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서 8:9, 10
로마서 8:9, 10에서 바울은 하나님의 그영, 그리스도의 그영, 그리스도를 언급한다. 그가 다른 영들을 언급하는 것이 아니라 이 모든 용어가 그리스도인 안에 거하시는 그영에 대해 사용되었다는 것을 깨닫는 것이 중요하다(고린도후서 3:17). 육신(로마서 8:9)과 죽음(로마서 8:10)에 반대되는 것은 그영과의 상호 작용이다. 이 상호 작용은 하나님의 그영의 ‘거처’(오이케오oikeō)와 그리스도의 그영을 ‘가진’(에코echō)으로 설명된다. 오이케오oikeō는 ‘집을 점유하다, 즉 거주하다’를 의미하며, 비유적으로 ‘거하다, 남아 있다’를 의미한다. 에코(echō)는 ‘가지다’를 의미하며, 소유 또는 소유한다는 생각을 나타낸다.
계시와 적용
그리스도를 위해 우리를 소유함
로마서 8:9은 하나님의 그영과 그리스도의 그영을 모두 언급한다. 이것은 두 영이 아니라 같은 성령의 두 측면이다. 하나님의 그영은 상호 내주와 관련이 있는 반면, 그리스도의 그영은 상호 소유와 관련이 있다. 우리가 그리스도의 그영을 가질 때, 그분은 그리스도를 위해 우리를 소유하신다. 이런 식으로 우리는 그리스도이신 하나님과 섞이게 된다. 그뿐만 아니라 그리스도의 그영은 우리를 그러한 소유권의 주관적인 체험으로 인도한다. 이것은 우리로 하여금 일상 생활에서 그리스도를 살아가게 한다.
그리스도에게 속한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갈라디아서에서 바울은 “그리스도 예수의 사람들은 육체와 함께 그 정과 욕심을 십자가에 못 박았느니라”라고 말했다(갈라디아서 5:24). 바울은 이 구절에서 우리의 육체가 수동적인 방법으로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다고 말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는 이 육체의 십자가 처형을 그리스도께 속한 자들의 행동으로 묘사한다. 물론 이것은 그분과 독립적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그것은 우리의 육신이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다는 사실을 적용한 것이다. 그리스도께 속한 사람은 그분에게 속한 지위를 가질 뿐만 아니라 육체가 십자가에 못 박힌 사실을 체험적으로 적용한다.
신성한 것들에 대한 느낌으로 우리를 채워 줌
로마서 8:10에서 바울은 죽음과 생명의 체험을 그리스도께서 우리 안에 계시는지 아닌지와 연관시킨다. ‘그리스도의 그영’과 ‘그리스도’의 차이점은 무엇인가? 바울은 우리가 그리스도의 그영을 소유하고 있지만, 그리스도 자신이 우리 안에 계시다고 말한다. 다른 말로 하면, 우리가 그리스도의 그영을 가졌다면, 우리는 그리스도 자신의 인격을 소유하고 누리는 것이다. 원칙적으로 ‘그리스도’라는 칭호는 그분의 인격을 강조하고 ‘그리스도의 그영’은 그분의 감정과 본질을 강조한다. 살아 계신 분이시며, 구세주이시며, 기름 부음받은 자이신 그리스도께서 모든 거듭난 그리스도인 안에 거하신다. 신성한 것들에 대한 그분의 느낌으로 우리를 채우시는 분은 그분의 그영이시다.
이러한 감정은 그리스도인들을 영적인 것들로 이끌고, 그들로 하여금 이러한 것들의 실제를 기꺼이 누리고 적용할 수 있게 한다. 그리스도의 그영은 성경이 그리스도인들에게 영감을 주고 그분의 하늘의 공급하심을 불어넣게 한다. 그리스도의 그영은 교회 생활을 고무적이고 즐거운 삶으로 이끄신다. 거듭난 모든 그리스도인은 그리스도를 살아 계신 사람으로 모시고 그리스도의 영을 신성하고 영적인 것들에 대한 감정으로 채우시는 분으로 모신다.
사실의 적용
거듭난 모든 성도들의 육체는 십자가에 못 박히셨지만, 십자가에 못 박히신 이 사실은 반드시 적용되어야 한다. 우리는 정욕과 욕망이 있는 육신을 죽이기 위해 그리스도께 속해야 한다(갈라디아서 2:24). 우리가 육신에 있는지 어떻게 알 수 있는가? 우리는 ‘주님과 나의 관계는 무엇인가? 나는 지금 그리스도께 속해 있는가?’라고 자문해 보아야 한다. 우리가 객관적으로 그리스도께 속해 있다면, 우리는 육신이 아니라 성령 안에 있다는 사실을 주관적으로 적용할 수 있다.
