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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V. 기도는 무슨 조건들이 갖춰져야 하는가?

Hernhut 2012. 7. 31. 15:15

IV. 기도는 무슨 조건들이 갖춰져야 하는가?

 

하나님께서 기도를 응답하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하지만 어떤 기도는 응답이 없습니다. 어떻게 이렇게 될 수 있을 까요? 그것에 대한 가능성 있는 유일한 설명은 기도 조건입니다. 마치 우리가 하나님께서 우리의 죄를 용서해 주시도록 하기 위해서는 기도조건이 충족해야 하듯 응답에도 기도조건이 충족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응답하시는 기도에는 무슨 조건들이 필요한가요?

 

 

A. 우리는 예수의 이름으로 기도해야 한다.

왜 그리스도인들은 예수의 이름으로 기도하는 걸까요? 그것은 예수께서 중보자가 되시기 때문이요, 그분의 이름을 통해야만 하기 때문이요, 그분의 이름이 중보이기에 예수님의 이름이 아니면 그 기도를 하나님께서 받아들이실 수 없기 때문입니다.

 

“너희가 내 이름으로 무엇을 구하든지 내가 그것을 행하리니 이것은 [아버지]께서 [아들] 안에서 영광을 받게 하려 함이라. 너희가 내 이름으로 무엇이든지 구하면 내가 그것을 행하리라.”(요 14:13~14)

물론 우리가 기도를 끝맺을 때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였습니다.”라는 말을 하지 않아도 됩니다. 그렇게 기도하라는 것이 아니라 모든 기도마다 그분의 이름이 필요하다는 말입니다. 우리가 예수의 이름 안에서 어떤 것이든 구하면 그분은 그것을 행하실 것입니다. 여기서 주님의 이름으로 구하는 것이 제한이 없습니다. 우리가 구하는 것이 제한은 없지만 우리의 필요가 무엇인지를 하나님께서 아시기에 하나님의 뜻 안에서 움직이실 것입니다.

참고 성경구절: [요 15:16, 16:23~24, 26, 엡 5:20]

 

“먼저 너희 모두로 인하여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나의 [하나님]께 감사하노니 이는 너희의 믿음이 온 세상에 두루 전하여졌기 때문이라.”(롬 1:8)

바울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하나님께 감사를 드렸습니다. 기도든 말이든 감사든 격려든 권면이든 모든 것이 그리스도를 이름으로 하지 않는다면 그것은 좋은 결과가 없을 것입니다.

“또 무엇을 하든지 말에나 행위에나 다 [주] 예수님의 이름으로 하며 그분을 힘입어 [하나님] 곧 [아버지]께 감사를 드리라.”(골 3:17)

우리는 자주 예수의 이름으로 말하거나 행동하지 않기 때문에 자신에게 커다란 상처를 주고, 때론 다른 사람들뿐만 아니라 심지어 하나님께 교만함을 표출하게 됩니다.

 

한 [하나님]이 계시고 [하나님]과 사람들 사이에 한 중재자가 계시니 곧 사람이신 그리스도 예수님이시라.”(딤전 2:5)

예수는 하나님과 사람 사이에 있는 유일한 중보자십니다. 좁은 맥락에서 구원을 말하지만 넓은 맥락은 기도를 말합니다.

“그러므로 내가 권면하노니 무엇보다 먼저 모든 사람을 위하여 간구와 기도와 중보와 감사를 드리되 왕들과 권위를 가진 모든 사람을 위하여 하라. 이것은 우리가 전적으로 하나님을 따르며 정직한 가운데 조용하고 평화로운 삶을 살고자 함이라.”(딤전 2:1~2)

“그러므로 나는 모든 곳에서 남자들이 진노하거나 의심하지 않고 거룩한 손을 들어 기도하기를 원하노라.”(딤전 2:8)

예수님은 구원 가운데 우리의 중보자시기 때문에 기도 가운데서도 중보자이십니다. 그분은 우리의 대제사장이십니다.

“그런즉 우리에게 위대하신 대제사장 곧 하늘들 안으로 들어가신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이 계신 줄 알므로 우리가 우리의 신앙 고백을 굳게 붙들자. 우리에게 계신 대제사장은 우리의 연약함의 감정을 몸소 느끼지 못하시는 분이 아니요 모든 점에서 우리와 똑같이 시험을 받으시되 죄는 없으신 분이시니라. 그러므로 우리가 긍휼을 얻고 필요한 때에 도우시는 은혜를 얻기 위해 은혜의 왕좌로 담대히 나아갈 것이니라.”(히 4:14~16)

 

예수의 이름으로 기도한다는 것은 무슨 뜻인가?

“열려라, 참깨”라고 하는 마력처럼 효과적으로 하기위해 기도 끝에 “예수의 이름으로...”라는 말을 하는 것이 무의미한 말입니까?

