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퍼런스/신부를 찾으라

그리스도 안에 있는 한새사람을 기다림

Hernhut 2023. 4. 6. 18:57

그리스도 안에 있는 한새사람

 

 

 

너희도 또한 진리인 말씀을, 곧 너희를 구원하는 기쁜 소식을 들은 뒤에 그분을 신뢰하였고, 또한 그분을 너희가 믿은 뒤에, 너희가 그 약속하신 거룩하신 성령님으로 봉인되었다. 이 성령님은, 값 주고 사신 그 소유물이, 그분의 영광을 찬양하는 찬양에 이르도록, 구속될 때까지 우리가 받는 상속재산의 보증금이시다.”(에베소서 1:13, 14).

 

에베소서 1:13, 14는 주로 그영의 사역을 다루고 있다. 그영의 사역은 사람이 구원받는 때에 일어난다(마태복음 3:11; 사도행전 1:5). 에베소서 1:13에 그영의 사역 즉 사람이 구원받는 것이 봉인되어 있다고 말한다. 그리고 이 성령의 일은 비록 사람이 구원받을 때 일어났지만, 사람이 구원받을 때는 아무런 관계가 없다. 그것은 죽음에서 생명으로지나가는 사람과 관련이 있고 그 직후에 일어나는 성령의 사역이다. 이 성령의 사역은 오늘날 교회 시대에 구원받은 신부를 찾는 것과 상속을 기다리는 것과 관련이 있다. 그리고 이 상속, 곧 다가올 시대에 그리스도와 그의 공동 상속자들에 의해 통치될 영역 즉 오늘날 사탄과 그가 부리는 천사들에 의해 통치되고 이 땅이 미래 시대에 상환될 것이다(에베소서 1:14).

이 상속구속은 요한계시록 5-19장의 핵심 주제이며, 20장의 첫 부분에서 천년왕국으로 이어진다. 이러한 상속구속은 특정 구약성경 예표에서도 계시록에서도 볼 수 있듯이 광범위한 방식으로만 적절하게 분배될 수 있다. 에베소서의 첫 장에서 언급된 성령의 봉인 사역이 33년 오순절에 필요에 따라 도입되었을 때, 그것은 구원 이후에 발생하는 것이었다. 그날 성령님께 잠긴 사람들은 오순절 이전에 이미 구원을 받았다. 그러나 이러한 시대가 시작된 이후, 오순절 전에 구원을 받은 사람들이 살았던 시대를 지나 사는 사람들은 에베소서 1:13, 14과 같은 성경들이 구원받을 때가 된 것으로 이 성령님의 사역을 제시하고 있다. , 위로부터 날 때, 즉 성령님이 불법과 죄에서 죽은 자에게 생명을 불어넣을 때, 성령님의 수반하는 사역, 즉 성령님 안에 적셔지고, 잠김이 있다. 거듭남은 생명을 부여하여 그영에 잠기게 하는 일이 일어나게 한다. 그리고 그영에 잠김은 구원받은 사람이 한새사람의 일부가 될 수 있도록 하고, ‘그리스도 안에서새창조가 되게 한다.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거듭나는 것은 오늘날 교회 시대의 분배에 특별한 것이 아니다. 구원받지 못한 사람에게 생명을 불어넣는 성령님의 사역 즉, 거듭나게 하는 것은 아담까지 거슬러 올라가 전 인류를 통해 변함없이 일어나고 있다. 생명이 없는 사람에게 생명을 불어넣는 이 거듭나게 하는 것은 성령님을 제외하고는, 전 인류에 걸쳐 어떤 구원도 있을 수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성령님 안에 잠기는 것은 은혜의 구원과는 별개이며, 오늘날 교회 시대에 독특한 사역이다. 거듭남과 성렴님으로 잠기게 되는 것 사이의 유일한 연결고리는 성령님의 다른 어떤 일이 일어나기 전에 각 사람에게 생명을 불어넣는 성령님의 필요성일 것이다. 즉 영 안에서 살아 있는 자만이 그영에 잠길 수 있으며, 그영은 하나님께서 그영에게 수행하라고 보내신 임무를 완수할 수 있다. 그리스도의 신부는 이스라엘이나 다른 민족 중에서도 데려올 수 없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의 씨앗이었던 유대인도 이방인도 아닌 완전히 새로운 민족을 그영께 존재하게 하도록 요구했다.

그영의 이 특별한 사역은 오순절 날에 시작되었다. 교회 시대 전에는 일어나지 않았으며, 또 교회 시대가 끝난 후에도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그영에 잠기는 사역은 교회 건축이 시작되는 때와 교회 건축이 끝날 때까지 일어나는 사역으로 그리스도인들이 오늘날 사는 하나의 분배로 확장된다. 그영의 이 사역은 계시 된 목적을 위한 것이다. 그영 안으로 잠기는 것은 그영이 그리스도의 신부를 찾고 얻게 하는 사역이다. 그영께서 그리스도의 신부를 얻게 되면, 더 신부를 찾는 일이 마치게 되어 더는 그영에 잠길 필요가 없게 된다. 따라서 이와 관련하여 그영의 사역은 신부 찾음이 성공적으로 완료된 후에야 중단될 수 있다.

