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퍼런스/신부를 찾으라

그분이 오실 때(II)

Hernhut 2019. 6. 20. 10:50


 

내가 아직 너희에게 말할 것이 많으나 지금은 너희가 그것들을 감당하지 못하리라. 그러나 그분 곧 진리의 영께서 오시면 너희를 모든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시리니 그분은 스스로 말씀하지 아니하시고 무엇이든지 자기가 들을 것만을 말씀하시며 앞으로 일어날 일들을 너희에게 보이시리라. 그분께서 나를 영화롭게 하시리니 이는 그분께서 내게서 받아 그것을 너희에게 보이실 것이기 때문이라. 아버지께 있는 모든 것은 내 것이니라. 그러므로 내가 말하기를, 그분께서 내게서 가져다가 그것을 너희에게 보이시리라, 하였노라.”(16:12-15).

 

그리스도의 땅에 속한 사역은 약 3년 반에 걸쳐 이뤄졌다. 그분의 사역 끝 무렵 그분께서 십자가에 못 박하시기 바로 전 그분은 제자들을 한적한 곳으로 데리고 가셔서 그들에게 친밀한 가르침을 주셨다. 이 가르침은 요한복음 13장에서 제자들의 발을 씻으시는 그리스도로 시작했다. 14장과 그 이후에는 예수님께서 곧 떠나신다는 것으로 계속하셨다. 그리스도는 수행하셨던 사역을 막 완료하시고 이 땅을 떠나 오랫동안 가 계시기 전에 제자들에게 친밀한 가르침을 주시기 시작하셨다. 그분의 죽음, 매장, 그리고 부활이 목전에 놓여 있었다. 그분의 부활에 이어 땅에서의 시간은 40일 간 지속되는 짧은 사역으로 절정을 이뤘을 것이다. 이 땅에서의 모든 사역은 구약성경에서 다뤄진 진리의 단면에만 집중되었다. 왕권에 초점을 맞췄다. 왕은 존재하고 있었다. 그리스도께서 이스라엘의 왕이셨다. 이스라엘에게 왕께서 다스릴 왕국을 제안하고 계셨다. 왕으로서 유대인들에게 제안하신 왕국은 하나님의 우주적인 왕국 안에서 사람이 통치하는 땅의 행정과 관계가 있었다(2:2; 3:1-17; 4:17-25; 13:19-58; 4:1-13; 1:3). 이 땅은 처음에 하나님께서 사탄과 그의 천사들에게 주었던 왕국이었다(28:14; 4:5-6; 3:10; 6:12). 이 왕국은 장차 언젠가 사탄과 그의 천사들이 내놓게 될 때 그리스도와 그분의 공동상속자들이 다스릴 곳이다(19:12-19; 8:14-23; 2:26, 27; 3:21; 12:7-12).

그리스도께서 장차 홀을 잡을 때를 다루는 성경은 세상의 왕국으로 이 왕국을 말한다(11:15). 구약성경에서의 이 왕국을 소개하는 복음서는 주로 두 다른 왕국을 말한다. 하나는 하늘들의 왕국으로, 다른 하나는 하나님의 왕국이라고 부른다(19:23-24). 이 두 표현은 설명하거나 증명하지 아니하여도 저절로 알만큼 명백하다. 하늘들의 왕국은 처음에 하나님께서 재임 중인 사탄에게 소유하도록 하셨던 땅 위에 하늘로부터 통치하시기 위해 세우신 방식과 관계있다. 하나님의 왕국은 단순히 하나님의 우주적인 왕국에 하늘들의 왕국을 결부시키는 것이다. 하지만 이 하나님의 왕국에 대한 일부만이 신약성경에서 표현되고 있다. 두 표현 모두 신약성경에서 사용하고 있는 왕국이다. 하나님의 왕국의 일부가 세상의 왕국과 관계되어 있도록 제한한다는 것이다. 하나님은 하늘에서 다스리신다. 하나님께서 다스리는 하늘은 우주 위에 있다. 사탄 역시 하늘에서 통치한다. 하지만 그의 하늘은 우주와 관계없고, 땅과 관계있는 곳이다. 사탄이 다스리는 곳은 땅으로 국한되어 있다. 하나님은 유사한 왕국이 존재하는 우주의 모든 곳에 같은 방식에 따라 통치권을 확립하신 것으로 보인다. 그분은 그분의 하늘왕국에서 다른 지방 정권을 다스리려 통치권을 세우셨다(103:19-22). 과거에 하나님은 온 우주 곳곳에 있는 지방 정권 위에 다스리는 천상의 존재들을 두셨다. 그리고 하나님은 이 천상의 존재들을 통해 우주를 다스리신다(1:6-12; 2:1-6). 하지만 문제는 이 천상의 존재들 중 하나가 그의 자리를 높이려고 하고, 가장 높으신 하나님과 같이 되려고 했을 때 일어났다. 그는 자기가 있던 곳에서 우주의 한 지방 정권을 다스리기 보다는 온 우주를 다스리려고 했던 것이다. 하나님께서 최선의 해결책을 선택하셨는데 말씀을 통해 사람과 거래하시는 것이 중심이었다. 그분의 거래는 인간을 창조하셔서 사람이 그분의 왕국 안에서 한 지방정권의 홀을 붙잡게 하는 것이었다.

