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퍼런스/중생(거듭남)

거듭남 6.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무엇이 되었는가?

Hernhut 2009. 8. 1. 10:41

6.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무엇이 되었는가?

 

이번 강의에서 우리는 거듭난 후에 새 입장을 다루는 것을 계속할 것입니다. 다음 10가지의 중점은 우리가 새 입장을 집중했던 이후로 계속되는 것입니다.

 

21. 우리는 영광에 이르는 그릇이 됨

 

먼저 우리는 영광에 이르는 그릇이 되었습니다. 성경은 인간은 실제적인 그릇이라고 말합니다.

 

“토기장이가 같은 진흙 덩어리로 하나는 귀한 그릇을, 다른 하나는 천한 그릇을 만들 권한이 없겠느냐?”(롬 9:21)

 

우리 각자는 하나님에 의해 만들어진 그분의 신성한 생명을 담을 수 있는 그릇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이 보배를 질그릇 안에 가졌나니 이것은 뛰어난 권능이 하나님에게서 나며 우리에게서 나지 아니하게 하려 함이라.”(고후 4:7)

 

인간으로서 우리는 흙으로 빚은 그릇들이나 거듭났을 때 우리 각자는 하늘에 있는 보배를 받았습니다. 우리가 하나님 자신의 풍성한 생명을 받았기 때문에 영광에 이르는 그릇이 되었습니다. 우리의 그릇들은 흙으로 빚어져 있으나 우리의 보배는 하늘에 있습니다. 우리는 이미 하늘에 있는 보배를 우리 안에 가지고 있기 때문에 어느 날 “하늘에 가는 것”에 대해 생각할 필요가 없습니다. 하나님의 생명인 이 보배는 우리를 영광에 이르는 그릇이 되게 합니다.

 

22. 하나님의 성전이 됨

 

우리 각자는 영광에 이르는 그릇이 되었고, 우리의 몸은 성령의 전이 됩니다. 고린도전서 6:19은 우리에게 말합니다.

 

“도대체 무슨 말이냐? 너희 몸이 너희가 하나님께로부터 받은바 너희 안에 계신 성령님의 전(殿)인 줄을 너희가 알지 못하느냐? 너희는 너희 자신의 것이 아니니”

 

우리 개개인의 몸은 전입니다. 단체적인 우리는 또한 하나님의 성전입니다.

 

“너희가 하나님의 성전인 것과 하나님의 영께서 너희 안에 거하시는 것을 너희가 알지 못하느냐?”(고전 3:16)

 

“하나님의 성전과 우상들이 어찌 조화를 이루겠느냐? 이는 너희가 살아 계신 하나님의 성전이기 때문이라. 하나님께서 이르시되, 내가 그들 가운데 거하고 그들 가운데 거닐며 나는 그들의 하나님이 되고 그들은 내 백성이 되리라.”(고후 6:16)

 

구약시대에서 하나님의 전은 예루살렘에서 육체적인 건물이었습니다. 그러나 신약시대에서는 하나님의 사람들이 그분의 전인 것입니다. 믿는 이들로서 우리는 지금 하나님의 성전이고, 하나님의 그 영께서 우리 안에 거주하시고 머무십니다. 거듭남에 의해 우리 모두 함께 하나님의 전이 됩니다.

 

23. 그리스도의 형제들이 되었음

 

우리는 그리스도의 형제들이 되었습니다. 몇몇 구절이 이것을 우리에게 말합니다.

 

“이와 같이 우리도 여럿이지만 그리스도 안에서 한 몸이요, 서로 지체가 되느니라.”(롬 12“5)

 

“너희 몸이 그리스도의 지체(遲體)인 줄을 너희가 알지 못하느냐? 그런즉 내가 그리스도의 지체를 취하여 창녀의 지체로 만들겠느냐? 결코 그럴 수 없느니라.”(고전 6:15)

 

“몸은 하나인데 지체(遲體)는 많이 있고 그 한 몸의 모든 지체가 많아도 한 몸인 것같이 그리스도도 그러하시니”(고전 12:12)

 

“이는 지금까지 아무도 자기 육체를 미워한 적이 없고 오히려 양육하고 소중히 여기기를 주께서 교회에게 하신 것같이 하기 때문이요, ㆍ또 우리가 그분의 몸과 그분의 살과 그분의 뼈들에 속한 지체(遲體)이기 때문이라.“(엡 5:29~30)

 

우리는 그리스도 자신의 형제들(지체)임을 의미하는 그리스도의 몸의 지체입니다.

