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Brethren 557

그분은 부활하신 그리스도시다.

“그리스도께서 반드시 고난을 받고 죽은 자들로부터 다시 일어났어야 한다고 설명하고 주장[성경적 증거]하노니 또한 내가 너희에게 선포하는 이 예수님이 그리스도(기름 부음을 받은 메시아)시라 하니”(사도행전 17:3) 예수님은 부활하신 그리스도시다. 그리스도인들이 그분을 만날 때 그들의 영 안에서 영광스러움과 신선함을 느낄 수 있다. 주님을 만날 때 한 면에서 그분은 우리 안에 있는 부정적인 것들을 제거하시고, 다른 한 면에서 그분은 우리 안에서 모든 긍정적인 것들을 산출하신다. 왜 그런가? 그분이 십자가에 못 박히신 예수님이시오, 부활하신 그리스도 예수님이시기 때문이다. “그리스도”란 “기름 부음을 받은 자”를 의미한다. 창세 이전에, 하나님은 자기의 갈망을 채우기 위해 자기에게 기름을 부으셨다. 이러한 ..

그분은 십자가에 못 박히신 예수님이시다.(2)

“그녀는 아들을 낳을 것이니, 너희는 그를 예수(주는 구원이시라)라 부를지니라. 실로 그분은 그분의 백성을 그들의 죄악으로부터 구하시리라.(개인적인 믿음으로 하나님을 구세주로 받아들이는 사람들은 죄의 심판으로부터 구원을 받고 아버지와 화해한다.)”(마태복음 1:21) 주님은 십자가에 못 박히셨던 예수님이시다. 그분은 체휼(體恤)이 풍성하시다. 그분은 또한 끝내시는 데 있어서 완벽하시다. 이게 무슨 의미인가? 예를 들어, 우리가 약점과 억압과 걱정과 실패와 무력함을 가지고 주님께 올 수 있다. 그분은 체휼(體恤)하실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이 모든 것을 끝내실 수도 있으시다. 그분은 “나는 십자가에 못 박힌 예수다. 모든 부정적인 것들은 십자가에서 끝냈다. 십자가에서 나의 지상 사역을 끝냈고 나의 하늘 사역..

그분은 십자가에 못 박히신 예수님이시다.(1)

“우리에게 계신 대제사장은 우리 연약함과 유혹받음을 체휼(體恤)하지 아니하는 분이 아니요, 모든 일에 우리와 한결같이 시험을 받은 분이로되[사람의 동정을 살피고 어떠한지를 정확히 아시지만] [저지르는 어떤] 죄는 없으시니라”(히브리서 4:15) 주님은 누구신가? 그분은 십자가에 못 박히신 예수님이시다. 우리는 인간으로서 십자가에 못 박히신 예수님이 필요하다. 왜냐하면, 인류는 항상 환란과 고통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스도인들이여! 힘겨움과 고통과 핍박과 환난이 닥칠 때 주 앞에 오라. 그분께 와서 그분을 누리면 십자가에 못 박힌 예수님은 우리를 완전히 체휼(體恤)하실 수 있으시다. 얼마나 놀라운 일인가! “우리가 짊어진 짐도 슬픔도 이제 없네. 우리의 고통을 주님이 충분히 보답하시네.” 그리스도인 ..

그분은 주님이시다.

“그러므로 이스라엘 온 집이 확실히 알 것은, 너희가 십자가에 못 박은 이 예수님을 하나님께서는 주님과 그리스도(메시아, 기름 부음 받은 자)가 되게 하신 것이다.”(사도행전 2:36) 여러분이 그리스도 안에 거하기 원한다면 먼저 여러분은 그분이 누구신지를 알아야 한다. 그분이 누구신가? 첫째로 그분은 생명의 왕이시다. 생명의 왕으로서 그분은 영이시고, 사랑이시고, 빛이시다. 둘째로 그분은 주이시다. 아마도 우리는 “모두 그분이 주님이신 것을 알지 않나요?”라고 물을 것이다. 여기서 우리는 성경이 그리스도를 어떻게 묘사하는지를 알아야 한다. 성경은 주님을 많은 방면으로 표현하고 있다. 그분은 주 예수요, 그분은 주 그리스도요, 그분은 주 예수 그리스도요, 그분은 십자가에 못 박힌 예수요, 그분은 부활하신..

그분은 빛이시다.

“하나님은 빛이시니 [그분은 거룩하시고, 그분의 말씀은 진실하시고, 그분은 의로 완벽하시니] 그분 안에는 조금도 어둠이 없으시니라 [죄도 없고, 악함도 없고, 결함도 없으시니라.”(요한일서 1:5b) 주님은 누구신가? 그분은 영이시오, 사랑이시오, 빛이시다. 그분이 움직이실 때 그분 빛 안에서 움직이신다. 빛에는 두 방면이 있다. 빛의 첫 번째 방면은 그리스도인이 빛 안에 있을 때 그분의 존재를 볼 수 있다. 예를 들어 주님 안에서 믿고 그분을 따를 수 있지만, 그분이 누구신지를 모를 수 있다. 따라서 한 걸음 내디딜 때마다 큰 대가를 치르고 있다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정말 그분이 누군지 안다면 이렇게 말할 것이다. “그리스도인의 다른 모든 추구, 심지어 나의 영적인 추구들조차도 그분과 비교하는..

