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Brethren/연(輦)모임 메시지

좋은 소식을 전파하는 사람들

Hernhut 2023. 6. 6. 00:01

 

 

로마서 10:1421

 

로마서 10:14, 15을 읽고 연구하는 설교자와 설교의 중요성을 즉시 알아차릴 수 있다. 실제로 이 구절들은 마틴 루터에게 영감을 주어 그러므로 구원의 모든 근원과 기원은 하나님께서 누군가를 보내시는 것, 즉 말씀의 참된 사역자를 보내신다는 것에 달려 있다라고 썼다.

 

이 구절에서 사용된 두 개의 헬라어는 케루쏘kērussō와 유앙겔리조euangelizō. 첫 번째, 케루쏘kērussō는 두 번 사용된다. ‘설교자 케루쏘kērussō없이 어떻게 듣겠는가? 그들이 보내지지 않는 한 어떻게 설교 케루쏘kērussō할 것인가?’(로마서 10:14, 15). 케루쏘kērussō는 문자 그대로 대중의 외침으로를 의미하며 설교자또는 설교로 번역될 수 있다. 단어 자체가 반드시 하나님의 복음 설교자를 가리키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신약에서 유앙겔리조euangelizō거의 항상 복음에서 선포된 하나님의 아들에 관한 '좋은 소식에 사용된다. 로마서 10:15에서 좋은 소식(유알겔리조euangelizō)을 가져오는 사람들에 사용된다. 따라서 유앙겔리조euangelizō는 선언문의 내용과 관련하여 훨씬 더 구체적이다. 케루쏘kērussō'설교자'가 선포를 하는 것으로 나타낸다. 유앙겔리조euangelizō]는 그의 메시지를 기쁜 소식으로 지적한다. 아포스톨로스apostolos(‘보냄’, 로마서 10:15)는 그가 보내신 분과의 관계를 암시한다.

 

이 구절에 나오는 또 다른 흥미로운 묘사는 좋은 소식의 전파자들의 아름다운 발이다. 여기서 아름답다는 뜻으로 사용된 헬라어 단어인 호라이오스hōraios는 실제로 꽃이 피는 성숙 또는 발달의 개념을 나타낸다. 헬라어는 원래 아름다움, 공정함, 사랑스러움 또는 유쾌함을 의미하는 데 사용되기 전에 계절에 맞는, 잘 익은, 또는 때가 된이라는 개념을 가지고 있었다. 이 구절의 개념은 이 발이 시기적절하거나 적절한 때에 왔다는 것일 수 있다.

 

발이 메신저의 빠른 접근을 강조하고 복음 자체의 간절히 원하는 움직임과 출현의 상징이라고 쓴다.

 

계시와 적용

 

로마서 10:14-21에서 바울은 우리가 그분을 설교할 때 우리에게서 살아나는 신성하고 하늘의 실재에 대해 이야기한다. 이것이 바울이 이 부분에서 설교 문제에 그토록 관심을 두는 이유다. 사실 이것은 하나님의 갈망이다. 그분은 사람들이 주님의 말씀을 듣고, 그분을 믿고, 그분의 이름을 부를 수 있도록 설교자를 얻기를 원하신다.

 

복음전파자

 

설교자(케루쏘kērussō)’라는 용어는 전령을 의미한다. 예를 들어, 그것은 왕이 자신의 명령이나 메시지를 선포하기 위해 신하를 보내는 것과 같다. 왕이 즉위하거나 전투에서 승리하면 말을 타고 도시마다 이 소식을 전하는 사람이 있을 것이다. 이것은 여기 설교자와 같다.

 

이것이 왜 중요한가? 복음을 전하는 우리는 자신을 업신여기지 말아야 한다. 오히려 복음 설교자들은 위대한 소식을 선포하는 큰 영예를 안은 사람들이다.

 

사도처럼 움직이는 복음전파자

 

로마서 10:15에서 보냄을 받지 아니하면 어떻게 전파하겠느냐?’라고 말씀한다. 이것은 먼저 파송받지 않고는 설교가 불가능하다는 것을 의미다. 다른 말로 하면, 복음을 전하는 모든 사람은 보냄을 받은 자이다! 여기서 보냄을 받은은 일반적으로 사도로 번역되는 명사 아포스톨로스apostolos의 동사 형태인 헬라어 아폴스텔로apostello에서 번역되었다. 사도는 문자 그대로 보냄을 받은 사람이며, 여기에서는 복음을 전하는 사람도 파송을 받는다. 이러한 관점에서 복음을 전하는 사람은 사도의 임무를 수행하는 것이다.

 

복음 전파자의 메시지: 그리스도

 

로마서 10:15은 또한 이 복음 전파자들이 좋은 일에 관한 좋은 소식을 가져온다라고 말한다. 여기서 좋은 것을 뜻하는 헬라어 단어 아가타agatha는 마가복음 10:17에서 한 부자 청년이 예수님을 선하신 선생님이라고 부르는 장면에서도 사용되었다. 복음을 전파하고 좋은 소식을 전한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그것은 그리스도를 전파하는 것을 의미한다.