전체적으로 그영의 이 일이 교회 시대를 넘어서 확장되지는 않겠지만, 다가오는 고난과 메시아 시대에, 그영의 또 다른 사역이 사도행전 2장에서 일어난 날 일어날 것이다. 주목할 것은 사도행전 2장 오순절에 그영의 이 사역이 시작되었고, 요엘의 예언이 이루어졌다는 것이다(사도행전 2:4, 16-21; 요엘 2:27-32). 요엘의 예언과 관련된 그영의 사역이 오순절에 시작되고, 그분의 사역 일부가 이스라엘에 다시 도입되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약 삼십 년 후 이 재제안이 끝났을 때, 요엘의 예언은 모두 따로 떼어지고, 하나님이 이스라엘과 거래를 재개하기를 기다리게 되었다. 그러나 그영이 그리스도그리스도의 신부를 찾는 사역은 에베소서 1:13, 14에서 볼 수 있듯이, 그영께서 하시는 사역의 일부다. 이 사역은 교회 시대 전반에 걸쳐 확장되고 있다.의 신부를 찾는 사역은 이스라엘에 대한 왕국의 재제안이 끝난 뒤에도 계속되었다.

그리고 이 교회 시대에 구원하는 독특한 그영의 사역이 은혜에 의한 구원과는 아무런 관련이 없다는 것을 보는 것은 간단한 문제다. 만약 그랬다면, 은혜에 의한 구원과 관련하여, 분배하는 사역의 시작에서 무언가가 바뀌었을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본질의 변화는, 이 때나 인자의 날 어느 때에도, 완전히 어긋났을 것이다. 은혜에 의한 구원은 결코 바뀔 수 없다. 그리고 오늘날 성령의 이 독특한 구원 사역이 은혜에 의한 구원과는 아무런 관련이 없다는 것을 보는 것은 간단한 문제다. 만약 그랬다면, 은혜에 의한 구원과 관련하여, 용서가 시작될 때부터 무언가가 바뀌었을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본질의 변화는, 이때나 인자의 날 어떤 때에도, 완전히 어긋났을 것이다. 은혜에 의한 구원은 인자의 날을 통하여 결코 바뀔 수 없다. 은혜에 의한 구원은 성경 전체에서 오직 한 가지 방법으로 받는다. , 처음에 정해진 두 가지 불변의 것, 즉 죽음과 피를 흘리는 것을 기초로 하여 이루어졌다. 이런 점에서 하나님이 타락한 사람을 회복하신 근거는 창세기 처음부분에 성경에 소개되어 있다. 창세기 3, 4장은 아담과 관련하여 죽음과 피 흘림, 아벨과 관련하여 죽음과 피 흘림의 장면을 펼쳐 놓았다. 하나님은 그분의 말씀과 사역으로 초기 단계에서부터 기본적인 예표로 은혜의 구원을 세우셨다. 그러므로 이러한 방식이 세워진 이후에 하나님이 설정하신 방식에는 어떠한 변화도 일어날 수 없다. 그영은 생명이 없는 사람에게 생명을 불어넣기 위해 인자의 날 내내 세상에 항상 계셨다. 그렇지 않으면 타락한 사람에게 구원이 있을 수 없다. 이 사실은 창세기 3, 4장에서 본 것보다 이전의 예표로 묘사되었다. 이런 점에서 성령의 일은 창세기의 첫 두 장(창세기 1:1-5; 2:7; 에스겔 37:1-10)에 소개되었고, 다음 두 장에서도 계속 이어졌다. 따라서, 구원의 전체 그림은 창세기 1-4장에 그려져 있다. 창세기 1-2장의 그영은 3-4장에서 본 그영을 바탕으로 사역하는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이것에 동의하지 않을 수도 있는데 순서에 맞지 않는다는 것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신약성경에서 예수님의 죽음이 먼저요, 회복되는 것이 나중이라는 것을 알 필요가 있다.

