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Brethren/연(輦)모임 메시지

육의 생각, 그영의 생각

Hernhut 2023. 8. 11. 13:26

 

 

로마서 8:5, 6

 

로마서 8:5, 6에서 바울은 성도들의 마음가짐에 초점을 맞춘다. 마음을 의미하는 헬라어 프라오phraō5절에 나오는 동사 프로네오phroneō(마음을 정하라)6절에 나오는 명사 프로네마phronēma(마음이 굳어짐)에서 나온다. 프로네오phroneō는 사고하고, 생각이나 마음을 무언가에 두고, 사려 깊은 계획을 위해 자신의 능력을 사용하고, 근본적인 성향이나 태도를 강조하는 것을 의미한다. 그것은 이성뿐만 아니라 애정과 의지의 전체 행동을 나타낸다. 프로네마phronēma는 사고, 생각하는 방식, 목표, 열망, 노력의 방식이다. 따라서 육체의 것에 마음을 두다라는 문구는 육체의 것에 주의를 집중하다로 번역될 수 있다. 그영에 관한 문구에도 동일한 번역 방식을 적용할 수 있다.

 

6절에서 육신에 대한 생각이라는 문구는 육신의 생각으로도 번역될 수 있다. 마찬가지로, ‘그영에 대한 생각이라는 문구는 그영의 생각으로 번역될 수 있습니다. 5절에 나오는 이 동사와 6절에 나오는 명사는 함께 사용된다. 그영의 일에 대한 마음가짐이 곧 그영의 생각이요, 육신의 것을 생각하는 마음이 육신의 생각이다.

 

계시와 적용

 

이해하기 어려운 문구

 

성화에 관한 이 부분에서 로마서 8:4-6은 가장 이해하기 어려운 구절일 수 있다. 성화를 체험한 사람은 그영을 의지하고(로마서 8:6), 율법의 의를 이루며(로마서 8:4), 생명과 평강을 얻는다(로마서 8:6). 이 모든 것이 훌륭하게 들리지만, 이 구절들에서 가장 이해하기 어려운 부분은 그영에 마음을 두고또는 영적인 생각’(KJV)을 갖는 것이 실제로 무엇을 의미하는가 하는 것이다.

 

우리는 하나님, 그영, 내주하시는 하나님의 생명, 교회와 같은 많은 영적인 주제를 어느 정도 이해할 수 있다. 그러나 우리가 생명과 평강을 위해 영적인 마음을 갖는 것(로마서 8:6)과 그영의 일에 마음을 두는 것(로마서 8:5)에 대해 이야기할 때 우리 중 많은 사람이 이 개념을 완전히 이해하지 못한다.

 

체험적으로 볼 때, 우리가 영적인 일에 마음을 두고 영적인 생각을 하려고 노력하면 할수록 생명과 평안은 더 적은 것을 얻게 되는 것 같다. 우리가 가장 영적인 마음을 가지고 있다고 느낄 때, 우리는 종종 우리 육체의 가장 강력한 작용을 체험한다. 우리가 가장 영적이라고 느낄 때, 우리가 실제로 육신에 있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 솔직히 말해서, 우리는 영적인 생각을 한다는 것이 무엇인지 이해하지 못하며, 영적인 것에 마음을 둔다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도 모른다. 우리의 이해가 부족하기 때문에 그러한 문구는 그리스도인의 삶에서 체험할 수 없는 것처럼 보이며, 우리가 때때로 방법을 모른 채 체험하게 되는 이상이다.

 

그영에 마음을 둠

 

한 형제님이 주님을 찬양합니다, 저는 어제 영적인 생각을 하고 있었습니다!’라고 말한 적이 있다. 이것은 확실히 아주 좋았다. 그러나 전날의 이 좋은 체험은 다음 날 그에게 나쁜 체험을 가져왔다. 이 형제는 자신이 어제는 영적인 생각을 하고 있었지만, 오늘은 육적인 생각을 하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왜 그랬을까? 그는 전날 주님과 함께하는 아침 시간을 온전히 누렸고, 주님 앞에서 시간을 보내고, 순수한 마음으로 주님과 접촉하고, 그분과 달콤한 교제를 나누었다. 이 모든 체험은 영적인 것, 즉 그영에 따라 사는 것의 열매였다. 그런 좋은 체험 때문에 그는 같은 즐거움을 누리기 위해 다음날 아침 같은 방법을 반복했다. 하지만 어제의 실행만 되풀이하는 것은 그영을 따라 사는 것이 아니라 방법에 따라 사는 것이다. 그영이 아닌 방법으로 사는 것은 우리를 육적인 마음으로 이끌 뿐이다.

 

마음은 매우 중요하다. 사실, 로마서 8:5, 6은 전적으로 우리의 마음과 관련이 있다. 우리가 육신의 마음을 가졌다면 육신의 일에 마음을 두었으니 그 결과는 사망이다. 우리가 그영의 생각을 하고 있다면, 우리는 그영의 일에 마음을 두며, 그 결과는 생명과 평안이다. 우리 마음의 위치를 이해하는 것은 이 구절을 이해하는 데 매우 중요하다. 우리의 마음은 우리 혼의 일부이지만, 바울은 여기서 혼을 언급하지 않고 오직 마음만을 언급했다. 이것은 우리의 마음이 진정으로 우리의 인격을 대표하기 때문이다. 혼의 중심은 마음이다. 우리가 사랑하는 것, 생각하는 것, 원하는 것은 모두 우리의 마음과 관련이 있다.

