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약성경강해/마태복음

예수의 족보 중에서 - 우상숭배와 세상에 있는 사람들은 예수의 족보에서

Hernhut 2009. 12. 4. 21:40

우상숭배와 세상에 있는 사람들은 예수의 족보에서 제외됨

 

“아사는 여호사밧을 낳고 여호사밧은 요람을 낳고 요람은 웃시야를 낳고 *웃시야는 요담을 낳고 요담은 아하스를 낳고 아하스는 히스기야를 낳고 *히스기야는 므낫세를 낳고 므낫세는 아몬을 낳고 아몬은 요시야를 낳고 *요시야는 여고니야와 그의 형제들을 낳았으니 그 무렵에 그들이 바빌론으로 끌려가니라.”(마 1:8~11)

 

“여호람이 통치하기 시작할 때에 나이가 삼십이 세더라. 그가 예루살렘에서 팔 년 동안 통치하니라. *그가 이스라엘 왕들의 길로 걸어 아합의 집과 같이 하였으니 이는 그가 아합의 딸을 아내로 맞았음이라. 그가 주 보시기에 악한 것을 행하였으나 *주께서 다윗의 집을 멸하려 하지 아니하셨으니 이는 그분께서 전에 다윗과 언약을 맺으시고 또 다윗과 그의 아들들에게 영원토록 등불을 주겠다고 약속하셨음이더라.”(대하 21:5~7)

 

우리가 마태복음 1:8을 볼 때 요람이 웃시야를 낳았다고 말한다. 이 기록은 열왕기하 15장에서 나오는 기록과 다르다. 또 역대상 3장에서도 우리는 발견할 수 있다.

 

“이스라엘 왕 여로보암의 제이십칠년에 유다 왕 아마샤의 아들 아사랴가 통치하기 시작하니라.”(왕하 15:1)

“유다 왕 웃시야의 제삼십구년에 야베스의 아들 살룸이 통치하기 시작하여 사마리아에서 만 한 달 동안 통치하였으니”(왕하 15:13)

 

“솔로몬의 아들은 르호보암이요, 그의 아들은 아비야요, 그의 아들은 아사요, 그의 아들은 여호사밧이요, *그의 아들은 요람이요, 그의 아들은 아하시야요, 그의 아들은 요아스요, *그의 아들은 아마샤요, 그의 아들은 아사랴요, 그의 아들은 요담이요,”(대상 3:10~12)

 

 

열왕기하 15장에서 우리는 아사랴가 웃시야임을 보아야 한다. 그런데 역대상 3장에서 발견되는 사람들이 마태복음 1장의 예수의 족보에서는 세 세대가 삭제되어 빠져있는 것을 볼 수 있다. 그들은 아하시야, 요아스, 아마샤이다. 이것은 분명 요람이 주님께 합당한 생활을 하지 않았음을 암시하는 것이다. 그리스도인들은 분명 하나님께 합당한 생활을 하는 것이 중요하다. 이것은 혼인에서 비롯된다.

 

“여호람이 통치하기 시작할 때에 나이가 삼십이 세더라. 그가 예루살렘에서 팔 년 동안 통치하니라. *그가 이스라엘 왕들의 길로 걸어 아합의 집과 같이 하였으니 이는 그가 아합의 딸을 아내로 맞았음이라. 그가 주 보시기에 악한 것을 행하였으나 *주께서 다윗의 집을 멸하려 하지 아니하셨으니 이는 그분께서 전에 다윗과 언약을 맺으시고 또 다윗과 그의 아들들에게 영원토록 등불을 주겠다고 약속하셨음이더라.”(대하 21:5~7)

 