 

사람의 이름이 사람과 자신의 모든 것을 나타냅니다. 하나님 자신이 스스로 거룩하시기 때문에 하나님의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십니다. 좀 더 구체적으로 사람의 이름은 그의 뜻과 권위를 대표합니다. 여러분의 이름은 여러분에게 승인받을 수 있는 서명이나 법률적인 다른 서류에 권한을 부여하는 표십니다. 법의 권한을 의미하는 “법의 이름으로 멈추라.”는 것은 여러분이 그만두는 것을 요구합니다.

“그러므로 너희는 이런 식으로 기도하라.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 아버지의 이름이 거룩히 여겨지게 하옵시며”(마 6:9).

 

더욱이 예수님은 기도 안에서 우리가 하나님께 접근하는 것을 가능하게 하는 중보자십니다. 우리는 “그분의 이름으로”기도합니다. 그래야 우리의 기도를 그분의 권능으로 들으실 수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죄 때문에 우리는 결코 하나님께 접근할 수 없습니다. 우리는 그분과의 교제할 수 있도록 하나님과 우리를 화해시키도록 하는 “중보자”가 필요합니다. 예수께서 우리의 희생물이 되심으로 죽으셨기 때문에 그분은 기도 가운데서 하나님께 우리를 접근시킬 수 있는 유일한 분이십니다.

 

그런데 어떤 사람들은 왜 마리아나 죽은 “성인”들을 통해서 기도할까요? 그들은 그들의 죽음으로 우리를 구속하지 못했습니다. 그리하여 그들은 우리의 기도의 중보자가 될 수 없습니다. 아무도 예수께 더해지거나 대신하여 중보자일 수 있는 자가 없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과 사람사이에 계신 “유일한 중보자”이십니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는 것은 우리와 하나님사이에서 유일한 중보자로서 우리가 그분의 권능을 호소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우리의 기도를 들으실 수 있도록 그분의 능력을 얻는 것입니다. 우리가 “중언부언”으로 기도하는 것을 피하려면 이것을 이해해야합니다.

 

 

B. 우리는 하나님의 뜻을 따라 기도해야 한다.

이것은 “예수의 이름 안”에 있는 기도 개념을 따르는 것입니다.

“그분 안에서 우리가 가진 확신이 이것이니 곧 우리가 그분의 뜻대로 무엇이든 구하면 그분께서 우리 말을 들으신다는 것이라. 우리가 무엇을 구하든지 그분께서 우리 말을 들으시는 줄 우리가 안즉 또한 우리가 그분께 구하여 청원한 것들을 얻는 줄 우리가 아느니라.”(요일 5:14~15)

하나님은 우리가 그분의 뜻을 따라서 구하면 우리의 구하는 것을 들으십니다. 많은 사람들이 기도를 하지만 하나님께서 듣지 못하는 기도를 하고 있습니다. 우리의 기도는 하나님께서 들으시는 기도이어야 합니다.

 

“조금 멀리 나아가사 얼굴을 대고 엎드려 기도하여 이르시되, 오 내 [아버지]여, 가능하시거든 이 잔을 내게서 지나가게 하시옵소서. 그러나 내 뜻대로 하지 마옵시고 아버지의 뜻대로 하옵소서, 하시고는”(마 26:39)

예수님은 아버지의 뜻이 이루어지도록 기도하셨습니다. 여기서 아버지의 뜻이 기도의 결과로 나타나는 데 그것이 긍정적이거나 부정적일 수도 있습니다.

참고 성경구절: [마 6:10]

 

하지만 하나님의 뜻은 두 부류 중 하나로 빠질 수 있습니다.

 

구원에 필요한 요소적인 것들 안에 있는 하나님의 뜻은 성경에서 계시되어 있습니다.

“모든 성경 기록은 [하나님]의 영감으로 주신 것으로 교리와 책망과 바로잡음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 이것은 [하나님]의 사람이 완전하게 되어 모든 선한 일에 철저히 갖추어지게 하려 함이라.”(딤후 3:16~17)

“만일 어떤 사람이 자기를 대언자나 영적인 자로 생각하거든 그는 내가 너희에게 쓰는 것들이 [주]의 명령인 줄 인정할지니라.”(고전 14:37)

우리는 하나님의 계시된 뜻과 조화를 이루지 않는 이와 같은 일들에 관한 것들을 결코 기도하지 말아야 합니다. 예를 들어 하나님께서 우리가 이기적인 정욕들을 만족시키는 것을 위해 기도하지 말아야 한다고 말씀하십니다.

