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약성경강해/마태복음

예수의 족보 중에서 -이새와 다윗-

Hernhut 2009. 10. 23. 07:34

이새와 다윗의 이야기

 

“이새는 다윗 왕을 낳고 다윗 왕은 우리야의 아내였던 여자에게서 솔로몬을 낳고”(마 1:6)

 

“이제 왕의 왕국이 지속되지 못할 것이라. 주께서 왕에게 명령하신 바를 왕이 지키지 아니하였으므로 주께서 자신의 마음에 맞는 사람을 구하여 그에게 명령하사 자신의 백성의 대장을 삼으셨도다, 하고”(삼상 13:14)

 

“이새의 줄기에서 한 막대기가 나며 그의 뿌리에서 한 가지가 나서 자랄 것이요, *주의 영 곧 지혜와 명철(明哲)의 영이요, 모략과 능력의 영이요, 지식과 주를 두려워하는 영께서 그 위에 머무시며 *그로 하여금 주를 두려워하는 가운데 속히 깨닫게 하시리니 그는 자기 눈에 보이는 대로 판단하지 아니하고 귀에 들리는 대로 책망하지 아니하며 *오직 가난한 자들을 위하여 의롭게 재판하고 땅의 온유한 자를 위하여 공평하게 꾸짖으며 자기 입의 막대기로 땅을 치고 자기 입술의 호흡으로 사악한 자를 죽일 것이며 *의로 자기 허리의 띠를 삼고 신실함으로 자기 콩팥 주위의 띠를 삼으리라. *그때에 이리도 어린양과 함께 거하며 표범이 염소 새끼와 함께 누우며 송아지와 젊은 사자와 살진 짐승이 함께 있어 어린아이가 이들을 이끌며 *암소와 곰이 함께 먹으며 그 새끼들이 함께 누우며 사자가 소처럼 풀을 먹으며 *젖 먹는 아이가 독사의 구멍에서 놀며 젖 뗀 아이가 독사의 굴에 손을 넣을 것이로되 *그것들이 내 거룩한 산 모든 곳에서 상하게 하거나 멸하지 아니하리니 이는 물들이 바다를 덮는 것같이 주를 아는 지식이 땅에 충만할 것임이니라. *그 날에 이새의 뿌리가 있어서 만백성의 기(旗)로 설 것이요, 이방인들이 그에게 찾아오리니 그가 베푸는 안식이 영화로우리라.”(사 11:1~10)

 

마태복음 1:6에서 보면 “이새는 다윗 왕을 낳고” 라고 말하고 있다. 이새의 아버지는 오벳인데 오벳에 대한 성경의 기록은 별로 없으며, 이새의 기록도 많지는 않지만 그의 대한 기록은 성경에서 아주 중요한 한 부분이다. 이사야 11장에서 이새에 대해 2번 말하고 있다. 1절은 그리스도가 이새의 줄기에서 나온 싹이요, 이새의 가지에서 나온 가지라고 말한다. 또 10절에서는 정반대로 그리스도께서 이새의 뿌리요, 이새가 그리스도에게서 나온 자라고 말한다. 이새는 전적으로 그리스도에게서 나온 사람이며 그는 또한 그리스도를 낳은 사람임에 틀림이 없다. 그렇다면 이새는 어떠한 사람인가? 이새는 그리스도 안에 뿌리를 박음으로서 그리스도를 낳고 또 그리스도를 가지로 낸 사람이다. 이 말씀이 조금 어려운 말이다. 그러나 성경에 이해가 가지 않는 부분이 만이 있을 뿐만 아니라 실제로 이해를 못했던 사람들도 있었다. 그리스도께서는 우리의 근본이시다. 또 그분은 우리의 산출이시다. 이는 우리가 그리스도와 하나이며 그분과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다는 것을 말해준다. 우리는 그분 안에 있고 그분도 역시 우리 안에 계시다. 그분은 우리에게서 나오시며 또 우리는 그분 안에 뿌리를 박는다. 이것이 그리스도의 장자권을 누리는 사람인 것이다.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이 계시를 보지 못했다. 어떤 이들은 이것을 설명하기 위해서 수학적 근거를 예를 든다. 헤른훗 성 형제도 우리에게 말씀을 줄 때 이런 부분에서 수학적 근거를 들었다. “참된 그리스도인들은 그리스도와 연합되어 하나가 되고 합병되어 있는 사람이다. 다시 말해 항상 그리스도와 우리는 교집합이 있고, 합동인 상태일 것이다.” 아무튼지 우리는 그리스도의 장자권을 누리는 사람들이어야 한다.

 

