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
그리스도의 재림, 두 번째 오심, 또는 강림은 세상 끝에 그리스도께서 이 땅에 다시 오시는 것을 가리킵니다. 이 재림은 그분께서 최후의 심판과 구원을 가져오기 위해 구름을 타고 하늘에서 내려오실 때, 눈에 보이는 육신으로 나타날 것입니다.
요약
신약성경은 재림 교리를 확립합니다. 예수님은 영광 가운데서 미래에 오실 자신의 재림을 언급하십니다. 신약성경에는 『재림』 또는 『두 번째 강림』이라는 용어가 나오지 않지만, 그리스도의 재림을 지칭하는 데 사용되는 여러 명사와 동사가 있습니다. 재림은 눈에 보이고, 임박하며, 최종적입니다. 믿는 자들이 그분의 재림에 대한 소망을 품는 것은 그분의 승리와 죄에서 단번에 구원받아 순수하고 불멸하며 썩지 않는 영광스러운 부활의 몸을 갖게 될 것이라는 확신을 줍니다(고린도전서 15:35-49). 그러므로 재림은 믿는 자들이 매일매일 깨어 준비하고 있는 태도로 살아가는 방식에 시사하는 바가 있습니다.
서론
그리스도의 재림 교리는 세상 끝에 그리스도께서 이 땅에 다시 오실 것을 가리킵니다. 이 재림은 그분께서 구름을 타고 하늘에서 내려오시어 최후의 심판과 구원을 가져오실 때, 눈에 보이는 물리적인 모습으로 나타날 것입니다. 이는 구약에서 주님의 큰 날과 자주 연관되며, 그리스도께서 승리와 영광 가운데 만왕의 왕으로 오셔서 하나님과 그의 백성의 모든 원수들을 물리치실 것을 예언하는 그리스도 예언과 일치합니다. 신약은 주로 그리스도의 첫 번째 강림과 죄 없는 희생양으로 오셔서 죄를 속죄하시고 새 언약을 시작하심으로써 그분을 믿는 믿음을 통해 구원을 베푸신 예수님의 사역, 죽음, 부활, 승천에 초점을 맞춥니다. 신약은 또한 만물과 모든 역사를 올바른 종결로 이끌기 위해 다시 오실 그리스도의 재림에 대한 수많은 언급을 담고 있습니다. 이 글은 재림과 관련된 신약 성경의 주요 구절과 용어들을 살펴보고, 그리스도의 재림의 본질에 대한 결론을 도출하고 이 교리의 함의를 조명해 볼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재림을 언급하는 신약 용어와 구절들
신약 성경은 재림 교리를 명확하게 확립합니다. 예수님은 영광 가운데 장차 오실 자신의 재림을 언급하십니다. 또한 바울, 야고보, 베드로, 요한의 서신에서도 이 교리를 확증하고, 설명하고, 가르칩니다. 요한계시록은 예수님의 『곧』 재림을 예견하며 19장에서 영광스럽게 묘사합니다. 이것을 『재림』 또는 『두 번째 강림』이라는 제목으로 분류할 수 있지만, 신약 성경에서는 이러한 용어들을 사용하지 않습니다. 『재림』이라는 표현은 2세기 순교자 저스틴에게서 유래된 것으로 보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신약 성경은 재림을 다양한 방식과 용어로 언급합니다.
재림을 지칭하는 명사
신약성서에서 그리스도의 재림을 지칭하는 데 가장 흔히 사용되는 명사 중 하나는 파루시아parousia입니다(마태복음 24:3; 데살로니가전서 2:19; 3:13; 4:15; 5:23; 데살로니가후서 2:1, 8; 야고보서 5:7, 8; 베드로후서 3:4, 12; 요한일서 2:28). 이 용어의 기본 의미는 『임재』 또는 『도래』입니다. 일반적으로 사람들이 부재하는 것이 아니라 임재하게 되는 것을 의미하는 데 사용되지만(고린도후서 7:6, 7; 10:10; 빌립보서 1:26), 초기 교회에서는 종말에 그리스도의 재림을 지칭하는 전문 용어가 되었습니다. 고린도전서 15:20-26에서 바울은 그리스도의 재림(파루시아parousia) 때 믿는 자들이 죽음에서 부활할 미래에 대한 기대를 이렇게 설명합니다.