그리스도는 계시된 이유로 제자들을 떠나 하늘들로 돌아갈 참이셨다. 그분은 그분의 왕국을 소유하기 위해 하늘들로 돌아가고 계셨다(19:12). 그분의 왕국은 사탄의 통치와 통제 하에 있던 그분의 땅에 속한 사역 전체가 보이는 곳이다. 이곳은 과거에 이스라엘에게 제안했던 왕국이요, 오늘날에는 이스라엘에게서 빼앗아 그리스도인들에게 제안한 왕국이다(21:43; 벧전 2:9-11). 이 모든 것은 사탄의 지배에 있는 오늘날 왕국의 행정이 바뀐다는 것이다. 이런 변화가 반드시 일어나야 한다. 왜냐면 사탄이 자격을 박탈당했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자격이 박탈당한 통치자를 무한히 보좌에 있게 하지 않으실 것이다. 필히 사탄은 교체되어야 한다.

하나님은 타락 이후 아담이 그의 위치에 오르지 못한 것처럼 자격이 없는 자가 보좌에 오르는 것을 허락하지 않으실 것이다. 또 장차 심판대에서 자격이 없는 자를 보신 이후 수많은 그리스도인도 보좌에 오르는 것을 허락받지 못할 것이다. 하나님의 왕국에서 합법적인 지위를 차지하는 것은 자격을 갖춘 개인에 한정된다. 하나님의 왕국에 있는 왕권을 차지하는 것은 재임 중인 통치자를 대체하기 위해 오늘날 보좌에 앉아 있는 자든 보좌에 막 오를 자든 자격이 있는 자로 제한되었다.

첫 사람, 첫 아담은 사탄을 맞닥뜨림으로 자기가 홀을 붙잡고, 보좌에 오를 자격이 없다는 것을 알았다. 이 때문에 두 번째 사람, 마지막 아담이 사탄과의 유사한 맞닥뜨림의 체험이 필요했었다. 그리스도는 자기가 첫 아담이 타락으로 박탈당한 것을 구속할 충분한 자격이 있었을 뿐만 아니라 궁극적으로 보좌에 오를 자격도 있는 왕권을 가지고서 사탄을 만나시는 것이 필요했었다. 이것이 그리스도의 사역을 하시기 시작할 때 유혹에 대한 말씀이 있었던 이유다(4:1-11; 1:12-13; 4:1-13). 왕권은 교회시대에서 그리스도인들이 사탄과의 유사한 맞닥뜨리는 체험을 하는 이유이기도 하다(6:10-18). 사탄은 으르렁거리는 사자처럼 여기저기 걸어 다니며 집어 삼킬 자를 찾는 자다. 그리스도인들은 겸손하고, 모든 것을 그리스도께 맡기고, 깨어 정신을 차리고, 믿음에 굳게 서서 사탄을 대적하도록 부르심을 받았다. 그러면 그리스도께서 정하신 때에 높여 주실 것이다(벧전 5:6-9). 그리고 오늘날 그리스도인들을 향한 사탄의 행동에 관해 요한계시록 3:21절에 그리스도인들에게 하신 그리스도의 약속이 기록되었다.

이기는 자에게는 나 역시 이긴 뒤에 내 아버지와 함께 그분의 왕좌에 앉게 된 것 같이 나와 함께 내 왕좌에 앉는 것을 내가 허락하리라.

