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서 5:10, 11
‘그의 생명으로 구원받음’이라는 구절 안에는 헬라어 엔en이 있다. 이 단어의 가장 일반적인 번역은 장소, 시간 또는 상태에서의 위치를 나타내는 ‘안에, 안으로’다. 그러나 그것은 또한 도구를 의미할 수 있으며 ‘~로, 곁에’ 또는 ‘함께, 곁에서’로 번역될 수도 있다. 이 성구의 많은 번역판에서는 ‘~로, 곁에’라는 단어를 사용한다. 정확한 번역은 또한 ‘그의 생애 안에’ 있을 수 있다. 그러한 번역은 우리가 이 구원을 체험하는 것이 하나님의 생명 영역이라는 것을 암시할 것이다.
여기서 ‘구원받은’에 해당하는 헬라어 소조sōzō는 미래형, 암시적 분위기, 수동태로 쓰여 있다. 미래 시제는 구원이 일어나리라는 것을 의미한다. 지표 분위기는 그것이 일어날 것이 확실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리고 수동태는 그것이 외부 소스에 의해 우리에게 성취될 것임을 의미한다. 그러므로, 여기에서의 생각은 그리스도에 의해 이미 성취된 로마서 1-4장의 법리적 구속과는 다르다. 이 구원은 객관적일 뿐만 아니라 구속의 결과에 대한 ‘믿음에 의한 주관적인 전유(專有)’이기도 하다.
계시와 적용
그의 생명에서 구원
로마서 5:9은 그리스도의 피로 말미암아 우리가 의롭다 하심을 받는 것이 우리를 하나님의 진노에서 구원한다고 말한다. 로마서 5:10은 계속해서 우리가 아들의 죽음을 통해 하나님과 화목하게 되면 그분의 삶에서 우리를 구원할 것이라고 말한다. 간단히 말해서, 그분의 삶에서 구원받은 사람은 또한, 그분의 진노로부터 구원을 받는다. 세상의 모든 사람은 하나님 앞에서 두 가지 상황 중 하나에 처해 있다. 하나님의 진노 아래 있거나 그분의 삶에서 구원받고 있다. 하지만 하나님께 의롭다 하심을 받고 하나님과 화목하게 된 사람들의 체험에 비추어 볼 때, 일상생활에서 행해지는 많은 일이 여전히 하나님의 노여움을 불러일으킨다. 그러나 바울은 로마서에서 우리가 하나님과 화목하게 되었기 때문에 그분의 생명에서 구원을 받을 것이라고 말한다.
하나님 편에서 우리를 위해 법리적 구속을 예비하셨을 뿐만 아니라 유기적인 구원도 예비하셨다. 하나님과 화목하게 된 이 유기적 구원은 우리를 삶 안에서 그분과 조화를 이루게 한다. 오늘날 우리는 은혜 가운데 서서 성령님을 통해 우리 마음에 부어지는 하나님의 사랑을 체험한다(로마서 5:2-5). 하지만 우리의 관점에서 볼 때, 하나님과 우리의 관계는 종종 건강하지 못할 수 있다. 어떤 사람이 50년 동안 주님을 믿고 사랑했다고 가정해 보자. 그 50년 동안 그가 매일 한 가지 일을 하여 주님을 거스르면 15,000건이 넘는 범죄가 누적될 것이다! 만일 그가 하루에 열 번씩 주님을 거스른다면, 그는 하나님께 150,000번 이상의 죄를 범하게 될 것이다!
사람들의 생활 방식은 종종 하나님을 노엽게 한다. 사람이 생각하고 말하고 행동하는 방식은 모두 하나님을 거스르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가 하나님에게서 아무리 멀리 떨어져 있는 것처럼 보일지라도 항상 그분께 돌아올 수 있다는 것은 놀라운 일이다. 우리가 아무리 그분을 거스르고 그분의 노여움을 불러일으킨다고 할지라도, 우리가 그분의 면전으로 돌아가 그분을 다시 만나고, 그분 곁에서 살고, 그분의 삶을 누릴 때, 우리는 그분의 삶에서 구원을 체험할 수 있다.
끊임없이 구원받다
의롭다 하심 안에서 사는 사람들은 끊임없이 생명 안에서 구원을 받고 있다. 이것은 영원한 저주로부터의 구원이 아니라, 실천적인 삶 속에서 작용하는 신성한 생명의 체험이다.