그러나 사실 그리스도께서는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사 잠자는 자들의 첫 열매가 되셨습니다. 사망이 사람으로 말미암았으니 죽은 자의 부활도 사람으로 말미암았느니라. 아담 안에서 모든 사람이 죽은 것 같이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사람이 삶을 얻으리라. 그러나 각각 자기 차례대로 되리니 먼저는 그리스도요 그 후에는 그의 재림(파루시아parousia) 때에 그리스도에게 속한 자들입니다. 그 후에는 마지막이니 그가 모든 통치와 모든 권세와 능력을 멸하시고 나라를 아버지 하나님께 바칠 때라 그가 모든 원수를 그의 발 아래 복종시킬 때까지 왕 노릇 해야 하리니 맨 나중에 멸망받을 원수는 사망이니라.
『그러나 그 날과 그 시간은 아무도 모르나니 하늘의 천사들도, 아들도 모르고 오직 아버지만 아시느니라. 노아의 때와 같이 인자의 임함[파루시아parousia]도 그러하리라. 홍수 전에 노아가 방주에 들어가는 날까지 사람들이 먹고 마시고 장가들고 시집가고 하면서 홍수가 나서 그들을 다 멸할 때까지 깨닫지 못하였음과 같이 인자의 임함[파루시아parousia]도 그러하리라』(마태복음 24:36-39).
이 문맥에서 사용된 인자의 임함은 종말론적이며, 그의 최종적인 재림을 가리킵니다. 흥미롭게도, 프톨레마이오스 시대부터 서기 2세기까지 파루시아parousia라는 단어는 방문하는 왕이나 중요한 인물의 도착을 가리키는 전문 용어였습니다. 파루시아parousia가 왕이 도시에 도착하는 것과 연관되어, 자연스럽게 만왕의 왕의 재림을 가리키는 가장 일반적인 용어가 되었습니다.
파루시아parousia가 재림을 가리키는 주된 명사이기는 하지만, 그 외에도 몇 가지 다른 용어들이 사용됩니다. 바울은 첫 번째 오심에 대해 『나타나심』(에피파네이아epiphaneia)이라는 용어를 한 번 사용했지만(디모데후서 1:10), 일반적으로 영광과 심판 가운데 재림하시는 것을 가리킵니다(데살로니가후서 2:8; 디모데전서 6:14; 4:1, 8; 디도서 2:13). 『나타나심』이라는 용어는 『계시』(아포칼립시스apokalypsis)와 밀접한 관련이 있으며, 이는 그리스도의 재림을 가리키는 데에도 사용됩니다(데살로니가전서 1:7; 고린도전서 1:7, 2; 베드로전서 1:7, 13; 4:13). 두 용어 모두 그분의 재림이 눈에 보이지 않는, 비밀스러운, 또는 단순히 우리 가운데 계신 그분의 영적인 임재와는 대조적으로, 눈에 보이는 것임을 강조합니다.