예수님은 약 2,000년 전 충분한 자격이 있으신 자신을 보여 주셨다. 예수님께서 수행하러 오신 사역을 끝내셨고, 이제 하나님의 우편에 계시고, 또 기다리고 계신다(110:1-7). 하나님께서 그리스도께 왕국을 주실 그날이 얼마 남지 않았다. 왕 중의 왕이시오, 주 중의 주로서 그리스도께서 공중 재림을 하신 이후에 왕권을 전부 넘겨주실 것이다. 하나님은 보좌에서 사탄을 쫓아내실 것이고, 그리스도의 공동상속자들과 함께 그리스도를 그 보좌에 앉게 하실 것이다. 여기서 심판대에서 그리스도의 공동상속자들은 그리스도의 신부가 될 자격이 있음을 보여주게 될 것이다(7:13-14; 19:12-27; 11:15; 19:11-20:6).

 

목적

 

이 모든 것의 목적에 대해 그리스도의 초림 처음에 성경은 말한다.

그분께서 자기 백성에게 오시매 그분의 백성이 그분을 받아들이지 아니하였으나(1:11)

그리스도는 그분 자신의 일들에게로 오셨다. 그분은 왕으로 태어나셨다(2:2). 그분이 왕으로 오신 것은 그분께서 이 땅에 오심은 그분의 왕권, 거룩한 보좌, 이 땅의 보좌와 관련이 있었다는 것을 초림 때 알지 못했었다. 그분께서 오셔서 유대인들에게 하늘들의 왕국을 제안하셨는데 그들은 그분을 거절했다. 그분에 대한 그들의 거절은 갈보리 사건을 일으켰고, 그분은 이스라엘을 따로 떼어 놓으셨으며, 하늘로 떠나셨고, 그영을 보내셨고, 그리스도 안에 있게 될 한새사람을 산출하셨다.

예수님의 사역 초기 그분은 12제자들을 부르셨다. 12제자들은 그분께서 가르칠 수 있었던 자들이었고, 이스라엘 민족에게 그리스도의 사역으로 참여할 자들이었다(4:18-22; 5:1-12; 1:16-45; 5:1-11; 1:37-51). 그분은 자기가 그들에게 선포하신 똑같은 메시지를 이스라엘에게 전하도록 12제자들에게 위임하셨다(10:1-42). 그리스도께서 선포하신 메시지는 침례자 요한이 선포하기 시작했던 것이다(3:1-12). 그리스도와 그분의 제자들이 이스라엘에게 이 메시지가 선포한 것처럼 제자들과 함께 하는 그리스도의 전 과정에 걸쳐 그리스도는 그들에게 계속 가르치셨다(13:1-52; 16:13-28; 17:1-27; 18:1-35).

하지만 그리스도의 사역이 끝나갈 무렵 제자들은 3년 넘게 그분과 함께 있었지만 그들이 가르침을 받지 않은 수많은 것들이 남아 있었다. 그리스도는 계시된 이유로 특정한 지역에서 제자들을 가르치시지 않았다. 이 문제들을 언급하면서 그리스도는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내가 아직 너희에게 말할 것이 많으나 지금은 너희가 그것들을 감당하지 못하리라.”(16:12).

제자들은 알아야 하는 것, 깨달아야 하는 것이 있었지만 그 당시에는 그들이 이것들을 감당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감당하다라는 뜻의 헬라어는 바스타조bastazo로 짊어지다, 참다, 담당하다를 의미한다(15:10). 그리스도의 사역 전체로 확대된 가르침은 그분께서 말씀하신 많은 것을 제자들이 깨닫도록 하는데 시간이 충분치 않았다. 그 당시 제자들은 사람들에게 말씀하시는 하나님의 계시를 이해하지 못했다. 그들은 추가적인 것이 가르쳐지기 이전에 깨달아야 할 필요함이 있었다.

그렇지만 또 다른 파라클레토스Parakletos는 보내지셨을 것이고(14:16), 말씀으로 추가적인 가르침을 주셨을 것이다. 또 제자들이 그리스도께서 말씀하신 것을 깨닫게 하셨을 것이다. 또 다른 파라클레토스Parakletos는 모든 진리 안으로 제자들을 이끄셨을 것이다(16:7, 13).

