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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밀

Hernhut 2019. 7. 12. 23:06


    

친히 자신 속에서 작정하신 자신의 선하신 기쁨에 따라 자신의 뜻의 신비를 우리에게 알려 주셨으니 이것은 충만한 때의 경륜 안에서 친히 모든 것 즉 하늘에 있는 것들과 땅에 있는 것들을 그리스도 안에서 곧 그분 안에서 다 함께 하나로 모으려 하심이라. 모든 것을 자신이 뜻하신 계획대로 이루시는 분의 목적에 따라 우리가 예정되어 또한 그분 안에서 상속 유업을 얻었으니 이것은 먼저 그리스도를 신뢰한 우리가 그분의 영광을 찬양하게 하려 함이라.”(1:9-12; 1:16-20).

내가 교회의 사역자가 된 것은 너희를 위해 내게 주신 하나님의 경륜에 따라 하나님의 말씀을 성취하려 함이니라. 이것은 곧 여러 시대와 여러 세대로부터 감추어졌으나 이제는 그분의 성도들에게 드러난 신비에 관한 것이라. 하나님께서는 이방인들 가운데서 이 신비의 영광의 풍성함이 무엇인지 자신의 성도들에게 알리려 하시는데 이 신비는 너희 안에 계신 그리스도 곧 영광의 소망이시니라.”(1:25-27)

 

에베소서와 골로새서는 친구관계의 서신서다. 여러 곳에 서로 유사성이 있다. 두 책 다 첫 장에 비밀에 대한 계시에 대한 일들을 말한다. 두 책에서 비밀에 대해 분명하게 말하는 것은 계시된 진리에 대한 몸이다. 이 비밀은 그리스도를 믿는 이방인이 그리스도를 믿는 유대인과 동료가 되고 유대감을 갖는 것으로 에베소서 3:1-6절에 설명했다. 둘 다 같은 몸의 지체들이 된다. 에베소서 2:12-15절에 의하면 그리스도 안에 있는 한새사람이 되는 것이다. 또 몸의 지체가 됨으로써 둘 다 함께 복음에 의한 그리스도 안에 있는 약속에 참여하는 자들이 된다(2:6). 그리스도 안에 있는 그분의 약속은 하늘에 있는 것이나 땅 위에 있는 모든 것이 그리스도의 권위 아래에 있게 될 다가오고 있는 시대와 관계가 있다(1:10). 그날 그리스도의 영광이 모두가 보는 앞에서 나타나게 될 것이고, 그리스도인들이 약속을 상속받게 될 것이며, 그리스도인들은 그리스도와 공동상속자들이 될 것이며, 오늘날 기대하지 않았던 그들 앞에 놓인 소망을 알게 될 것이다.(1:11-12 ; 5:2; 1:2; 2:12, 13; 3:7; 3:6; 6:11-12; 10:23; 벧전 1:13; 3:15).

에베소서 1:10절은 요한복음 1:11절에 나타난 것과 정반대의 것으로 대조적이다.

그분께서 자기 백성에게 오시매 그분의 백성이 그분을 받아들이지 아니하였으나(1:11)

이것은 충만한 때의 경륜 안에서 친히 모든 것 즉 하늘에 있는 것들과 땅에 있는 것들을 그리스도 안에서 곧 그분 안에서 다 함께 하나로 모으려 하심이라.”(1:10; 3:19-21)

그리스도는 그분의 영광을 제외하고 초림 때에 그분 자신의 모든 것들에게로 오셨다. 그분의 초림은 왕권과 관련된 것과 관계가 있었다. 그분이 태어나신 그 때에 왕으로 태어나신 것이다.

유대인의 왕으로 태어나신 그분이 어디에 계시는가?”(2:2a)

그리스도께서 그분 자신의 것에게로 오심은 그분을 거절한 그분 자신의 백성들에게로 오신 것이다. 이 모든 것은 갈보리에서 일어난 일로 수치와 굴욕이 절정에 이르도록 했다.