그리고 만약 오늘날 사람의 구원을 하나님께서 창세기 네 장에서 문제를 세우신 불변의 관점에서 본다면, 사람의 모든 거짓된 신학적 이념은 하나님의 말씀에 비추어 무너질 것이다. 그러면 진리는 오늘날 오류가 존재하는 곳에 존재할 것이다. 그리고 오늘날 혼란이 가장 큰 곳에 진리가 존재할 것이다. 간단히 말해서, 빛은 어둠 속에서 더 빛날것이다(고린도후서 4:6). 은혜에 의한 구원은 불변의 본질이 창세기의 첫 장에서 확립되었을 뿐만 아니라, 즉 그것이 적용됐다면, 그영이 오순절에 보내진 것과 그분이 보내진 이유와 관련된 어떤 것도, 은혜에 의한 구원과 관련이 없다. 만일 그렇게 되었다면, 그날에 하나님은 4,000년 전에 세우셨고, 모세가 약 1,400년 전에 기록한, 성경 기초 구조에 무엇인가를 추가하셨을 것이다. 이렇게 되었다면, 처음 4,000 동안은 구원과 관련된 성령의 일이 인자의 날 전체의 3분의 2에 걸쳐 불완전했을 것이다. 오늘날 그릇된 견해가 많이 있다. 성경에서 사람이 은혜로 구원받을 수 없고, 33년 오순절에 시작된 그영의 사역이 은혜로 구원받는 것과 연관시키려고 한다. 은혜로 받는 구원은 오순절에 일어난 성령의 사역과는 다르다. 이날 시작된 성령의 사역, 이 오늘날 독특한 그영의 구원 사역은 다른 것이다. , 생명이 없는 사람에게 생명을 불어넣는 그영은 각 사람에게 생명을 부여하고, 생명이 부여된 개인은 오늘날 그영의 분배로 이제 그영에 잠기게 된다. 그영에 잠기게 하는 사역은 생명을 부여하는 성령의 사역 때에 일어나지만 생명을 부여하는 그영의 사역과는 별개의 사역이다. 그영에 잠기게 하는 사역은 그영이 그분의 호흡을 통해 생명을 부여한 사람을 구약성경에서 신부에게 분배된 모든 자격을 충족할 수 있는 상태로 만드는 것이다.

각 사람을 그영에 잠기게 하는 사역은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구원받은 사람이 신부가 되는 것은 그영에 의해 자격을 얻을 수 있는 위치로 데려오는 것이다. 구원받은 사람은 그영에 잠겨 한새사람의 일부가 되고, ‘그리스도 안에서새로운 창조물이 된다.

다른 하나는 그영에 잠기게 하는 그영은 그 사람이 구원받는 목적을 알게 하고 모든 진리 안으로 인도하신다. 이는 미성숙에서 성숙으로, 그노시스gnosis에서 에피그노시스epignosis로 나아가게 하시는 것이다.

구원받고, 그영에 잠기는 목적을 위해 교회 시대에서 움직이시는 그영의 사역을 통해 나아가는 방향은 성경에서 비밀이라고 불리며, 이 비밀은 계시 된 진리의 몸 안에서 볼 수 있다. 비밀인 이 진리의 몸은 유대인이나 이방 민족의 모든 믿는 이들이 공동상속자가 되는 것이다. 그리고 유대인이나 이반인들이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동일한 몸의 구성원이 됨으로써 그들은 '복음으로 그리스도 안에서 한 약속에 참여하는 자'가 된다(에베소서 3:6). 비밀은 그영이 오늘날 그리스도인들에게 알리고 있는 것 중 핵심이다. 그리고 그분은 이 비밀들을 계시 된 목적을 알리려고 하신다. 그영은 오늘날 그리스도의 신부를 찾고 계시며, 물론 유대인 중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들도 포함되어 있지만, 주로 이방인으로서 그리스도를 믿는 자들이 신부의 구성요소일 것이다. 그리스도의 신부는 그리스도가 모든 영광 속에서 계시가 되는 그날 그리스도와 공동상속자로서 통치자가 될 것이다. 그리스도는 왕으로 통치할 것이고, 그분의 신부는 왕비로 통치할 것이다. 그리스도와 여러 사람으로 구성되어 다양한 권력과 권위의 할당된 위치를 차지할 신부 그분의 신부는 하늘의 나라에 재임 중인 통치자(사탄과 그의 천사)를 대신할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비밀들은 구원을 통해 그리스도인들에게 알려질 뿐만 아니라, 구원을 받았을 때 사탄과 그의 천사들에게도 알려졌다. 이런 비밀들은 오늘날 세상에 계시면서 그리스도인들에게 알려지고 계신 그영에 의해 알려졌으며(요한복음 14:17; 16:7-15; 고린도전서 3:16; 6:19), 교회를 통해 사탄과 그의 천사들에게도 알려졌고(에베소서 3:9-11), 바울이 에베소에 있는 그리스도인들에게 보낸 편지 끝에 두 가지가 전달됐다.

하나는 그 비밀이 사탄과 그의 천사들에게 알려졌기 때문에 영적인 전쟁을 드러내는 것이다(에베소서 6:10-18).

다른 하나는 그리스도인들에게 비밀에 대한 과감한 선포의 필요성을 밝혔다. 이것이 바로 2,000년 간 구원의 목적과 관련된 핵심 메시지다(에베소서 6:1).