다윗을 보기로 하자. 우리는 서구적인 사고방식으로 인해서 숫자 7을 좋아한다. 그런데 성경적으로 보면 숫자에는 상징하는 의미가 있다. 여기서 숫자 7을 말하려는 것이 아니라 숫자 8을 말하고 싶다. 숫자 8은 부활을 상징한다. 다윗은 이새의 여덟 번째 아들로 태어났다. 그리고 그는 그리스도의 족보에서 열 네 세대의 열조시대를 마감하는 마지막 열조요, 왕의 세대를 여는 첫 번째 왕이다. 이 족보에서 오직 다윗만이 『왕』이라고 일컬어지는데 이것은 다윗을 통해서 왕의 직분이 있는 왕국이 들어왔기 때문이다. 열조시대는 왕국이 아니라 하나님의 선택으로 다만 믿음에 의한 조상을 나타내는 것뿐이었다. 다윗은 열조시대의 결론이자 왕국시대의 시작이 된다. 다윗은 두 시대의 분수령이자, 경계표이다. 그는 한 시대의 끝이자, 다른 한 시대의 시작이다. 이것은 다윗이 그리스도에 대한 누림에 있어서 매우 풍성하고 충만했기 때문이었다. 만약에 우리가 그리스도에 대한 누림이 풍성하게 되려면 우리는 종종 한 상황과 한 환경이 끝이 나고 또 다른 상황이 시작되어야 한다. 하나님의 창조 사역에 있어서도 모든 만물을 창조하시고 하루를 쉬셨는데 이는 창조 사역을 마치신 것이고 영적으로 보면 죽음을 상징한다. 이것은 대단히 중요한 교회 생활의 원칙이다. 우리가 끝이 없거나 죽음과 쉼이 없다면 이것은 완성한 것이 아니다. 그러나 많은 사랑하는 사람들이 끝도 시작도 없다. 결국 그들은 아무것도 아닌 것이다. 우리가 교회 생활에 있어서 끝과 시작이 분명해야 한다. 교회 생활 안에서 우리에게는 어떠한 상황과 환경을 완성하고 또 다른 것들을 여는 더 강한 사람들, 즉 다윗들이 될 필요가 있는 것이다. 여러분들도 다윗들이 외어야 한다. 다윗들은 날이 갈수록 점점 더 강해진다. 왜냐면 주님께서 창조 사역을 그리 하셨으며 이것이 성경의 원칙이기 때문이다. 여러분이 강해진 다윗들이 되기를 원한다면 여덟 번째 아들들이 되라. 우리에게는 열조시대를 마감하고 왕들의 시대를 여는 다윗들이 필요하다. 우리는 여덟 번째 아들들이어야 하고 다윗들이어야 하며, 더 강한 이들이 되어야 한다. 헤른훗 성형제는 우리에게 “나와 여러분들은 모두 다윗들이요, 여덟 번째로 태어난 부활의 사람들이다”라고 말했다. 그는 또 “아마도 다윗이 여덟 번째의 아들이 아니었더라면 부활을 상징하는 왕이 되지 못했을 것”이라고 했던 적이 있다. 나도 그 말에 동의한다. 예수께서도 공생애를 마치시고서 갈보리 십자가를 지시고 우리의 죄를 위해 죽으심을 맛보고 무덤에서 사흘을 쉬신 후 부활을 하셨다. 그분의 죽으심은 한 상황과 환경을 끝마치시고 부활을 통해 새로운 일을 도모하시고자 하시는 분이셨다는 의미인 것이다. 아마도 그분의 부활이 없었더라면 우리의 믿음은 헛것일 뿐만 아니라 이 땅에 교회는 건축되지 않았을 것이다. 이런 일들을 통해 다윗은 예수를 왕으로서의 상징성을 갖는다.

 

다윗은 또한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사람이었다. 우리가 다윗을 말할 때 이 말씀을 가장 많이 할 것이다.

 

“이제 왕의 왕국이 지속되지 못할 것이라. 주께서 왕에게 명령하신 바를 왕이 지키지 아니하였으므로 주께서 자신의 마음에 맞는 사람을 구하여 그에게 명령하사 자신의 백성의 대장을 삼으셨도다, 하고”(삼상 13:14)

 

하나님 자신이 사울에게 그를 대치하시겠다고 말씀하셨는데 이는 하나님께서 자신의 마음과 합한 사람을 찾으셨다는 것을 의미한다. 다윗은 실수가 있었다. 이것은 분명한 죄일뿐더러 왕으로서의 가장 커다란 약점임에 틀림이 없다. 그것은 우리야를 죽이고 그의 아내를 취한 것이다. 우리가 이 시점에서 우리의 생활을 점검해 보아야 한다. 한 번에 행위로 두 가지 범죄를 저질렀다. 하나는 살인이요, 또 하나는 간음이다. 우리가 교회생활 안에서 산다는 것은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왕으로서 사는 것이다. 또 제사장으로 살고, 예수의 사신이요, 예수의 편지요, 향기요, 그분의 절대적인 아들들로서 그분의 복음을 전하며 사는 사람들이다. 그런 사람들이 이러한 죄가 있다면 하나의 걸림돌이 될 뿐만 아니라 약점이 되어 더 이상 전진하지 못한다. 하나님께서는 이런 일을 한 다윗을 정죄하셨다. 그리고 그는 이러한 일 이외에 그의 평생에 하나님과 함한 마음의 사람으로서 평생에 주님이 보시기에 옳게 행하는 사람이 되었다. 우리에게 이러한 요소들이 있다면 우리는 매 순간순간 주님께 마음을 돌이켜야만 한다. 이런 것으로 결점으로 잡혀서는 그리스도의 장자권을누릴 수가 없는 것이다.

 

“만일 우리가 죄 없다 말하면 스스로를 속이고 또 진리가 우리 속에 있지 아니하는 것이요, *만일 우리가 우리의 죄들을 자백하면 그분께서는 신실하시고 의로우사 우리의 죄들을 용서하시며 모든 불의에서 우리를 깨끗하게 하실 것이요, *만일 우리가 범죄하지 아니하였다 말하면 그분을 거짓말하는 분으로 만드는 것이요, 또한 그분의 말씀이 우리 속에 있지 아니하니라.”(요일 1:8~10)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