그리스도의 재림 때 초림 때처럼 다시 한번 그분 자신의 것으로, 그분 자신의 백성에게로 오시게 될 것이다. 하지만 초림 때 영광을 제외하고 오신 것이 아니고 재림 때에는 그분의 영광으로 오실 것이다. 그분은 단순히 왕으로 태어나셨을 때처럼 오시지 않을 것이다. 그분은 그분의 가장 큰 왕권의 위엄으로 오실 것이다(벧후 1:16). 그리스도는 그분께서 하늘로 오르셨던 올리브산에 재림하실 것이다(14:4; 1:10-11; 19:11-21). 그날에 유대인들은 그분을 거절하기보다 오히려 그분을 영접할 것이다. 이전에 당했던 그분의 수치와 굴욕이 그날에는 그분의 영광과 찬양이 되는 것을 볼 것이다. 다가오는 날에 그리스도는 자기의 왕권의 위엄으로 계시되실 것이다. 모든 것들은 그리스도께 복종할 것이다. 궁극적인 목적은 회복된 왕국을 제시할 수 있는 그리스도와 관계가 있을 것이다. 두 왕국 회복은 하나님께서 모든 것 안에서 모든 것이 되시기 위한 것이다(고전 15:24-28). 그리스도의 왕국시대에서 그리스도와 이 땅에 관련된 일을 이루시게 될 것이다(1:10). 그리스도께서 하나님께로 회복된 왕국을 가지고 가신 후 영원한 시대에서는 하나님과 관련된 것을 우주적으로 이루시게 될 것이다(1:10). 그런 이후 이 비밀은 골로새서에서 설명되었다.

이 신비는 너희 안에 계신 그리스도 곧 영광의 소망이시니라.”(1:27b)

비밀은 어떤 시점까지 숨겨져 있던 것으로 그리스도께서 너희에게 선포하신 영광의 소망이라고 설명하기 직전 소개되고 있다. 이 비밀은 여러 시대와 세대를 위해 천사들과 사람에게 숨겨졌었다(1:26). 인자의 시대는 마지막 시대만을 포함한다. 하지만 이 시대가 끝나갈 무렵, 마지막 시대의 후반부에 비밀은 알려졌다. 이전에 천사들과 사람에게 숨겨졌던 것처럼 이제 천사들과 사람에게 알려지고 있다(3:3, 9-11; 벧전 1:9-12). 그러므로 비밀은 벗겨지지 않은 수많은 시대와 62세대 즉 아담에서 예수님까지의 인류에 이르기까지 숨겨졌던 어떤 것을 알리시는 하나님과 관계가 있다(5:1-32; 11:10-26; 1:17). 이 모든 시간과 이 세대의 끝에서 하나님은 비밀을 밝히기 위해 이스라엘 민족을 이끌 한 사람을 부르셨다.

하나님은 바울을 부르시고, 회심케 하셨으며, 3년 정도 그를 따로 세우시고(1:11- 12, 18; 3:1-7), 그에게 그 비밀을 알리셨다. 하지만 바울에게 알려진 비밀은 유대인들에게만 관련된 것이 아니었다. 오히려 그 비밀의 목적은 시편 147:1-20절에 계시된 것처럼 이방인들과 관련이 있었다(9:15; 13:46-48; 15:14; 1:13; 2:2, 7). 모든 문제들이 골로새서 1:27절에서 요약된 비밀에 대한 아주 간결한 설명으로 끝을 맺는다.

하나님께서는 이방인들 가운데서 이 신비의 영광의 풍성함이 무엇인지 자신의 성도들에게 알리려 하시는데 이 신비는 너희 안에 계신 그리스도 곧 영광의 소망이시니라.”

이 구절에서 이방인이란 구원받지 않은 이방인이 될 수 없다. 왜냐면 구원받지 않은 이방인들은 약속의 언약들에서 낯선 자들이요, 세상에서 소망이 없고, 하나님에 대한 관심이 없는 자들이었기 때문이다(2:12). 더욱이 구원받지 않은 이방인들은 불법과 죄 안에 죽어 있었고, 영적인 진리를 전혀 이해할 수 없었다(고전 2:14). 오히려 그 구절에 있는 이방인은 필히 구원받은 이방인이어야 할 것이다. 이 구원받은 이방인은 죽음에서 생명으로 통과했고, 더 이상 하나님으로부터 떨어지지 않았으며, 소망을 갖고 있으며, 영적인 진리를 이해할 능력이 있었던 사람들이어야 할 것이다(2:13-15).

골로새서 1:27절에서 옳게 번역할 필요가 있는 단어가 있는데 그것은 바로 , 이다. 이라는 단어는 앞의 서술을 정의하고자 하는 부사다.

