빵과 음료/복음칼럼

요셉의 삶- 정직했지만 그는 멸시 받았다.

Hernhut 2014. 7. 16. 13:00

 

많은 사람들은 요셉이 형제들에게 꿈꾼 것을 말한 것이 지혜롭지 않은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들이 생각하는 방식에 따르면 우리가 비전을 가지고 있다면 우리는 다른 사람들에게 말하지 말고 자신만 그 비전을 품고 있어야 합니다.

 

왜 그 비전이 이슈가 되도록 선포합니까? 형제들에게 말한 요셉이 진전으로 지혜롭지 못했나요? 아닙니다. 파라오조차도 요셉 안에 신성한 영이 있었음을 인정하며, “.......너와 같이 사려 깊고 지혜로운 자가 없도다.”(41:38~39)라고 말했습니다. 요셉은 파라오의 왕국 이집트를 다스릴 수 있었습니다. 그는 어리석지 않았고, 그냥 정직했습니다.

 

우리가 우리 교회생활에서 규모가 작은 무리를 다스리기 쉽습니다. 우리는 교회 안에서 사람들이 행복하고 만족하도록 하기 위해 허리를 굽히고 낮출 수 있습니다. 우리가 모든 사람들을 기쁘게 하기 원하기 때문에 우리는 복잡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비전이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비전을 표현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어떤 느낌을 가지고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습니다.

 

교회생활에서 우리는 교제와 복종이 필요합니다. 우리가 교제할 뿐 순종할 수 없다면 우리는 소용없습니다. 우리가 순종뿐이고 교제를 하지 않으면 역시 우리는 소용없습니다. 성경은 우리에게 너희 지도자들에게 순종하고 그들에게 복종하라.”(13:17)고 말합니다. 하지만 그것은 우리가 그들과 교제 없이 맹목적으로 다른 사람들을 따라야 한다는 의미가 아닙니다. 맹목적으로 따르는 것은 순종이 아닙니다. 우리는 교제하고, 마음을 열고, 복잡해지지 않는 것, 우리 마음에 있는 것을 말하는 것을 배워야 합니다. 우리는 서로에게 솔직하고, 단순해지는 것을 배워야 합니다. 우리는 우리가 말할 용기가 없거나 어떤 것을 할 용기가 없어질 정도로 다른 사람들이 기분 상하게 하는 것을 두려워하지 말아야 합니다. 우리는 우리 마음에 있는 것을 말해야 하지만 고집부리거나 주장하지 말아야 합니다. 우리의 몫은 단순하게 교제하는 것입니다. 평안은 주님께 달려있습니다.

 

베드로가 안디옥에 있을 때 그와 다른 유대인들이 이방인들과 함께 먹는 것을 분리하여 이방인들과 함께 먹기를 꺼려했습니다. 베드로는 예루살렘에 있는 신망 있는 유대인들에게 멸시받는 것을 두려워했습니다. 바울은 베드로의 위선을 보았을 때 그를 강하게 꾸짖었습니다. 베드로는 복음진리에 관해 단순해지지 않았었습니다(2:14). 우리는 정직하기를 배워야 합니다. 우리가 멸시 받는 것을 두려워하여 조금 허리를 굽히기 쉽습니다. 바울과 마찬가지로 우리는 다만 우리는 [하나님]의 허락을 받아 복음을 위탁받은 대로 말하노니 이것은 사람들을 기쁘게 하려 함이 아니요 오직 우리의 마음을 시험하시는 [하나님]을 기쁘게 하려 함이라.”(살전 2:4)고 말해야 합니다.

 

우리가 가짐 것이 주님으로부터 온 것이라고 느낀다면 우리는 그것에 관심 갖는 사람들과 교제하기를 두려워하지 말아야 합니다. 이 교제의 결과가 우리가 소망하는 것에 미치지 못한다면 우리는 괄시를 받습니다. 그래도 우리는 값을 지불해야 하고, 복잡하지 않게 말을 해야 하고, 순교자의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죽으면 죽으리라.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를 원한다.”는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이런 마음 없이 우리는 주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것과 해방 받는 방법을 아는 것을 파묻을 것입니다. 우리가 순교자적인 마음이 없다면 주님은 우리를 통해 그분의 뜻을 이루시고, 그분의 갈망을 채우실 수 없으실 것입니다.

 

단순해지는 것은 우리와 온 교회가 축복을 받는 방법입니다. 하지만 우리가 정직할 때 괄시 받을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합니다. 요셉은 그의 꿈을 자신의 형제들에게 말한 후에 팔렸습니다. 예수께서 서기관, 바리새인, 위선자들이여, 너희에게 화가 있으라.”(23:13)고 말씀하시지 않으셨다면 그분은 죽음을 당하시지 않으셨을 것입니다. 예수께서 멸시받는 것을 피하셨다면 그분은 바리새인들의 법과 전통을 계속해서 따랐어야 하셨습니다. 아마 그분은 그분을 사랑한 사람들의 생명공급과 누림이 되시지 않으셨을 것입니다. 하지만 예수께서 정직하셨기 때문에 그분은 그분께서 꾸짖으신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에 의해 죽임을 당하셨습니다. 우리가 정직한 사람이라면 우리는 멸시받을 준비를 해야 합니다.

 

이처럼 단순해지는 것은 생명의 문제입니다. 우리는 고의로 사람들을 상처를 주거나 화나게 하려고 사람들을 꾸짖지 말아야 합니다. 이것은 정직한 것이 아니라 육체적인 것입니다. 우리가 주님으로부터 온 어떤 것이 있다면 우리는 그것을 말하기를 두려워하지 말아야 합니다. 우리가 말하는 것이 다른 사람들에게 빛을 보여줍니다. 하지만 우리가 정직하게 말을 할 때 멸시받을 준비를 해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