빵과 음료/복음칼럼 883

편애를 하찮게 여기지 말라(야고보서 2:8-11)

어려서 나는 항상 부모님이 형제들을 좋아한다고 느꼈다. 나는 공부와 수영을 잘하지 못했고, 부모님이 형제들의 업적을 칭찬하고 음식과 선물을 먼저 골라줄 때마다 질투심이 들곤 했다. 나는 또한 우리가 함께 실수를 할 때마다 가장 많이 꾸짖고 가장 적게 용서받는 부당함을 느꼈다. 어렸을 때 부모님을 부당하게 판단했을지 모르지만, 부당한 대우를 받는다는 이러한 인식은 내 정서적 안녕에 심각한 부정적인 영향을 미쳤다. 젊었을 때 그리스도인이 되어서야 비로소 점차 자존감을 회복하기 시작했다. 나는 내가 어떻게 행동하든 하나님은 나를 조건 없이 사랑하신다는 진리를 확신하게 되었다. 물론, 나는 또한 편애의 가해자였다. 학교와 직장에서 나는 다른 사람들보다 그들의 성격을 더 좋아했기 때문에 특정 급우와 동료를 더 잘..

부자를 선호하는가?(야고보서 2:5-7)

오늘날 금융 업계, 증권사, 등 다양한 사회 대부분의 사람들이 부자가 되기를 꿈꾼다. 따라서 대부분의 사람들은 부유한 고객이 더 많은 투자 자산을 보유하고 회사에 더 많은 수익을 창출할 수 있기 때문에 가난한 사람에게 봉사하는 것보다 부자에게 봉사하는 것을 우선시할 것이다. 뿐만 아니다. 오늘 국가도 부자에게 더 많이 돌아갈 수 있도록 정책을 실행한다. 가난한 사람을 위한 정책은 거의 없고, 가난한 자들을 대변하지 않는다. 고액 자산가에게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은 완벽한 비즈니스 감각이다. 반대로, 그것은 또한 도움이 필요할 수 있지만 우리에게 많은 도움이 되지 않는 가난한 고객을 찾는 시간 낭비라는 것을 의미한다. 세속적인 세상에서는 돈이 이야기하고, 힘이 된다. 이 문제는 우리가 성도로서 비즈니스 환경..

가장 좋아하는 것들을 하는가?(야고보서 2:1-4)

야고보가 동료 유대인 성도들에게 이 말을 쓴 지 약 2000년이 지났지만, 그 말은 오늘날에도 여전히 유효하다. 우리는 외부에서 보는 것으로 다른 사람들을 판단하고 우리가 깨닫는 것보다 더 자주 좋아하는 게임을 하는 죄를 범한다. 프랑스 빵집에서 아르바이트를 했던 한 자매는 외모, 버릇, 직업, 사회적 지위, 가족 배경, 가치관 등 각계각층의 고객들을 만났다고 한다. 똑같은 사람은 없었다. 프랑스어를 구사하는 바게트 애호가를 다른 프렌치 베이크의 이름을 발음하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사람과 다르게 대한다면 그녀는 야고보가 그토록 강력하게 반대했던 바로 그 것, 즉 편애를 실천하는 것이다. 그것은 다른 사람을 희생시키면서 누군가에게 특별한 관심이나 특권을 따르는 것을 의미다. 편애에는 차별, 편견 및 선입견의..

그것은 말과 행동 모두에 관한 것이다(야고보서 1:26, 27)

우리 삶의 어느 시점에서, 우리는 모두 우리가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말을 했다. 우리 중 일부에게는 이것이 우리가 인정하고 싶은 것보다 더 자주 일어났다. 그것은 사회적인 가짜를 말하는 것만큼 부끄러운 것일 수도 있고, 친구나 사랑하는 사람을 비난하는 것만큼 상처를 주는 것일 수도 있다. 소셜 미디어 시대에는 공격적인 농담이나 Facebook, Tweeter 게시물에서 화나고 필터링되지 않은 댓글의 형태를 취할 수 있다. 기독교(교회)에 대해 점점 더 적대적으로 변해가는 사회에서, 야고보가 성도들에게 혀를 단단히 다스리라고 가르친 교훈(야고보서 1:26)은 그 어느 때보다 적절하고 절실하다. 그리스도의 사랑은 우리가 다른 사람들과 이야기하는 방식, 특히 소셜 미디어에서 분명하게 드러나는 것이 중요하다...

아는 것과 행하는 것이 같은가?(야고보서 1:22-25)

우리는 종종 우리 삶에 대한 하나님의 뜻을 알고 싶다고 말하거나 듣는다. 그러면 우리는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것에 대해 얼마나 자주 생각하는가? 아는 것과 행하는 것이 같은가? 우리가 그렇게 생각한다면 우리는 스스로를 속일 것이다. 이 두 지점 사이에 건너야 할 다리가 있는데 그것은 순종이라고 불린다. 하나님의 뜻은 우리에게 숨겨져 있지 않다. 그분의 완전한 복은 오늘날 수백만 명의 사람들이 소유하고 있으며 전 세계에서 접근할 수 있는 성경에 계시되어 있다. 그분은 우리에게 말씀하시며 우리에게 이 복음에 유의하라고 촉구하신다. 그러나 우리는 얼마나 자주 성경 연구에서 얻은 새로운 통찰력에 만족하지만 우리 삶에 가시적인 변화를 일으키지 못하고 있는가? 나는 한때 내 믿음과 상충되는 한 무리와 진지하고 장기..

