염소 털 덮개
성막의 겉 덮개는 오소리 가죽으로 만들어졌다. 두 번째 덮개는 붉게 물들인 숫양 가죽으로 만들었다. 세 번째 덮개는 염소 털로 만든 커튼이었다.
“너는 염소 털로 앙장들을 만들어 성막을 덮는 덮개가 되게 하고 열한 개의 앙장을 만들지니라.”(출 26:7)
먼저 바깥쪽에 있는 사람들이 교회생활을 볼 때 그들은 교회생활이 추하고, 거칠다고 볼 수 있다. 왜냐면 그들이 오소리 가죽만을 보기 때문이다. 그들이 좀 더 깊게 들여다 볼 때 그들은 어떻게 우리의 생활이 평화로운지 놀란다. 하지만 그것은 붉게 물들인 숫양 가죽 때문이다. 우리가 은혜로 구원받은 죄인들이요, 그리스도의 구속하는 피 아래에 살고 있기 때문에 우리는 서로에게 은혜를 주어야 한다. 그런데 그들이 염소 털 덮개를 볼 때 그들은 놀라게 될 것이다. 본질적으로 생명의 파괴자들인 우리는 하나님의 성막의 덮개가 되도록 변화되고 있다.
염소들-생명 파괴자들
염소는 극단적으로 거칠고, 불결한 동물이다. 염소는 초식동물이지만 닥치는 대로 거의 모든 식물을 먹는다. 염소는 살아 있는 식물 뿌리까지 무엇이든지 먹어치워 땅을 척박하게 사라지게 하고, 손상시킨다. 염소는 하나님께 완전히 불쾌하게 하는 어떤 것을 대표한다. 인자(예수님)이 그분의 영광으로 오실 때 그분은 염소들에게서 그분의 양들을 분리하실 것이고, 염소들은 상상할 수 없이 무서운 곳으로 영원히 쫓겨날 것이다(마 25:31–46). 염소들은 생명의 것들을 멸하는 죄와 타락한 사람을 예표 한다.
염소들의 생활
우리는 자주 죄인이 개인적인 문제라고 생각하지만 너무 자주 훨씬 그 이상이다. 본질적으로 염소는 생명을 멸하고, 생명 주변의 모든 것을 손상시킨다. 염소는 먹는데 분별력이 없고, 그 결과에 관해 별 생각이 없다. 한 마리 염소는 정결하다거나 불결하다고 불리지 않았다. 마찬가지로 염소들과 같이 사는 믿는 이들은 경건하다거나 경건하지 않다는 느낌이 없다. 염소들과 같이 사는 믿는 이들은 손상을 입히는 것, 건축하는 것을 알지 못한다. 그들이 그들 주변에 있는 이들에게 행하는 해에 관해 느끼지 못한다.
관심은 가득하게 먹는 것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들이 먹는 것에 대해 거의 안목이 없다. 우리는 접대만을 생각하고 대개 우리가 먹는 것을 내놓는다. 가십거리로 나오는 것은 우리 주변에 있는 이들을 혼란케 하고, 심지어 피해를 준다. 하나님은 어떤 사람 안으로 그리스도의 고운 요소를 사역하실 수 있지만 우리 염소와 같은 느슨함 때문에 사역은 허물어졌다(롬 14:20). 염소가 되는 것은 우리가 초래하고 있는 손해에 대한 인식이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 우리는 염소가 하는 것을 하고 있다. 아마 우리는 텔레비전에서 노래 경쟁하는 것을 본 적이 있을 것이다. 다음 날 우리는 젊은이들에게 한명의 가수에 대해 교회 안에 한 성도를 빗대어 비판의 말을 할지도 모른다. 그러면 젊은이들은 그 때부터 비판을 받는데 빗댐의 대상이 된 성도를 더 이상 존경하지 않을 것이다. 염소의 일과 같은 이런 말은 생명을 파괴하고, 손상의 원인이 된다. 하지만 우리는 그러한 것을 알아채지 못할 수 있다.
