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퍼런스/가정건축가

언약은 예전의 언약이 아니다.#4

Hernhut 2012. 12. 30. 20:56

언약은 예전의 언약이 아니다.#4

by Hernhut yh. Sung

 

수년전 아내와 내가 여권을 신청하기 위해 법원에서 기다리고 있었는데 우리는 그 날 대번 결혼신고를 하려고 그곳에 와 있었던 남자와 여자를 알아봤습니다. 거기에는 여러분이 공기 중에 있는 모든 전류를 보는 것처럼 계속해서 키스, 포옹, 미소, 사랑에 대한 말을 아주 많이 하고 있었습니다.

 

그에 반해서 또 다른 선 옆에 서 있는 사람은 이혼을 위해 서류를 작성하고 있던 여자였고, 그녀 바로 옆의 또 다른 여자 역시 이혼 서류를 작성하고 있었습니다. 그들 주변의 공기는 사랑과 낙천적인 것이 아닌 어떤 것들로 가득했습니다. 그들이 내뱉었던 말과 표정에 완연했던 것으로 보아 그런 것들이 그들을 크게 상처를 받게 하고 화나게 했던 것이었습니다.

 

아내와 나는 이 사람들이 같은 방에서 내뿜고 있었던 다른 형태의 에너지 충돌로 인한 심한 뇌우(雷雨)가 법원 코앞에서 분출되지 않았다는 것이 놀랍다고 말했습니다. 이 모든 사람들의 표정에서 다른 상황들을 보게 되었다는 것이 얼마나 비극이었던지 표현을 할 수 없습니다. 결혼에 들어섰던 초자 부부는 그들의 꿈이 달성되고 있었던 것처럼 확실히 아주 기뻐하고 있었습니다. 다른 부부는 그들의 꿈이 산산조각이 되어 나타난 것처럼 완전히 제정신이 아니었습니다. 그들 각각의 부부의 주변에 있는 공기들을 우리는 볼 필요가 있습니다.

 

이혼을 하고 있었던 부부가 이혼하려고 줄을 서고 있으리라는 엉뚱한 생각을 그들의 결혼식 날에 절대로 상상하지 않을 것이라고 확신합니다. 정말 많은 기쁨과 열정, 환희와 같은 것이 이렇게 완전히 슬프고 고통스러운 상황으로 바뀌기 시작할 것이라는 것을 어떻게 상상할 수 있을까요? 우리가 염려했던 일이 일어났을까요? 비극적으로 많은 일이 일어날 수 있습니다. 우리가 헤아리는 것보다 더 많은 사람들에게 사실로 나타납니다. 여전히 우리 주변에 사는 사람들이 계속해서 결혼을 하고 또 이혼을 합니다. 하지만 특별하게 괴로운 것은 “그리스도인”이 되기를 주장하는 사람들이 그리스도에 대한 가치를 주장하지 않는 자들과 거의 같은 비율로 결혼하고 또 이혼을 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왜 그런지 궁금해 할 것입니다. 우리가 추측하는 많은 사람들, 많은 이유는 최근에 올라가고 있는 이혼율을 보는 것처럼 결혼의 약속이 예전의 약속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것은 분명하게도 결코 성경적인 기준이 아닌 것입니다.

 

우리가 “우리가 죽어서 이별할 때까지”라는 우리의 결혼서약을 실행하는 것에 있어서 우리의 약속을 계속해서 유지하려고 하는 것에 무슨 일이 일어나는 것입니까? 우리가 “예면 예”하고 “아니면 아니라”하라고 성경에서 말합니다. 우리는 우리의 배우자에 대한 우리의 서약에 다짐했을 뿐만 아니라 하나님께도 다짐했다는 것을 기억하여 약속을 지키는 자들이 되도록 해야 하며, 그 일로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믿는 자들로 불리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과 서로에게 한 약속, “죽어서 이별할 할 때까지”라는 약속을 실천하겠다는 약속에 무슨 일이 일어났습니까? 우리의 백년가약만으로 “우리가 사랑을 끝낼 때까지” 살아가도록 하고 있습니까? 아니면 그리스도인 믿음이 믿어지는 것 외의 것으로 “우리가 증오하기 시작할 때까지” 살아가고 있습니까? 우리의 결혼이 자신들의 것과 아주 많이 다르지 않다는 것을 보여줄 때 그들은 어떻게 우리가 “서로에게 보여주는 사랑”으로 사는 그리스도인이라는 것을 알까요? 나는 일찍이 데니스 뤠이니의 “한 번에 한집씩 세우기”라는 책을 읽은 적이 있습니다. 그는 그 책에 “결혼은 개인만이 가진 체험, 여기저기 너부러진 혼전계약서들, 또 ‘일을 하지 않으면 너는 항상 곤경에 빠지지 않을 수 있어! 항상 내가 할게!’라고 하는 대신하려는 태도가 아니다. 결혼은 여러분 둘만이 오랫동안 사랑해야 한다는 사회적 계약도 아니다. 결혼은 일생동안의 한 남자와 한 여자 그리고 그들의 하나님 사이에 있는 신성한 약속이다. 결혼은 여러분이 새로운 가정구성단위를 구성함으로 여러분의 배우자와 관계를 맺을 공식적인 언약이다. 결혼의 언약을 포함하고 있는 어떤 언약은 무겁고 중요한 의무로 묶여있다. 우리가 읽는 잠언 20:25절은 {함부로 이 물건을 거룩하다 하여 서원하고 그 후에 살피면 그것이 그물이 되느니라} 말하고 있고 하나님은 ‘나는 이혼을 미워한다.’(말 2:16)고 말씀하신다. 주님은 이런 말씀을 하셨을 때 서슴지 않으셨다. 우리 각자가 결혼에 대한 하나님의 신성하신 관점, 그분께서 이혼에 대한 몹시 증오하신다는 것을 수용하고 선포할 때다.”라고 했습니다.