이 구절의 전반부에 있는 이방인들 가운데알리시려는 비밀은 너희 안에 계신 그리스도요, 영광의 소망이라고 설명되어 있다. “가운데”, “안에는 대부분의 성경번역본에서 번역된 단어들이다. 이 두 단어는 헬라원문에서 엔en으로 같은 단어로 번역된다. 헬라어 엔en이 영어로 번역될 때 안에in, 혹은 안으로into와 관계가 있다. 그렇지만 가운데라는 단어는 엔이 가끔 또 다른 방식으로 이해될 때가 있다(12:18; 13:26; 15:7, 12, 22; 살후 3:7, 11). 단어의 문맥적 사용은 단어가 어떻게 이해하느냐에 결정요소가 되는 것이다. “이방인들 안에서보다 오히려 이방인들 가운데로 번역된 분명한 것은 엔en을 사용한 것이 옳다. en에 대한 이 같은 번역 역시 이 구절 초반부의 설명이 후반부까지 미치게 하는 것이 분명하다. 이 구절의 후반부는 문자적으로 읽어야 한다.

이 신비는 너희 안에 계신 그리스도 곧 영광의 소망이시니라.”(1:27b)

이 후반부 구절의 비밀에 대한 설명으로 전 구절이 아주 분명해 진다. 초반부 구절에서 말하고자 하는 것은 하나님께서는 이방인들 가운데서 이 신비의 영광의 풍성함이 무엇인지 자신의 성도들에게 알리려 하시는것이다. 이를 번역하면 너희 가운데 계시는 그리스도께서그리스도께서 너희 즉 이방인들 가운데 선포하시고, 알리신 것을 의미로 이해될 수 있을 뿐이다.

그리스도께서 이방인들에게 선포하신 것은 이제 이방인들이 가지고 있는 소망에 집중되고 있는 것이다. 전에는 이방인들에게 이 소망이 없었다. 꿈도 못 꿀 소망이었다(2:12). 이방인들이 가지게 된 소망은 장차 다가오고 있는 그리스도의 소망과 관계가 있다(5:2; 1:2; 2:12-13; 3:7). 그리스도께서 이방인들 가운데 선포하신 것은 비밀에 관해 계시된 일들과 관계가 있을 뿐이다. 이제 이방인 믿는 이들은 동료들이요, 같은 몸이요, 복음으로 그리스도 안에 있는 그분의 약속에 참여하는 자들이다(3:6). 비밀은 믿는 이방인들이 같은 몸 안에서 믿는 유대인과 동료가 되는 것과 관계있다. 이것이 신약성경의 중심적 주제다.

 

비밀에 대한 계시 예언됨

침례자 요한으로 시작하여 그리스도의 땅에 속한 사역, 그분의 제자들의 사역 그리고 갈보리 사건으로 이어지는 이 비밀은 이스라엘에게 하늘들의 왕국이 제안되었다. 그렇지만 이스라엘은 제안된 왕국을 거절했을 뿐만 아니라 유대인들의 거절은 그들의 왕을 십자가에 못 박음으로 절정에 다다랐다. 이것 때문에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못 박하시기 전 며칠은 파문을 일으킬만한 것들을 선포하셨다. 그분의 선포는 왕국, 이스라엘, 한 민족이 이스라엘과 분리되는 것과 관계가 있었다. 그분의 선포는 비밀에 대한 하나님의 계시를 예언하셨다.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아버지께서 너희로부터 하나님의 왕국을 빼앗아 왕국의 열매를 맺는 민족에게 주시리라.”(21:43).

그리고서 그리스도께서 죽으시고, 매장되시고, 부활하신 후에 이스라엘에게 왕국이 다시 제안 되었다. 이 왕국의 재제안은 A.D. 33년 오순절을 기점으로 해서 로마에서 바울의 사역이 끝나기까지였다(2:1-47; 28:17-31). 필연적으로 왕국에 대한 이스라엘에게 재제안이 시작할 때 이 재제안은 그리스도께서 존재한다고 말씀하셨던 그 새 민족이 받게 되었다. 이스라엘과 분리되는 이 새 민족은 이스라엘에게 왕국에 대해 재제안이 되기 전에 존재해야 했다. 그리스도 그분 자신이 하늘로 되돌아 가셨고, 그런 이후 왕국은 이스라엘에게서 빼앗아 이스라엘의 민족과 상관없던 자들이 이 재제안을 받아들일 수 있었다. 그러므로 왕국을 소유할 뿐만 아니라 다시 한 번 이스라엘에게 왕국을 제안할 책임을 가질 수 있도록 또 다른 민족이 산출되어야 했다. 이 새 민족은 이미 이스라엘이 보고가 되었던 것처럼 왕국의 보고가 될 것이다.