“너희가 구하여도 받지 못함은 그것을 너희의 정욕에 쓰려고 잘못 구하기 때문이라.”(약 4:3)

이와 같은 것은 그분의 뜻을 따라서 기도하지 않는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하나님의 뜻은 죄인들이 용서받는 것과 침례 받는 것을 포함한 조건들을 갖춰야 합니다(행 2:38, 22:16, 막 16:16). 우리가 이런 조건들로 그들을 충족시키는 것 없이 하나님께서 이 같은 사람들을 구원하시도록 결코 기도하지 말아야 합니다.

 

복음이 선포된 이래로 침례를 받지 않은 사람, 죄인들을 용서하기 위해 기도하는 것을 말하는 구절은 없습니다. 하지만 많은 그리스도인들은 흔히 구원받도록 이와 같은 사람들에게 “죄인들의 기도”를 하라거나 “이해시키는 기도”를 말합니다. 이런 기도는 하나님의 뜻을 따라서 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응답받지 못할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은 구원에 대해 필수적인 것이요, 성경 안에 분명하게 계시되어 있습니다.

 

우리가 날마다의 생활가운데 있는 많은 일들이 하나님의 표현하신 뜻을 알지 못하는 것처럼 옳고 그름의 문제가 아닙니다. 우리가 하나님께서 고통과 죽음을 허락하신다는 것을 압니다. 질병의 특정한 경우 우리는 하나님께서 더 좋아지게 하시거나 나빠지게 하시거나 사람을 위해 하신다는 것을 알지 못합니다.

“계시들이 넘침으로 말미암아 내가 분량 이상으로 높여지지 않게 하시려고 주께서 내게 육체 안에 가시 곧 사탄의 사자를 주사 나를 치게 하셨으니 이것은 내가 분량 이상으로 높여지지 않게 하려 하심이라. 내가 이 일로 인하여 그것이 내게서 떠나가도록 [주]께 세 번 간청하였더니 그분께서 내게 이르시되, 내 은혜가 네게 족하도다. 나의 강한 능력은 약한 데서 완전해지느니라, 하셨느니라. 그러므로 내가 오히려 크게 기뻐하며 나의 연약한 것들을 자랑하리니 이것은 그리스도의 권능이 내 위에 머무르게 하려 함이라. 그러므로 내가 그리스도로 인하여 연약한 것들과 치욕과 궁핍과 핍박과 고난 당하는 것을 기뻐하노니 내가 약할 그때에 내가 강하니라.”(고후 12:7~10)

이 경우 우리는 가장 좋은 것이라고 믿는 것을 위해 기도할지 모르지만 그분께서 가장 좋은 것을 알게 하시도록 하나님께 구해야 합니다. 그리고 믿음으로 우리는 그 결과를 받아들여야 합니다.

 

 

C. 우리는 이해와 의미로 기도해야 한다.

“그러면 어찌하리요? 내가 영과 함께 기도하고 또 이해하면서 기도하며 내가 영과 함께 노래하고 또 이해하면서 노래하리라. 그렇지 않으면 네가 영으로 축복할 때에 배우지 못한 처지에 있는 자가 네가 무슨 말을 하는지 이해하지 못하므로 어찌 네가 드리는 감사에, 아멘, 하리요?”(고전 14:15~16)

영으로 기도하고, 이해로 기도하십시오. 여러분이 말한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를 분명하도록 단어를 생각하십시오. 여러분이 공적인 기도를 인도할 때 그들이 “아멘”이라는 말을 할 수 있게 사람들이 이해하도록 도우십시오.

“그러나 교회에서는 내가 알지 못하는 언어로 만 마디 말을 하느니 차라리 이해하면서 다섯 마디 말을 하여 내 목소리로 다른 사람들도 가르치리라.”(고전 14:19)

“형제들아, 그런즉 어찌하리요? 너희가 다 같이 모일 때에 너희 각 사람에게 찬송시도 있고 교리도 있으며 타언어도 있고 계시도 있으며 통역도 있나니 모든 것을 남을 세우기 위하여 할지니라.”(고전 14:26)

“모든 것을 품위 있고 질서 있게 행할지니라.”(고전 14:40)

사람들이 이해할 수 있는 단어를 사용하십시오. 큰 목소리와 명료한 목소리로 말하십시오.

 

“오직 너희는 기도할 때에 이교도들과 같이 헛된 말을 되풀이하지 말라. 그들은 자기들이 말을 많이 하여야 아버지께서 들으실 줄로 생각하느니라.”(마 6:7)

헛되고 무의미하고 반복적인 말을 하지 마십시오. 마치 우리가 그 단어들을 이해하고, 빈번하게 그 단어를 반복한다면 우리는 단어들을 이해하지 못하고 그 단어들을 입으로 말할 생각이 들게 할지 모릅니다. 이것은 반복적으로 구하는 것이 잘못이라는 것을 입증하지 못하는 것(마 26:36~46, 고후 12:7~10, 눅 18:1~7)이지만 우리가 매시간 기도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D. 우리는 부지런함과 절실함으로 기도해야 한다.