 

유감스럽게도 우리 인간의 삶 안에 있는 우리 모두는 아주 개인적이도록 가르쳤으며, 이것이 구원의 우리의 이해에 영향을 줍니다. 우리가 그분을 받기 위해서 주님께 기도했을 때 우리가 우리의 구원이 우리를 위한 것이었다고 추측했습니다. 우리는 우리의 구원이 그리스도를 위한 것이었다는 것을 어떤 생각도 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난 주님께서는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 “나는 너희가 구원되는 것이 필요했기 때문에 너희는 구원받았노라. 너희는 내 몸의 지체(형제들)들이 되도록 구원받았다.” 거듭나게 된 후 우리는 개인적인 방식 안에서 살 수 있다는 개념을 가지고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우리가 그리스도의 지체가 됨을 우리에게 말합니다. 우리가 모두 그리스도의 몸의 지체가 되기 위해서 거듭난 것입니다. 우리는 “내가 내 자신을 영적으로 돌보며, 잠시 잠깐 기도하고 있는 동안에 나는 좋을 것이며, 내 스스로가 그리스도인의 생활을 살 수 있다,”라고 생각하지 말아야 합니다. 그것은 하락된 발상입니다. 주님께서는 대답하실 것입니다. “아니야, 그것은 나의 방법이 아니란다. 그것은 내개 너를 구원할 이유가 못돼. 너는 그리스도의 몸의 형제(지체)들이 되어서 거듭난 것이다. 너는 개인적으로 구원을 받았으나 인격이 주어진 단체적인 생명을 받았으며, 나는 너를 단체적인 입장 안에서 소유하고 있노라. 너는 더 이상 어떤 개인적으로 살 수 없노라.” 거듭나게 됨에 의해 우리는 그리스도의 형제들이 되었습니다. 우리 새 입장 안에서는 개인적인 어떤 것도 더 되는 것을 허락되지 않습니다.

 

24. 성도들과 함께 시민이 됨

 

우리는 이전에 우리가 하나님의 왕국 안으로 옮겨졌다는 것을 보았습니다. 하나님의 왕국 안에는 많은 시민들이 있는데 그들은 그리스도 안에서 믿는 모든 사람들입니다.

 

“그러므로 이제 너희는 더 이상 낯선 자도 아니요, 외국인도 아니요, 오직 성도들과 더불어 동료 시민이요, 하나님의 집안에 속한 자들이며”(엡 2:19)

 

만일 주님께서 동시에 우리 모두에게 말씀하셨더라면 그분께서 “나의 사랑하는 형제요 자매들이여” 라고 시작하시지 않았을 것이라는 것이 가능합니다. 대신에 그분은 “나의 사랑하는 시민들이여”로 시작하실 수 있을 것입니다. 왜 그런가요? 우리 모두 같은 왕국 안에 있으며, 같은 시민권을 분배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주 예수 안에서 믿는 우리 모두는 시민들입니다. 이것은 우리의 새 입장이 단체적인 것임을 우리에게 보여줍니다. 우리가 거듭난 후에 개인적일 수 있다는 생각은 어리석은 것입니다. 이것은 절대적으로 잘못입니다. 우리의 새 입장에서는 하나님의 왕국 안에서 성도들과 함께 시민들입니다.

 

25. 우리는 하나님의 집안에 속함

 

“그러므로 이제 너희는 더 이상 낯선 자도 아니요, 외국인도 아니요, 오직 성도들과 더불어 동료 시민이요, 하나님의 집안에 속한 자들이며”(엡 2:19)

 