우리의 초기 칭의를 받은 후에도, 우리는 여전히 삶에서 계속해서 구원을 받아야 한다. 우리는 더 많이 성장하고, 더 많이 일하고, 더 많이 주님과 동행하고, 끊임없이 하나님과 조화를 이루는 삶을 살아야 한다. 결국, 우리는 ‘내가 사는 것은 그리스도입니다. 나는 그분의 삶 안에서 구원을 받고 있습니다. 나의 전 생애는 하나님의 의롭다 하심 안에서 나의 성장과 성숙을 위한 것입니다.’라고 말해야 한다. 이것이 하나님의 유기적 구원을 체험하는 과정이다.
성화와 변화
유기적 구원의 경험에 대한 바울의 묘사에는 성화(로마서 6:19), 마음의 갱신, 변화(로마서 12:2), 형태화 즉 그리스도를 본받아 맏아들이 됨(로마서 8:29), 영화롭게 됨(로마서 8:30)이 포함된다. 이 모든 것은 우리의 생명 구원과 관련이 있다. 이 생명은 그리스도 자신이다. 주님은 예수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라고 말씀하셨다(요한복음 14:6). 삶에서 구원받는다는 것은 그리스도의 인격 안에서 구원받는 것을 의미하며, 이는 주로 우리의 성화와 변화를 포함한다.
성화는 내적이고 변화는 외적이다. 유기적 구원은 많은 사람이 생각하는 것처럼 선형적인 진행이 아니다. 우리는 칭의에서 성화로, 그리고 결국 변화로 가는 직선적인 길을 따르지 않는다. 오히려, 성화와 변화의 두 과정은 동시적이며 서로 관련되어 있다. 아래는 공통 원점을 공유하고 시간이 지남에 따라 함께 진행되는 세 줄의 다이어그램이다. 세상이 볼 수 있는 영역으로 올라가는 첫 번째 줄은 우리의 변화를 나타낸다. 가로로 진행되는 두 번째 줄은 우리 마음의 갱신을 나타낸다. 세 번째 줄은 보이지 않는 영역으로 내려간다.
이 세 선은 우리의 성화를 나타낸다. 변화는 성화와 관련이 있으며, 우리 삶의 외적 변화의 정도는 항상 우리 안의 성화의 정도에 비례한다.
성화와 변화는 구원의 두 가지 다른 단계가 아니다. 우리가 성결하게 될 때, 우리는 변화된다. 그것은 종합 비타민 알약과 매우 흡사하다. 비타민은 따로 복용하지 않고 알약으로 한꺼번에 복용한다. 마찬가지로, 유기적 구원에 대한 우리의 체험은 분리될 수 없다. 우리가 새로워질 때, 우리는 또한 성화되고 변화된다. 우리가 성화되고 변화될 때, 우리는 또한 본받고 영화롭게 된다.
우리는 내적으로 거룩하게 되고, 외적으로 변화되지만, 이 두 가지는 우리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이루어진다(로마서 12:2). 우리의 존재는 우리의 마음에 달려 있다. 우리가 선택하는 방식과 우리가 내리는 결정은 모두 우리의 마음이 우리에게 말하는 것에 근거한다. 그러나 우리의 마음은 어둡고 새로워져야 한다. 우리의 마음을 새롭게 하면 우리의 본연의 마음이 하나님의 생각과 일치하게 바뀐다.
새로워진 마음은 우리를 변화시키고, 우리의 결정과 생활은 영향을 받는다. 새로워진 마음으로 우리는 하나님과 하나가 될 수 있으며, 그분을 증거하고 나타낼 수 있다. 우리의 본연의 마음 속에서는 우리 자신만을 위해 살지만,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써 하나님을 위해 살 수 있다.
하나님의 아들의 형상을 본받음
하나님의 유기적 구원 안에서 우리의 마음은 새롭게 될 뿐만 아니라 우리의 형상도 바뀔 필요가 있다(로마서 8:29). 우리의 외적 이미지는 우리 내적 존재의 표현이다. 다시 말해, 우리의 내적 표현은 우리의 형상으로 외적으로 표현된다. 우리 주님의 모든 속성과 덕을 드러내는 유일한 길은 하나님의 의롭다 하심 안에서 살고, 그분의 삶에서 구원을 경험하고, 그분의 아들의 형상을 닮는 것이다.