오늘날 바라보는 왕국은 하늘과 땅에 속한 영역의 모든 왕국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바라보는 왕국은 하늘들의 왕국, 하늘에 속한 왕국이다. 이 부분의 왕국은 이스라엘에게 제안되었지만 그들은 거절했다. 땅에 속한 영역의 왕국은 다윗에게 약속되었다. 이 땅에 속한 왕국은 이스라엘에게서 정대 뗄 수 없는 영역이다(삼상 7:12-16; 1:31-33). 그러므로 사도행전 2장은 두 사건으로 집중시킨다. 하나는 하나님께서 새 민족을 산출시키시는 것과 다른 하나는 이 새 민족으로 이스라엘에게 왕국에 대해 재제안하기 시작한다. 하지만 사도행전 2장의 강조점은 이스라엘에게 왕국을 재제안할 수 있는 사람들을 산출하시는 것이 아니다. 이 새 민족이 도입되는 것은 간단한 방법이다. 사도행전 2장의 강조점은 하나님께서 잠시 이 새로운 민족을 이스라엘에게 왕국에 대한 재제안하도록 쓰시긴 하셨지만 하나님께서 전에 이스라엘이 실패했던 그 왕국의 열매를 맺을 한 민족을 산출하시는 것이다.

 

비밀에 대한 계시 실현됨

 

이 모든 것이 비밀의 범위 안에서 어떻게 들어맞을까? 그것은 간단하다. 비밀은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기 며칠 전 마태복음 21:43절에서 그분께서 말씀하신 새 민족을 중심으로 한다. 이 새 민족이 산출된 후 비밀에 대한 완전한 계시가 필요하게 되었다. 이와 같은 계시를 통해서만 수많은 구약성경이 열리고 합당하게 이해될 수 있다. 그러므로 사도행전 2장 사건이 있은 몇 년 후 하나님은 이 목적을 위해 이스라엘 민족 밖으로 한 사람을 불러내셨다. 하나님은 환경을 통과한 바울을 부르셨다. 그는 그의 환경을 통과하면서 회심을 했다. 그리고 하나님은 바울을 따로 세우시고 그에게 비밀을 계시하셨다. 그런 후 바울은 이방세계로 나아가기 위해 자기의 신념을 버리고 비밀에 대한 계시를 받았다(16:25; 1:11-12, 16; 6:19; 1:28-29). 바울이 자기의 신념을 저버린 것은 몇 년 전 그영에 의해 시작한 사역과 관계가 있었다. 그영의 사역과 함께 하는 것이었다. 이런 방면에서 비밀은 우리가 살고 있는 교회시대 동안 그영께서 행하시는 사역과 관계가 있었다. 하나님께서 그분의 영을 세상으로 보내신 이유는 그리스도의 신부를 찾고, 얻기 위한 사역과 관계가 있었다. 그영께서 그리스도의 신부를 얻기 위해 그분은 이스라엘이나 이방민족에게서 분리되는 사람들을 먼저 산출하는 것으로 이 사역을 시작하셔야 했다. 그영은 이스라엘을 포함해 다른 어떤 이방민족에게도 그리스도의 신부를 빼앗길 수 없는 단순한 이유 때문에 필요한 것이었다. 여호와의 이혼한 아내인 이스라엘을 제외하고 그리스도께서 이스라엘에게서 빼앗은 그 왕국을 신부가 그리스도와 함께하는 왕후가 되어 다스리게 되었다(21:43). 그리고 이방민족들은 그들이 그리스도 밖에 있었고 이스라엘 민족 밖에 있던 외인들이며 약속의 언약들에서 분리된 낯선 자요 세상에서 소망도 없고 하나님 밖에 있던 자들(2:12)이었기 때문에 생각조차도 할 수 없었지만 그날이 되면 그리스도와 함께하는 공동상속자로서 통치하게 되었다. 성경에서 그리스도 안에 있는 한새사람으로 간주된 하나님께서 산출하시는 완전한 새 민족(2:13-15) 외에 오늘날 교회시대 동안 그영에 의해 그리스도의 신부를 찾지 못할 수 있다. 그러므로 비밀은 그영의 새롭고 다른 사역과 관계가 있었다. 그 비밀은 이 새 민족, 한새사람을 산출하는 것뿐만 아니라 모든 진리 안으로 이 한새사람을 구성하는 각 사람을 이끄시는 것을 포함한다. 그 비밀은 그리스도의 부활 이후 50일째 되는 오순절 날에 시작된 사역이었다. 또 그 비밀은 2,000년 내내 교회시대 동안 계속될 사역이었다.

