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Brethren 557

감사 찬송(1)

“감사함으로 주께 노래하며 하프에 맞추는 노래로 우리 하나님을 찬양할지어다.”(시편 147:7) 우리가 다룬 내용에 따라 찬송을 살펴보아야겠다. 좋은 찬송은 영감을 주고, 아름답고, 영적인 감정을 표현한다. 예를 들어, 찬송가를 예로 들자면, “모든 이들 중 가장 소중한 분은 그분”을 생각하면 가장 소중한 분은 그분이시며, 내가 가장 사랑하는 분; 모두가 구해야 할 그분을 띠고, 그리고 마침내 그분께 의지하세. 나의 모든 필요를 공급하고, 연약함 속에서 그분은 지탱하시네. 나에게 가장 공평한, 항상 신실하신 그분은 남아 계신다네. 그분, 우리의 기쁨은 끝없이 모든 시험을 통해 같다네. 가장 소중한 분은 그분. 그분은 내가 가장 사랑하는 사람이라네. 이 찬송가를 부를 때, 주님이 너무 선하시다는 것을 느낀..

영감(靈感)으로 곡을 쓰라.

“시와 찬송과 영적 노래로 서로에게 말하며 너희 마음속에서 주를 찬양하고 아름다운 곡조를 만들며”(에베소서 5:19) 우리 가운데 찬송 작가가 더 많아지기를 바란다. 찬송을 부르는 법을 배우는 것뿐만 아니라 영감을 적어 두라고 권하고 싶다. 이러한 영감은 체험하거나 또 성경을 읽을 때 계시에서 나올 수 있다. 이런 식으로 훈련하면 결국 찬송을 쓸 수 있다. 처음에 찬송이 단순할 수 있다. 처음에 간단한 찬송을 쓰면 결국 더 깊은 것을 쓸 수 있다. 예를 들어, 찬송 “이삭의 제물”을 예로 들어 본다. 이 찬송의 개념은 매우 깊다. 그것은 영적 감정에 따라 쓰였다. 작가가 창세기에 관한 메시지를 전할 때, 그는 이삭의 제물에 관해 이야기했다. 그는 그 당시 “주님, 제가 원하는 모든 것을 당신께 드려야 합..

찬송을 감상하는 것을 배우라.(2)

“그러므로 주의 구속받은 자들이 돌아오리니, 기뻐서 외치며 시온으로 올 것이요 또 영원히 지속하는 기쁨이 그들의 머리 위에 있으리이다. 그들은 기쁨과 즐거움을 얻을 것이며 슬픔과 탄식은 멀리 달아나리이다.”(이사야 51:11) 좋은 찬송에는 영감과 체험이 있지만, 또한 진리에 기초해야 한다. 진리 자체는 찬송을 작곡할 수 없지만, 진리가 없으면 찬송은 좋지 않을 것이다. 찬송이 즐거운 이유는 영감이 가득하고 진리에 기초하기 때문이다. 영감만 있을 뿐 진리와 체험이 부족한 찬송을 계속 부를 수는 없다. 우리는 쉽게 지루해질 것이고, 그 찬송을 노래해도 우리를 더 깊이 데려가지 못할 것이다. 좋은 찬송의 곡은 가사와 일치해야 한다. 좋은 찬송에는 좋은 곡이 있어야 한다. 그러나 곡은 나이에 따라 바뀐다. 최..

규모 있게 생활하라.

젊은 가족이 좋은 집을 원하는 것은 확실히 합법적이며, 가족이 성장함에 따라 더 큰 집이 필요할 수도 있다. 그러나 더 큰 집이 뿌리를 내리고 우리 안에서 자라는 욕망이 사로잡기는 쉽다. 그런 다음 그것은 필요를 넘어 세상의 지위의 영역으로 들어간다. 더 큰 집을 얻으려면 더 많은 돈을 벌기 위해 더 오랜 시간을 일해야 한다. 우리는 더 대출받아야 하고 더 많은 빚을 져야한다. 그것은 이제 우리 교회와 성도들의 삶에서 시간을 빼앗아 가면서 우리에게 저주가 되었다. 주님은 우리와 함께 무언가를 하기를 원하시지만, 너무 늦었다. 가시가 너무 두꺼워서 우리가 풀려나기에는 너무 두꺼워졌다. 자동차, 옷 또는 이생의 어떤 필요에도 똑같은 일이 일어날 수 있다. 얼마나 많은 가시가 있는지 믿을 수 없다. 가시의 유..

찬송을 감상하는 것을 배우라.(1)

“주께서 나를 구원하시리니, 우리가 주의 집에서 우리 평생 현악기에 맞춰 내 노래를 노래하리로다.”(이사야 38:20) 우리는 찬송을 감상하는 법을 배울 필요가 있다. 찬송을 감상하는 법을 아는 사람은 영감으로 가득하다. 영감이 부족한 이들이 주님을 잘 섬기는 능력이 있다는 것은 의심된다. 사실, 우리가 구원받기 위해서는 영감이 필요하다. 주님을 만지고 우리 영 안에서 움직였을 때 구원을 받는다. 이것이 영감(靈感)이다. 왜 주님을 사랑하는지 묻고 싶다. 주님을 사랑하는 것 역시 영감(靈感)이다. 주님을 사랑하는 삶은 영감 속에 있는 삶이다. 종교적이고, 교파적인 사람은 영감이 필요 없다. 만약 단지 만남을 즐기는 사람이라면, 찬송을 부르거나 감상할 필요가 없다. 성경책의 먼지만 닦아내고 매주 모임에 가..