마지막으로, 그리스도의 재림은 단순히 『그 날』로 언급됩니다(로마서 13:12; 고린도전서 3:13; 히브리서 10:25). 그것은 종종 예수님의 재림이라는 것을 더 명확하게 나타내기 위해 『그리스도의 날』(빌립보서 1:10; 2:16), 『주의 날』(데살로니가전서 5:2; 데살로니가후서 2:2), 『주 예수의 날』(고린도전서 5:5; 고린도후서 1:14), 『예수 그리스도의 날』(빌립보서 1:6),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날』(고린도전서 1:8), 그리고 『하나님의 날』(베드로후서 3:12)과 같은 수식어와 함께 사용됩니다. 예수님께서 재림하시는 날에는 긍정적 측면과 부정적 측면이라는 양면이 있습니다. 믿는 자들에게는 이 날이 영광스러운 소망인 구원과 구속의 날입니다(빌립보서 1:6; 고린도전서 1:8; 디모데후서 1:12; 4:8; 에베소서 4:30). 그러나 믿지 않는 자들과 악한 자들에게는 심판과 진노의 날입니다(요한일서 4:17; 로마서 2:5, 16). 그분께 속한 자들은 그날을 준비하고 깨어 있을 것이지만, 믿지 않는 자들은 마치 밤에 도둑이 들이닥치듯 기습 공격을 받아 방심할 것입니다(데살로니가전서 5:2-11).
재림을 가리키는 동사
그리스도이신 예수님은 오랫동안 기다려온 약속된 분이셨으며, 그분의 재림은 이제 두 번의 뚜렷한 재림으로 이해됩니다. 따라서 그분의 첫 번째 재림을 언급할 때 그분을 『오실 분』 또는 『오시는 그분』이라고 부르는 경우가 있습니다(마태복음 3:11; 21:9; 누가복음 19장). 그는 또한 모든 것을 성취하기 위해 다시 오실 것입니다(데살로니가후서 1:10; 요한계시록 1:7; 22:7). 『오다』라는 동사(에르코마이erchomai)가 예수님께서 구름 속에서 『권능과 큰 영광으로』(마태복음 24:30; 마가복음 13:26; 누가복음 21:27) 다시 오실 것을 언급할 때 사용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예수님께서 구름과 함께 오신다는 것은 구름이 신성한 영광의 표상과 연관되는 구약성경에서 유래합니다(다니엘 7:13, 14; 출애굽기 40:34; 열왕기상 8:10, 11). 예수님께서 신성한 영광으로 오실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주님이 『오실』 정확한 날이나 시간을 모르기 때문에 준비하고 있으라고 권고하십니다(마태복음 24:42, 50; 마가복음 13:33, 35; 누가복음 12:40-46; 21:34). 예수님은 천사들과 함께 『오셔서』 보좌에 앉아 양과 염소를 나누고 종들에게 상을 주실 것입니다(마태복음 25:31-34). 예수님께서는 아버지께로 승천하실 제자들을 준비시키시면서 『내가 떠나가면 … 내가 다시 와서 너희를 내게로 영접하여 나 있는 곳에 너희도 있게 하리라』(요한복음 14:3)라는 약속으로 그들을 위로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승천하셨을 때, 천사들이 제자들에게 『갈릴리 사람들아, 어찌하여 서서 하늘을 쳐다보느냐? 너희를 떠나 하늘로 올라가신 이 예수님은 하늘로 가심을 본 그대로 오시리라』(사도행전 1:11)라고 말했습니다. 예수님께서 오실 때, 사람들의 마음의 생각을 포함하여 숨겨진 모든 것을 드러내어 심판이 참되고 의롭게 이루어질 것입니다(고린도전서 4:5). 예수님께서는 성도들과 함께 영광 중에 오실 것입니다(데살로니가후서 1:10). 그분은 곧 오실 것이며, 구름 가운데 승리와 권능과 영광으로 오실 것이며 모든 눈이 그분을 볼 것입니다(요한계시록 1:7, 8; 3:11; 22:7, 12, 20).
재림을 나타내는 다른 동사로는 『나타나다』(요한일서 2:28; 3:2), 『드러내다』(누가복음 17:30), 『내려오시다』(데살로니가전서 4:16)가 있습니다.