사탄과 그의 천사들에게 드러낸 것은 하나님이 인류에 완전히 새로운 실체, '그리스도 안에 있는' 한새사람을 창조하셨다는 사실이다. 그영은 오늘날 재임 중인 통치자들을 대신하여 그리스도와 함께 왕위에 오르도록 신부를 부르고 계신다. 사탄과 그의 천사들은 이것을 알고 있다. 그들은 그리스도인들의 정확한 정체성을 알고 있다. 그러나 사탄과 그의 천사들이 뿌려 놓은 많은 종교적인 것과 교파와 교리 등 분별할 수 없는 것들로 분별력을 잃어 극소수의 그리스도인들만이 알고 있거나 전혀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 그러므로, 전쟁이 격렬해지는 것은 이상한 일이 아니다.

 

 

1) 좋은 소식

 

 

하나님의 은혜는 좋은 소식을 통해 각 사람이 영적 진리로 복음을 이해할 수 있는 위치에 서게 되어 비밀들을 이해할 수 있게 해준다. 그리고 그것은 비밀과 관련된 것들, 즉 추가적인 좋은 소식이다, 은혜의 복음이 아니라 영광의 복음과 관련되어 있다. 사람들은 그들이 구원받은 이유를 완전히 알 수 있다. , 각 사람은 어떤 목적을 위해 구원을 받았고, 그 목적이 바로 비밀에 관한 것이다. 모든 일은 모세가 다스리는 이스라엘 자손의 예표와 같이 맏아들의 죽음으로 시작된다(출애굽기 12:1-51). , 시작점은 죽음과 피를 흘리는 것과 관계가 있고, 갈보리에서 그리스도의 완성된 사역과 관계가 있다. 각 개인은 먼저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야 한다. 모든 사람은 먼저 죽음에서 생명으로지나가야 한다. 그래야 영적 생명을 살게 되고 오순절에 오신 그영의 사역이 눈에 띈다. 모세가 이끄는 이스라엘 민족의 유형은 맏아들이 죽은 후에 세상을 예표하는 "이집트"에서 나온 것과 같다. 이는 다른 땅에서 신권으로 세워지는 것을 예표한다. 그리고 한편으로는 하나님의 백성 가운데 그분이 구름 속에계심을 계시했고, 다른 한편으로는 바다에잠기게 하여 그영의 임재를 계시하셨다(고린도전서 10:2). 그리고 그것은 실제 안에 있는 그리스도인들이 체험하는 것과 정확히 같다. 첫째의 죽음에 이은 것은 이 세상에서 해방되는 것과 관계가 있다. 다른 땅, 즉 신권으로 건축되기 위한 목적을 말하는 것이다. 그영이 생명이 없는 사람에게 생명을 불어넣은 후에 그영에 잠긴다. 그런 다음 물에 잠기는 것이 있다. 물속에 잠김으로 매장을 보여주고, 그다음에 물속에서 나오므로 부활을 보여줌으로써 생명의 새로움을 보여준다. 그렇게 함으로써 다른 땅을 상속받게 된다(로마서 6:2-6; 골로새서 2:12; 3:1-25).

 

 

2) 소명의 땅

 

 