말씀의 지식에 대해 비교할 수 있는 상황은 약 5년 후에 시작된 바울의 체험에서 볼 수 있다. 바울은 다마스쿠스 길 위에서 회심했다. 그는 분명 구약성경의 글자에 대한 방대한 지식을 가지고 있었다(9:20-22, 29; 22:3). 하지만 그가 가지고 있던 지식은 이 같은 말씀의 그영안으로 확대되지 않았다(고후 3:6-16). 바울은 가말리엘의 발밑에서 자랐다. 가말리엘은 당대 성경에 대해 가장 큰 선생 중의 하나였다. 그는 구약성경에 유대인 조상들에게 주어진 율법의 완벽한 방식에 따라 가르침을 받았다. 바울은 성경의 문자는 알았지만 그영은 알지 못했다. 그렇지만 글자를 알고 있었던 그는 그영을 배울 수 있는 입장이었다. 성경에 대해 해박한 지식을 소유했던 바울은 시력을 잃었다. 그리고는 그가 개심한 3일 후 그의 눈은 열렸을 때(9:9-18) 아주 짧은 기간에 걸쳐 그는 그영과 관계있는 특정한 일을 보기 시작했다. 개종한 지 며칠 안 돼서 그의 체력이 회복된 후 바울은 다마스쿠스에 있는 시나고그에 들어가 그리스도께서 육신 안에서는 하나님의 아들이시오, 영 안에서는 하나님이시라고 선포했다(9:19-20). 그리고 그는 얼마 후 예루살렘에서도 같은 방식으로 메시지를 선포하였다(9:21-29).

바울이 개심직후 이러한 메시지를 선포할 능력을 가졌을 뿐만 아니라 이분이 바로 그리스도시다.”라는 것을 유대인들에게 증명할 수 있는 능력을 가졌다. 구약성경을 사용하는 바울의 능력은 다마스쿠스와 예루살렘에서 유대인들이 그를 죽이려는 빌미가 되었다. 이 두 곳에서 바울을 물리적으로 제거하려고 그리스도인들을 압박했다(9:24-25, 29-30). 구약성경에 대한 그의 이전 지식을 통해 바울은 어느 정도 특정한 것을 알 수 있었다. 이런 그의 성경지식 때문에 주님은 바울이 이미 알고 있는 것을 건축하고, 개인적으로 대면하여 가르치시려고 잠깐 바울을 데려가실 수 있었다. 이런 방식으로 주님은 바울에게 비밀을 가르치셨다(16:25; 1:11-17; 3:1-11; 1:25-29).

비밀은 유대인 믿는 이들과 같은 몸이 되고, 동료가 되는 이방인 믿는 이들과 관계가 있었으며, 왕국에서 그리스도와 함께 제안된 위치를 차지하게 되는 이방인, 유대인 믿는 이들과 관계가 있었다(3:1-6). 그 비밀은 바울이 이방세계에 선포했었던 메시지였다(9:15; 2:2, 7).

비밀에 대한 계시는 바울이 세 번째 하늘로 갔을 때 분명하게 일어났다. 그 때 이 비밀에 대한 계시를 받았다. 이 계시들은 그가 더 이상 높아지지 않도록 육체의 가시를 받은 것과 같은 본질이었다(고후 12:1-7). 바울은 먼저 외딴 아라비아로 갔다(1:17-18). 그런 후 이 계시를 받기 위해 하늘들로 들어갔었다. 이것은 요한이 체험한 것과 유사했다. 사도요한은 계시록에서 처음에 밧모섬으로 유배되었었다. 밧모섬도 외딴 곳이었다. 그런 후 계시를 받기 위해 하늘로 옮겨졌었다(1:9-11).

하지만 삼년 넘게 그리스도와 함께 있었던 제자들은 많은 것을 가르침을 받아야 했다. 가말리엘의 발밑에서 자라고, 조상의 율법을 따라 가르침을 받은 바울 역시 그가 선포했던 복음에 관한 다양한 것을 가르침 받을 필요가 있었다. 오늘날 그리스도인들이 성경을 이해하도록 하려고 보내어진 또 다른 파라클레토스Parakletos는 그리스도인들이 가르침을 받아야 할 위치에 있다는 것을 항상 알게 하실 것이다. 성경과 사람의 체험에서 알 수 있는 분명한 것은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성숙한 지식이 짧은 시간동안 습득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성경의 지식은 상당한 시간이 걸린다. 제자들이나 바울이나 말씀에 대한 성숙한 지식은 짧은 시간동안 습득되지 못했다. 이것은 오늘날 그리스도인들도 다르지 않다. 오히려 수년간의 공부는 그리스도인을 성숙하게 한다. 말씀에 대한 적절하고 성숙한 지식은 많은 시간을 필요로 한다. 사실 많은 시간을 드려 기꺼이 성경을 연구하려는 사람은 거의 없다. 이런 방면에서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지식을 위해 치러야 하는 대가는 영원한 연구라고 두 단어로 말할 수 있어야 한다. 소수가 그 대가를 기꺼이 치를 것이다. 말씀의 지식을 갖는 것에 대해 이사야 28:9-10절에서 몇 가지 원칙이 정해져 있다.