“예루살렘 거주민들이 여호람을 대신하여 그의 막내아들 아하시야를 왕으로 삼았으니 이는 전에 아라비아 사람들과 함께 와서 진영을 치던 사람들의 무리가 그의 형들을 다 죽였음이라. 그러므로 유다 왕 여호람의 아들 아하시야가 통치하게 되었더라. *아하시야가 통치하기 시작할 때에 나이가 사십이 세더라. 그가 예루살렘에서 일 년 동안 통치하니라. 그의 어머니의 이름 역시 아달랴요, 오므리의 손녀더라. *아하시야 역시 아합 집의 길로 걸었으니 이는 그의 어머니가 그의 모사(冒士)가 되어 악을 행하게 하였음이라. *그러므로 그가 주의 눈앞에서 아합의 집과 같이 악을 행하였더니 이는 그의 아버지가 죽은 뒤에 아합의 집 사람들이 그의 모사가 되어 그를 패망하게 하였음이더라.”(대하 22:1~4)

 

이것은 아합과 이세벨 사이의 딸과 요람과의 악한 결혼 때문에 그들의 자손들이 부패하게 되고 혼합된 것이다. 아합은 북쪽 왕국의 왕이었고, 그의 아내 이세벨은 완전히 우상을 섬기는 사악하고 부패된 여인이었다. 이세벨은 마귀와 마찬가지였기 때문에 자기 남편 아합을 부패하게 만들었다. 오늘날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생각하기를 조건만 맞으면 배우자가 어떤 신앙이 있든지 상관없이 혼인을 하곤 하는 경향이 있다. 이것은 하나님께 합당한 것이 아니다. 남자든 여자든 부패되고 혼합된 결혼관을 갖고 시작하면 분명 그들의 인생은 부패하게 된다.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께 온전한 신앙을 갖은 사람들끼리 혼인해야만 행복하고 그리스도의 족보에 올라갈 수 있음을 유념하라. 복음이 아니면 아무리 좋은 조건이 있다 할지라고 배우자로 선택하지 말라. 이렇게 해야 하는 이유는 자신에게 뿐만 아니라 후손에게도 미치는 영향이 많기 때문이다.

또 이세벨은 요람에게 우상숭배와 우상들과 하나 되는 것을 가르쳤다. 그래서 그들의 가족은 부패하고 혼합되었다. 출애굽기 20:3~5에 의해서 요람의 자손의 삼대가 그리스도의 족보에서 끊어지고 말았다.

 

“너는 내 앞에서 다른 신들을 취하지 말라. *너는 너를 위하여 어떤 새긴 형상도 만들지 말고 또 위로 하늘에 있는 것이나 아래로 땅에 있는 것이나 땅 아래 물 속에 있는 것의 어떤 모습이든지 만들지 말며 *그것들에게 절하지 말고 그것들을 섬기지 말라. 이는 나 곧 주 네 하나님이 질투하는 하나님이기 때문이니 나는 나를 미워하는 자들에게는 아버지들의 불법을 자손들에게 벌하여 삼사 대까지 이르게 하거니와”(출 20:3~5)

 

여기에서 주님 앞에서 다른 신들을 섬기지 말라고 명하시고 하나님 외에 다른 신들에게 절하고 섬기는 자마다 자신이 부패하게 되고 또 삼사 대동안 하나님의 저주를 받게 된다고 말한다. 그러므로 요람의 삼 대가 그리스도의 족보에서 끊어져 기록되지 못한 것이다. 여기에서 우리가 공과를 배워야 하는 것은 우리가 그리스도와 관련되고 그리스도께 속하려고 한다면 우리는 결코 어떤 우상과 연관이 되어서는 안 된다. 하나님께서는 결코 용납하시지 않을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질투의 하나님이시다. 나는 요사이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무의식중에 행하는 것들을 생각해 보는데 많은 기독교회에서 이러한 것들을 금하지 않고 그것들을 즐기는 문화로 만들어 나가는 것들을 보게 된다.

 

1. 심지어 천주교회에서는 조상신을 섬기는 문제에 있어서 용납하여 가정 제사에 절하는 것은 보편화되었다. 이것은 분명 유교와 혼합된 것이다. 이렇게 하는 것이 교회의 인수를 늘릴 수는 있으나 하나님께는 합당한 것이 되지는 못한다. 기독교회에서도 이런 문화가 조금씩 들어와 하나님을 제외시키고 자신들의 생각을 합리화하는 무리들이 많아지고 있는 것이 안타깝다.