그리스도 안에 있는 한새사람은 그리스도 안에서 새 창조로 구성되었다(고후 5:17; 2:13-15). 핵심적인 표현은 그리스도 안에. 한새사람이 산출되는 것뿐만 아니라 산출되는 이유에 대해 알 수 있게 하는 열쇠는 두 가지다. 하나는 그리스도의 정체성이요, 다른 하나는 교회시대에서 행하시는 그영의 사역이다.

 

1) 새 민족

 

하나님의 옛 율법 때문에 오순절 날에 산출된 이 새 민족(21:43; 벧전 2:9-10)은 어떤 자격조건을 충족시켜야 했다. 하나님은 그리스도께서 왕국의 열매를 산출할 또 다른 민족에 대해 선포하시기 1,400년 전에 모세를 통해 세우셨다. 모세를 통해 세운 것은 모든 영적인 축복은 아브라함과 그의 씨를 통해서만 흘러야 한다는 것이었다(12:1-3; 22:17-18). 아브라함에게는 어떤 씨도 없었다. 이 본질의 영적인 축복은 아브라함의 씨 이삭에게만 제한되었다.

이삭 안에서 네 씨가 부름을 받을 것”(21:12).

, 어떤 이방민족도 마태복음 21:43절에서 말한 위치를 차지할 수 있는 자격을 갖추지 못했다. 자격을 갖추지 못한 이방민족들은 아브라함에게 자신들의 기원을 두려는 이스마엘, 그두라의 아들들, 에서 등이 구성된 이방민족들까지도 포함된다. 이 아브라함의 후손들은 아브라함의 씨이기 때문에 축복을 받을 수 있지만(17:20; 21:13) 이 축복들이 흘러가는 통로는 될 수 없다. 이 축복들이 흐를 수 있는 통로는 이삭, 야곱, 그리고 야곱의 12아들들이 아브라함의 혈통이 되었다(21:12; 26:4; 28:14; 49:1-33).

마태복음 21:43절에서 선포되신 분은 육신을 입으시고 사람이 되신 하나님이셨다. 문제들이 어떻게 통과되어야 했는지에 대해 이미 계시되었지만(3:11; 16:7-15) 계시된 완전한 계시는 그리스도의 부활 50일 이후 오순절 날에 일어날 일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모든 영적인 축복은 아브라함과 그의 지명된 씨를 통해 흘러야 했기 때문에 마태복음 21:43절에서 그리스도께서 말씀하신 민족은 이런 연관성을 가져야 했다. 이 두 연관성을 제외하고 이와 같은 민족은 이스라엘이 거절한 것을 받을 수 없다. 왜냐면 이스라엘이 거절한 것은 왕권의 축복이 포함되었기 때문이다. 이 새 민족을 구성하는 어느 날 각 사람들은 창 22:17-18절에서 아브라함의 씨에게 약속한 하늘에 속한 왕권의 위치를 잡아 하늘에 속한 곳에서 살고, 하늘에 속한 곳에서 땅의 이방민족들에게로 축복이 흐르게 하는 통로가 되어야 했다. 그런데 이 새 민족이 아브라함의 씨와 본질에 있어서 연관성이 있어야 했었는데 아브라함의 천연적인 혈통이 될 수는 없다. 그 왕국은 이스라엘에게서 빼앗았고, 이스라엘과 동일시된 모든 인종은 이스라엘의 일부로 간주될 수 있었고, 빼앗은 왕국 일부가 이 새 민족의 것이 되었다.