어떤 사람이 새 찬송을 작곡하고 찬송시를 붙이는데 재능이 있을 수 있다.
하지만 우리는 못마땅하다는 듯 말한다.
“왜 우리가 그의 노래를 불러야 하는가? 우리는 그에게 아무것도 빚지지 않았어!”
그때부터 우리 주변의 사람들은 그의 새 노래들을 인정하지 않을 것이고, 그들 안에서 그리스도에 대한 그들의 누림은 파괴될 것이다.
아무도 완전한 사람은 없다. 어떤 것에 대해 말하는 것은 어떤 문제가 항상 있을 것이다. 우리는 어떤 것에 대해 말하는 것을 주의해야 한다. 우리는 사랑 안에서 서로를 덮는 것을 배워야 한다. 우리는 서로를 건축해 주는 말을 해야 한다.
바울은 고린도교회에게 편지를 썼다.
“모든 것이 나를 위해 적법하나 모든 것이 적절하지는 아니하며 모든 것이 나를 위해 적법하나 모든 것이 세워 주지는 아니하나니 아무도 자기 것을 구하지 말고 각각 다른 사람이 잘되기를 구하라.”(고전 10:23-24).
한번 염소가 먹어치우는 한 그 땅은 척박해지고, 비바람에 노출된다. 그리고 흙이 쓸려 내려가고, 더 많은 해를 끼치게 된다. 나는 어떤 그리스도인들이 생각 없이 염소를 산에 방목해서 키우는 것을 본적이 있다.
그러면서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자랑삼아 말했다.
“여기서부터 저기까지 내 땅이라서 염소를 방목해 키우는데 잘 하는 것 같다. 그렇게 사료비도 들지 않고, 수익이 많이 난다.”
사실 그곳은 한적한 시골마을이었다. 그리고 청정지역이었기에 그곳에서 가축을 기르는 것은 금지된 지역이었다. 하지만 그는 그곳에서 가축을 길렀다. 몇 년 후 다시 그곳에 갔을 땐 그 산 전체가 헐벗었던 것을 보았다. 그리고 그는 그곳을 떠나 있었다. 그렇게 해서 염소를 키우는 것은 땅에 유용하지 못할 뿐만 아니라 모래와 흙이 수 킬로미터까지 날아가 많은 문제를 일으키는 원인이 된다.
염소는 각지교회를 손상시키지만 그 영향은 더 광범위할 수 있다. 한 교회에서 쉽게 어떤 사람에 관해 말한 것은 다른 교회들로 퍼진다. 오늘날의 전자 통신 시대에 대양까지도 장벽은 아니다. 일들은 즉시 세상의 다른 곳에 알려졌을 수 있다. 가십에 휩싸인 사람이 다른 곳에 가서 교제를 하려고 한다면 그 교제는 도착하기도 전에 끝날 수 있다.
이 사람은 타락했다. 이 사람은 하나님의 구원과 멀어진 우리다. 우리가 우리 자신을 아름다운 염소라고 느낄지라도 우리는 여전히 염소이고, 하나님은 염소 같은 자들을 좋아하시지 않으신다. 염소는 죄만 저지르지 않는다. 염소는 자신의 타락한 염소 본성에 사로잡히고, 무자비하고, 충동적이고, 이기적이다. 염소 털은 이와 같이 생명을 파괴하는 본성으로 살아가는 것을 상징한다. 한 두 염소 본성만 있어도 모든 교회는 평강을 잃을 수 있고, 건강하지 않을 수도 있다.
우리 염소 본성에서의 하나님의 구원
좋은 일은 하나님께서 우리를 구원하셨다는 것이다. 우리는 아름다운 염소일수도, 추한 염소일수도 있지만 우리의 운명은 절대 영원한 형벌을 받을 수 없다는 것이다. 그리스도 자신의 의로움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은 그분께서 십자에서 우리를 위해 죽으셨을 때 우리 모든 형벌이 그리스도께 넘어갔기 때문에 우리를 받아 주셔야 한다. 그리스도께서 죄인들인 우리를 위해 구속을 이루셨을 뿐만 아니라 우리의 유익을 위해 하나님께 심판받을 죄가 되셨다.(고후 5:21).