그리스도 재림의 본질
재림의 본질은 가시적이고, 임박하며, 최종적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성령을 보내어 그들 안에 거하게 하심으로써 그들을 고아처럼 버려두지 않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그렇기에 그리스도의 임재가 이미 믿는 자들 안에 거하고 있습니다(요한복음 14:18-26; 로마서 8:9). 하지만 그리스도의 재림은 그런 의미가 아닙니다. 그분은 모든 사람이 구름을 타고 오시는 것을 볼 수 있도록 가시적이고 공개적으로 재림하실 것입니다(마태복음 24:27; 요한계시록 1:7). 따라서 그분이 은밀히 오시거나 누군가가 그것을 놓쳤을 것이라는 생각은 잘못된 것입니다. 왜냐하면 재림이 실제로 일어날 때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기 때문입니다(데살로니가후서 2:2).
그리스도의 재림 또한 임박했습니다. 즉, 재림이 가까웠고, 재림하면 신속하게 일어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정확히 언제 재림하실지 우리가 확실히 알 수 없다는 사실은 예수님께서 『그러므로 깨어 있으라 너희 주가 어느 날에 임할는지 너희가 알지 못함이니라… 그런즉 깨어 있으라 너희는 그 날과 그 시를 알지 못함이니라』(마태복음 24:42; 25:13)라고 말씀하실 때 분명해집니다. 초기 그리스도인들은 그리스도께서 자신들이 살아 있는 동안 재림하실 수 있다고 예상했고, 그리스도인들에게 깨어 준비하고 있으라고 권고했습니다. 그리스도의 재림의 구체적인 시기는 알 수 없기에, 그리스도인들은 죄에서 삶을 정결하게 하고 매일 그리스도께 순종하며 살면서 준비하도록 권고받습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의 임박한 재림은 예언이나 표적의 사전 조건 없이 언제든 일어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바울은 데살로니가인들에게 그들이 빛의 자녀이므로 도둑처럼 갑자기 놀라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습니다(데살로니가전서 5:1-5). 재림 전에 일어날 것으로 언급된 사건은 적어도 세 가지가 있습니다. (1) 모든 민족에게 복음이 전파됨, (2) 큰 환난과 큰 배도, (3) 적그리스도의 출현입니다. 요점은 그리스도께서 재림하시기 전에 반드시 어떤 일들이 일어나야 한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이러한 표적들이 정확히 어떻게 그리고 어디에서 성취될지는 말하기 어렵습니다. 따라서 우리는 그리스도께서 언제든지 재림하실 수 있다는 가능성에 항상 열려 있어야 합니다. 따라서 역사 전반에 걸쳐 특정한 『표적』들이 존재해 왔지만, 그러한 표적들은 그리스도께서 재림하시기 전에 더욱 강해질 것입니다. 즉, 이러한 표적들은 절정에 이르기 전에 더욱 분명해질 것입니다. 임박했다고 해서 잠재적인 징조가 없는 갑작스러운 일로 간주되는 것은 아닙니다.
그리스도의 재림은 또한 최종적이며 불변합니다. 그분은 승리와 심판으로 오실 것입니다. 그분은 처음에 마구간의 아기로 오셔서 온유하고 겸손하게 사셨지만, 다시 오실 때는 만왕의 왕이시며 만주의 주로 오실 것입니다. 요한계시록 19:11-16은 승리하는 전사이자 심판자로서 그분의 재림을 강력하게 묘사합니다.