빠르게, 느리게, 느리게(야고보서 1:19-21)

나는 바쁘고 빠르게 진행되며 스트레스가 많은 환경에서 일한다. 최근에, 나는 내 일에 대해 점점 더 분개하고, 그것이 얼마나 압도적인지에 대해 다른 사람들에게 자주 불평하고, 과중한 업무량에 대해 씁쓸함을 느낀다. 어려운 상황과 사람들에 직면했을 때 우리의 자연스러운 경향은 분노와 투덜거림으로 반응하는 것이다. 그러나 야고보는 이 구절에서 우리에게 화산처럼 분출하는 대신 침착하고 하나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이라고 권면한다. 야고보가 우리에게 '듣기를 속히 하라'(야고보서 1:19)고 말한 것은 하나님의 말씀 앞에서 잠잠하고 순종하는 것을 의미한다. 그것은 또한 다른 사람들로부터 경건한 조언을 구하는 것을 의미할 수도 있으며, 그들의 체험과 조언은 우리를 성경으로 인도한다. 반대로 야고보는 말하기는 더디 하..

유혹은 하나님에게서 오는 것일까?(야고보 1:16-18)

오래전 나는 신이 나서 한 형제로부터 온 메일을 열었고 안에서 깔끔하게 쓴 감사 편지를 읽으면서 킬킬 웃었다. 그는 항상 나에게 좋은 매너의 중요성에 대해 상기시켜 주었고, 그의 편지는 진정한 감사의 표시인 동시에 나만의 메일을 보내라는 미묘한 암시인 것처럼 느껴졌다. 요점을 말하자면, 나는 그의 편지를 집어넣고 앉아서 감사 편지를 쓰기 시작했다. 형제의 편지는 좋은 선물을 기념하기 위한 좋은 기억이었다. 그리고 야고보는 우리에게 선하고 완벽한 것은 결국 하나님으로부터 나온다고 말한다(야고보서 1:17). 축복을 인식하고 감사를 표하는 것은 우리가 시련과 유혹의 한가운데에 있을 때, 다시 말해, 가장 어려울 때 특히 중요하다.야고보 시대의 유대인 성도들은 이런 종류의 낙담에 직면했을 가능성이 높다. 때때..

하나님은 우리를 유혹하시는가?(야고보 1:13-15)

죄는 재미있다. 저기, 내가 말했다. 죄는 매력적이고 만족스럽다. 우리가 그것을 인정하기를 원하든 원하지 않든, 이것이 우리가 그것에 의지하는 이유다. 미국의 연사이자 작가인 로사리아 버터필드가 “만약 당신의 죄가 기분이 좋지 않다면, 당신은 그것을 미워하고 있다.”라고 조롱했다. 확실히, 그녀는 기독교인들에게 죄를 짓도록 격려하는 것이 아니라, 그녀는 단지 명백한 사실을 말하고 있다. 죄가 정말로 유쾌하게 느껴진다. 야고보는 이렇게 표현한다. “각자는 자신의 사악한 욕망에 이끌려 유인될 때 유혹을 받습니다.”(야고보서 1:14) 그것은 확실히 내 체험에도 해당된다. 내가 죄를 지을 때마다 자존심이나 분노에 사로잡혀 있거나, 세상 즐거움이나 음탕에 대한 욕망에 유혹당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야고보가 ..

우리는 왜 인내해야 하는가?(야고보서 1:12)

몇 년 전, 나는 나에게 도전과 영감을 주는 이야기를 들려준 한 그리스도인을 만났다. 그는 다른 종교를 가진 부유하고 영향력 있는 가정에서 태어났다. 그는 대학에 가기 위해 집을 떠났을 때 예수님을 만났고 자신의 삶을 그분께 바쳤습니다. 그의 부모는 예수님을 믿고, 교회 모임에 나가는 것을 반대하고 그가 새로 발견한 믿음을 포기할 것을 요구했지만, 그는 상속을 받지 못한다고 하더라도 계속 교회 모임에 나가고, 예수님을 믿기로 했다. 그는 여전히 사랑하는 사람들이 예수님을 개인적으로 알게 될 날을 고대하고 있다. 그가 믿음을 포기하고 가족의 인정을 받고 가족이 자기에게 주려고 준비한 부를 누리는 것은 참으로 유혹적인 일이었을 것이다. 가족과 친구들이 보기에 옳아 보이는 일을 하는 것이 얼마나 매력적이었겠는..

가난하지만 하나님 안에서 부자(야고보 1:9-11)

가난한 가정 출신인 나는 내가 더 부자이길 바랐던 적이 많았다. 최근, 나는 내 친구들이 인스타그램, 소셜 미디어 등 가치 있는 장소에서 새 차를 사고 멋진 곳에서 식사를 하는 것을 보고 녹색 눈의 괴물로 변하는 내 자신을 발견했다. 이들이 독실한 그리스도인으로 알고 있는 친구들이라는 것은 도움이 되지 않았다. 그래서 나는 그들이 물질주의적이라고 비난하는 것조차 피할 수 없었다. 나는 경건하고 싶지만, 동시에 부자가 되고 싶다. 성경에 욥과 요셉처럼 부자였던 몇몇 경건한 인물들이 언급되어 있듯이 물질적으로 부자가 되는 것이 잘못된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다. 그러나 성경에는 물질적 부와 권세를 추구하지 말라는 경고도 많이 하고 있다(디모데전서 6:7-10). 그리스도인은 그렇다면 물질적인 풍요를 어떻..