빵과 음료/복음칼럼

한없는 사랑 365 / 133 시기, 살인, 술 취함, 방탕

Hernhut 2024. 7. 19. 20:03

성경

 

육체의 일은 현저하니 곧 이것이라. 
간음과 음행과 더러운 것과 호색과 우상 숭배와 
마술과 원수 맺는 것과 분쟁과 경쟁과 분냄과 당 짓는 것과 분쟁과 
이단과 투기와 살인과 술 취함과 방탕함과 또 그와 같은 것들이라....

— 갈라디아서 5:19-21

스터디

 

유대인 지도자들이 법정에서 형사 재판을 받기 위해 예수님을 빌라도에게 넘겼을 때, 빌라도는 예수님이 그 나라에서 얻고 있는 인기를 시기했기 때문에 그들이 그런 일을 했다는 것을 알았다. 마가복음 15:10은 “대제사장들이 시기함으로 자기를 넘겨준 줄 알았음이라”라고 말한다.

 

“시기”라는 단어는 헬라어 프토노스phthonos다. 이는 그 사람이 다른 사람이 갖고 있지 않지만 갖고 싶어하는 어떤 것(이점, 혜택, 지위)을 갖고 있기 때문에 누군가에 대한 적대적인 감정을 묘사한다. 유리하다고 인식되는 사람에 대한 비열한 감정이 너무 강해서 “부러움”을 느끼는 사람은 그 사람의 장점이 그에게 전해지기를 바라면서 그 사람의 장점을 제거하기 위한 조치를 취한다. 이런 시기심은 사악하고 해로우며 악독이 가득하다.

 

마가복음 15:10에서는 빌라도가 대제사장들의 진짜 동기를 볼 수 있었다고 말한다. 빌라도는 실제 문제를 알고 있었다. 대제사장들은 예수님의 인기가 높아지면서 위협과 불안감을 느꼈다는 것이다. 빌라도는 불안이 대제사장들로 하여금 예수님을 범죄 혐의로 기소하고 공개적으로 유죄를 선고하여 십자가에 처형하도록 요구하게 만들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대제사장들은 겉모습은 달랐지만 실제 문제는 분명했다. 그들은 예수님을 제거하여 그분께 초점을 맞춘 홍보가 예수님께서 현장에 오시기 전에 있었던 제사장 직분으로 다시 돌아가기를 원했다. 이러한 끔찍한 태도와 소름끼치는 행동은 마가복음 15:10에서 “시기”라는 단어로 전달된다.

 

부러움:

 

갈라디아서 5:19-21에서 바울은 육체의 일에 “투기”를 포함시켰다. “부러움”이라는 단어는 헬라어 프토노스phthonos다. 이 말은 자신이 원하는 것을 자기 소유로 갖고 있다는 깊은 원한을 뜻한다. 시기심을 느끼는 사람은 어깨에 칩이 있기 때문에 다른 사람이 소유한 것을 싫어하고 그 사람의 소유물, 업적, 관계 또는 인생의 직위를 탐한다. 그는 다른 사람을 볼 때마다 속으로 자신의 성공에 대해 들끓는다. 그는 그 사람의 축복을 몹시 원망하고, 자신이 부러워하는 사람에게서 그것을 빼앗아 자신의 것으로 만들 방법을 모색한다.

 

대제사장들은 예수님께서 얻고 계시는 호평을 시기했다. 그래서 대제사장들은 경쟁을 없애기 위해 예수님을 죽이기로 결정했다. 이것이 바로 이러한 유형의 시기심이 반응하는 방식이다. 그것은 너무 강력해서 사람이 어떤 종류의 행동을 취하도록 유도한다. 가장 흔히는 이점을 가진 사람을 없애기 위해 고안된 일종의 사악한 행동이다.