우리가 거듭났을 때 하나님의 집안으로 태어났습니다. 어떤 성경은 “집안”의 단어를 “가족”으로 번역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가족의 지체들이 됩니다. 다시 한 번 우리는 더 이상 우리 스스로에 의해서 될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우리는 “ 내 자신의 영적인 상태를 돌볼 것이다”라고 생각하지 말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분의 가족의 다른 지체들과 함께 되는 우리를 원하십니다. 우리는 개인적으로 그릇이 되었을 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성전이 되기 위해서 거듭났다는 것을 일찍이 보았는데 이것들은 그리스도의 몸의 지체가 되었다는 그분의 증거입니다. 이제 우리는 하나님의 집안의 지체들과 성도들과 함께 시민이 되려고 거듭났습니다. 그런데 어떻게 우리가 고립될 수 있을까요? 어떻게 우리가 스스로 남아있기를 결정할 수 있을까요? 어떻게 우리가 개인적인 그리스도의 생활을 추구할 수 있을까요? 우리 그리스도의 생활은 단체적인 문제라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새 입장은 우리를 하나님의 집안에 속한 지체가 되도록 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집안은 가족처럼 단체적이며, 단체적인 그리스도인의 생활을 살도록 정해졌습니다.

 

26. 하나님의 걸작이 됨

 

에베소서 2:10은 “이는 우리가 그분의 작품이요,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서 선한 일들을 위하여 창조된 자들이기 때문이니 하나님께서 이 일들을 미리 정하신 것은 우리로 하여금 그 가운데서 걷게 하려 하심이니라.” 라고 우리에게 말합니다. 여기 “걸작(작품)”이라는 단어는 또한 “솜씨”로 번역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이제 하나님의 걸작이요, 하나님의 솜씨입니다. 그러나 이것은 그 일이 우리가 거듭나면 완벽하다는 의미는 아닙니다. 오히려 우리가 하나님의 걸작이 되게 하려고 계속해서 우리를 일하도록 하시는 하나님을 필요로 합니다. 거듭난 후 하나님께서는 자주 우리를 두드리고 또 자르기 위해 오십니다. 그분은 우리의 생활의 측정하심에 의해 우리를 조절하시고 또 일 하도록 하시며, 그분께서는 우리가 다룰 수 있는 것을 넘어가지 않도록 하십니다. 그분의 목표는 그리스도 자신의 형상 안으로 우리를 바꾸는 것입니다. 우리가 거듭나는 것은 그분의 걸작으로서 우리를 일하도록 하나님께서 독특한 입장 안에 있게 하시는 것입니다.

 

27. 그리스도의 편지들이 됨

 

거듭남에 의해 우리는 그리스도의 편지가 됩니다. 이것은 그 때 주님께서 우리 모두가 쓰고 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사도 바울은 이것을 명백하게 말했습니다.

 

“너희는 우리의 사역을 통하여 분명히 드러난 그리스도의 서신이니 이것은 잉크로 쓴 것이 아니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영으로 쓴 것이며 또 돌판에 쓴 것이 아니요, 육체의 마음판에 쓴 것이라.”(고후 3:3)

 

앞 장에서 새 생명을 받고 있는 우리는 우리의 돌처럼 단단한 마음은 육체의 마음을 바꾸었다고는 것을 보았습니다. 거듭난 후에 우리는 하나님의 살아있는 그 영으로 우리 육체의 마음에 새기고 계신 주님을 체험합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따르면 따를수록 그분은 우리에게 쓰십니다. 그러나 그것은 거듭나게 되는 것은 가능하지만 읽을 수 있는 것은 아주 조금 써지게 됩니다. 우리가 그리스도의 서신이지만 우리는 우리에게 새기도록 주님을 허락해야 합니다. 예를 들어 만일 우리가 어떤 사람이 구원받기를 갈망한다면 우리는 그들을 위해 기도하게 됩니다. 그러면 주님께서는 우리에게 새기십니다. 그것은 주님과 형제자매들 둘 다에 의해서 읽게 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주님께 “주여, 이제 나는 당신에 의해 새겨지도록 정해졌습니다.”라고 말해야 합니다. 어느 날 우리에게 주님께서 새기신 모든 것을 증명하시게 될 것입니다. 어떤 서신은 아마 길이가 몇 문장뿐인 꽤 짧은 것일 것입니다. 이와 같은 사람의 그리스도인 생활은 크게 낭비한 것입니다. 거의 아무것도 마음에 새겨지지 않았습니다. 그 사람은 진정으로 구원을 받았습니까? 맞습니다. 그러므로 그는 그리스도의 편지가 되었습니다. 주님께서는 어느 것을 새기실 수 있었습니까? 단지 조금뿐입니다. 아마도 주님께서는 우리에게 자비를 베푸시게 될 것입니다. 날마다 우리는 “주님, 오늘 저는 저에게 어떠한 것을 새기시는 당신을 원합니다.”라고 말해야 합니다. 주님의 우리 체험은 그분의 쓰고 계심입니다. 우리가 만일 오늘 주님을 체험했다면 어떠한 것을 우리에게 새기셨으며, 그 편지는 아주 적은 길이입니다. 매 시간 그 영은 우리 안에서 움직이시고, 우리는 그분과 함께 협력하십니다. 그 의미는 주님께서 우리에게 새기시고 계신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우리 영원한 생명을 위해 우리에게 쓰시는 주님을 허락해야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는 틀림없이 잃어버린 많은 기회들을 후회할 것입니다. 아마 우리 모두는 우리가 길고 상당히 많은 그리스도의 편지가 되기 위해서 우리에게 쓰실 주님을 허락할 것입니다.