그리스도인들이 부르심을 받은 땅은 모세 밑에서 이스라엘 자손이 부르심을 받은 땅과 달리 하늘에 속한 땅이다. 그리스도인들은 이 하늘에 속한 땅에 들어가 있고, 또 들어갈 것이다. 그리스도인들은 교회 시대에 다른 땅에서 상속구속을 이루기 위해 이 세상에서 부름을 받고 있다. 이것은 골로새서 1:12, 13에 한 왕국 즉 사탄이 다스리는 오늘날의 왕국에서 나와 다가오는 그리스도의 나라에서 상속구속을 하기 위한 구원이라고 말한다(에베소서 1:21; 3:10; 6:12). 그리고 골로새서 1:13이 그리스도인들이 오늘날 사탄의 나라에서 그리스도의 나라로 옮겨지는 것이라고 믿게 하지만, 그러한 것은 아마도 이 구절에 대한 올바른 이해일 수 없다. 그 상속은 하늘에서 통치되는 이 땅과 관계가 있다. 땅과 관련된 이 본질의 나라는 오직 하나뿐이다. 바로 오늘날 사탄과 그의 천사들이 다스리고 있는 나라다. 상속과 관련된 그리스도의 나라는 오늘날 존재할 수 없으며, 아버지께서 아들을 나라의 책임자로 세우시는 그 미래의 날까지는 존재할 수 없다(다니엘 7:13, 14; 요한계시록 11:15). 이는 오직 인자의 날이 끝날 때만 일어날 것이다. 그리스도의 왕국은 정확히 이 땅을 차지할 것이며 그분의 통치는 사탄의 오늘날 영역과 다스리는 곳이 정확히 같은 하늘에 속한 영역이 될 것이다. 게다가 그리스도는 사탄이 지금 쓰고 있는 왕관을 써야 하는데, 사탄은 아직 이 왕관을 포기하지 않았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의 나라는 지금 재임 중인 통치자를 굴복시키고 그리스도를 왕위에 차지한 그때 이후에 오늘날 사탄이 다스리는 바로 그 나라가 될 것이다(시편 2:1-9). 따라서, 그리스도의 나라는 오늘날에는 존재할 수 없다. 사탄은 여전히 이 땅의 왕좌를 차지하고 있다. 사탄이 내려놓게 한 이후 그리스도는 왕관을 쓰고, 그 권좌를 잡고, 권력과 권위를 행사할 수 있다. 오늘날 사탄의 권력과 권위 행사에서 볼 수 있듯이, 그리스도는 같은 영역, 같은 통치 안에서 권력과 권위를 행사할 수 있다. 그리고 이 모든 것들은 오직 인자의 날이 끝날 때만 일어날 수 있다. 이전에는 불가능하다. 그러므로 오늘날 그리스도의 왕국이 있다면, 그 왕국은 아버지가 그의 아들의 손에 그 영역을 넘겨주는 것을 볼 때 그 이전에 존재해야 할 것이고, 영역과 왕위에 오른 왕과는 별개로 존재해야 할 것이며, 인자의 날에 존재해야 할 것이며, 사탄이 여전히 왕좌에 있는 기간에 존재해야 할 것이다. 오늘날 그리스도의 왕국을 보는 것은 어떤 형태로든 성경에 비추어 볼 때 완전히 터무니없는 일이 된다. 사람은 오늘날 그리스도의 왕국의 노선을 따라 잘못 생각할 수 있지만, 성경은 전혀 다른 것을 보여준다. 그리스도의 왕국의 모든 목적은 그리스도와 그분의 공동상속자들이 이 세상의 왕국을 빼앗고 오늘날의 혼란에서 새 우주를 만들어 오늘날의 혼란에서 질서를 끌어내는 것과 관련이 있다. 그러므로, 성경적 관점에서, 사탄이 소위 신비한 형태로 존재하든지, 또는 다른 형태로 존재하든지 여부와 관계없이, 계속해서 그 영역을 유지하는 한, 오늘날의 그리스도 왕국에 대해 말할 수 없다. 반대로 아버지는 아들에게 대적을 발판으로 삼을 때까지 오른편에 앉으라고 하셨다. 그래야만 아들이 왕위에 오르고, 그 자리를 차지하며, 땅을 다스릴 것이다(시편 110:1-7). 그래야만 그리스도의 나라가 존재할 것이다.

그리고 오늘날 존재하는 그리스도의 왕국에 관한 생각이 어쩌면 신학적으로 훨씬 더 파괴적이고 위험해질 수 있는 또 다른 영역이 있다. 오늘날의 그리스도 왕국을 잘못 본 그리스도인들은 대개 거듭날 당시 이 왕국으로 옮겨지거나 바뀐다고 생각한다(골로새서 1:13). 그런 다음, 이러한 본질의 변화는 왕국에 들어가는 것에 대한 전체적인 생각을 보상의 영역에서 선물의 영역으로 바꿔 놓는다. 그리고 그것은 그리스도의 나라에 관한 건전한 성경적 가르침과 완전히 일치하지 않는다.

골로새서 1:13은 오늘날 각 사람이 구원받고 두 왕국 중 하나를 선택하게 되는 의미로 이해되어야 한다. 그리스도인들은 사탄의 왕국에서 구출되어 그리스도의 왕국으로 돌이키게 되었다. 오늘날 그리스도인도 사탄 아래 있다. 오늘날 그리스도인도 이 세상의 왕국과 관련이 있고, 하지만 언젠가 그리스도 아래에 있게 될 것이고, 다가오는 이 세상의 왕국과 관련되어 있을 것이다(요한계시록 11:15). 골로새서 1:13"누가 우리를 사탄 아래 있는 왕국, 어둠의 힘에서 구원하여 주님의 사랑하는 아들의 나라, 다가오는 그리스도의 나라로 돌이킬 것인지"로 번역하는 것이 더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3) 다가오는 그 날

 

 

그리고 그리스도인들은 앞으로 다가올 시대를 염두에 두고 교회 시대 동안 이런 방식으로 거래되고 있다. 그리스도의 나라가 존재하는 것은 다가오는 시대에서 분배될 뿐이다. 교회 시대에는 그영이 다가오는 시대에 분배 사역 때에 그리스도와 함께 다스릴 신부를 얻는 목적과 관련이 있다. 그리스도는 그와 함께 다스릴 신부를 얻어야 한다. 왕관을 쓴 왕이 있어야 할 뿐만 아니라, 왕비도 있어야 한다. 인자의 날에 있는 세 번의 분배 사역 중 세 번째이자 마지막인 교회 시대는 2,000년의 세월을 포함한다. 이전 두 번의 분배 사역은 각각에 할당된 정확한 연도 수가 있고, 교회 시대 바로 앞에 있는 두 번째 분배 사역 중 아직 7년이 남아있다. 오순절에 그영의 강림을 통해 시작된 이 신성한 일은 그날로부터 정확히 2,000년 동안 지속할 것이며, 이는 그영이 그리스도를 위해 신부를 찾고 데려갈 할당된 시간의 아주 가까운 곳에 살고 있음을 확인하는 것이 꽤 간단하다.

