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퍼런스/중생(거듭남)

거듭남 9. 우리는 새 생활의 필요를 받음(3)

Hernhut 2009. 8. 13. 15:38

9. 우리는 새 생활의 필요를 받음(3)

 

그리스도의 몸을 위한 새 생활

 

우리가 거듭났을 때 우리는 새 생활의 필요를 받았다는 것을 보았습니다. 이 새 생활은 두 방면이 있습니다. 첫 번째 방면은 우리는 그리스도의 누리는 것을 다루었습니다. 이 새 생활의 두 번째 방면은 그리스도의 몸을 위한 것이요, 또 실재적인 교회생활을 위한 것입니다. 새 생활의 이 두 방면은 밀접한 관계가 있습니다. 우리는 다만 그리스도의 몸 안에서 그리스도를 누릴 수 있고 우리의 누림은 에게까지 도달하도록 우리를 복되게 합니다. 그리스도의 우리 누림 모두는 실제로 그리스도의 몸을 위한 것입니다. 그런 후에 그리스도의 몸을 위한 이 새 생활은 교회생활 안에서 특별하게 체험한 것입니다. 교회생활 안에서 우리의 움직임은 그리스도의 우리 누림으로부터 나온 문제이어야 합니다. 우리가 거듭났을 때 우리는 그리스도의 몸 안으로 난 것입니다. 우리 안에 있는 생명은 단체적인 생활을 필요로 해 거듭남에 의해서 받은 것입니다. 이는 우리가 더 이상 개인적인 것이 될 수 없음을 의미합니다. “스스로 되라”고 우리에게 말하는 문화가 일어났던 적이 있었습니다. 우리는 우리가 자아실현을 찾을 수 있기 위해 아이들에게 “네가 좋아하는 것이 무엇이든지간에 하라”고 말해 왔습니다. 그러나 이제 우리는 더 이상 우리 스스로에 의한 것이 올바르지 않습니다. 우리는 새 생활의 필요를 받았습니다. 우리는 그리스도의 몸 안으로 났습니다. 이전의 우리의 삶은 우리를 위한 것이었습니다. 우리가 옳다고 생각했던 것 무엇이든지 우리가 하기 원했던 무엇이든지간에 우리는 곧바로 그것을 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제 거듭난 후에 모든 것들이 다릅니다. 이제 우리는 “의 생활”을 살도록 그리스도의 몸 안으로 났습니다. 생활은 교회생활 안에서 특별한 체험입니다. 몸의 생활은 우리 자신의 육체적인 몸을 보는 것으로 설명될 수 있습니다. 우리가 우리의 몸을 볼 때 하나님께서 지혜로우시다는 것을 깨닫습니다. 오직 하나님께서는 이와 같은 놀라운 방식 안에서 하나로 표현하실 수 있으십니다. 우리의 몸의 모든 부분은 상호작용할 수 있는 것으로 가득합니다. 모든 지체는 그 지체의 독특한 기능을 가지고 있으며, 모든 지체들은 한 몸으로서 작용합니다. 이는 심지어 그리스도의 몸이 더 참됩니다. 우리가 거듭날 때 우리는 그리스도의 몸의 지체가 됩니다. 우리는 새 생활의 필요를 받습니다. 우리는 더 이상 우리 스스로에 의해 될 수 없습니다. 우리는 더 이상 개인적으로 고립되어 남아있을 수 없습니다. 우리 새 생활은 그리스도의 몸의 다른 모든 지체들과 함께 화합하여 작용하는 단체적인 생활입니다.

 

그리스도의 몸을 위한 주님의 3가지의 명령(위임)

 

이제 우리는 그리스도의 몸 안에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주님께서는 우리로부터 어떤 것을 요구하신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우리가 거듭난 결과 어떤 책임이 포함됩니다. 이제 우리는 그리스도의 몸 안에 있고, 우리는 우리 자신만을 집중시키지 말아야 합니다. 요한복음은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한 3가지의 명령(위임)을 가지셨음을 계시합니다. 그러나 이 3가지 명령은 우리에게 무거운 요구가 아닙니다. 오히려 그것들은 이전에 다루었던 그리스도의 모든 풍성을 가시화하는 것입니다.