“한나가 혼이 괴로운 가운데 {주}께 기도하고 심히 통곡하며”(삼상 1:10)

“한나가 대답하여 이르되, 내 주여, 그렇지 아니하니이다. 나는 영이 슬픈 여자이니이다. 내가 포도주나 독주를 마시지 아니하고 다만 {주} 앞에 내 혼을 쏟아 놓았을 뿐이오니”(삼상 1:15)

한나는 기도 안에서 자신의 혼을 쏟았습니다.

“그때에는 너희가 나를 부르고 가서 내게 기도하리니 내가 너희 말에 귀를 기울이리라. 또 너희가 마음을 다하여 나를 찾으면 나를 찾고 나를 만나리라.”(렘 29:12~13)

하나님의 백성들이 “전심을 다해서” 기도할 때 하나님께서 자신의 백성들을 들으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그분께서 고뇌에 차서 더욱 간절히 기도하시니 그분의 땀이 큰 핏방울같이 되어 땅에 떨어지더라.”(눅 22:44)

겟세마네에서 예수님은 간절하게 기도하셨습니다.

 

“또 너는 기도할 때에 위선자들과 같이 되지 말라. 그들은 사람들에게 보이려고 회당과 거리 모퉁이에 서서 기도하기를 좋아하느니라. 진실로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그들은 자기 보상을 받았느니라.”(마 6:5)

사람들에게 보여주려고 하는 위선자적인 동기로 기도하지 마십시오. 사람들을 기뻐하게 하고 감동을 주려고 하고 즐겁게 해주려고 하는 것은 기도하는 것이 합당한 동기가 아닙니다. 우리는 하나님께 기뻐하시고 그분께 영광을 돌리는 기도를 해야만 합니다.

“그들이 과부들의 집을 삼키고 겉치레로 길게 기도하니 더 큰 정죄를 받으리라, 하시니라.”(막 12:40)

기도는 요식행위나 밖으로 보이기 위한 의례적인 행위가 되지 말아야 합니다. 우리가 행하는 것이 무슨 의미인지를 모르는 기도가 되지 말아야 합니다. 우리의 마음은 하나님께 호소하고 감사를 드리고, 열정적인 기도가 포함되어야 합니다.

참고 성경구절: [고전 14:15, 시 17:1, 145:18, 약 5:16~17]

 

E. 우리는 믿음 안에서 기도해야 한다.

너희 중에 어떤 사람이 지혜가 부족하거든 모든 사람에게 너그러이 주시고 꾸짖지 아니하시는 [하나님]께 구하라. 그리하면 그것을 그에게 주시리라. 그러나 그는 믿음으로 구하고 조금도 흔들리지 말지니라. 흔들리는 자는 마치 바람에 밀려 요동하는 바다 물결 같나니 그 사람은 자기가 무엇을 [주]께 받을 줄로 생각하지 말라. 두 마음을 품은 사람은 자기의 모든 길에서 안정이 없느니라.”(약 1:5~8)

의심 없이 믿음 안에서 구하십시오. 의심하는 사람은 하나님으로부터 아무것도 받지 못할 것입니다. 먼저 우리는 하나님이 계시다는 것을 믿어야 하고 그분께서 기도를 응답하시는 능력이 있으시다는 것을 믿어야 합니다. 불가지론자(不可知論者)들과 회의론자(懷疑論者)들의 기도는 호흡을 낭비하고 있는 것입니다. 믿음은 기도의 생명줄과 같습니다. 믿음은 공기에 속해있는 산소와도 같습니다. 우리가 호흡을 할 때에 여러 요소들의 공기를 마시지만 우리를 살리는 요소는 산소입니다. 믿음은 기도의 산소입니다.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기도할 때에 무엇을 원하든지 너희가 그것들을 받는 줄로 믿으라. 그리하면 너희가 그것들을 받으리라.”(막 11:24)

우리가 요구하는 것을 받는다는 것은 우리가 하나님께서 응답하실 것을 믿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오늘날 기적이라는 것이 일어나지 않는다고 생각되겠지만 기적이 일어나는 것은 여전히 지금도 적용됩니다.

“사랑은 결코 없어지지 아니하되 대언은 있다 해도 없어질 것이요, 타언어들도 있다 해도 그칠 것이며 지식도 있다 해도 사라지리라. 우리가 부분적으로 알고 부분적으로 대언하나 완전한 것이 오면 그때에는 부분적인 것이 없어지리라.”(고전 13:8~10)

하나님은 오늘날 자연법칙을 통한 기도응답으로 이루어지지만 우리가 확신할 수 있는 것은 그분께서 다른 것으로 응답하신다는 것을 믿어야 합니다.