이 기간은 성경에서 사용되는 한 해의 길이가 각각 360일을 1년으로 계산한 것이다. 하나님은 사람이 사용하는 그레고리력을 통해 기원 33년 봄부터 현재까지의 계산 시간은 2,000년이 조금 넘을 것이고, 그 기간에 많은 부패와 타락을 허용하셨다. 그리고 교회 시대는 2,000년을 조금 넘어서 끝이 날 것이다. 왜냐면 구약시대의 4,000년은 이미 지나갔고, 앞으로 적용될 유대인의 7년 환란만 남아있기 때문이다. 창세기의 처음 34절이나 요한복음 1장과 2장에서 설정된 7일 구조와 반대되는 것이기 때문에 이제 2,000년 이상 남아있을 수 없다. 요한복음은 네 복음서 중 유일하게 창세기와 평행하며, 처음 두 장뿐만 아니라 전체적으로도 그러하다. 따라서 요한복음은 마태복음보다 신약성경을 시작해야 하며, 두 성경 모두를 시작하는 7일 구조가 되어야 한다.

이 관점에서, 교회 시대는 2,000년을 초과할 수 없다. 왜냐하면, 2,000년을 초과하게 되면 세 번째 날로 이어질 것이다. 성경에서는 세 번째 날의 일부가 전체 날로 여긴다(창세기 43:17-18; 사무엘상 30:1, 12-13; 역대하 10:5, 12; 에스더 4:16, 5:1; 마태복음 12:40; 누가복음 24:21). 그리고 정해진 일곱 구조에서 세 번째 날은 메시아 시대다. 하나님께서 정하신 것을 사람의 손에 계속 맡기지 않으셨듯이, 하나님께서는 사람이 사용하는 달력도 전 인류 인자의 날에 완전히 정확하게 맡기지 않으셨음이 분명하다. 이것은 사람이 하나님께서 정하신 것을 가지고 무엇을 할 것인지, 사람이 사는 정확한 시간을 알면 무엇을 할 것인지를 아셨기 때문이다. 사람이 사용하는 달력은 하나님이 전하신 시간과 그렇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왜냐하면, 교회 시대의 징조들이 한 가지를 가리키고 있기 때문이다. 교회 시대의 끝은 오직 매우 가까운 미래에 있을 수밖에 없다.

 

 

들은 것과 믿은 것

 

 

교회 시대가 끝나고 신부를 찾는 것이 완료되면 신부는 다가올 시대로 옮겨질 것이다. 그리고 이 다가올 시대에 에베소서 1장에서 말한 신부는 상속구속이 될 것이다. 이 상속이 구속될 시대는 이 땅의 안식일이 될 것이다. 이것은 창세기 2장에서 일곱 번째 날에 의해 예고된 안식일이며, 사람 창조 직후 소개되면서 6,000년 동안 하나님의 백성들 앞에 선포되었다(출애굽기 20:8-11; 31:13-17; 히브리서 4:1-9). 이날은 주님이 만드신 날이다. 이날은 건축자들이 거부한 돌이 모퉁이의 머릿돌이 된 날이다. 그리고 그날에, 인자의 날을 지나 주님의 날이 시작되는 날로 사람들은 그날로 기뻐하고 즐거워할 것이다”(시편 118:22-24). 로마서 10:13에서 시작되는 순서에 따라 구원(해방)은 주님을 부르는 사람들을 통해 전달되는 것을 볼 수 있다.

 

누구든지 주님의 이름을 부르는 사람은 구원을 받을 것이다.”

 

그런 다음 바로 다음 구절부터 그렇다면 그들은 믿지 않은 예수님을 어떻게 불러야 합니까?”라는 질문을 하게 된다(로마서 10:14a).

세 번의 질문이 있고, 이어지는 질문이 있습니다.

 

그들은 전도자 없이 어떻게 들을 수 있겠습니까? 그리고 그들이 보내지지 않았다면 어떻게 전도할 수 있겠습니까?”

(로마서 10:14b, 15a).

 

따라서 이 세 구절에서 제시된 순서는 4가지로 나타나지만, 제시된 방식과 반대로 나타난다.

a. 하나님이 그분의 메시지를 전할 사람을 부르신다.

b. 그 사람은 메시지를 전한다.

c. 메시지를 듣는 사람들은 전해진 것을 믿는다.

d. 메시지를 믿은 사람들(이 경우에는 구원을 위한 그리스도를 믿음으로써 이미 구원된 사람들에게 관련된 구원을 위해 주님께 부르짖음)은 그러면 주님께 구원을 부르짖는다.