 

데니스와 바바라 레이니는 “부부를 위한 함께하는 순간들”에서 결혼생활의 약속에 대한 우리의 관점을 부축합니다. “우리는 약속에 대한 사실적인 의미를 부활시킬 필요가 있다. 이것은 저칼로리 맥주, 시럽, 샐러드 드레싱의 시대에 우리가 저칼로리의 약속을 전람하는 것 역시 이상한 것이 아니다. 하지만 그리스도인들의 약속은 하나님께 하는 약속이요, 신성한 맹세다. 가장 좋은 시간과 가장 나쁜 시간을 꿋꿋하게 견뎌내는 이는 두 사람이지 그만두는 사람이 아닐 것이다. 남편과 아내는 꿋꿋하게 견뎌내는 것이 그만두는 것보다 문제들을 통해서 더 많은 보람 있는 일이라는 것을 찾는다. 우리는 그들의 동료들과 대중매체가 이혼이 보편화 되고 넓어진다고 하는 거짓을 계속적으로 밝혀내는 동안 약속에 대한 참된 의미를 우리 아이들에게 전수할 필요가 있다. 사람들은 하나님께서 또 다른 인간에게 맹세나 약속을 채우려고 하는 작은 이유를 가지고 계시는 것에 대해 이혼을 하는 남편이나 아내의 궁극적인 책임과 부담을 이해하지 못한다.”고 말했습니다.

 

우리 모두가 결혼을 생각하는 자들을 도우려고 활동하기 원하는 그리스도인 공동체와 함께 손을 잡는 것이 우리의 기도입니다. 이 기도에는 그들이 결혼을 할 때 그들의 아이들과 그들이 충돌하고 있는 계약적인 약속을 진실로 이해하는 것에 대해 확실하게 할 수 있도록 하는 것, 느긋해지는 것을 포함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우리가 시간이 더 걸린다고 여러분들에게 강조할 수 있는 것들을 모두 행하기를 기도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의도하신 것처럼 여러분이 죽을 때까지 결혼에 대한 계약적인 약속을 실행할 수 있도록 하고, 여러분 의도대로 스스로 가능한 한 가장 좋은 방법으로 준비하도록 기도해야 합니다.

 

여러분이 결혼을 생각하고 있다면 여러분이 틀림없이 도전 이상의 것을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여러분이 결혼을 위해 접근하는 것에 대해 적용시키기를 기뻐하십시오. 세상이 말하는 것을 모방하여 여러분의 결혼의 약속으로 삼는 것을 중지하십시오. 이것은 좋은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해야 하는 아주 중요한 결혼에 대한 약속을 취하십니다.

 

여러분의 행동이 “주님께 하는 대로” 행하고 있는 것처럼 여러분의 배우자와 서로 교통하는 방법을 보기를 기도해야 합니다. 여러분은 여러분의 계약적인 결혼 약속을 충실하게 실행하도록 기도해야 합니다. 여기에는 여러분의 말과 행동으로 배우자에게 보여주는 것이 중요하고 서로에게 하나님의 약속을 지키는 자들이라는 것을 보여 주어야 합니다. 또한 여러분의 배우자와 여러분의 영향력이 미치는 자에게 성경이 있든지 없든지 복음으로 교통할 필요가 있습니다.

 

 

 

  

결혼은 서로 사랑하는 배우자와의 약속의 시작이다.

그 약속은 유리잔과 같다.

유리잔을 잘 붙잡지 아니하면 손에서 떨어지는 순간

산산히 부서져 버린다.

약속은 사랑을 바탕에 두고 약속이라는 구조물을 건축하는 것과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