그분께서 누구에게 지식을 가르치시려는가? 그분께서 누구에게 교리를 깨닫게 하시려는가? 젖을 떼고 젖가슴에서 물러난 자들에게로다. 반드시 훈계 위에 훈계가 있어야 하며 훈계 위에 훈계가 있어야 하고(고전 2:9-13) 줄 위에 줄이 있어야 하며 줄 위에 줄이 있어야 하되 여기에도 조금 저기에도 조금 있어야 하리니

앞에서 말한 바와 같이 말씀에 대한 참됨과 옳음은 그리스도인들을 성숙하게 하는 목적을 위해 보내어 지신 파라클레토스Parakletos의 사역을 통해 연구될 수 있을 뿐이다. 이 말씀은 파라클레토스Parakletos께서 이미 말씀하신 방식을 따라 파라클레토스Parakletos의 사역을 통해 연구되어야 한다.

성경은 맨 처음에 정해진 일곱 구조로 구성되었다(1:1-2:3; 4:1-9). 사실상 구약성경은 적절한 예표다(24:25-27; 고전 10:6, 11). 구약성경 전체에서 말하는 것은 왕권이 중요한 초점이다. 사람이 타락한 이후 항상 왕권과 관련된 그림 안으로 들어가게 되는 구속이 있다. 처음에 사람이 창조된 입장으로 돌아가게 되고, 그 위치를 차지하게 되는 것이 구속이요, 왕권이다(1:26-28; 22:1-19; 12:1-51; 2:26-27; 3:21).

그리스도의 사역 아래에서 연구를 하던 제자들과 바울이든, 오늘날 그영의 사역을 통해 연구하는 그리스도인들이든 그리 중요하지 않다. 한 무리가 다른 무리에 비해 유리한 것은 없다. 둘 다 같은 방법으로 말씀이 연구되고 있다고 보아야 한다. 둘 다 파라클레토스Parakletos에 의해 같은 말씀이 연구되고 있다. 이전에는 그리스도이신 파라클레토스Parakletos께서 제자들을 가르치신 것이요, 오늘날은 그영이신 파라클레토스Parakletos께서 그리스도인들에게 가르치시는 것뿐이다. 신약교회시대 이전에 그리스도께서 제자들을 가르치시려고 3년 넘게 함께 계셨다. 반면 그영은 오늘날 교회시대에 개인 수명에 따라 이 사역을 수행하시려고 거의 2,000년을 그리스도인들과 함께 계신다. 그러므로 그리스도 그분 자신이 파라클레토스로 당시에 보내지셨음에도 불구하고 그분께 제자들이 3년 남짓 가르침을 받고서 전할 위치가 아니었던 이유를 쉽게 미뤄 짐작할 수 있다. 또 그리스도께서 하늘로 떠나신 후 보내어지신 다른 파라클레토스Parakletos의 사역으로 제자들에게 계시될 수 있었던 이유 또한 쉽게 알 수 있다. 성령의 파라클레토스Parakletos는 그리스도의 파라클레토스Parakletos의 사역 위에 그분의 사역을 건축하실 수 있을 뿐만 아니라 그분의 사역으로 가르침을 받는 그리스도인들에게 시간제한은 상당히 다를 것이다.

 

그분께서 인도하실 것이다.

 

요한복음 16:12-15절은 바로 앞 구절에 대한 것을 계속 이어가고 있다(16:7-11). 이 구절은 그영께서 오늘날 교회시대의 그리스도인들을 책망하시는 사역을 중심으로 하고 있다. 그영의 이 책망하시는 사역은 그리스도인들에게 그분의 모든 임무에 대해 빛을 비추시려는 것이었을 것이다. 그영의 임무는 그리스도의 신부를 찾고, 다가오는 그리스도의 통치가 그 중심이었다. 또 문맥적으로 그영은 죄, , 그리고 심판에 대해 집중 조명함으로써 이 임무를 이루실 것이다(16:8-11). 그영께서 그리스도인들과 거래하실 때 사용하시려는 죄, , 심판은 이스라엘에 대한 그리스도의 모든 이전 사역을 아우르는 것을 볼 수 있다. 사실 죄, , 심판은 아담으로 시작하여 전 인류에서 사람과 하나님과의 모든 거래를 포함한다. , , 그리고 심판에 대해서 이스라엘과 관련되어 있는 것처럼 그 민족은 머리에서 발끝까지 병들어 있었다(1:6). 또 이 질병은 죄의 직접적인 결과가 되었다(1:4). 이런 이스라엘의 질병 때문에 침례자 요한으로 시작해 메시지가 이스라엘에 선포되었다. 그 메시지는 아주 간단했다.