타락한 이들로서 우리의 삶은 많은 이들에게 험악하게 하고, 거칠고, 모욕적이고, 손해를 끼칠 수 있다. 염소의 털로서 우리의 삶은 더럽고, 냄새나고, 먼지투성이고, 빛나지 않고, 가시로 엉켜있다. 하지만 주님을 찬양하라. 하나님은 우리의 삶을 분리할 수 있고, 깨끗케 할 수 있고, 결국 그분의 증거를 위해 덮개 안으로 우리의 삶을 엮어 낼 수 있다. 이것은 우리에게 행하시는 주님의 변화사역의 그림이다.
정말 놀라운 것은 하나님께서 염소와 똑같고, 하나님과 멀리 떨어져 있는 우리 같은 이들을 주님의 쓰심을 위해 염소 털 커튼 안으로 이끌어 엮으신다는 것이다. 사도 베드로, 바울, 그리고 요한 역시도 이와 같았다. 베드로는 너무 빨리 말을 해버린다. 바울은 자신의 종교적인 열정으로 교회를 핍박했다. 그리고 요한의 성격은 “우뢰의 아들”이라는 별명을 갖게 했다. 하지만 하나님은 그분의 건축을 위해 쓰시려고 염소 털로 짠 커튼 안으로 이끌어 그들을 변화시키셨다. 그분께서 그들과 함께 하실 수 있으셨다면 우리 각자에게도 소망이 있다.
아무것도 이것보다 더 아름답지 못하다. 우리는 우리가 어떤 죄를 지었는지, 우리가 어떤 안티 하나님인지, 어떻게 우리가 성도들과 교회에게 해를 끼치는지에 놀라야 한다. 우리는 자신도 모르게 손상을 준다. 하지만 그리스도는 우리를 구원하셨고, 우리를 변화시키신다.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염소 본성을 가지고 있는 우리를 영원 안으로 들어가는 것을 허락하시지 않는 것을 확신하라.
우리는 하나님을 예배해야 하고, 기쁨으로 그분을 말해야 한다.
“오 하나님, 저는 소망이 없었습니다. 하지만 이제는 소망이 있습니다. 저는 가망 없었습니다. 하지만 이제 살아 있습니다. 예전엔 천연적이고, 무례한 자였습니다. 하지만 이제 전 온순하고, 당신을 사랑하고, 당신을 섬기는 이들과 함께 섞일 수 있습니다. 당신의 구원하는 사역, 변화시키시는 사역 때문에 예전에 염소와 똑같았던 우리 모두는 당신의 교회의 증거를 보호하는 커튼이 되고 있습니다.
염소 털을 처리함
염소 털은 우리의 삶을 대표한다. 비록 우리가 사랑스런 염소나 거친 염소일지라도 우리는 여전히 염소들이요, 우리가 건축하기 원하는 바로 그것에 자신도 모르게 손상을 주는 염소들이다. 우리는 그리스도께서 갈망하시는 영광스런 증거로서 세워진 그분의 교회를 보기 원하고, 우리 주님을 사랑한다. 하지만 우리는 염소들이다. 좋은 것은 우리에게서 나올 수 없다. 우리는 항상 더러움, 냄새나는 것, 먼지, 엉겨 붙은 염소 털로 덮여 있다. 그와 같은 우리는 우리의 삶이 더러움, 냄새나는 것, 먼지, 엉겨 붙은 염소 털로 덮여 있음을 의미한다. 모든 것이 부족하다.