어떻게 이와 같은 민족이 산출될 수 있었는가? 하나님은 어떻게 이스라엘과 족보적 관계를 맺었지만 아직 그 민족의 일부가 아닌 민족을 산출하실 수 있으셨나? 이런 방면에서 하나님의 사역은 사도행전 2장에 나타난 일로 알 수 있다. A.D. 33년 이 날에 하나님은 보내신 성령의 사역을 통해 유대인은 아니지만 유대인 정체성을 가진 민족을 산출하셨다. 이 날에 하나님은 이스라엘과 구별되지만 아브라함 혈통을 소유하는 민족을 산출하셨다. 어떻게 하나님은 이런 일을 하셨는가? 그것은 아주 간단한 것이다. 그리스도를 믿는 120명의 제자들 무리(1:15; 2:1)는 그영에 잠겨 그리스도 안에서 한새사람이 되었다(1:4-5; 2:2; 3:11). 그리스도 안에서 한새사람을 형성하는 방식으로 산출된 이 새 민족(2:12-15)은 꼭 맞는 아브라함의 혈통을 가진 씨를 이루고, 그리스도 안에서 위치를 차지하는 각 사람으로 구성되었다(3:28-29). 비밀과 관계가 있고, 한새사람의 일부가 되는 그리스도인 안에 있는 유대인들은 천연적인 혈통에 의해서가 아니라 그리스도 안에서의 위치에 의해 아브라함의 씨가 되는 것이고, 그리스도 안에 있는 이방인들도 한새사람이 된 유대인들과 같이 아브라함의 씨가 되고, 그리스도 안에 있는 한새사람이 될 것이다.

그리스도는 모든 영적 축복의 혈통 안에서 아브라함의 큰 아들이시다. 또한 그리스도는 왕권의 혈통 안에서 다윗의 큰 아들이시다. 영적인 축복과 왕권의 문제는 유대인들도, 이방인들도 아닌 새로운 민족을 형성하는 그리스도를 믿는 유대인들과 이방인들로 구성되는 그리스도 안에 있는 한새사람 안에서 볼 수 있다. 오순절 날에 산출된 이 새 민족은 아브라함과 관계있는 영적축복을 받게 되고, 더 나아가 다윗을 통해 왕권의 약속을 받게 된다. 그리스도 안에서 한새사람이 된 이 새 민족은 아브라함의 씨가 되었고, 하늘들의 왕국을 빼앗긴 이스라엘의 일부분도 아니고, 어떤 이방민족들의 일부도 아니다. 이 새 민족들은 영적인 축복이나 하늘들의 왕국과 아무런 관계가 없다. 오히려 이 새 민족은 유대인도, 헬라인도 아닌 한새사람이다. 사실 그리스도 안에 있는 이 새 민족의 위치로 모든 인종의 구별은 사라졌다. 이 새 민족은 종도, 자유자도 아니요, 남자나 여자도 아니다. 이 새 민족이 이전의 민족이 아니기 때문에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께서 요구하시는 모든 것이 될 수 있다. 이 새 민족의 본질 때문에 약속을 따른 상속자로 구성된 자들로 간주될 수 있다. 이 새 민족은 땅에 속한 약속이 아니요, 하늘에 속한 약속을 받는 상속자들이 되는 것이다(3:28-29).

 

2) 새 창조

 

성경에서 이 새 민족을 한새사람으로 묘사되었을 뿐만 아니라 그리스도 안에 있는 새 창조들로 이 한새사람을 구성한다고 묘사한다. 그리스도 안에 있는 새 창조들의 존재가 한새사람의 존재가 되게 한다.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그는 새로운 창조물이라. 옛 것들은 지나갔으니, 보라, 모든 것이 새롭게 되었도다.”(고후 5:17).

중요한 표현은 그리스도 안에. 그리스도 안에서 옛 것들은 지나갔다. 각자가 그영 안에 잠기기 전 유대인이었다면 그리스도 안에 자기를 내려놓는 순간부터 그는 더 이상 유대인이 아니다. 그는 그리스도 안에서 새 창조가 된다. 각자가 그영 안에 잠기기 전 이방인이었다면 그리스도 안에 자기를 내려놓는 순간부터 그는 더 이상 이방인이 아니다. 그는 유대인이 그리스도를 믿는 것처럼 그리스도 안에서 새 창조가 된다. 그리스도 안에서 유대인도, 헬라인도 아니고, 한새사람이다. 모든 것이 새롭게 된다는 것은 문자적으로 읽어야 한다.