 

이것이 「킹 제임스 성경」에서 다음에 “살인”을 언급하는 이유를 설명할 수 있다. 문제는 “살인”이라는 단어가 헬라어에 나오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살인”이라는 단어가 헬라어 원문에는 나오지 않는다면 “왜 킹제임스 번역자들은 그 단어를 삽입했는가?”라고 질문해야 한다. 유일한 대답은 그들이 이 “질투”가 너무 강해서 사람이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 “살인”을 하게 될 것이라고 인식했다는 것이다.

 

프토노스 phthonos라는 단어가 돈, 명성, 권력 측면에서 원하는 곳에 도달하기 위해 다른 사람을 디딤돌로 사용하는 사람을 나타내는 데에도 사용되는 고전 문학의 예가 있다. 이 사람은 자신이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 사람을 이용하고 학대하는 파렴치한 사람이다.

 

아마도 당신은 사무실이나 직장, 심지어는 교회에서 육체의 일이 나타나는 것을 보았을 것이다. 동료나 신앙인이 당신에게 가까이 다가가려고 했지만, 나중에 그 사람이 단지 우정을 가장하고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된 순간을 목격한 적이 있는가? 실제로 그는 당신의 친구가 되고 싶어하지 않았다. 그는 단지 당신이 아는 사람과 친구가 될 수 있도록 당신과 가까워지고 싶었을 뿐이다. 다른 사람에게 다가가려면 그 사람이 당신을 거쳐야 했다. 그래서 그는 자신의 이익을 얻기 위해 당신의 친구처럼 행동하고 납 풍선처럼 당신을 떨어 뜨렸다.

 

아니면 누군가가 당신의 친구가 되고 싶어 하는 것처럼 행동했을 수도 있지만 실제로는 그가 원하는 것은 당신의 직업뿐이었을 수도 있다! 이런 일은 세상에서는 늘 일어나는 일이지만 교회 안에서는 일어나서는 안 되는 일이다. 그러한 행동은 상처를 주고, 교묘하고, 불친절하다. 그것은 혼에 상처를 입힌다. 사람들이 학대당한 것처럼 느끼게 만든다. 그리고 그것은 우정의 개념을 약화시킨다. 바울이 시기를 육체의 일이라고 부르는 것도 당연하다!

 

방탕:

 

그의 육체의 일 목록의 마지막에는 “방탕”이라는 단어가 있다. 이 흥미로운 단어는 축제 행렬이나 즐거운 행사를 묘사하는 헬라어 코모이komoi에서 유래되었다. “흥청망청”이라는 단어를 본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것이 술 취함, 거리 싸움, 술취한 파티에서 다음 파티로 뛰어다니는 사람들을 가리키는 것이라고 상상한다. 이것이 바로 이 단어가 의미하는 것이라고 생각했나? 그것을 보고 그것이 원래 헬라어에서 실제로 무엇을 의미하는지 살펴보아야 한다!

 

코모이komoi(“향락”)라는 단어는 지루함을 견딜 수 없어 지속적으로 다양한 형태의 오락이나 놀이를 찾는 사람을 묘사한다. 이 사람은 사실 지루할까봐 두려워서 다음에 무엇을 하면 재미를 느낄 수 있을지 끊임없이 고민한다. 코모이komoi라는 단어는 파티에서 끝없이 식사를 하거나 끊임없는 웃음과 유쾌함을 추구하는 사람을 의미할 수 있다. 확실히 웃음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다. 이 사람의 문제는 코미디, 가벼운 순간, 재미, 즐거움, 오락 또는 끊임없는 식사에 대한 욕구에 사로잡혀 있다는 것이다. 그는 다음 식사, 다음 레스토랑, 다음 영화, 다음 휴가를 위해 산다.

