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퍼런스/모세

성막을 건축함 (12)

Hernhut 2018. 2. 7. 21:35

연결하는 막대기

 

성막은 구약성경 전체에서 우리 그리스도에 대한 가장 완벽한 그림이요, 그분의 완전한 구원의 그림이다. 그분은 개인적으로, 또 단체적으로 우리를 구원하고 계신다.

 

널판과 그 밑받침

 

성막의 널판을 생각해 보라. 널판은 4.572m로 꼭 10큐빗 높이다(26:16). 우리가 영적으로 다르게 성장할지라도 우리가 그분께서 우리에게 주신 은혜에 따라 자라고 있는 한 하나님은 완전한 10큐빗으로 우리 각자를 보신다. 그분은 우리를 금으로 덮으시고 우리가 그분의 성막 안으로 건축될 자격이 있다는 것을 설명하신다.

그러고 나서 각 널판에 있는 은 밑받침을 생각해 보라(26:19). 우리는 각 밑받침이 두 널판을 맞댄다면 성막이 더 튼튼해 질 것이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이것은 하나님의 방식이 아니다. 그분은 서로에게 한 쌍의 밑받침을 각 널판에 주셨다. 내가 또 다른 형제와 밑받침을 공유했다면 나는 내가 모든 영광을 취했지만, 모든 책임은 그에게 넘어갈 수 있다. 하지만 사도 바울은 기록했다.

오직 각 사람은 자기 일을 입증할지니라. 그리하면 그는 다른 사람이 아니라 자기 안에서만 기쁨을 누리리니 이는 각 사람이 자기 짐을 져야 할 것이기 때문이라.”(6:4-5)

내가 다른 사람들과 연합했을지라도 나는 내 밑받침에 서고, 내 사역을 책임져야 한다.

우리가 보았던 것처럼 각 널판이 단지 1.5큐빗인 것은 우리가 우리와 함께 3큐빗이 되게 할 또 다른 형제와 자매가 필요하다는 것을 가리킨다. 1.5큐빗 널판은 성막을 산출하지 못할 것이다. 하지만 우리가 주님 앞에 설 때 우리는 우리 밑받침 위에 각자가 설 것이다. 놋 널판이 바깥뜰 주변 벽에 사용된 것과 다르게 이 밑받침은 은으로 되어 있다. 이것은 우리가 하나님의 심판에 임하는 것을 의미하지 않고 그분의 구속에 섬을 의미한다. 아무것도 우리를 저항할 수 없다. 사탄이 우리를 비난하고 조롱할지라도 우리는 우리가 서 있을 그리스도의 구속에 그를 보낼 수 있다. 우리가 그리스도의 구속에 머무는 한 하나님은 우리를 자라게 하고, 발전하게 하실 것이다.

 

가로 막대기들

 

너는 시팀나무로 가로 막대기들을 만들되 성막의 이쪽 면의 널빤지들에 쓰기 위해 다섯 개, 성막의 저쪽 면의 널빤지들에 쓰기 위해 다섯 개, 서쪽을 향한 두 면을 위해, 성막의 면의 널빤지들에 쓰기 위해 다섯 개를 만들지니라. 널빤지들 한가운데 있는 중간 가로 막대기가 이 끝에서 저 끝에 이르게 하고 널빤지들을 금으로 입히며 가로 막대기들을 넣을 자리로 그것들의 금 고리들을 만들고 그 가로 막대기들을 금으로 입힐지니라.”(26:26-29)

하나님은 서로 널판을 지탱하도록 금을 입인 아카시아 나무 막대기를 만들게 모세에게 지시하셨다. 그는 각 면에 막대기 5, 뒷면에도 5개의 막대기를 만들어야 했다. 5개의 막대기 세트는 한 막대기로만 끝에서부터 끝까지 이르러야 했다. 이 막대기는 길었고, 특별히 두 면에 있는 막대기는 20큐빗이나 9.144m가 되어야 했을 것이다. 이 막대기는 모든 것이 함께 연결되게 하는 그리스도를 대표한다(1:17).

놀랍게도 나머지 4개의 막대기의 길이가 제시되지 않았다. 성막의 나머지 부분에 주어진 세부사항을 생각하면 이 누락이 중요하다. 이 막대기가 10큐빗으로 모두 같다면 상하 모두 각각 중앙에서 만날 것이고, 벽에 흠집을 만들 것이다. 그 막대기들이 다른 길이였다면 각 쌍이 다른 위치에서 만날 수 있고, 더 다른 벽을 만들 것이다. 그 이후에 성경이 말하고 있지 않기 때문에 우리는 추측만 할 수 있다.