보라, 그가 새롭게 된다.”

즉 그영 안에 잠기는 것을 통해 각 사람이 그리스도 안에서 새 창조가 된다. 이는 그영으로, 그영과 함께 잠기는 것이 아니고, 그영 안에서 잠기는 것이다. 침례를 받을 때도 그영에 의해, 그영으로 물 속에 잠기는 것이 아니라 그영 안에서 침례를 받는 것이다(3:11; 고후 12:13). 사람이 침례를 받을 때 잠기는 요소가 물인 것처럼 성령 안에 잠기는 요소가 바로 그영이시다.

고린도후서 5:17절 하반절의 그가 되었다.”는 헬라원문에서 완료시제다. 이것은 새 창조를 산출하는 그영과 관련된 과거에 일어나는 신성한 행위를 가리킨다. 그 행위는 완료된 상태에서 오늘날에도 존재한다. 그리스도 안에 있는 그리스도인의 입장에 영향을 주는 그영의 사역에 더하거나 뺄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생명 없는 자 안으로 생명을 호흡하는 것 자체가 구원에 영향을 주는 그영의 사역과 같이 갈보리에서 끝내신 그리스도의 사역에 근거를 둔다. 완료시제는 갈보리에서 끝내신 그리스도의 사역(19:30)과 구원 안에 있는 그영의 사역과 관계하여 사용되었다(2:8). 다시 말해 사람의 영원한 구원과 그리스도 안에서의 입장의 모든 문제는 이미 끝난 상태에서 존재하는 과거의 신성한 사역과 관계가 있다. 추가할 것도 뺄 것도 없다. 영원한 구원과 그리스도 안에서의 입장 둘 다 갈보리에서 끝내신 그리스도의 사역으로 끝났고, 완성된 것이다. 이것으로 모든 것을 가능하게 한다.

 

3) 그리스도의 몸

 

또 비밀에 대한 계시를 구성하는 또 다른 요소는 교회시대 동안 그영의 모든 사역 안에서 통과되어야 한다. 그리스도 안에서 한새사람을 구성하는 이들은 그리스도께서 머리이신 그분의 몸을 구성해야 한다. 교회시대 동안 그영께서 찾으시는 자 곧 신부는 그리스도의 몸에서 떼어져야 한다. 이 예표는 창세기 2장에서 시작되었다. 하나님은 처음에 만유를 그분의 주권적 통치 방식을 따라 그리스도의 몸이 건축되고 또 그분의 신부를 따로 떼어 놓는 것을 세우셨다. 심지어 변할 수도 없었다. 예표에 따라 그영께서는 그리스도의 몸에서 신부를 얻으셔야 하고, 더욱이 신부는 모든 몸에서가 아니고 몸의 일부에서만 산출되어야 한다.

아담은 그리스도의 예표다. 구약성에서만 그리스도에 관해 예표일 뿐만 아니라 신약에서 아담이 그리스도의 예표한다고 구체적으로 말했다(5:14). 창세기에 있는 아담은 첫 사람이요, 첫 번째 아담이었고, 4,000년 후 그리스도는 두 번째 사람이시오, 마지막 아담으로 표현되었다(고전 15:45-48). 아담에게 일어난 일들은 그리스도에게 일어날 예표였다. 둘 사이에는 예표와 실제 관계가 존재하고 있다.

사실 그리스도에 관한 연구는 신약성경 복음서가 아닌 하나님께서 처음 시작하신 창세기 첫 장부터 시작해야 한다. 실제를 이해하려면 예표를 이해해야 한다. 실제에서 나타난 진리는 예표와 실제를 함께 연구하는 것을 통해서만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그분의 말씀으로 시작하신 방법이다. 또 사람은 그분께서 만들어 놓으신 방식을 따라 이 말씀을 연구해야 한다.