그분은 사랑이시다.

“하나님은 사랑이시라. 사랑 안에 거하는 자는 하나님 안에 거하나니 하나님은 그 안에 계속해서 거하시니라.”(요한일서 4:16b) 주님은 생명의 왕이시다. 그분의 본질은 영이시다. 그리고 그분의 존재는 사랑이시다. 사도 요한은 하나님은 빛이시오(요한일서 4:8, 16), 하나님은 빛이시라(요한일서 1:5)고 말했다. 한편으로 하나님은 빛이시오, 다른 한편으로 하나님은 사랑이시다. 그분을 만질 때 그분의 본질 즉 그 영을 만진다. 그분의 본질을 만질 때 그분의 본질이 그분의 존재를 가져온다. 그분은 존재는 사랑이다. 그러므로 아무도 사랑 없이는 그들의 영이 강하다고 말할 수 없다. 그리스도인들이 그리스도 안에 거한다는 것을 어떻게 알 수 있을까? 그것은 생명을 만졌기 때문이다. 생명을 만지는 것을 어떻게 ..

그분은 영이시다.

“하나님은 영[생명의 근원이시지만 아직 사람의 눈으로는 볼 수 없는] 분이시다. 그분을 예배하는 자들은 영과 진리 안에서 예배해야 한다.”(요한복음 4:24) 그분은 생명의 왕이신데 그러면 생명은 무엇인가? 생명은 그 영이시다(로마서 8:10). 또한, 생명은 그 영을 분배하심의 결과다(요한복음 6:63). 그 영은 생명이시오, 그 영이 생명을 주신다. 성경은 하나님 자신이 영이시라고 말한다. 요한복음 4:24절은 아주 분명하게 말하고 있다. “하나님은 영이시라” “하나님은 생명의 근원이시라” 이 구문을 헬라어로 번역하면 “하나님, 영”이다. 이 표현은 더욱 강하고 직설적이다. 하나님은 누구신가? 하나님, 영이시다. 생명은 그 영에서 나오고, 하나님은 영의 하나님이시다. 그 영을 만지고, 영 안에 있는 ..

그리스도는 생명의 통치자이시다.

너희가 생명의 왕(저자, 창조자, 공급자)을 죽였다. 그러나 그분을 하나님께서 죽은 자들로부터 [육체적으로] 다시 살리셨다. [우리가 부활하신 그리스도를 보았기 때문에] 이 [사실]로 우리는 증언하는 증인들이다.(사도행전 3:15) 그리스도인이 주님과 친해지고 그분과 하나가 되고 싶다면, 그리스도인은 그분이 누구인지 봐야 한다. 그분이 생명의 왕, 통치자이시다. 오! 주님은 생명의 권위자시다. 베드로는 사도행전에서 메시지를 주었다. (너희가) 죽인 생명의 왕을 하나님께서 죽은 자들로부터 살리셨도다.(사도행전 3:15) 이 구절의 다른 번역본들은 주님을 “삶의 저자”라고 부른다. “생명의 통치자”, “생명의 저자”로 번역된 것 모두 좋은 번역이다. 나는 생명의 저자로 번역된 성경을 더 좋아한다. 왜 그런가..

포도나무와 그 가지는 하나다.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그 가지들이다.”(요한복음 15:5a) 얼마나 놀라운 일인가! 그리스도인이 주님의 임재 안에 있고, 그분 안에 거할 때 그 결과는 그분과 함께 하나가 된다는 것이 놀랍지 않은가? 많은 그리스도인이 주님께로 오는 것이 주님께 오는 것뿐이 아니라는 것을 알기 원한다. 그리스도인이 주님께로 와서 그분 안에 머무는 이유는 그분과 하나가 되기 위해서이다. “그분과 하나 된다는 것”은 무엇인가? 그 말은 주의 소망이 곧 그리스도 안에 거하는 자의 소망이고, 그분의 목적이 곧 그리스도 안에 거하는 자의 목적이며, 그분의 소망이 곧 그리스도 안에 거하는 자의 희망이라는 뜻입니다. 이것이 바로 그분과 하나가 되는 것, 그분 안에서 거하는 실제다. 그리스도인들이 어떻게 그분과 하나 될 수 있을까..

유대인들만 있던 곳에 오다.

“나오미의 나오미의 남편 엘리멜릭이 죽고 그녀는 두 아들과 남게 되었다. 그들은 모압 여인을 그들의 아내들을 얻었는데 하나는 오르바요, 다른 하나는 룻이었더라. 그들은 거기서 약 10년을 살았는데 말론과 길룐이 죽었더라. 그러므로 그녀는 남편과 두 아들이 없이 거기에 남게 되었더라”(룻기 1:3-5). 모든 성경과 같이 룻기는 구원에 관한 이야기다. 룻기가 이스라엘의 구원과 관련된 것 같지만 전체적으로 볼 때 이스라엘의 구원과 관련된 메시지로 전개되지 않는다. 오히려 룻기는 이스라엘에서 구별된 새 민족에 관한 구원으로 전개하고 있다. 그 새 민족은 마태복음 21:43절에 나오는 민족이다. 이 민족은 거룩한 나라요, 애초에 이스라엘 민족에게 제안한 왕국을 그들이 거절한 왕국을 제안한 이방 민족이다(베드로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