회개하라. 하늘들의 왕국이 가까워졌느니라.”(3:1-2; 4:17; 10:5-7)

이 메시지는 죄와 불순종과 관련된 생각을 바꾸라는 것이었다. 죄의 문제가 다뤄진 직후에 따라 온 것은 의였다. 의는 옳게 사는 것이다. 유대인들은 이스라엘 민족이 따르도록 하나님께서 보여주신 것과 완전히 반대되는 방식으로 살고 있었다. 그들은 의롭지 않고, 옳지 않게 살고 있었다. 그리스도의 초기 사역 때 그리스도께서 제자들에게 의에 관해 말씀하심을 통해 회개하여 돌이키는 것을 볼 수 있었다.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의가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의 의를 능가하지 아니하면 너희가 결코 하늘들의 왕국에 들어가지 못하리라.”(5:20; 5:19-20)

죄가 다뤄졌든, 다뤄지지 않았든, 의에 영향을 줬든, 영향을 주지 않았든 죄 뒤에 의가 이어졌고, 의 뒤에 심판이 이어졌다. 어떤 경우든 심판이 이어질 것이다. 심판을 두려워하는 자들이 죄가 다뤄지지 않은 자들이요, 의를 따르기보다 오히려 불의를 따르는 자들이라 할지라도 심판이 이어진다. 어떤 그리스도인들이 죄를 여전히 가지고 있고, 불순종하는 사람들은 심판이 다가올 것이라는 것을 말씀을 통해 알게 될 것이다.

원수 갚는 일은 내게 속하였으니 내가 갚아 주리라. 주가 말하노라, 하시고 또 다시, 주가 자신의 백성을 심판하리라, 하고 말씀하신 분을 우리가 아노니 살아 계신 하나님의 손 안으로 떨어지는 것은 두려운 일이로다.”(10:19-31)

 

1) 많은 일들

 

그리스도께서 제자들에게 가르치신 많은 것들은 그분께서 이미 죄, , 그리고 심판에 관해 말씀하신 것에서 분리될 수 없다. , , 그리고 심판은 인류 역사 속에서 하나님의 사람과의 거래나 그리스도의 사역이 분리될 수 없다. , , 그리고 심판은 한 가지의 실제를 중심으로 하고 있고, 한 가지의 목표를 향하고 있음을 볼 수 있다. 무질서가 만연된 곳에 질서를 잡게 할 목적으로 그리스도와 그분의 공동 상속자들이 홀을 붙잡는 그날을 향하고 있다. 따라서 모든 진리 안으로 이끄시는 그영은 문맥적으로 한 영역에만 집중한다. 그리스도의 신부를 찾는 창세기 24장으로 거슬러 올라가고, 더 나아가 처음에 사람이 창조되는 이유가 있는 창세기 1장으로 올라가야 성경에서 이 진리 안으로 이끄는 이유를 알 수 있다. 창세기 1장과 24장에서 볼 수 있는 것은 오늘날 세상에 계신 그영의 모든 임무를 나타내시는 것이다. 창세기 24장에 전람된 사건은 창세기 1장에 전람된 사건 때문에 필요해졌던 것이다.

그리스도는 오늘날 아내를 갖지 못한다. 또 그리스도께서 다가오는 시대에 다스리려면 아내가 얻어지기 전에 준비할 시간이 필요하다. 그리스도는 그분과 함께 다스릴 아내가 없으면 다스릴 수 없으시다. 왜냐면 아내 없이 다스리는 것은 하나님 자신께서 처음에 세우신 원칙을 위반하는 것이었기 때문이다(1:26). 남자와 여자는 남자는 왕으로서, 여자는 왕후로서 함께 다스려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창세기 1:26절은 창세기 24:1-67절에서 볼 수 있는 예표다. 남자와 여자가 함께 보좌에 오르고, 함께 다스려야 하는 이유는 창세기 24장에서 볼 수 있다. 남자의 일부였던 첫 사람, 첫 번째 아담의 신부는 아담의 몸의 일부에서 만들어졌다. 하와는 아담의 뼈 중의 뼈요, 살 중의 살이었다. 남자는 불완전한 존재로 보좌에 오를 수 없었다. 남자를 완전케 한 여자는 남자와 함께 보좌에 올라야 한다. 이런 방식만이 홀을 붙잡는 자 안에서 완성될 수 있었다.