 

28. 우리는 하나님의 경작된 땅이 됨

 

우리 새 입장 안에서 우리는 하나님의 경작된 토지가 됩니다.

 

“이는 우리가 하나님과 함께 일하는 일꾼이요, 너희는 하나님의 농사요, 하나님의 건물이기 때문이라.”(고전 3:9)

 

우리는 하나님의 농장이요, 토지입니다. 그분께서는 생명을 자라도록 하기 위해서 경작하고 일하도록 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분의 생명이 우리 안에서 자라도록 하기 위해 그분의 경작된 땅으로서 우리를 일하도록 하십니다.

 

29. 하나님의 건물임

 

다시 성경을 읽어보겠습니다.

 

“이는 우리가 하나님과 함께 일하는 일꾼이요, 너희는 하나님의 농사요, 하나님의 건물이기 때문이라.”(고전 3:9)

 

하나님께서는 모든 시간에 우리와 함께 어떤 것을 하시고 계십니다. 한 손에 하나님께서는 우리 안에서 그분의 생명이 자랄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 우리를 경작하시고 계시며, 또 다른 면에서는 그분의 단체적인 증거가 되시기 위해서 함께 우리를 건축하십니다.

 

30. 우리는 하나님의 유산임

 

새 입장과 관련된 마지막 요점은 우리가 하나님의 유산이 됩니다.

 

“또한 그분 안에서 모든 일을 자신이 뜻하신 계획대로 이루시는 분의 목적에 따라 우리가 예정되어 상속을 얻었으니”(엡 1:11)

 

우리 믿는 이들은 하나님의 상속으로서 지명되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앞에서 본 새 입장의 29가지를 체험할 때 하나님의 유산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완전히 깨닫게 되었습니다. 사도 바울은 믿는 이들을 위해 기도했습니다.

 

“너희의 지각(蜘痂)의 눈을 밝히사 그분의 부르심의 소망이 무엇이며 성도 안에 있는 그분의 상속의 영광이 얼마나 풍성하며”(엡 1:18)

 

우리 모두는 하나님의 유산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그분께 믿음이 있든지 없든 지간에 우리를 상속하실 것입니다. 질문이 있는데요. 우리를 얼마나 많이 하나님께서 상속하실까요? 어떤 이들은 상속하시도록 하나님을 위해 많은 풍성함으로 가질 것입니다. 또 어떤 이들은 조금뿐일 것입니다. 만일 어떤 사람이 거듭나서 그의 온 생명을 결코 주님을 따르지 않았다고 한다면 하나님께서는 주님을 위한 것이 그의 작은 부분만을 상속하실 것입니다. 앞의 29가지의 입장 모두가 우리의 체험과 누림입니다. 우리가 새 입장을 풍성히 누리면 누릴수록 행복은 하나님을 위해 상속될 것입니다. 이 시대에서 얻은 영적으로 풍성한 우리는 우리 이익을 위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유산을 위한 것입니다. 우리는 기도해야 합니다. “주여, 우리는 새 입장의 모든 항목 안에서 당신을 체험하기 원합니다. 우리는 우리가 거듭났을 때 받았던 모든 풍성을 누리기 원합니다.” 이러한 풍성의 우리의 체험은 결국 성도 안에 있는 그분의 상속의 영광” 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