 

우리는 막대기들이다.

 

성경에서 숫자 4는 하나님의 창조, 특히 사람을 대표하기 때문에 더 짧은 4개의 막대기는 교회를 건축하는 데 그리스도와 함께 수고하는 우리를 대표한다. 우리는 온 벽을 덮을 만큼 긴 막대기가 될 수 없다. 그것은 그리스도만이 자격이 있으시다. 하지만 우리가 조그맣다면 우리 각자는 함께 어떤 널판을 덮는 막대기가 되기를 갈망해야 한다.

은사를 받고, 성숙한 어떤 이들은 더 긴 막대기다. 그들은 함께 교회를 지키고, 성도들을 돕는다. 그들의 가르침, 목양, 본으로 많은 이들이 교회 생활에서 그들의 위치를 찾을 수 있었고, 지켰다. 그들이 없었다면 교회의 벽은 약해졌을 것이고, 어떤 젊은이들은 멀리 떠났을 것이다. 하지만 그들의 수고까지도 그리스도의 막대기만이 성막의 모든 길이이기 때문에 그리스도를 의지해야 한다. 교회는 사람들에 의해 유지된 단체가 될 수 없다. 그들의 막대기가 아무리 길어도 그들은 그리스도를 절대 대체할 수 없다.

숫자 4는 하나님께서 교회의 널판을 연결하는 우리, 구속받은 이들, 쓰임 받는 이들을 말한다. 그분은 우리를 쓰시기 원하신다. 우리는 얼마나 많은 널판을 우리가 연결해야 할지를 물어야 한다. 우리가 어떤 널판을 함께 붙잡지 않는다면 우리가 얼마나 긴지는 문제가 아니다. 우리는 풍성한 사역을 할 수 있거나, 사역이 무엇인지를 모르는 이가 믿을 수 있지만, 질문은 같은 것이다. 우리가 함께 어떤 널판을 붙잡고 있는가?

 

막대기들의 필요

 

오랜 동안 교회 생활을 한 사람들은 그들에게 막대기였던 이들을 볼 수 있고, 명성이 있다. 그들 때문에 우리가 지금까지 여기에 있다. 어쩌면 그들이 형제들과 자매들의 집을 돌봄으로 우리가 그 안에 있었고, 이들은 분쟁과 혼란을 겪을 때마다 교회에서나 많은 이들과 우리에게 봉사하거나 커피를 마시면서 담소를 나누었다. 그들은 우리가 속마음을 털어놓고 함께 울 수 있었던 이들이었다. 그들은 우리가 가장 필요로 할 때 하나님께서 교회로 우리를 연결하게 하신 막대기였다. 필시 서서히 사라진 이들은 그들과 계속 연결할 막대기가 없다.

교회 생활은 다른 인종, 다른 언어, 다른 문화의 사람들이 있다. 가끔 이러한 사람들이 함께하기가 어렵다. 아마도 그들은 심지어 서로 음식을 먹을 수도 없다. 그들은 함께 그들과 함께하고, 연결하는 막대기가 필요하다. 서로에게 막대기가 되면 갑자기 다른 것이 사라진다. 그들은 그들이 모두 같은 삶을 나누고, 같은 증거를 전달하고, 같은 영적 전쟁을 하고, 같은 목적을 갖게 된다는 것을 발견한다. 그런 후 교회 생활은 달콤하게 된다.

오늘날 우리가 다른 사람들에게 이와 같은 막대기가 되려고 하는 열망이 정말 필요하다. 어쩌면 우리가 많은 사람을 함께 붙잡을 수 없지만 우리는 두세 사람은 붙잡을 수는 있다. 하나님은 성막을 디자인하시는데 지혜로우셨다. 가장 긴 막대기는 그리스도이시지만 유일한 막대기가 아니시다. 성막은 각 면에 다양한 길이의 막대기가 더 필요했다. 우리가 젊은 성도들을 그리스도에게만 맡기고 돌보지 않는다면 여지 없이 어떤 일이 일어날 것이다. 급기야, 그리스도께서 말씀하셨다.