『또 내가 하늘이 열린 것을 보니, 보라 백마가 있더라. 그 위에 탄 자의 이름은 충신과 진실이라. 그는 공의로 심판하며 싸우더라. 그의 눈은 불꽃 같고 그의 머리에는 많은 면류관이 있고 또 이름 쓴 것이 있으니 자기 외에는 아무도 알지 못하더라. 그는 피 뿌린 옷을 입었는데, 그의 이름은 하나님의 말씀이라 불리더라. 하늘의 군대들이 희고 깨끗한 세마포 옷을 입고 백마를 타고 그를 따르더라. 그의 입에서 예리한 칼이 나오니 그것으로 만국을 치겠고 또 그가 철장으로 그들을 다스릴 것이요. 그는 전능하신 하나님의 맹렬한 진노의 포도주 틀을 밟으리니 그의 옷과 허벅지에는 만왕의 왕이요 만주의 주라 칭하는 이름이 기록되어 있더라.』
그분이 재림하실 때, 하늘과 땅 위와 땅 아래 있는 모든 무릎이 그분의 주권적인 위엄 앞에 꿇을 것이며, 모든 혀가 예수님을 주님으로 시인할 것입니다(빌립보서 2:10, 11). 그분은 참된 심판자로 오셔서 성도들에게 상을 주시고 악한 자들을 심판하실 것입니다(요한계시록 11:18). 바울의 복음에 따르면, 그날은 『하나님께서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사람들의 은밀한 것을 심판하시는 날』(로마서 2:16)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모든 민족을 다스리시고 통치하실 것이며, 모든 것을 바로잡으실 것입니다. 그리고 철장으로 다스리시어 그분의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도록 하실 것입니다.
재림의 함의
그리스도의 재림은 복음 메시지의 필수적인 특징입니다. 그리스도의 초림은 죽음과 부활을 통해 구원을 가져왔지만, 그의 재림은 우리 몸의 부활을 가져올 것입니다. 이는 우리 구원의 최종 목표이자 소망입니다(고린도전서 15:20-28; 로마서 6:5-10, 8:23; 빌립보서 3:10, 11, 21). 우리가 그의 재림에 대해 갖는 소망은 복음에 덧붙여진 단순한 부가적인 내용 이상입니다. 그것은 우리에게 그의 승리와 우리의 썩을 몸이 죄에서 단번에 구원받아 순결하고 불멸하며 썩지 않는 영광스러운 부활의 몸을 갖게 될 것이라는 확신을 줍니다(고린도전서 15:35-49). 그러므로 재림은 우리가 매일매일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에 대한 함의를 지닙니다. 바울은 이렇게 말하며 이를 잘 요약합니다. 『…우리를 양육하사 경건치 아니한 것과 이 세상의 정욕을 버리고 절제하고 의롭고 경건하게 이 세상에 살고 복된 소망 곧 우리의 크신 하나님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영광이 나타나심을 기다리게 하려 하심이니라…』(디도서 2:12, 13). 주님의 재림을 기다리는 것은 수동적인 것이 아니라, 주님을 맞이할 준비를 하며 거룩함을 추구하며 우리 삶을 적극적으로 깨끗하게 하는 것입니다. 요한은 하나님의 자녀인 우리가 예수님께서 나타나실 때 예수님과 같을 것이라고 말합니다. 『그분 안에서 이 소망을 가진 자마다 그의 깨끗하심과 같이 자기를 깨끗하게 하느니라』(요한일서 3:3). 주님의 재림을 준비하고 깨어 있다는 것은 그분이 나타나실 때 부끄러워하기보다는 그분을 기쁘시게 하는 삶을 살아간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주님의 재림의 또 다른 의미는 그분이 오실 때 모든 것을 심판하시고 바로잡으실 것을 우리가 신뢰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지금 여기에서 어떤 시련과 고난, 어려움을 겪더라도 그것은 단지 일시적인 것일 뿐입니다. 우리는 복수하거나 사람들을 판단하지 말아야 합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참되고 합당한 재판장이 진리에 따라 정의를 내리실 것이라고 믿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고린도전서 4:5; 로마서 12:19). 마지막으로, 주님의 재림을 지연하는 것은 사람들이 회개하고 구원을 찾을 시간을 더 주기 위한 것입니다(베드로후서 3:9). 예수님이 오시면 잃어버린 자들에게는 구원의 소망이 없습니다. 오늘이 구원의 날입니다. 우리는 복음을 전하고 믿음으로 말미암아 은혜로 그리스도 안에서 구원을 소망하는 것이 필수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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