하지만 왜인지 모르게, 하나님은 우리가 우리의 모든 실패와 더러움, 냄새나는 것, 먼지, 엉겨 붙은 염소 털로 덮여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분께서 유용한 재료로 바꾸실 때까지 받아주실 수 있으시다. 그런 후 이 재료들로부터 그분은 그분의 성막을 덮을 염소 털 커튼을 만드신다. 이것은 놀라운 것이다. 우리는 실패하려고 하지 말아야 하지만 하나님은 우리의 실패조차도 사용하실 수 있으시다. 우리에게서 나오는 모든 것은 하나님께서 사역하실 재료들이다.
캐시미어는 염소 털로 만들어진다. 캐시미어는 스웨터, 담요, 또 다른 따뜻한 것을 만드는 아주 가치 있는 재료다. 캐시미어 옷을 입은 이들은 얼마나 편안한지를 안다. 하지만 이 따뜻하고 부드러운 재료는 주변의 모든 것을 뿌리째 뽑아내고 파괴시킨 더러운 동물에게서 나왔다. 캐시미어는 털을 처리해 다른 것을 만든 것이다. 하나님은 우리의 삶의 열매를 처리하는데 놀랍게 능숙하시다. 염소 같아도 상관없다. 우리 모두는 이것으로 격려 받아야 한다.
시편기자는 놀랍게 노래를 했다.
“오 [주]여, 주께서 곧 {주}께서 불법들을 지켜보실진대 누가 능히 서리이까?”(시130:3)
이것은 사실이다. 하나님께서 세기 시작하셨다면 아무도 멈출 수 없다.
시편기자는 계속 노래했다.
“그러나 용서가 주께 있사오니 이것은 주를 두려워하게 하려 하심이니이다.”(시130:4)
긍휼이신 하나님은 붉게 물들인 숫양 가죽 덮개 바로 아래에 염소 털 덮개를 놓으셨다.
염소의 본성, 염소의 행위와 같은 우리는 그리스도의 피로 덮여 있다. 이것은 그분의 긍휼 안에 있는 그분의 용서하심이다.
시편기자는 우리가 그분의 용서의 결과로 주님을 두려워해야 한다고 말한다. 이것은 고의적인 죄를 짓는 것에 대해 그분의 용서를 기회로 취하려고 하지 말아야 한다는 의미이다.
사도바울을 우리에게 분명히 말을 한다.
“그런즉 우리가 무슨 말을 하리요? 은혜가 넘치게 하려고 우리가 죄 가운데 거하겠느냐? 결코 그럴 수 없느니라. 죄에 대하여 죽은 우리가 어찌 그 가운데서 더 살리요?”(롬 6:1-2)
우리는 일부러 불필요하게 염소같이 되려고 하는 우리 자신을 받아들이지 말아야 한다. 우리는 잘못을 저지를 권리가 없다. 하지만 우리는 우리의 인격이 문제가 있음을 알아야 한다. 문제가 있는 인격 때문에 우리에게서 나오는 것 무엇이든 염소같이 될 수 있다. 우리는 우리 주변에 있는 이들에게 해를 끼치는 것에서 우리 자신을 이끌어야 한다. 하지만 우리는 염소들이고, 해는 줄 것이다. 하나님께서 그것조차도 받아 주실 수 있고, 그분의 성막을 위해 염소와 같은 우리를 사용하실 수 있다니 얼마나 놀라운 것인가! 하나님은 유익함이 있고, 수익성 있는 것이 되도록 수익성 없고, 볼품없는 것을 사용하신다. 하나님은 우리를 얻으시고, 우리 위에서 사역하시고, 우리를 쓰시고, 그분의 교회를 덮고, 우리를 더 보호 안으로 들어오게 하여 자라도록 하는 것과 엮으신다.
우리는 주님께 적극적으로 말해야 한다.
“저는 염소 털 덮개가 되는 저의 삶의 열매를 원합니다. 제 안에 있는 교회를 축복하면, 제가 섬기는 기회들을 축복하며, 저와 함께 있는 하나님의 자녀들을 축복합니다.”
주님은 이와 같은 갈망으로 사람들을 찾으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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