 

전에 말한 것처럼 회개하는 하나님의 자녀를 용서하시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그분께서 기꺼이 주시고 계시는 것이 있으십니다. 분명하게 드러내시는 어떤 것들이 있다는 것을 기억하십시오. 믿음은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것을 주실 것이라고 믿는다는 것을 우리에게 요구합니다. 하나님은 그분께서 주실 것을 계시하시지 않아도 됩니다. 그래서 우리는 “그분께서 이루실 것”이라고 기도해야 합니다. 그런 후 우리는 그분께서 가장 좋은 것을 행하실 것을 믿어야 합니다.

 

믿음 안에서 기도하는 것은 하나님께서 가장 좋은 것을 보내심을 받아들이는 것을 우리에게 요구합니다. 흔하게 우리는 우리가 구한 것들과 똑같이 받지 못할 때 하나님께서 약속을 깼다고 생각하거나 불평합니다. 믿음은 하나님께서 가장 좋은 시간에 가장 좋은 것을 주실 것을 믿는 우리를 요구합니다. 그런 후 결과가 가장 좋은 것이라고 믿는 것입니다.

 

 

F. 우리는 하나님에 대해 경배와 겸손으로 기도해야 한다.

“내 이름으로 불리는 내 백성이 자기를 낮추고 기도하여 내 얼굴을 구하고 자기들의 악한 길에서 떠나면 내가 하늘에서부터 듣고 그들의 죄를 용서하며 그들의 땅을 고치리라.”(대하 7:14)

하나님은 우리가 “스스로 겸손”하고 기도를 한다면 우리의 기도를 들으실 것입니다. 우리가 기도를 할 때 간과하는 것이 있는데 그것은 많은 요구를 한다는 것입니다. 많은 요구가 일종의 교만이라는 것을 잃어버려서는 안 됩니다. 많은 요구가 우리 자신을 포장하고 꾸미는 것과 같다는 것을 명심하십시오. 우리가 하나님께 기도할 때 단순하게 할 때 하나님께서 들으실 것입니다.

 

“또 그분께서 자기가 의롭다고 스스로 믿고 다른 사람들을 멸시하는 어떤 자들에게 이 비유를 말씀하시되, 두 사람이 기도하러 성전에 올라가니 하나는 바리새인이요 다른 하나는 세리더라. 바리새인은 서서 자기 홀로 이렇게 기도하여 이르되, [하나님]이여, 내가 다른 사람들 곧 착취하고 불의하고 간음하는 자들과 같지 아니하고 더욱이 이 세리와도 같지 아니함을 감사하나이다. 나는 일주일에 두 번 금식하고 내 모든 소유의 십일조를 드리나이다, 하고 세리는 멀리 서서 감히 눈을 들어 하늘을 우러러보지도 못하고 다만 가슴을 치며 이르되, [하나님]이여, 죄인인 내게 긍휼을 베푸소서, 하니라.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저 사람이 아니라 오히려 이 사람이 의롭게 되어 자기 집으로 내려갔느니라. 자기를 높이는 자는 다 낮아지고 자기를 낮추는 자는 높아지리라, 하시니라.”(눅 18:9~14)

바리새인은 기도하는 가운데 하나님의 높이기보다는 자신을 높이고 자신을 내세워 의로운 자라 여겼습니다. 이와 같은 사람은 정당화되지 못하고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강등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너희는 이런 식으로 기도하라.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 아버지의 이름이 거룩히 여겨지게 하옵시며”(마 6:9)

“그의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소서”라고 기도하십시오. 기도는 하나님께 대한 경의와 경건함을 표현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다른 사람처럼 무심코 접근하지 말아야 합니다. 고개를 끄덕거리고 부르는 종들처럼 하나님께 나아가지 말아야 합니다. 우리의 태도와 말은 우리의 약한 것들, 죄들, 그리고 사람들의 한계들을 인정함으로 그분의 위대하심을 높여야 합니다.

“{주}께서 므낫세와 그의 백성에게 말씀하셨으나 그들이 귀를 기울이려 하지 아니하니라. 그러므로 {주}께서 아시리아 왕의 군대 대장들을 그들에게 보내시매 이들이 므낫세를 붙잡아 가시 가운데 넣고 족쇄로 결박하여 바빌론으로 끌고 가니 그가 고통 중에 있을 때에 {주} 자기 [하나님]께 간청하고 자기 조상들의 [하나님] 앞에서 크게 자기를 낮추어 그분께 기도하였으므로 [하나님]께서 그의 간청하는 말을 받으시며 그의 간구를 들으사 그를 다시 예루살렘으로 그의 왕국으로 데려오시매 그때에 므낫세가 {주} 그분께서 [하나님]이신 줄을 알았더라.”(대하 33:10~13)

“아브라함이 응답하여 이르되, 이제 보소서, 티끌과 재 같은 내가 감히 [주]께 아뢰나이다.”(창 18:27)

이 항목은 하나님께서 아주 세밀하고 민감하게 관심을 가지시는 부분입니다. 우리는 스스로 겸손하고 그분의 이름을 높여드리는 것은 대단히 중요한 것입니다.