 

여기서 아가타agatha는 복수형이므로 좋은 것으로 번역된다. 이것은 그리스도뿐만 아니라 그리스도의 많은 유익한 측면도 가리킨다. 우리가 어떤 면을 고려하든, 우리를 위한 그리스도의 축복은 선한 것이다. 우리의 죄는 용서받을 수 있다. 우리의 영에 관해서는, 그것은 거듭날 수 있다. 우리의 지위와 관련하여 우리는 하늘에 있을 수 있다. 우리의 존재와 관련하여 우리는 하나님의 아들이 될 수 있다. 우리의 삶에 관하여, 우리는 힘 위에 힘을 누릴 수 있다. 모든 면에서 복음은 항상 좋은 것들에 대한 좋은 소식이다!

 

복음 전파자의 수고: 아름다운 발로

 

복음을 전하고 좋은 소식을 전하는 사람은 아름다운 발을 가지고 있다(로마서 10:15). 이것은 우리의 발이 먼지에 가장 가까워서 우리의 개념에 위배된다. 그러나 바울은 복음 설교자의 아름다운 부분으로 발을 꼽는다! 발은 수고를 위한 것이고, 복음을 전파하기 위한 것이고, 좋은 일에 대한 좋은 소식을 전하기 위한 것이기 때문이다. 복음을 듣는 모든 사람에게 메시지를 전하는 사람들의 발은 참으로 아름답다.

 

헬라어로 아름다운’(호라이오스hōraios)은 아름다움뿐만 아니라 성숙하고 적절하며 품위 있는 아름다움을 나타낸다. 첫째, 호라이오스hōraios성숙한또는 시기적절한을 의미할 수 있는데, 이는 우리의 발이 적시에 사람들의 필요를 충족시키기 위해 복음을 가져와야 함을 나타낸다. 둘째, 복음을 전하는 사람의 발은 아름다울 뿐만 아니라 올바르고 품위 있는 발을 가지고 있다는 뜻이다. 세상에는 겉으로 보기에 아름다운 것들이 많이 있지만, 그 아름다움은 적절하지 않거나 품위 있지 않을 수 있다. 복음전파는 아름답고, 우리가 다른 사람들 앞에 복음 전파자로 자신을 소개할 때 우리는 태도, , 메시지에 있어 적절하고 예의 바르게 행동해야 한다.

 

복음 전파자의 체험: 다른 사람들의 불순종

 

로마서 10:16에서 바울은 복음 전파자의 체험, 즉 다른 사람들이 그들의 메시지에 주의를 기울이지 않는 것을 언급한다. 한편으로 복음 전파자들의 발은 아름답고 존경심이 가득하다. 반면에, 많은 사람은 메시지를 전한 복음을 믿지 않을 것이다. 바울은 선지자 이사야의 말을 인용하여 주여 누가 우리의 소문을 믿었나이까라고 말했다. 이것은 복음 전파자에게 찬물 한 양동이와 같다. 다른 사람들의 불순종을 계속 체험하기는 어렵지만, 로마서 10:17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음이니라라는 희망을 제시한다. 이 구절의 말씀은 그리스도의 시기적절한 말씀인 레마rhēma.

 

복음 전파자의 본질: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가득함

 

로마서 10:17에서 레마rhēma그리스도의 말씀이다. 로마서 10:18에는 또한 레마rhēma가 포함되어 있다. ‘그들의 말(rhēma)은 세상 끝까지 나갔다.’ 로마서 10:17에 있는 레마rhēma는 그리스도에게서 온 것이다. 로마서 10:18에 있는 레마rhēma는 우리의 것이다. 이것은 그리스도의 시기적절한 말씀이 우리의 것이 되어야 한다는 것을 보여준다! 그분의 시의적절한 말씀은 우리의 시의적절한 말씀이 되어야 한다.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날까? 그리스도께서는 먼저 우리에게 시기적절한 말씀을 하신다. 결국, 그리스도께서 우리에게 하신 많은 시의적절한 말씀들이 우리에 의해 선포될 것이다. 그리스도의 말씀은 우리의 말이 되고, 우리의 말은 세상 끝까지 나간다. 여기서 그리스도의 말씀이 세상 끝까지 간다고 말한 것이 아니라 그들의 말이 세상 끝까지 간다고 말하고 있음을 주목하라. 그리스도의 말씀은 우리를 통과하여 우리의 말이 됨으로써 세상 끝까지 나아간다.

 

복음 전파자의 효과: 듣는 사람들에게 믿음을 심어줌

 

로마서 10:17에 의하면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음이니라는 말씀에 의하면 그 결과는 놀랍다. 그리스도의 말씀이 복음 전파자에 의해 전해지고 다른 사람들이 들으면, 듣는 사람들에게 믿음이 생긴다.

 

복음 전파자자의 이해: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함

 

복음 전파자들은 또한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고 이해력이 충만해야 한다. 하나님은 당신의 주권 안에서 선택하시고 일하신다. 하나님의 주권은 이방인과 이스라엘 백성의 예에서 역사하는 것을 볼 수 있다. 로마서 10:19에서 바울은 모세를, 20절에서 이사야를 인용한다. 이 말씀은 어리석은 이방인 민족이 구하거나 구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나타난 하나님을 어떻게 찾았는지를 보여준다. 그러나 이스라엘 백성에 관해서는 21절은 그들이 불순종하고 완고한 백성이었지만 하나님은 날마다 그들에게 손을 내밀었다고 말한다. 하나님에 대한 이러한 묘사를 생각해 보라. 주권으로, 선택에 따라, 사랑으로 패역하고 완고한 백성에게 매 순간 손을 뻗으셨다. , 하나님께서 그분의 주권 안에서 일하시는 방식은 우리에게서 그분을 향한 말할 수 없는 예배를 끌어낸다. 주님을 찬양하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