두 번째 사람, 마지막 아담과 그분의 신부를 말할 때도 같다. 그영은 오늘날 세상에서 그리스도의 신부를 얻으시고 계신다. 창세기 24장에서 볼 수 있는 것처럼 그리스도의 신부 역시 그분의 몸에서 떼어질 수 있다(5:30-32; 1:18, 24). 이런 의미에서 신부가 그리스도의 몸의 일부이기 때문에 신부는 그리스도를 완전케 할 것이다(2:10). 그런 다음 예표에서와 똑같이 아들과 함께 보좌에 오르는 신부는 그리스도께서 완전하게 보좌에 오르도록 할 것이다. 이것은 이러한 것이 일어나도록 하나님이 그분의 말씀에 서술하시는 방법이다. 이러한 방법은 예표에 정해진 것이다. 오늘날 실제에서 이런 방법이 수행되고 있다. 그리고 그리스도께서 그분의 신부와 함께 보좌에 오는 것이 모두 완성되는 그날이 다가오고 있다.

그러므로 모든 시대는 이런 목적 때문에 따로 떼어졌다. 오늘날 하나님은 이어지는 왕국을 위해 그리스도의 신부를 얻으시게 하려고 세상으로 성령을 보내셨다. 그영은 그리스도인들을 책망하시는 것으로 그분의 임무를 이루시는 것이다(16:8-11).

 

2) 그분은 그분 스스로 말씀하시지 않을 것이다.

 

오늘날 기독교의 주된 문제는 사람에 의한 그영의 확대뿐만 아니라 그영의 참된 사역 외에도 그영의 확대다. 하지만 그와 반대로 그영은 그분 자신을 절대 드러내지 않으실 것이다. 그분의 사역은 그분께서 보내어지신 것을 가져오기 위해 한 가지 목표에 맞춰져 있다.

창세기 24장에서 아브라함의 종은 어떤 것에 관해서도 자기 자신을 드러내지 않았다. 그 노종은 그의 주인이 아들에게 주려고 했던 주인의 좋은 모든 것을 10필의 낙타 등에 싣고서 주인이 지시한 땅으로 갔다(24:10, 36; 25:5). 그 노종이 해야 하는 임무는 두 가지 뿐이었다. 그의 임무 중 하나는 그가 그의 주인의 아들의 신부를 얻는 것에 대해 선포하는 것이었고(24:37-67), 다른 하나는 아버지가 아들에게 준 것을 예비신부 앞에 전람하는 것이었다(24: 22, 47, 53).

오늘날 교회시대에도 문제는 하나님의 사람들 가운데서도 그영의 사역이 똑같다는 것이다. 그런 문제들은 필연적으로 똑같아야 한다. 예표는 정해졌다. 실제에 있어서 오늘날 세상에서의 그영의 사역은 창세기 24장에서의 노종의 사역과 같아야 한다. 예표에 따라 오늘날 세상에서의 그영은 그분 자신을 드러내지 않으신다. 그분은 세상에 그분의 임무 두 가지만 알리신다. 그영의 임무와 관련한 선포는 약 4,000년 전 아브라함 시대에 정해졌고 약 3,500년 전 모세시대에 모두가 보도록 기록되었다. 그런 후 약 2,000년 전 그리스도에 의해 그분의 땅에 속한 사역에서 선포되었다. 또 그 선포에 대해 하나님 그분 자신의 영께서 사도행전, 서신서, 그리고 요한계시록을 사람들이 쓰도록 하셨다. 이것은 완전히 예표와 일치하도록 되어 있다. 그영은 오늘날 교회시대에 하나님께서 그리스도께 주신 하나님께 속한 모든 소유를 하나님의 사람들 앞에 전람하심으로 그분의 사역을 하신다.

 

3) 하지만 들을 수 있는 자는 들을지어다.