 

디모데후서 3:4에서 바울은 이런 종류의 쾌락주의가 마지막 날에 특히 만연한 문제가 될 것이라고 예언한다. 그는 마지막 날에 사람들이 “쾌락을 사랑”하게 될 것이라고 썼다. 이 단어는 헬라어 필레도노스philedonos에서 유래했는데, 이는 필로스philos와 헤도네hedone라는 단어의 합성어다. 필로스philos는 사랑한다는 뜻이고, 헤도네hedone는 달콤한 맛, 즐겁고 즐거운 것을 의미한다. 고대 헬라에서 이는 쾌락의 고양을 의미했으며, 특히 자신을 성적으로 표현하는 자유를 의미했다. 당사자들이 동의하는 한 모든 성적 표현은 허용되었다. 즉 고대 그리스는 쾌락주의가 지배하던 시대에는 도덕적 기준이 없었다는 것이다. 신약에서 헤도네hedone라는 단어가 다섯 번 사용되었는데, 이 단어는 육체적 쾌락을 제한 없이 추구하는 것을 묘사하는 데 나쁜 의미로 사용되었다.

 

바울은 필레도노스philedonos(“쾌락을 사랑하는 자”)라는 단어를 사용하여 마지막 날에 사람들이 쾌락, 즉 식사, 파티, 오락에 사로잡힐 것이라고 분명히 말한다. 그들은 지루함을 완화하기 위한 새로운 방법에 몰두할 것이다. 인생은 너무 부드럽고 사치스러워져서 사람들은 과식하고, 게으르고, 부당하게 직장을 쉬고, 돈을 빌리고, 의심스러운 도덕적 행동을 허용하게 될 것이다. 동시에 이것이 정상적이고 용인되는 삶의 방식이라고 생각한다.

 

이제 바울이 갈라디아서 5:19-21에서 육체의 일 목록에 “방탕”을 포함시킨 이유를 아는가? 육체는 책임을 회피하고, 재미를 즐기며, 삶의 진지함을 피하고 싶어한다. 당신의 육체가 당신을 이끌도록 내버려둔다면 그것은 영원하지 않은 일에 당신의 시간, 재능, 에너지를 낭비하게 될 것이다. 당신은 텔레비전을 보고, 영화를 보고, 식당에서 식사를 하면서 모든 시간을 보내게 될 것이다. 그리고 결국에는 엄청난 신용카드 빚 외에는 보여줄 것이 아무것도 없을 것이다. 어느 날 당신은 신용 카드 청구서를 손에 쥐고 잠시 찰나의 즐거움 때문에 빚을 지고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될 것이다. 그 모든 육적인 추구가 정말로 당신이 앞으로 몇 년 동안 살아가야 하는 빚의 노예 생활을 할 만한 가치가 있었는가?

 

여러분도 알다시피, 육체가 여러분에게 하고 싶어하는 것이 바로 그것이다. “자, 이렇게 하면 기분이 너무 좋을 것 같다. 아마 그렇게 하면 안 된다는 것이 사실이지만, 한 번만 더 해도 괜찮을 것이다. 게다가 또 무슨 일을 해야 해? 집에서는 할 일이 없어!”

 

사실은 집에서 할 일이 너무 많다! 당신은 성경을 읽고 있을 수도 있다. 자녀와 놀아주기, 형제자매들과의 관계를 발전시키라. 이웃을 방문하라. 교회의 특정 지역에서 봉사하기 위해 자원 봉사하는 것, 마당을 쓸고, 요리 배우기, 차고 청소, 또는 책을 읽고 마음을 발전 시키라. 귀하와 가족의 건강을 위해 귀하가 할 수 있는 일이 많이 있다!

 

그래서 다음에 당신의 육체가 “할 일이 없어! 너무 지루해!"라고 말하면 차고 내부를 살펴보라. 뒷마당의 상태를 확인하라. 아니면 옷장을 들여다보라. 지루함을 피하기 위해 할 일이 많다는 것을 알게 될 것 같다! 이런 일을 하면 육체가 움츠러들지만 나중에는 챔피언이 된 기분을 느끼게 될 것이다! 필요하지 않은 물건을 더 많이 사느라 빚을 지지 않아도 되니 기분이 너무 좋아질 것이다. 중요하지 않은 일에 귀중한 시간을 낭비하지 않은 것에 대해 매우 감사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당신은 오랫동안 관심을 필요로 했던 일을 성취한 것에 대해 큰 승리감을 느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