 

1. 서로 사랑하라.

 

먼저 주님께서는 또 다른 사람을 사랑하라고 우리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내 명령은 곧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하는 이것이니라.”(요 15:12)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사랑하신 것 같이 우리도 또한 다른 사람들을 사랑해야 합니다. 많은 그리스도인들 가운데서의 사랑은 품위를 아주 떨어트리게 될 수 있습니다. 그들의 사랑은 호의를 교환하는 문제입니다. “나는 당신을 위해 어떤 것을 한다. 그리고 당신은 나를 위해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서로 사랑합니다.”라고 말합니다. 그것은 얕은 사랑입니다. 우리가 가져야 하는 사랑은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사랑하신 것과 같이 서로 안으로 생명을 나누워 주는 사랑입니다.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어떻게 사랑하셨습니까? 그분은 우리를 위해 죽으시고, 우리 안으로 그분의 생명을 나누워 주시기까지 사랑하셨습니다. 우리가 우리 삶을 버려서라도 우리는 그리스도의 몸 안에서 또 다른 사람을 사랑해야만 합니다. 우리는 그것들을 절대적으로 부어짐으로 해서 우리 형제자매의 목적을 위해 내려놓는 것을 배워야 합니다. 또 우리는 성도들 안으로 신성한 생명을 나누어 주는 방법을 배워야 합니다. 이것은 주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첫 번째 명령인 “서로 사랑하라.”의 진정한 의미입니다.

 

2. 하나 됨(친밀감)을 유지하라.

 

둘째로 주님께서 친밀감을 유지하는 것을 우리에게 말씀하셨습니다. 주님께서는 아버지께 기도하셨습니다.

 

“이제 나는 세상에 더 있지 아니하오나 이들은 세상에 있사옵고 나는 아버지께로 가옵나니 거룩하신 아버지여, 아버지께서 내게 주신 자들을 아버지의 이름으로 지키사 우리와 같이 그들도 하나가 되게 하옵소서.”(요 17:11)

 

그분께서는 더 나아가셔서 기도하셨습니다.

 

“그들이 다 하나가 되게 하옵소서. 아버지여, 아버지께서 내 안에, 내가 아버지 안에 있는 것같이 그들도 우리 안에서 하나가 되게 하사 세상으로 하여금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을 믿게 하옵소서.”(요 17:21)

 

친밀감을 유지하는 이 명령은 서로 사랑하는 첫 번째 명령과 뚜렷하게 관련되어 있습니다. 만일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사랑하신 것처럼 우리가 서로 사랑한다면 이와 같은 사랑으로 우리는 친밀감을 유지할 수 있을 것입니다. 오늘날 그리스도의 몸은 분열되어 있습니다. 이 왜 분리되었습니까? 이런 종류의 사랑이 부족하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은 형제자매들을 대신하여 훈련들과 교리들을 사랑하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나는 내가 믿는 교리를 사랑한다. 당신은 당신이 믿는 교리를 사랑한다. 나는 내가 갖고 있는 훈련을 사랑하며 당신은 당신의 것을 사랑한다.”라고 말할 것입니다. 그들은 우리의 새 생활이 우리의 형제자매들 위에 넘쳐흐르게 해야 하는 원인된다는 것을 깨닫지 못합니다. 우리가 거듭났을 때 그리스도의 몸 안으로 난 것이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무엇을 해야 할까요? 우리가 주님 앞에 있으며 그분의 생명과 은혜를 누리는 것을 배워야 합니다. 그런 후 우리는 서로 사랑해야 합니다. 우리는 서로 에게 생명을 나누고, 서로 위에 우리 자신이 넘쳐흐르게 해야 합니다. 이와 같은 사랑 안에서 우리는 친밀감을 유지하기 위해서 애써야 합니다. 우리는 훈련하기 위해 싸우지 말아야 합니다. 우리는 교리에 관해서 논쟁하지 말아야 합니다. 이런 것들은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필요한 것은 하나가 되는 것입니다. 우리 가운데서 이와 같은 보배가 되어야 하는 것은 우리가 서로 사랑하는 것과 우리가 하나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어떤 것에 관해서 관심 갖지 말아야 합니다. 우리는 그리스도의 몸의 하나 됨과 서로 사랑하는 것에만 관심해야만 합니다.

