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나 왕은 얼굴을 가리고 큰 소리로 외쳤습니다. 「내 아들 압살롬아! 압살롬아, 내 아들아, 내 아들아!」』(사무엘하 19:4)
우리는 마지막으로 사무엘하 18장에서 다윗이 반역한 아들 압살롬의 죽음으로 인한 고통에 가득 차 있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사무엘하 19장에서도 그 고통은 계속되었습니다. 사무엘하 18장에서 다윗은 계속해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내 아들 압살롬아! 압살롬아, 내 아들아, 내 아들아!』 다윗은 이 노래를 부르는 것을 멈출 수 없었습니다. 나중에 사무엘하 19장에서 하나님은 요압을 보내 다윗을 이 늪에서 건져내셨고, 요압은 특유의 솔직한 방식으로 그렇게 했습니다. 우리는 다윗의 딜레마를 슬픔과 감정을 어떻게 다스려야 하는지 보여주는 사례로 볼 수 있습니다.
첫째, 다윗의 문제는 그가 관점의 부족에 얽매여 있었다는 것입니다. 다윗은 압살롬이 죽었다는 것을 알았고, 어떤 면에서는 (주로 그의 잘못된 양육 방식과 압살롬에게 가해진 자신의 죄악을 통해) 책임을 공유했습니다. 이는 사실이고 슬퍼할 만한 일이었지만, 이 상황에서 볼 수 있는 것은 그것 뿐이 아니었습니다.
다윗의 문제는 그가 무엇을 알고 있었는지에 있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는 압살롬의 비극적인 죽음과 그 안에서 다윗이 어떤 역할을 했는지 알고 있었습니다. 다윗의 문제는 그가 무엇을 잊었는지에 있었습니다.
– 다윗은 하나님께서 여전히 우리를 통제하고 계심을 잊었습니다.
– 다윗은 위대한 승리를 거두었다는 사실을 잊었습니다.
– 다윗은 다윗에게 충성스러운 지지자들이 많았다는 사실을 잊었습니다.
– 다윗은 하나님께서 다윗에게 큰 은혜와 자비를 베푸셨다는 사실을 잊었습니다.
누군가가 비극이나 슬픔에 휩싸일 때, 우리는 종종 문제가 그들이 아는 것이 아니라 잊는 것에 있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데이비드는 더 정확한 관점, 즉 좋은 것과 나쁜 것을 모두 볼 수 있는 관점이 필요했습니다.
둘째, 이 시점에서 다윗은 자신의 감정에 지배당했습니다. 하나님은 결코 감정이 우리를 지배하도록 의도하지 않으셨습니다. 물론 하나님은 감정을 반대하지 않으십니다.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에서 깊고 심오한 감정과 경험이 부족합니다. 동시에, 감정은 결코 우리 삶의 방향을 정하도록 의도된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 앞에서 우리 삶에서 감정과 슬픔은 중요하고 정당한 위치를 차지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이 감정을 지닌 존재임을 압니다. 이는 우리에게 하나님 아버지를 완벽하게 나타내신 예수님의 삶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감정을 드러내시는 분이셨습니다. 마가복음 3:5; 누가복음 10:21; 19:41; 요한복음 11:35을 보십시오.
감정이 우리 삶의 방향을 결정하게 되면, 우리는 감정에 대해 이기적이 될 수 있습니다. 우리는 매 순간 자신의 감정에 집중하며 자기중심적인 삶을 살기 시작할 수 있습니다. 또한, 다른 사람들이 우리의 감정을 『고쳐주지』 않고, 매 순간 우리의 기분을 나아지게 해주지 않는다고 원망할 수도 있습니다.
이번 주, 하나님께 삶의 전체적인 그림을 볼 수 있도록 도와달라고 기도하세요. 눈에 보이는 것 때문에 슬픔에 잠길 수도 있지만, 아직 보지 못하는 현실이 당신의 관점을 바꿀 수도 있습니다. 그렇다면 하나님께 감정을 올바른 관점에서 바라보고, 하나님 앞에서 그 감정이 당신의 삶에서 마땅히 있어야 할 자리를 차지할 수 있도록 도와달라고 기도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