 

아브라함의 노종과 똑같이 그영께서 원하는 대로 할 수 있는 하나님께서 그리스도께 주신 하나님의 모든 소유를 가지고 계신다. 이 소유는 그 영 자신이 이미 다른 사람들에게 기록하도록 하신 말씀을 통해 예비신부에게 열렸고, 계시되었다. 그영은 그분의 소유로 말씀을 취하시고 사람들이 이해하도록 말씀을 여신다. 그분은 이 말씀을 취하시고 모든 은, 금의 보석과 의복을 그리스도인들 앞에 펼쳐 놓으신다(24:53; 19:7-8).

아브라함의 노종은 자기의 주인에게서 이미 받은 지시를 알아들었고, 그 지시에 맞게 수행했다(24:33-67). 그의 임무는 그의 주인 아들의 신부를 찾고, 얻는 것 뿐 다른 어떤 것도 그의 임무에 포함되지 않았다. 아브라함의 노종의 임무는 오늘날 세상에서 그영의 사역의 문제들과 같은 것이다. 그분의 임무는 하나님으로부터 이미 받은 지시를 따라 정확하게 수행되고 있다. 그리스도의 신부를 찾고, 얻는 것 뿐 다른 어떤 것도 그분의 임무에 포함하지 않는다.

 

그분이 나를 영화롭게 하실 것이다.

 

장차 그영의 사역과 관련해 그리스도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시는 강조점은 이중적이다. 하나는 그영께서 그분의 사역을 행하시는 방식이요(16:8-11), 다른 하나는 그영께서 계시된 방식으로 이 사역을 행하신 것처럼 행하실 것이라는 것이다(16:13-15). 앞에서 본 것처럼 그영께서 오늘날 그분의 사역을 행하시는 방식은 죄, , 그리고 심판으로 책망하는 사역과 관계가 있다. 또 그영께서 이 계시된 방식으로 그분의 사역을 수행하는 과정에서 사용하시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이다. 아버지께 속한 것을 계시하는 것도, 아버지께서 그리스도께 주신 것도 말씀뿐이다. 그영은 그리스도께 속한 것을 취하고, 하나님의 사람들에게 이것을 계시하는 것을 통해 그리스도를 영화롭게 한다. 그리스도께서 2,000년 전에 오신 것은 왕권과 관계있는 일들이다(1:11). 그분께서 재림하시려고 하는 것 역시 왕권과 관계있는 것이다. 계시, 말씀, 그리고 그리스도의 다가오는 영광을 통해 그영에 의해 그리스도의 영광을 나타낸다. 아버지께서 그리스도께 주신 아버지께 속한 모든 것을 계시하고 말씀을 열어 가지고 온 모든 것을 하나님의 사람들에게 보여주는 것이다. 그영께서 모든 진리 안으로 각 사람을 이끄시는 것, 왕권을 중심으로 하는 모든 문제와 그리스도의 다가오는 영광으로 이끄는 것은 이런 방법을 통해서다. 그리스도는 그분의 초림 때에 왕으로 태어나셨지만 이때에는 그분의 영광에서 분리되셨다(2:2; 8:3). 그리스도는 유대인들에게서 거절되셨고, 조롱받는 왕이 되셨으며, 로마 군인들에게서 채찍을 맞으면서 조롱받으셨고, 유대인의 왕으로서 십자가에 못 박히셨다(27:15-37).

하지만 그리스도는 그분의 초림 때와 완전히 다른 방식으로 재림하실 것이다. 조롱받지 않는 왕, 가시관을 쓰지 않고, 사람들에게서 조롱받지 않으며, 채찍질을 당하지도 않으며, 십자가에 못 박히지도 않을 것이다. 오히려 그분은 왕 중의 왕, 주 중의 주로서 그분의 모든 권능과 영광으로 재림하실 것이다(19:11-30). 그날에 유대인들에게 거절당하기보다 오히려 그분은 그들에 의해 환영받게 되실 것이다. 그날에는 유대인들은 그리스도를 부당한 대우, 조롱하듯 무릎을 굽히고, 그분께 침을 뱉고 채찍질하기보다 왕으로서, 주로서 제대로 대우하고, 인정할 것이다. 그날에 그분은 왕가의 의복을 갖춰 입으실 것이고, 많은 관들이 그분의 머리에 씌워질 것이고, 모든 무릎이 그 앞에서 꿇게 될 것이고, 모든 언어가 예수그리스도는 주시라고 고백하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것이다(2:10-11). 받았던 그분의 고난과 굴욕이 그날에는 영광과 찬양을 받으실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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