 

3. 먹이고 양을 지키라.(치라.)

 

주님의 마지막 명령은 요한복음 21:15~17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그들이 이같이 식사를 한 뒤에 예수님께서 시몬 베드로에게 이르시되, 요나의 아들 시몬아, 네가 이 사람들보다 나를 더 사랑하느냐? 하시니 그가 그분께 이르되, 주여, 그러하나이다. 내가 주를 사랑하는 줄 주께서 아시나이다, 하매 그분께서 그에게 이르시되, 내 어린양들을 먹이라, 하시고 ㆍ다시 두번째 그에게 이르시되, 요나의 아들 시몬아,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하시니 그가 그분께 이르되, 주여, 그러하나이다. 내가 주를 사랑하는 줄 주께서 아시나이다, 하매 그분께서 그에게 이르시되, 내 양들을 먹이라, 하시고 ㆍ세번째 그에게 이르시되, 요나의 아들 시몬아,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하시니 그분께서 세번째,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하고 말씀하시므로 베드로가 근심하며 그분께 이르되, 주여, 주께서 모든 것을 아시오니 내가 주를 사랑하는 줄 주께서 아시나이다, 하매 예수님께서 그에게 이르시되, 내 양들을 먹이라.“

 

그 명령은 “내 양을 먹이는 것”(15)과 “내 양을 치는(지키는) 것”(16)과 또 “내 양을 먹이는 것”(17)입니다. 우리가 거듭나는 순간부터 우리는 어떤 사람들을 먹이고 지키는 방법을 배워야 합니다. 이것을 배우기 위한 그리스도인 생활 안에 있는 아주 젊은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나는 방금 구원받았다. 그런데 어떻게 어떤 사람을 돌볼 수 있는가? 나는 먹고 돌보아질 필요가 있는 사람입니다.”라고 말하지 마십시오. 만일 우리가 주님 안에서 젊다면 적어도 우리는 또 다른 젊은 양들을 돌볼 수 있습니다. 하나의 양은 또 다른 양을 돌볼 수 있습니다. 틀림없이 의 생명 안에는 우리가 먹일 어떤 양들이 있습니다. 우리가 종종 우리의 문제는 우리 자신의 것이라고 생각하나 진정한 문제는 우리가 돌볼 양이 없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주님, 저는 제가 생명으로서 당신을 누릴 수 있어서 정말 감사합니다. 이제 제 안에 있는 생명은 새 생활을 필요로 합니다. 저는 당신께서 그리스의 몸 안으로 저를 데리고 오셨고 세 가지의 명령을 저에게 주셨습니다. 주님, 저는 당신의 명령들에 믿음이 있게 되길 원합니다.”라고 기도할 필요가 있습니다.

 

이 세 명령은 무엇들입니까?

 

1. 우리는 다른 사람들을 사랑하는 것과 자신을 기꺼이 주는 것입니다.

2. 우리가 하나가되고 침밀감을 갖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 되기 위해서 오직 관심해야 하고, 훈련이나 교리를 위해 관심하지 말아야 하는 것입니다.

3. 사람들을 먹이고 지켜야 합니다. 우리 모두는 다른 사람들을 먹이고 지키는 방법을 배워야만 합니다.

 

아멘

* 다음 시간에 결론적인 것을 추가하려고 합니다. 또한 계속해서 “위로부터 남”이란 제목으로 강의를 하겠습니다. 기도해 주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