 

G. 우리는 죄를 회개함으로 기도해야 한다.

내 이름으로 불리는 내 백성이 자기를 낮추고 기도하여 내 얼굴을 구하고 자기들의 악한 길에서 떠나면 내가 하늘에서부터 듣고 그들의 죄를 용서하며 그들의 땅을 고치리라.”(대하 7:14)

하나님의 백성들의 기도를 들으시는 그분의 명령은 그들의 사악한 길에서 돌이켜야 한다는 것입니다. 사악한 죄를 품에 안고서 하나님께 나아가는 것으로 하나님과 화목할 수 없습니다. 사악한 죄를 다 버려야 합니다. 이 회개는 여러분의 입술뿐만 아니라 생각과 품은 마음까지 죄의 길에서 떠나야 합니다. 비록 자신에게 손실이 되더라도 회개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죄를 하나님께서 싫어하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눈앞에서 네 마음이 바르지 못하므로 이 일에는 네가 차지할 몫도 없고 나눌 것도 없느니라. 그러므로 너의 이 사악함을 회개하고 [하나님]께 기도하라. 네 마음의 생각이 용서될 수도 있으리라. 내가 보니 네가 쓸개의 쓴맛 가운데 있으며 불법에 매여 있도다, 하매”(행 8:21~23)

하나님의 자녀가 죄가 있을 때 그들은 죄 용서함을 받기 위해 회개하고 기도해야 합니다.

 

“세리는 멀리 서서 감히 눈을 들어 하늘을 우러러보지도 못하고 다만 가슴을 치며 이르되, [하나님]이여, 죄인인 내게 긍휼을 베푸소서, 하니라.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저 사람이 아니라 오히려 이 사람이 의롭게 되어 자기 집으로 내려갔느니라. 자기를 높이는 자는 다 낮아지고 자기를 낮추는 자는 높아지리라, 하시니라.”(눅 18:13~14)

세리(여기서 세리라고 표현했지만 사실 술집주인이나 관리자를 말함)가 의롭다함을 받았습니다. 그 이유는 그가 자신의 죄들을 기꺼이 인정했기 때문입니다. 세리가 멀리 서서 주님께 가슴을 치며 기도했지만 나중에는 가까이 나와서는 긍휼을 구했음을 문맥을 통해 볼 수 있습니다.

 

죄 용서함은 집요하게 죄 안에 있는 자들에게는 인정하지 않습니다. 그들은 변명하고, 합리화하고, 간과하고 그리고 숨깁니다. 우리가 기도할 때 죄 용서함을 받는 것은 우리가 진심으로 죄에 대해 부끄러워해야만 하고 그것을 이기기 위해 들춰내고 고백해야 합니다.

참고 성경구절: [시 32:5~7, 단 9:3~12, 약 5:16, 왕상 8:33~36, 46~53]

 

 

H. 우리는 다른 사람들을 용서하도록 기도해야 한다.

“우리가 우리에게 빚진 자들을 용서하는 것 같이 우리의 빚을 용서하옵시며 우리를 인도하사 시험에 들지 말게 하옵시고 다만 악에서 우리를 건지시옵소서. 왕국과 권능과 영광이 영원토록 아버지의 것이옵나이다. 아멘. 너희가 사람들에게 그들의 범법을 용서하면 너희 하늘 [아버지]께서도 너희를 용서하시려니와 너희가 사람들에게 그들의 범법을 용서하지 아니하면 너희 [아버지]께서도 너희의 범법을 용서하지 아니하시리라.”(마 6:12~15)

하나님은 우리가 기꺼이 다른 사람들을 용서한다면 우리를 용서하실 것입니다. 본래 나는 사람을 용서하기가 안 되는 사람입니다. 심지어 내 자신도 용서가 안 되어 상당히 고통을 받았습니다. ‘그리스도인이 돼서 왜 저래?’라고 말할지 모릅니다. 하지만 많은 부분에서 용서하기를 의지적으로 해 나가고 있습니다.

참고 성경구절: [막 11:25, 마 18:21~35]

하나님과의 의로운 관계를 갖는 것은 사람들과의 의로운 관계를 추구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네가 네 예물을 제단으로 가져오다가 거기서 네 형제가 너를 대적하는 일이 있음을 기억하거든 네 예물을 제단 앞에 두고 네 길로 가서 먼저 네 형제와 화해하고 그 뒤에 와서 네 예물을 드리라.”(마 5:23~24)

우리는 여기서 우리가 해야 할 2가지의 죄 고백이 있음을 알게 됩니다. 하나는 하나님께 고백하는 것입니다.