로마서 10:13, 14의 믿음과 부르짖음은 같은 것으로 생각해서는 안 되며, 결국 영원한 구원을 가져오는 두 가지가 불가분의 것으로 생각되어서도 안 됩니다. “누구든지 주님의 이름을 부르는 사람은 구원을 받을 것이라”(로마서 10:13)는 수년간 구원 메시지로 잘못 사용된 적이 많다. 영원한 구원은 오직 믿음으로 받는다 (로마서 10:14; 요한복음 3:16; 사도행전 16:31). 그것은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써 받는 구원이다. 한 번의 복음을 전달하는 사람이 보낸 메시지를 듣고 난 후 받는 구원이다. 또한, 이 구원은 회개(마음의 변화)가 문제에 관여하지 않을 것이다. 한 사람이 믿기 전에 마음을 바꿔야 할 경우에만 회개가 문제에 관여된다. 대부분 사람은 아마도 마음을 바꾸기보다는 마음을 정해야 할 것이다. 하지만 어느 쪽이든 (마음을 바꾸거나 정하는 것), 어느 것도 영원한 구원 자체와는 아무 상관이 없다. 어느 것이든 (영원한 구원과 관련하여) 최대한으로는 그 사람이 그러면 믿을 수 있는 위치에 있게 만들 수 있다. 반면에 부르짖음은 믿음 다음에 온다. 그 사람은 먼저 믿고, 그리고 나서야 부르짖는다. 이 순서에 대해서는 원문이 매우 명확하다.

 

그렇다면 그들은 믿지 않은 그를 어떻게 불러야 합니까?”(로마서 10:14)

 

반복 가능한 부르짖음은 영원한 구원 다음에 오는 믿음으로 받는 구원과 관련이 있다. 그리고 로마서 10:13은 구약에서 인용된 것으로, 이 구절은 오래된 계약에서 오는 메시아 시대 동안 구원된 사람들의 구원과 관련하여 사용된다(요엘 2:32).

로마서 10:13-15에서 본 순서는 에베소서 1:13, 14에서 본 순서와 정확히 같다. 바울을 부르셨고, 그는 메시지를 전했고, 에베소 사람들은 믿었고, 그들은 이제 주님께 필요할 때마다 반복적으로 부르짖을 수 있는 위치에 있었다. 그리고 전체 과정은 혼의 구원과 메시아 시대에 하나님의 아들과 함께 상속을 얻기 위한 것이었다. 그러나 이 순서와 질서에서 본 강조점은 일부 번역본에서 종종 놓치게 된다. 헬라어 원문의 더 정확한 번역을 참고하면, 영원한 구원을 넘어서 강조점을 두고 메시아 시대로 사안을 전진시키고 있다.

 

진리의 말씀, 너희의 구원의 복음을 들은 그 안에서도 너희 이방인들도 그 안에서도 믿은 너희 이방인들은 약속된 그영으로 인치되었다. 이것은 우리의 상속의 서약으로서, 소유물의 구속에 관한 것이요, 그의 영광의 찬양에 관한 것이다.”

 

1) 너희는 인치심을 받았다.

 

이방인들도 인치게 되었다. 이전에 하나님이 이스라엘에게 맡긴 것들과 관련하여 소외된 이방인들은 이제 두 가지 불가분한 수단을 통해 더는 소외되지 않게 된다(에베소서 2:12; 로마서 9:4). 전해진 메시지를 듣고 믿음으로써 약속된 그영으로 인치게 되었다(에베소서 1:13). 그리고 에베소서 2장에서는 그영의 이러한 일련의 사역이 다른 방식으로 표현된다. ‘그리스도의 피로 가까워진사람들은 ‘1장에서 그영으로 인치게 되어 위치적으로 그리스도 안에 있다(에베소서 1:13). 그리고 그리스도 안에서는 유대인도 없고 헬라인도 없다’(갈라디아서 3:26, 28). 이전에 유대인과 헬라인 사이에 존재하던 중간 벽이 붕괴하였다. ‘그리스도 안에서는 이제 새로운 사람이 존재하며, ‘중간 벽은 존재할 수 없다(에베소서 2:14, 15). 그런 다음 바울은 로마서 11:5-25에서 이것을 다른 방식으로 표현한다. 이 성경 구절에서 야생 감람나무에서 잘라낸 믿는 이방인들 개개인(로마서 11:11-24)은 좋은 감람나무에 접목되어 있으며, 믿는 유대인들(로마서 11:17-24) 즉 꺾이지 않은 가지들 사이에 있다. 이 믿음을 가진 유대인들은 로마서 11:5에서 본 은혜로우신 택하심에 의하여 남은 자가 될 것이며, 이 모든 것은 비밀로 말해진다(로마서 11:25). 따라서, 바울은 로마에 있는 교회에 편지를 보낼 때는 비밀로 썼으며, 에베소에 있는 교회에 편지를 쓸 때는 다른 방법을 사용했다. 에베소서 1:13에서 구원받은 이방인들은 약속된 그영으로 인침을 받았으며, 야생 올리브 나무에서 잘라낸 사람들은 좋은 올리브 나무에 부러진 가지를 접붙여져 로마서 11:11-24에 성경이 같은 일 즉 그영에 잠기는 일과 관계있는 일이 일어난다. 로마서 11장에서 볼 수 있듯이, 성경은 항상 이와 같은 다른 방식을 통해 전개되며, 종종 은유적으로 전개해 간다.