 

2. 또 사찰에 가서 절하고 행사 때마다 축하해 주는 것도 잘못되었는데 심지어는 기독교회에서도 이를 따라간다는 것이 얼마나 위험한 것인지 모른다.

 

3. 추도예배에 관한 문제

기독교회에서는 제사의 대안으로 추도식을 해 오고 있다. 제사 때마다 성경적인 듯이 절차에 따라 실행하고 있는데 이 또한 위험한 프로그램이다. 믿지 않는 많은 사람들이 나에게 돌을 던질지 몰라도 나는 이런 무제들에 있어서 하나님께 분명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것 또한 유교적 제사를 없애지 못하는 우리나라의 궁여지책이다. 청년시절에 예수를 믿고 나서 나는 제사에 참여하지도 않고 생각하지도 않았는데 믿지 않는 육신의 형제들이 나를 유혹하기를 ‘우리가 추도예배를 하면 그 예배에 참여하겠다.’고 제안을 해온 적이 있다. 이것은 사탄의 전략이다. 나를 타락시키고 혼합되도록 하는 전략에 불과하다.

 

“손으로 쓴 규례들 곧 우리를 대적하고 반대하는 규례들을 지우시고 그것들을 길에서 취하사 그분의 십자가에 못박으시고 *정사(政使)들과 권능들을 노략하사 십자가에서 그들을 이기시고 드러내어 구경거리로 삼으셨느니라. *그러므로 먹는 것이나 마시는 것이나 거룩한 날이나 월삭(嫄朔)이나 안식일로 인하여 아무도 너희를 판단하지 못하게 하라. *이것들은 앞으로 올 것들의 그림자이거니와 그 몸은 그리스도께 속해 있느니라.”(골 2:14~17)

 

“그러므로 내가 이것을 말하며 주 안에서 증거하노니 이제부터 너희는 다른 이방인들이 헛된 생각 속에서 걷는 것같이 걷지 말라. *그들의 지각(蜘痂)은 어두워지고 그들 속에 있는 무지(無蜘)와 그들의 마음이 눈먼 것으로 인하여 하나님의 생명에서 떨어져 있도다. *그들이 감각을 지나쳐 자기를 색욕(色慾)에 내어 주고 탐욕을 내어 모든 더러운 것을 행하였으되 *오직 너희는 그리스도를 그렇게 배우지 아니하였느니라.”(엡 4:17~20)

 

사탄은 우리 그리스도인들을 감각 없는 이들로 만들어 자신들의 생각으로 조정되도록 하겠다는 기발한 전략에 속고 있는 것이다. 기독교회가 이것을 못하도록 막는다면 아마도 교회 인수가 현저히 사라져 버릴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이것까지도 질투하시는 분이심을 명심하라.

 

4. 성탄절이나 부활절을 지키는 것

오늘날 기독교회에서 성탄절을 지키고 부활절을 지키는 것에 대해 별로 경계하지 않는 것을 안타깝다. 이 두 절기는 사실 이교도들이 지키던 절기를 천주교가 그리스도와 혼합되게 하여 행사로 지키게 된 것이다. 성탄절은 미트라교(Natalis Solis lnvicti:불멸의 태양의 탄생일)에서 비롯되었으며, 부활절은 게르만민족의 빛과 봄의 여신 에오스터(Eoster)에서 비롯되어 다산과 풍요를 위해 달걀을 사용하고 또 토끼고기를 먹었던 데서 유래가 되어 지금 교회들마다 부활절이 되면 달걀을 나누어 주게 되었다. 이것은 바로 이방종교와 기독교간의 혼합된 산물에 불과한 것이다. 이런 절기가 교회 안에서 지켜지는 것을 엄중히 경고한다. 이런 것에서 벗어나라. 성경에는 이런 날들을 지키라는 말씀이 없다.

 

5. 개업이나 교회 창립예배

이러한 기념일을 지키는 것은 주님께 합당하지 않다. 어떤 이들은 이런 말을 할 때 우리를 비난할지 모른다. 하지만 이런 기념은 기독교회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라 과거의 고사(고사(告祀))나 굿 등과 같은 것과 같다. 어떤 이들은 이런 일을 하는 것에 대해 안하는 것보다는 하는 것이 하나님을 찬양하는 데 좋다고 할지 모른다. 그러나 이것은 하나님께 합당하지 않음을 명심하라.

