 날에 일어난 혼의 구원과 그 관계가 같은 방법으로 이해되어야 하는 것이 분명합니다. 후자는 전자와 마찬가지로 전자의 패턴을 따라야 합니다. 이런 점에서 차이가 있을 수 없습니다. 이런 경우 때문에 창세기에서 황폐화된 창조의 회복에는 6일 중 둘째 날에 일어난 것을 기록했습니다.

 

전체적인 그림이 보여주는 것은 구속된 사람의 혼의 구원을 가져왔어야 했다는 것이고 이 같은 사건들이 사람, 다음의 황폐화된 창조의 회복을 계속하시는 하나님의 사역과 관계있음을 보여줄 수 있습니다.

 

둘째 날, 셋째 날의 사건들은 첫째 날과 마찬가지로 나누는 것과 관계있습니다. 둘째 날에 하나님은 물들 사이를 나누셨습니다(1:6~8). 셋째 날에는 마른 땅과 물들을 나누시기 시작하셨습니다(1:9~13). 넷째 날은 나누는 것이 아닙니다. 그 날은 땅에 빛을 비추도록 하늘에 빛들을 두셨습니다(1:14~19). 다섯째 날은 땅 위를 날 수 있는 새들을 창조하셨고, 바다를 헤엄쳐 다닐 수 있는 해양생물들을 창조하셨습니다(1:20~23). 여섯째 날에 하나님은 땅을 돌아다닐 수 있는 동물들을 땅에 창조하셨습니다(1:24~25).

 

이미 기록한 것처럼 창세기에 있는 물질적인 창조와 관계있는 하나님의 모든 회복사역은 오늘날 사람과 관계있는 하나님의 모든 회복사역을 말합니다. 사람이 죽음에서 생명으로 통과한후 영이 혼으로부터 분리됩니다. 거룩한 개입으로 전체적으로 일으켜진 구속된 사람은 계속된 거룩한 사역이 일어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일어나야 하는 위치와 상태에서 그 자신을 찾을 것입니다. 이 계속된 거룩한 사역을 통해서만 하나님의 모든 회복사역을 하실 수 있습니다.

 

물질적인 창조물처럼 사람은 영의 구원에 관해 전적으로 소극적이어야 합니다. 사람은 움직일 수 없는 죽은 자입니다. 사람은 혼의 구원에 관해 움직여야 합니다. 영적생활을 해야 하고, 영적인 영역 안에서 움직여야 합니다. 하지만 물질적인 창조물의 회복 안에서처럼 모든 구원 과정(, , 몸에 이르기까지) 그리고 궁극적으로 몸은 거룩한 사역입니다. 구원은 {}께 속하나이다”(2:9)

 

창세기 1장에 있는 처음 3일 동안 일어나는 사건들은 사람의 영적성장과 영적생명 안에 있는 기본적인 것들이나 근거를 가리킵니다. 첫날 일어난 사건들은 혼과 영 사이가 나누어짐을 가리킵니다. 첫날의 사건들은 생명의 나누어짐과 관계가 있습니다. 둘째 날과 셋째 날의 사건들은 첫날에 산출된 새 생명의 틀 안에서 점진적인 성장하기 시작함으로 나누어지는 것과 차이를 가리킵니다. 사람들은 혼적인 것과 영적인 것, 영적인 것과 육적인 것, 유대인과 이방인, 이방인과 그리스도인, 그리고 그 섭리 등의 차이를 배울 것입니다.

 

둘째 날과 셋째 날에 산출된 것으로 묘사된 나누어짐과 그 차이를 배울 때에만 6일 중 네 번째 날에 산출된 것 안으로 움직이게 되는 것입니다. 이 세 날에 빛이 태양과 달로 회복되었습니다(1:14~19). 그리고 해양생물들과 공중의 새들이 창조되었습니다(1:20~23). 그런 후 하나님은 땅에서 돌아다니는 모든 창조물들을 창조하셨습니다. 이어서 그분을 닮은 사람을 창조하셨습니다(1:24~27).

 

그것은 실제에서 기본적인 진리를 넘어선 것을 가리키는 신격의 사역으로 묘사했습니다. 사람이 죽음에서 생명으로 통과하고, 기본적인 진리 안에서 가르침을 받은 후, 위로부터 다시 태어나고, 그리스도인의 생활에서 성장한 후 말씀에 대한 더 깊은 영적인 진리를 이해함으로 보기 시작할 수 있습니다. 그런 후 사람은 창세기 1장의 6일 중 네 번째 날의 사건을 묘사한 말씀 안에 있는 것들을 이해하기 시작할 수 있습니다.

 

이 위치에 있는 성도들은 말씀과 그 보물을 마음 안으로 더 깊이 새기기 시작할 수 있습니다. 성도들은 말씀을 연구할 수 있습니다. 하늘에 있는 빛들로 묘사된 것을 이해할 수 있습니다. 오직 {}를 우러러 바라는 자들은 자기 힘을 회복하리니 그들은 독수리같이 날개 치며 올라갈 것이요, 달려가도 피곤하지 아니하고 걸어가도 기진하지 아니하리로다.”(40:31) 더 높이 오르는 것처럼 성도들은 말씀의 참된 의미를 이해할 수 있습니다. 바다생물들이 바다 깊이에까지 들어가는 것 같이 말씀의 깊이 안으로 들어갈 수 있습니다. 성도들은 육상생물들이 땅 위를 걸어 다니는 것처럼 말씀을 통해 걸어 다닐 것입니다.

 

 

혼의 구원을 가져오는 영적승리와 그리스도인 성숙은 함께 갑니다. 6일 동안의 하나님의 회복사역 모든 과정은 일곱 번째 날을 위한 것입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백성들이 기다리는 안식일 안식을 위한 것입니다. 護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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