내가 내 교회를 세우리라”(16:18)

그분의 막대기는 없어서는 안 된다. 그렇지만 바울은 그리스도께서 함께 몸을 붙잡는다고 기록했다.

그분으로부터 온 몸이 각 부분의 분량 안에서의 효력 있는 일에 따라 모든 마디가 공급하는 것에 의해 꼭 맞게 함께 결합되고 들어차서 몸을 자라게 하여 사랑 안에서 스스로를 세우느니라.”(4:16)

하나님은 우리가 몸의 성장과 교회를 건축하도록 하신다. 막대기가 얼마나 필요한지!

우리가 교회에 있는 널판이지만 우리는 또한 막대기가 되어야 한다. 우리가 쓰일 막대기가 되기에 너무 짧다는 것을 느낄 수 있는데 하나님은 의도적으로 일정한 크기로 막대기를 제한하지 않으셨다. 우리 모두 자격이 있을 수 있기 때문에 하나님은 제한하지 않으셨다. 우리는 적어도 우리 바로 옆에 있는 널판을 붙잡을 수 있다. 여러분의 동역자를 세워라. 그런 다음 여러분은 모든 시련, 고난, 어려움도 서로 붙잡아 줄 수 있다.

 

초퍼(Choppers)

막대기가 아닌 사람은 종종 나누고, 가르는 사람이다. 다른 사람들을 붙잡고 있는 대신에 그들을 조각조각 낸다. 두 형제가 어려운 일을 당하고, 그들 중 하나가 돕기 위해 이와 같은 초퍼로 오면서 그는 난 다른 형제가 특이하다는 것을 알았어. 형제가 내 조언을 원한다면 그저 그를 피할 거야.” 초퍼는 그리스도께로 다른 사람을 데려오는 방법을 모른다. 그들은 교회에서 그들의 기질과 기호를 바탕으로 나누고, 파당을 만든다.

가끔 다른 언어를 사용하는 성도들이 따로따로 모이도록 한다. 이렇게 하는 것은 모든 사람이 주님을 누리는데 더 자유로울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아무도 다른 사람을 경멸하는 한 무리를 만들지 말아야 한다. 교회에서 사람들을 경멸하는 사람들을 만드는 것은 막대기보다도 초퍼를 갖는 결과가 될 것이다. 막대기는 우리가 그리스도에 의해 구속된 모든 이들로 구성된 한 교회라는 것을 안다. 언어와 문화의 다름은 중요하지 않다. 오직 성도들 안에 계신 그리스도만이 가치가 있으시다.

 

막대기들이 되는 가치

 

교회에 막대기가 있다면 젊은이들이 노인들의 말을 지지하기도 하고, 가난한 이들이 돕고, 학력이 없는 이들을 교육하고, 육식주의와 함께 채식주의자들이 먹을 수 있다. 바울은 교회에 말을 했다.

거기에는 유대인이나 그리스인이 없고 매인 자나 자유로운 자가 없으며 남자나 여자가 없나니 너희는 다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서 하나이니라.”(3:28).

또 그는 다시 말했다.

거기에는 그리스인이나 유대인이나 할례자나 무할례자나 바바리인이나 스구디아인이나 매인 자나 자유로운 자가 없나니 오직 그리스도만이 모든 것이요 모든 것 안에 계시느니라.”(3:11).

이와 같은 교회 생활은 함께할 막대기를 요구한다.

막대기들은 노래를 부르고, 성경구절을 읽고, 간증하는 방법을 안다. 막대기들은 모든 것을 함께 한다. 막대기들은 가까운 이들이 모이는 모임에서와 교제가 없는 모임에서 노래하고, 성경구절을 읽고, 간증한다. 막대기들은 그리스도께로 사람들을 데려오는 방법을 안다. 차이가 있는 것은 우리에게 문제가 되지 않는다. 우리는 모두 은혜로 구원받은 죄인들이다. 그리스도의 몸, 즉 교회의 교제 안으로 하나님에 의해 부르심을 받은 이들이다.

막대기들은 길거나 짧을 수 있다. 하지만 그들은 항상 금으로 덮여있다. 그들의 천연적인 능력은 일하지 않는다. 그들은 신성한 어떤 것이 있다. 그들의 수고를 통해 널판들이 함께 연결된다. 그들 때문에 교회 생활은 편안하고 평화롭다. 성도들은 그들의 다름에도 불구하고 서로 사랑할 수 있다. 막대기가 있는 교회가 얼마나 축복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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