 

예를 들어, 감정적인 형제가 다른 사람이 주님을 사랑하는 것을 보면 마음속에 많은 감정이 솟구친다. 주님을 사랑하지 않는 사람을 보면 많은 감정이 생긴다. 이 형제는 감정적인 사람으로 간주 될 수 있지만 그의 감정 표현은 그의 마음을 통해 이루어진다. 그가 마음 속으로 어떤 성도들을 기억할 때, 그것은 그의 감정뿐만 아니라 그의 마음도 작용한다. 우리의 마음은 우리의 사람이다. 우리의 감정이 아무리 풍부하고 의지가 아무리 강하더라도 혼의 표현과 작용은 항상 우리의 마음을 통해 이루어진다.

 

우리는 항상 우리의 마음을 따를 것이다. 우리의 마음은 우리가 누구인지를 진정으로 나타내기 때문에 우리는 마음이 정해진 곳에 있을 것이다. 그래서 바울은 마음과 육과 영과 신성한 생명의 관계에 대해 이야기할 때 육신의 마음은 사망이요 그영의 생각은 생명과 평강이니라라고 말했다(로마서 8:6).

 

우리 마음의 주님

 

로마서 8:6에서 육신에 대한 생각이라는 문구는 육신의 생각으로도 번역될 수 있다. 마찬가지로, ‘그영을 의지하는 생각이라는 문구는 그영의 생각으로 번역될 수 있다. 이 번역의 차이점은 무엇이며 왜 중요한가? ‘육신에 마음을 두고그영에 마음을 두라라는 문구는 우리가 우리의 마음을 통제할 수 있음을 암시한다. 다시 말해, 우리는 육신이나 그영에 마음을 둘 것을 선택할 수 있다. ‘육신의 생각그영의 생각이라는 문구는 육신이나 그영이 우리의 마음을 지배한다는 것을 암시한다. 우리가 사용하고 있는 성경 번역판은 마음가짐이라고 말하지만, 이 구절을 보다 직역하면 우리의 육신이나 그영이 우리의 마음을 지배한다는 것을 나타낸다. 우리가 육신의 마음을 가졌다면 그 결과는 죽음이다. 우리가 그영의 생각을 지니고 있다면, 그 결과는 생명과 평안이다.

 

육신의 마음이라는 문구는 육신이 우리 마음의 주인이며, 우리 마음의 구성, 본성, 지도자가 됨을 나타낸다. 마찬가지로, ‘그영의 생각은 그영이 우리 마음의 주인이시며, 우리 마음의 구성, 본성, 지도자가 되신다는 것을 나타낸다.

 

이 생각은 로마서 7:23과 관련이 있다. “내가 내 몸의 지체 중에 다른 법이 있어 내 마음의 법을 대적하여 싸우며 나를 내 지체 속에 있는 죄의 법의 포로로 삼느니라.” 우리 지체 안에 있는 죄의 법이 우리를 사로잡았기 때문에 우리는 육신의 마음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생명의 그영의 법은 우리를 죄와 사망의 법에서 해방시켰다(로마서 8:2). 이제 우리는 성령의 마음을 가질 수 있고, 생명의 영으로 충만하며, 생명과 평화이신 그리스도를 누릴 수 있다. 그러므로 그것은 우리의 마음을 정하는 문제일 뿐만 아니라 우리 마음의 주인이 누구인가의 문제이기도 하다. 우리의 육신이 우리의 주님이라면, 우리는 육신의 마음을 가지고 있다. 그영이 우리의 주님이시라면, 우리는 그영의 생각을 하게 된다.

 

내주하는 신성한 생명의 본능

 

우리 안에 있는 신성한 생명은 본능적으로 우리를 성령의 생각으로 돌이키게 한다. 우리가 현재 어떤 마음을 가지고 있는지에 대한 시험은 생명의 감각이다. 육신의 마음이 우리 안에서 작용할 때마다 그것은 죽음을 가져온다. 여기에는 나약함, 어둠, 공허함, 압제, 메마르다, 괴로움, 불만이 포함된다. 그러나 그럴 때 우리는 생명과 평안을 얻기 위해 본능적으로 그영의 생각으로 돌이킨다.

 

육신에는 죽음이 있다. 그영 안에는 생명이 있다. 때때로 우리는 무의식적으로 예수 주님, 저에게 자비를 베푸소서!’라고 말할 수 있다. 우리가 그토록 놀라운 기도를 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우리가 내면에서 죽었다고 느낄 때, 신성한 생명은 본능적으로 우리를 성령의 생각으로 돌이켜 생명과 평안을 얻는다.

 

성화의 열쇠

 

성화의 열쇠는 그영의 생각이다. 성화의 경험은 성령의 마음을 통하여 즐거워진다. 성화의 실재를 적용하고, 누리고, 체험하기 위해서는 그영의 마음을 가져야 한다. 우리는 자기 노력으로 고군분투할 필요가 없으며 실패의 느낌에 머무를 필요도 없다. 우리는 적극적으로 그영 안에 거하기만 하면 된다. 이렇게 거함으로써 그영의 생각은 우리 안에서 확고하고 유기적으로 작용하여 우리를 생명과 평안과 성화의 실재로 인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