신앙에는 은퇴가 없다.

우리 일생의 모든 단계에서 주님은 우리 안으로 무엇인가의 씨앗을 계속 뿌리신다. 우리는 결코 졸업이 없고, 은퇴가 없다. 회심 초기 단계에도 그분의 지속적인 씨앗 뿌리시는 것이 필요하다. 회심의 실제를 가지려면 주님께서 우리를 거듭 새롭게 해 주실 필요가 있다. 그렇다. 우리가 주님을 사랑하지만 다양한 범주와 단계에서 그분을 사랑하는 다른 방법이 많다. 우리는 그분의 사랑의 깊이를 체험할 수 있도록 평생 그분의 씨앗을 뿌리시게 해야 할 필요가 있다. 우리가 바빠서 주님의 씨앗 뿌리시는 것을 놓치다니 아깝다.

우리는 항상 찬양한다.

“형제들아, 그런즉 옳은 과정은 무엇이겠는가? 너희가 다 같이 모일 때에 너희 각 사람에게 찬송시도 있고 가르침도 있으며 타언어도 있고 계시(특별한 지식을 밝힘)도 있으며 통역도 있나니 모든 것을 남을 세우기 위하여 할지니라.”(고린도전서 14:26) 우리가 주님을 만지고, 마음을 열고, 강해지고, 주님과 좋은 교제 시작을 하기를 갈망한다면, 찬송을 부르는 것은 많은 시간이 필요하지 않은 좋은 실행이다. 찬송가를 부르는 것만으로도 영적인 실제를 만질 수 있다. 그러면 주님 앞에서 쉬고, 기도를 시작할 수 있다. 무릎 꿇고 할 말이 없다고 느낀다면 주 앞에서 한숨을 쉬고 신음소리를 내며 주님이 말씀하시게 할 수도 있다. 또한, 성경을 기도로 성경 읽기를 할 수도 있다. 그런 실행이 영감을 줄 수도 있다. ..

너무 분주하게 살지 말라.

나는 대학을 어디로 가고, 무엇을 공부할지 결정하려는 젊은이들에게 동정심을 느낀다. 그들은 부모님, 친구, 고등학교 상담사에게 의견을 받았다. 대학 졸업을 앞두고 취업하려는 젊은이들도 같은 고민을 한다. 그들은 학업, 직장의 선호도, 비용, 급여, 그리고 학교의 명성을 고려해야 한다. 만약 그들이 조금이라도 영적이라면, 그들은 학교와 직장에 영적인 형제들이 있어서 그들과 어떠한 교제를 가질 수 있는지 고려할 것이다. 학교나 직장에 교제할 수 있는 동아리들이 기다리고 있다. 그들이 회심을 했는가? 그렇다. 그들이 주님을 사랑하는가? 그 말도 맞다. 그러나 그들은 각 학교와 직장의 장단점을 따질 정도로 바쁘고 고려 사항이 넘쳐서 주님의 목소리를 듣지 못한다. 주님은 씨앗을 뿌리고 싶어하시지만 그들은 알아채지..

하나님은 우리에게 찬송을 주신다

“주는 나의 힘이시오, 나의 노래시며, 그분은 나의 구원이 되시는도다. 이분이 나의 하나님이시니 내가 그분을 찬송하리로다. 나의 아버지의 하나님이시니 내가 그분을 높이리로다.”(출애굽기 15:2) 주님께 다가와서 주님의 존재와 그분의 흐름 속에 있는 임재를 누릴 수 있는가? 이것은 성경을 읽을 수 있는지와 찬송을 할 수 있는지에 달려 있다. 성경은 빵과 같고, 찬송은 젖과 같다. 모든 찬송의 수준과 깊이 다르다. 어떤 찬송은 기쁨, 만족을 주고, 격려한다. 다른 찬송은 그런 깊이가 없다. 점차, 더 깊은 찬송을 누리기 시작할 것이다. 이런 찬송은 헌신과 주님과 하나 됨, 그리고 우리의 깊은 영적 체험을 증언한다. 눈시울이 뜨거워졌어요. 당신을 볼 수 없을 정도예요. 마치 예전처럼 당신의 모든 말이 진실하..

그 말씀은 시의적절한 레마(Rhema)다.

그 말씀은 시의적절한 레마(Rhema)다. “너희가 내 안에 머물고, 내 말들이 너희 안에 머물면 [즉, 우리가 극도로 연합하고 내 메시지가 너희의 마음에 산다면] 너희가 원하는 것을 무엇이나 구하라. 그러면 그것이 너희에게 이루어지리라.”(요한복음 15:7) 말들로 번역된 헬라어는 로고스logos가 아니고 레마rhema다. 로고스는 변함없는 말씀이요, 길게 이어지는 한 줄기의 말씀이요, 경륜의 말씀을 말한다. 반면 시의적절한 말씀, 상황에 따라 다를 수 있는 말씀을 가리킨다. 또 레마는 단수가 아니라 복수다. 우리가 주 안에서 머물면, 주께서 우리에게 말씀하시는 많은 시의적절한 말씀을 얻게 될 것이다. 이 시의적절한 말씀이 레마다. 우리가 주 안에서 거할 수 있도록 우리 상황과 때에 따라, 주께서는 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