따라서 두 번째 사람, 마지막 아담의 신부를 얻으시는 그영에 관한 합당한 연구는 하나님께서 첫 사람, 첫 번째 아담의 신부를 어떻게 산출하셨는지 보기 위하여 창세기 2장에서 시작해야 한다. 이것이 보이고 이해되었을 때에만 두 번째 사람, 마지막 아담의 신부가 어떻게 산출될 것인가에 관련된 일들을 제대로 보고 이해할 수 있는 위치에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첫 사람, 첫 번째 아담은 잠들었고, 그의 옆구리가 열렸으며, 하나님은 아담의 몸에서 일부분을 제거하셨다. 그리고 그분은 아담의 신부를 만드는 데 아담의 몸 일부분을 사용하셨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아담의 몸 일부분으로 만들어진 사람을 타락하기 전에 아담은 여자로, 타락한 후에 하와로 불렀다(2:21-23; 3:20). 아담 창조는 절대 변할 수 없는 기본적인 진리를 형성한다. 아담의 몸에서 그 일부분을 떼어내 하와를 건축했던 것은 두 번째 사람, 마지막 아담과 그분의 신부에 관해 볼 수 있어야 한다. 하와는 처음에 아담 안에서 건축되었다. 하지만 하와가 건축된 것은 하나님께서 아담을 잠들게 하시고, 그의 몸에서 일부분을 떼어내어 하와를 만드신 이후였다. 하나님께서 하와를 만드신 후 그분은 아담에게 데리고 가셔서 하와를 그에게 주셨다. 하와는 아담을 돕는 배필이 되었을 뿐만 아니라 완전한 아담이 되게 했다. 하와가 아담의 일부분이었기 때문에 하와가 없는 아담은 불완전했다. 그래서 아담은 하와를 보고 뼈 중의 뼈요, 살 중의 살이라고 선포했다(2:23). 하나님께서 아담에게 그의 일부분을 되돌려 주셨을 때 첫 사람은 다시 완전한 존재가 되었다.

남자와 여자 사이에 있는 이 같은 관계는 오늘날 결혼에서도 볼 수 있다. 이런 결혼은 아담과 하와의 관계에서 일어난 것을 반사하고 있고, 그리스도와 그분의 신부와의 관계에서 일어날 것으로 모인다(5:22-32; 벧전 3:7).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은 이 관계와 관련된 어떤 형태의 변개도 가볍게 보지 않으신다. 남자는 남자만으로 완전할 수 없고, 여자 역시 여자만으로 완전할 수 없다. 완전은 남자와 여자의 연합을 통해서만 얻어진다. 하나님께서 세우신 패턴으로부터 생기는 어떤 탈선은 창세기 2장에서 시작하는 그리스도와 그분의 신부에 관해 하나님께서 말씀하셔야 하는 것을 부정적으로 반사하는 왜곡이다. 이로써 이 변개에 대한 벌칙이 구약성경, 신약성경에서 똑같이 집중적으로 사망, 죽음이라고 선포된 이유다(20:13; 1:24-32; 8:12-13; 고전 6:9-10).

예표에서처럼 실제에서도 같다. 두 번째 사람, 마지막 아담은 갈보리에서 잠에 빠지셨고, 그분의 옆구리가 열렸으며, 이 열린 옆구리에서 하나님은 피와 물이라는 요소를 꺼내셨다. 이 피와 물은 하나님께서 오늘날 그영께서 그리스도의 신부를 찾으시기 위해 사용하시고 계신다. 예표에서와 똑같이 신부는 만들어 졌고, 아버지는 돕는 배필로 그리스도께 신부를 주실 것이다. 이 신부는 예표에서 아담과 함께 공동왕으로서 다스려야 했던 하와처럼 공동왕으로서 그리스도와 함께 다스릴 것이다. 예표와 똑같이 그리스도의 신부가 그리스도의 일부분일 것이기 때문에 그리스도를 완전케 할 것이다(2:10). 신부가 아담 안에서 건축된 것처럼 그리스도의 신부 역시 영원부터 그리스도 안에서 존재했다. 첫 사람의 옆구리가 열리고, 떼어낸 요소들을 하나님은 아담의 신부를 건축하시는 데 사용하셨고, 둘째 사람의 옆구리를 여시고, 떼어낸 요소들을 하나님은 그리스도의 신부를 건축하시는 데 사용하고 계신다. 그러므로 그리스도 안에 있는 한새사람은 예표에서 신부가 몸에서 나오기 때문에 마찬가지로 실제에서 그리스도의 몸을 건축해야 한다(5:30; 1:18). 창세기에서 기본적으로 시작한 모든 것은 교회시대에서 신부를 찾는 그영 안에서 이뤄져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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