성경에 따르면, 거듭난 모든 그리스도인이 그리스도께 속해 있고 그분과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다는 것은 사실이다(갈라디아서 2:20). 그러나 체험적으로 우리는 종종 우리가 그분께 속하지 않은 것처럼 산다. 우리가 그리스도께 속하지 않은 것처럼 행동할 때마다, 십자가에서 완성된 사실은 우리에게 주관적으로 적용되지 않는다. 그럴 때 우리는 객관적인 사실에 대해 너무나 감사하고 담대하게 ‘나는 그리스도께 속하였노라! 비록 내 육신이 아직 여기에 있을지라도, 나는 그리스도께 속해 있기 때문에 더 이상 할 일이 없다. 나의 열정과 소망은 여전히 여기에 있지만, 나는 그리스도께 속해 있기 때문에 갈 곳이 없다! 정욕과 욕망이 있는 내 육신이 십자가에 못 박혔다! 나는 그리스도에게 속해 있으며 그리스도의 영을 가지고 있다!’라고 선포해야 한다.
육신을 잊어버림
그리스도께 속한 사람, 십자가의 효력과 육체의 십자가 처형을 적용한 사람은 체험 속에서 자신의 육신의 존재를 잊어버릴 것이다. 이것이 바로 그리스도의 사람들과 그들의 육체의 관계이다. 우리가 그리스도께 속할 때, 우리의 육신과 정욕과 욕망은 모두 십자가에 달려 있다. 우리의 육신은 여전히 존재하지만, 우리는 더 이상 육신에 빚진 자가 아니며 육신을 따로 떼어 놓을 수 있다. 우리의 감각 속에서, 그것은 마치 육체가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 것과 같다!
우리가 그리스도께 속해 있는 것을 적용할 때, 육신은 희미해지는 것 같다. 오직 그리스도만이 그분의 감미로움, 공급하심, 자양분, 누림, 체험으로 남아 계신다. 우리는 모든 것을 잊어버리고 단순히 그리스도와 어울리는 것을 누린다. 이것은 사실 그리스도께 속한 사람들의 정상적인 체험이다.
의로움으로 말미암아 살아 있는 것
로마서 8:10은 “그리스도께서 너희 안에 계시면 몸은 죄로 말미암아 죽었으나 영은 의로 말미암아 살아나니”라고 말한다. 여기서 영은 성령이 아니라 사람의 영이다. 그러나 이 구절은 그리스도께서 우리 안에 계시다는 조건으로 시작한다. 그리스도께서 우리 안에 계시므로 우리의 영은 의로 말미암아 생명이 된다. 우리 안에는 하나님의 그영과 그리스도의 그영이 거하실 뿐만 아니라(로마서 8:9), 그리스도도 거하신다(로마서 8:10). 그리스도는 화목제물일 뿐만 아니라(로마서 3:25), 부활만 하시는 것도 아니다(로마서 4:24, 25; 6:5). 그분은 오늘날에도 우리 안에 계신다!
로마서 8:10이 말하는 의는 그리스도의 인격과 완성이다. 모든 그리스도인의 영은 그리스도와 그분이 완성하신 모든 것 때문에 살아 있다. 이 의는 그리스도이신 하나님께서 우리 안에 자신을 분배하심으로써 우리와 어울리는 근거와 기초다. 우리가 의롭지 않다면 하나님은 우리의 영을 살리기 위해 생명으로 자신을 우리 안에 분배하실 수 없다. 그러나 그리스도가 없다면 우리에게는 의가 없다. 하나님께서 우리 안에 자신을 생명으로 나누어 주시기 위해서는 그리스도가 필요한데, 이는 의로움이 그분에게서 결코 분리될 수 없기 때문이다.
많은 사람이 탕자가 집으로 돌아와 가장 좋은 옷을 입고 살진 송아지를 주어 즐거워하는 이야기를 들었다(누가복음 15:11-32). 우리는 이 탕자와 같다. 겉옷은 그리스도를 우리의 의로, 살찌운 자로 상징한다. 송아지는 우리의 생명이신 그리스도를 상징한다. 우리 안에 계신 그리스도 때문에 우리는 생명과 의를 모두 누릴 수 있다. 주님께서 오늘날 그리스도의 영이신 분과 그리스도 자신으로 우리 안에 거하신다는 것에 감사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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