“만일 우리에게 죄가 없다고 우리가 말하면 우리가 우리 자신을 속이며 또 진리가 우리 속에 있지 아니하니라. 만일 우리가 우리의 죄들을 자백하면 그분께서는 신실하시고 의로우사 우리의 죄들을 용서하시며 모든 불의에서 우리를 깨끗하게 하시느니라. 만일 우리가 죄를 짓지 아니하였다고 말하면 우리가 그분을 거짓말하는 분으로 만들며 또한 그분의 말씀이 우리 속에 있지 아니하니라.”(요일 1:8~10)

다른 하나는 교회 성도들 간의 고백입니다. 이 문제에 관해 많은 의견이 분분합니다. 하지만 이 말씀에 대해 적용시켜 가야 합니다. 어떤 사람들은 ‘하나님께만 고백하면 돼지 왜 교회 성도들 간에 고백해야 하는가?’하고 되물을 수도 있지만 이것이 진리임을 밝힙니다.

“너희 가운데 병든 자가 있느냐? 그는 교회의 장로들을 청할 것이요, 그들은 [주]의 이름으로 그에게 기름을 바르며 그를 위해 기도할지니라. 믿음의 기도는 병든 자를 구원하리니 [주]께서 그를 일으키시리라. 그가 죄들을 범하였을지라도 그것들을 용서받으리라. 너희 잘못들을 서로 고백하고 너희가 병 고침을 받도록 서로를 위해 기도하라. 의로운 자의 효력 있고 뜨거운 기도는 많은 유익이 있느니라. 엘리야는 우리와 같이 동일한 성정의 지배를 받은 사람이로되 비가 오지 않기를 그가 간절히 기도하니 삼 년 육 개월 동안이나 땅에 비가 오지 아니하였고 그가 다시 기도하니 하늘이 비를 주고 땅이 자기 열매를 내었느니라. 형제들아, 너희 중에 어떤 사람이 진리를 떠나 잘못하는데 누가 그를 돌아서게 하면 그 죄인을 그의 길의 잘못에서 돌아서게 하는 자가 한 혼을 사망에서 구원하며 허다한 죄를 덮을 것임을 그가 알게 할지니라.”(약 5:14~20)

다른 사람들이 여러분에게 죄 용서함을 요청하고 자백하는데 여러분이 용서하지 않고 그것을 계속해서 붙들고 있습니까? 여러분은 복수할 기회를 찾고 있습니까? 여러분에게 잘못한 자들에게 고통을 겪기를 바라고 있습니까? 평강과 화해를 추구하는 것을 꺼리십니까?

 

우리가 기도할 때 하나님의 용서함을 받는 것은 우리가 우리를 향해 가지고 계신 그분의 기대를 다른 사람을 향해 같은 태도를 우리가 가져야 합니다. 용서란 죄를 서로에게 고백함으로 평강과 화해를 이루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이 하나님께만 자백하고 서로에게 고백하지 않기 때문에 많은 문제들이 양산되는 것입니다.

 

 

I. 우리는 살아있는 믿음의 생명으로 기도해야 한다.

“너희 잘못들을 서로 고백하고 너희가 병 고침을 받도록 서로를 위해 기도하라. 의로운 자의 효력 있고 뜨거운 기도는 많은 유익이 있느니라.”(약 5:16)

의로운 사람의 간청은 지경을 넓힙니다. 의로운 자에게는 효력, 유익하게 함, 교회 성도들을 세우는 기도를 합니다.

 

“사랑하는 자들아, 만일 우리 마음이 우리를 정죄하지 아니하면 우리가 [하나님]을 향해 확신을 갖고 무엇이든지 우리가 구하는 것을 그분에게서 받나니 이는 우리가 그분의 명령들을 지키고 그분의 눈앞에서 기쁨이 되는 그 일들을 행하기 때문이라.”(요일 3:21~22)

우리는 하나님의 명령을 지키고 또 그분이 기뻐하시는 것을 행하기 때문에 우리가 구한 것들을 하나님께 받습니다. 우리의 기도가 우리 자신을 정죄하지 않는 성숙함이 있어야 하고 도 하나님을 향한 확신을 갖고 구해야 얻을 수 있다는 것을 명심하십시오.

 

사람이 자기 귀를 돌이켜 법을 듣지 아니하면 그의 기도조차 가증한 것이 되리로다.”(잠 28:9)

“사악한 자의 희생물은 {주}께 가증한 것이나 곧바른 자의 기도는 그분께서 기뻐하시는 것이니라.”(잠 15:8)

“{주}께서 사악한 자는 멀리하시되 의로운 자의 기도는 들으시느니라.”(잠 15:29)

어떤 사람이 하나님의 법으로부터 멀어지려고 한다면 그의 기도는 가증스러운 것이 됩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의롭고 곧바른 자의 기도는 들으십니다. 이것이 아벨의 기도는 들으시고 가인의 기도는 듣지 않으신 이유입니다.