로마서 8:28은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게 하노라”라고 말한다. 하나님은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게 하심으로써 우리를 그분의 아들의 형상을 본받게 하신다(로마서 8:29). ‘모든 것’이라는 말에 주목하라. 종종 우리가 만나는 많은 것들에 대한 우리의 첫 번째 반응은 ‘화가 나다’, ‘나는 왜 그렇게 불행한가’ 또는 ‘왜 일이 그렇게 불합리한가?’이다. 이 모든 ‘이유’는 하나님을 불쾌하시게 할 수밖에 없는데, 왜냐하면 선한 것과 나쁜 것을 막론하고 모든 것이 우리의 형태를 위해 그분의 주권 안에서 그분에 의해 계획되었기 때문이다. 우리는 ‘모든 것’이 반드시 모든 매끄럽고 쉬운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는 것을 이해해야 한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그토록 많은 부정적인 것들이 떨어지도록 허락하시는 이유는 우리를 그분의 아들의 형상을 닮기를 원하시기 때문이다.
영광과 기쁨
로마서 8:30은 “예정하신 이들을 부르시고 그리고 그분이 부르신 이들도 또한 의롭다 하심이셨습니다. 그리고 그분이 의롭다 하신 이들을 또한 영화롭게 하셨습니다.”라고 말한다. 우리가 믿었던 날, 우리는 칭의를 받았고, 칭의의 경지에 들어갔고, 성화의 체험을 시작했다. 그날부터 우리는 변화된 삶과 새로워진 마음을 갖기 시작했고, 하나님의 아들의 형상을 닮는 것을 체험하기 시작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의 영광을 바라며 자랑할 수 있다. 영광의 소망은 우리의 확신이요 자랑이다. 우리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 안에서 기뻐합니다’라고 말해야 한다(로마서 5:11). 하나님을 기뻐하는 것은 하나님 자신을 자랑하는 것이다.
사람들은 자신을 즐겁게 하는 것, 가족, 직업, 성공 등 많은 것에 대해 기뻐한다. 사람이 기뻐하는 것은 사람의 수만큼이나 많다. 그러나 영원한 것들에 비하면 이 모든 것들은 일시적이고 보잘것없고 별로 가치가 없는 것들이다. 바울은 로마서에서 우리가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롭다 하심을 통하여 하나님과 화평을 누리고 은혜 가운데 하나님의 영광을 바라며 기뻐하며 더 이상 하나님의 원수가 아니며 하나님과 온전히 화목하게 되었다고 기록했다. 지금 우리의 존재와 삶은 하나님 자신 안에서 기뻐한다. 이 얼마나 귀중한 삶인가!
주님을 사랑하고 소유한 그리스도인은 어떤 상황에서도 기뻐할 수 있다. 그들은 하나님 자신, 그리스도의 성취, 성령의 역사를 담대하게 기뻐할 수 있다. 그들은 하나님의 경륜과 그들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업과 그분과 함께 하는 그들의 수고를 기뻐할 수 있다. 그들은 확신과 자신감으로 가득 차서 ‘내 인생에서 어떤 일이 닥치든, 하나님이 나에게 어떤 상황을 헤아려주든, 나는 항상 하나님 안에서 기뻐할 수 있습니다!’라고 말할 수 있다.
더욱이 이 그리스도는 우리 안에 계신다! 그분은 우리의 생명이요 공급하심이요, 우리의 목마름을 해소하는 샘이요, 우리의 배고픔을 채워주는 하늘의 빵이시며, 우리가 걸을 힘을 주시고, 우리가 따라야 할 안내자이시다. 이 모든 것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구주 그리스도를 통해 함께 하나님을 모시고 그분 안에서 기뻐할 수 있다!
마지막으로,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기뻐할 뿐만 아니라 그분과 함께 기뻐한다! 그리스도께서는 “보라 나와 하나님이 내게 주신 자녀들이라”라고 선포하셨다(히브리서 2:13). 우리도 각자 그분과 함께 ‘보라, 나와 하나님께서 내게 주신 형제 자매들’이라고 선포할 수 있다. 그리스도 안에 함께 있는 형제 자매들은 우리가 주님과 나누는 기쁨이다.
하나님 안에서 기뻐하는 사람은 가장 가치 있는 존재다. 그들은 생명의 가장 풍부한 물질이 있다! 그들은 가장 강력한 노동력을 가지고 있다! 그들은 하나님 안에서 가장 큰 확신이 있다! 이런 삶, 이런 삶이야말로 오늘날 이 땅에서 누릴 수 있는 가장 완벽하고 매력적인 삶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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