 

6. 그림(성화)이나 십자가를 거는 것

그리스도인들의 가정과 그들이 다니는 교회를 가보면 십자가와 그림들을 걸어놓고서 그 앞에서 기도하거나 예배를 한다. 사실 이렇게 하는 것이 불교도들이 석가모니의 좌상 앞에서 절하거나 이방종교들이 그들의 신을 세우는 것과 다를 바가 없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십자가를 목걸이로 하고 다니고 혹은 그림을 벽에 걸고 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 마음에 새긴 것이다.

 

“너희는 우리의 사역을 통하여 분명히 드러난 그리스도의 서신이니 이것은 잉크로 쓴 것이 아니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영으로 쓴 것이며 또 돌판에 쓴 것이 아니요, 육체의 마음판에 쓴 것이라.”(고후 3:3)

내가 이런 말을 하는 것은 여러분이 사람들과 친교하고 교제하지 말라는 말이 아니라 이런 것들을 들여오지 않은 순수한 주님의 교회가 되기를 원하는 것이다. 우리가 어떤 것을 하려고 한다면 우리가 하나님의 영에 의해서 실행해야 한다. 만일 하나님의 영에 의하지 않고 전통에 의해 실행한다면 지금 당장은 교회의 인수가 늘어나고 풍성해 보일지 모르나 그런 교회는 하나님께 합당한 교회가 될 수 없다. 이제 그리스도의 교회로서의 입장을 가질 필요가 있다.

 

다시 11절로 돌아가 보자. 또 역대상 3:15~16을 보며 비교해 볼 필요가 있다.

 

“요시야의 아들들은 맏아들 요하난과 둘째 여호야김과 셋째 시드기야와 넷째 살룸이요, *여호야김의 아들들은 그의 아들 여고니야와 그의 아들 시드기야더라.”

 

우리는 여기서 한 세대를 본다. 마태복음에서 여호야김이 그리스도의 계보에서 빠져있다. 마태가 실수로 빠뜨린 것이 아니다. 이것은 분명한 의도가 있다. 여호야김이 애굽의 파라오에 의해서 왕으로 세움을 받고 파라오를 위해 세금을 늑봉했기 때문임에 틀림없다.

 

“또 파라오느고가 요시야의 아들 엘리아김을 그의 아버지 요시야를 대신하여 왕으로 삼고는 그의 이름을 고쳐 여호야김이라 하고 여호아하스는 잡아갔더니 그가 이집트로 가서 거기서 죽으니라. *여호야김이 은과 금을 파라오에게 주니라. 그러나 그가 파라오의 명령대로 돈을 주기 위해 그 땅에 세금을 부과하였으니 곧 그가 그 땅의 백성에게 은과 금을 강요하되 각 사람의 세금에 따라 모든 사람에게 강요하고 그것을 파라오느고에게 주었더라.”(왕하 23:34~35)

 

그는 애굽과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었기 때문에 그리스도의 계보에서 제외되었다. 애굽(이집트)는 세상을 말한다. 세상을 멀리하라. 또 세상에 빠지지 않도록 기도하라. 세상에 속한 것이 우리의 주의에 얼마나 많은가! 세상에 속한 것들과 중화시키고 중독되도록 하는 것이 사탄의 전략이다. 우리가 여기서 나오지 않고는 우리가 교회 다닌다고 해서 거룩해졌다 말할 수 없다. 교회가 세상의 것들 즉 사탄의 전략에 무너져 가고 있는 것이 안타깝다.

 

음란, 간음, 동성애, 트랜스젠더, 이혼, 폭력, 거짓말, 술수, 비방, 비웃음, 뉴에이지운동, 세상적인 노래, 영화, tv, 노래방, 술, 흡연.... 이런 것들이 얼마나 세상적인 것들인지! 우리는 이런 것들에 유혹을 받지 말고 단호하게 거절할 필요가 있다. 사탄을 이겨라.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하루하루를 살라.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