성경 전체적인 그림을 보기 위해서는 성경과 성경을 비교해 완전한 그림을 보아야 한다. 그렇게 하면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대로 그분의 말씀에서 완전한 이해를 얻을 수 있다. 에베소서 113절에서 그리스도인들은 성령의 이 일을 설명하기 위해 인침을 받았다라는 단어를 사용함으로써 그리스도 안에 있는한새사람이 창조되는 자들을 하나님이 어떻게 바라보시는지 통찰하게 된다 인침을 받았다로 번역된 헬라어는 스프라기조spragizo인데 신약성경에서 여러 번 사용되며, 다른 방식으로 사용되기도 한다. 스프라기조spragizo는 그리스도의 무덤이 닫혔을 때도 사용되었지만(마태복음 27:66), 다른 것을 안에 넣고 봉하거나 사람들을 가둘 때 문을 닫을 때도 사용되었다. (요한복음 6:27; 로마서 15:28; 요한계시록 7:3-17; 10:4). 이 단어는 또한 확인, 인증, 증명 또는 증명서 등을 나타내는 데 사용될 수 있다. 스프라기조spragizo 모든 것이 정상이라는 승인의 도장을 보여주는 데 사용될 수 있다. 또 신분증이나 소유권을 보여주는 데 사용될 수도 있다. 그리스도인들은 그리스도 안에 있는한새사람의 일부가 되는 것과 관련하여 약속된 성령으로 인침을 받았다. 그래서 인치심은 하나님께서 요구하는 위치로 가는 것 즉, 아브라함의 씨가 되는 것을 의미한다. 인치심은 신분과 소유권을 하나님의 승인을 받았다는 것을 나타내며, 그영이 한새사람을 건축하고, 신부가 될 사람을 그 안에서 그리스도의 신부를 찾기 위해 수행할 수 있도록 모든 것이 정돈되었다는 것을 확인, 증명, 인증하고 확정시키는 역할을 한다.

 

2) 상속에 대한 서약

 

에베소서 1:13에서 '‘약속된 그영으로 인치심을 받는 것은 에베소서 1:14에서 상속에 대한 성실한 서약이라고 말한다. 오늘날 그영이 찾는 신부는 언젠가 그리스도와 공동상속자가 될 것이다. 이 상속은 에베소서 1:11에서 소개되었으며, 상황에 따라 이 상속은 장차 구속될 것이다(에베소서 1:14). 이 상속구속과 관련하여, 에베소서 4:30은 말한다.

 

그리고 구원의 날에까지 인치심을 받았으니 하나님의 그영을 슬퍼하게 하지 마십시오.”

 

여기서 헬라어 스프라기조sphragizo를 사용하고 있다. 서약서인 헬라어 아르라본arrabon인 그영의 이 인침 사역은 첫 번째 분배와 계약금과 관련이 있다. 그리스도인들은, 이 방식을 통해, 이제 상속에 대한 법적 권리를 가지고 있다. 첫 번째 분배는 미래에 전액 치르는 것을 예고한다. 이것은 언젠가 상속을 받을 것을 보장하는 것이다. 상속구속은 구원과 연결되어 있으며, 이 구원은 상속과 함께 미래에 있을 것이다(에베소서 4:30). 그영의 과거의 사역은 상속구속이 되는 것을 서약하는 것이었지만, 그 상속구속은 오직 미래적 구원과 관련되어 있을 뿐이다. 이 미래의 상속구속 사역은 구원과 명확하게 관련되어 있다. 그리고 상속구속은 요한계시록 5장부터 19장까지 여러 구약성경 예표를 충분히 다루고 있다. 그리스도와 함께 상속하는 것은 그리스도와 그의 공동 상속자들이 통치할 영역을 포함한다(시편 2:7-9). 그리고 이 상속구속은 재임 중인 사탄의 지배와 통제 하에 있는 이 땅과 그 안에 있는 모든 것들과 관련이 있다. 상속구속 과정이 필요하다. 그영께서 행하기로 하신 사역을 그리스도인들 안에서, 그리스도인들 사이에서 완료하시겠지만(빌립보서 1:6), 그리스도인들은 신실함이나 불성실함을 통해 하나님의 아들과 함께 기다리고 있는 상속을 깨닫거나 몰수될 수 있다. 이 사실은 에베소서나 성경의 다른 곳에서 그영의 사역을 연구할 때 반드시 인정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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