 

내가 마음속으로 불법에 관심을 두면 [주]께서 내 말을 듣지 아니하시리라.”(시 66:18)

하나님께서는 우리 마음에 부당한 것을 관심한다면 우리의 기도를 듣지 않으실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마음과 생각까지도 아시는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너희가 손을 내밀 때에 내가 내 눈을 너희에게 숨기겠으며 참으로 너희가 많이 기도할지라도 내가 듣지 아니하리니 너희 손에는 피가 가득하니라. 너희를 씻고 너희를 깨끗하게 하라. 내 눈앞에서 너희의 악한 행위를 버리고 악을 행하기를 그치며 선을 행하기를 배우고 공의를 추구하며 학대받는 자들을 구제하고 아버지 없는 자들을 위해 재판하며 과부를 위해 변호하라.”(사 1:15~17)

하나님께서 심지어 자신의 사람들의 기도를 듣지 않으신다는 것은 그들에게 죄가 들어있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악한 행실을 행하는 것을 그칠 필요가 있고, 온당한 것을 배워야 합니다.

참고 성경구절: [렘 11:9~14, 14:10~12, 겔 8:17~18, 미 3:4, 슥 7:11~13, 사 58:1~9]

 

“보라, {주}의 손이 짧아져서 구원하지 못하는 것도 아니요, 그분의 귀가 둔하여서 듣지 못하는 것도 아니라. 오직 너희 불법들이 너희와 너희 [하나님] 사이를 갈라놓았고 너희 죄들이 그분의 얼굴을 너희에게 숨겼으므로 그분께서 듣지 아니하시리라.”(사 59:1~2)

여러분의 죄들과 부당한 것들이 여러분을 하나님으로부터 분리시킵니다. 우리의 죄와 부적절한 것이 드러날 때 많은 사람들이 그것들의 뒤에 숨으려는 경향이 있습니다. 아담과 하와의 속에도 그런 생각이 들어 간 것입니다. 이런 사람들의 기도를 하나님께서 듣지 않으실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도저히 이해되지 않는 죄인들의 기도를 듣지 않으실 것이 분명하지만 많은 구절의 문맥에서 직접 적용하심은 하나님의 자녀들의 불신앙입니다.

 

하나님은 고넬료가 침례를 받기 전에 그의 기도를 들으셨습니다(행 10:4, 31). 죄 가운데 있는 사람이 진리를 알기 위해 진심으로 추구한다면 하나님은 그것을 배우도록 기회를 주실지 모릅니다. 여기서 밖에 하나님께서 알지 못하는 죄인들의 기도에 대한 응답을 약속하신 곳은 아무데도 없습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 부끄러워하지 않는 자신의 자녀의 기도도 마찬가지로 거절하십니다. 너무 많은 사람들이 자신들을 위해 살기 원하고 유사시에만 하나님께 달려가려고 합니다. 그들은 자신들이 하나님을 섬기는 것을 거절한다는 사실에도 불구하고 자신들을 시중드시도록 그분을 기대합니다. 하나님은 일하시지 않을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만일 여러분이 여러분의 기도를 들으시기 원한다면 먼저 죄를 고백하고 그분께 순종하는 삶을 사십시오.

참고 성경구절: [벧전 3:12, 시 34:15~19, 109:7, 요 9:31, 애 3:1, 8, 벧전 3:7, 딤전 2:8, 잠 1:24~29, 21:13, 대하 7:14]

 

결론

하나님은 여러분의 기도를 응답하실 것입니다. 그분은 여러분의 필요들을 채우시기를 갈망하십니다. 자신의 신실한 자녀들에게 하신 모든 약속을 여러분에게 주시기 원하십니다. 하지만 여러분은 먼저 그분의 신실한 자녀가 되어야 하고 기도의 조건들을 채워야 합니다.

 

여러분은 하나님의 자녀입니까? 아니라면 여러분은 용서함을 기도할 수 없습니다. 대신 여러분은 예수님을 믿어야 하고 죄를 회개하고 그분을 고백하고 그리고 죄들을 사함을 받는 침례를 받아야 합니다(막 16:16, 행 2:38, 22:16, 롬 10:9~10, 6:3~4). 그런 후 여러분이 신실한 삶을 산다면 그분은 그분의 뜻에 따라 여러분의 기도를 들으시겠다고 약속하고 계십니다. 왜 하나님의 제안에 동의하는 것을 주저할까요? 그 답은 여러분의 몫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