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Brethren/연(輦)모임 메시지

하나님께서 갚아 주실 것이다

Hernhut 2023. 6. 8. 13:25

 

 

로마서 2:611

 

선을 행하는 모든 사람(로마서 2:7, 10)과 악을 행하는 자(로마서 2:8, 9)라는 두 부류의 사람들이 언급되어 있다. 이 부분은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의 중요성을 보여주기보다는, 하나님께서 모든 장소와 모든 사람에게 악을 벌하시고 선한 상을 주신다는 사실을 말한다.

 

선을 행하는 사람들에 대해 마틴 루터는 참을성 있는 지속성이 너무나 필요하기 때문에 참을성 있는 지속성이 부족한 일은 선할 수 없다. 이처럼 하나님은 어떤 일이 선하고 그분을 기쁘시게 하는지를 증명하신다.’라고 말했다. 영광과 존귀와 불멸을 구하는 자에게 하나님은 영생 즉 조에zōē를 주실 것이다. 이것은 하나님의 생명, 가장 높은 생명을 지칭하는 데 일반적으로 사용되는 헬라어다. 로마서 2:10은 또한 영광과 존귀와 평화를 선한 일꾼들에게 주어지는 상으로 언급한다.

악을 행하는 사람들은 이기적으로 야심적이고, 진리에 불순종하며, 불의에 순종하는 사람들로 특징지어진다. 이 구절들의 일부 번역판에서는 이기적으로 야심적이라는 단어 대신 논쟁적인이라는 단어를 사용한다. 여기에 사용된 헬라어 에리테이아eritheia는 자신의 직무를 수행하면서 자신의 목적을 추구하는 관리들을 묘사하는 데 사용되었다. 여기서 이기심이라는 말이 가장 어울리는 의미다.

 

악을 행하는 자들에게는 그들의 혼(프슈케psuchē)에 환난과 고통이 주어지고, 하나님으로부터 진노와 분노를 받는다.

 

계시와 적용

 

바울은 하나님께서 각 사람에게 그 행위대로 갚아 주실 것이라고 말한다(로마서 2:6). ‘주다, 공급하다베풀다로 번역될 수도 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 각자에게 우리의 행위에 따라 갚아 주실 것이다. 다시 말해 사람들은 심은 대로 거둘 것이다(갈라디아서 6:7). 예를 들어, 건강에 해로운 생활 방식(매일 과도하게 흡연하고 음주)을 사는 사람은 수명이 더 짧아진다. 영적으로 볼 때, 이 땅에 사는 우리의 시간은 끊임없이 씨를 뿌리고 저장하는 시간이다. 결국, 우리가 뿌린 것이 마땅히 맺어야 할 열매가 될 것이다.

 

선한 것을 행하는 자들

 

하나님께서는 선을 행하는 일에 인내하여 영광과 존귀와 불멸을 구하는 자들에게’(로마서 2:7) 영생을 주실 것이다. 영광과 명예는 둘 다 불멸과 관련이 있다. 필멸의 모든 것은 궁극적으로 영광에 이르지 못한다. 불멸의 것은 영광스럽고 명예로운 것이다. 인간의 양심 깊은 곳에는 불멸이 존재한다는 지식이 있다(전도서 3:11). 로마서의 이 구절들은 사람이 이 불멸을 추구할 때 하나님께서 그에게 영생을 주실 것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이 영생을 얻기 위해서는 인내심을 가지고 선을 행하는 것이 필요하다. ‘선을 행하는 것이란 무엇인가? 대부분 사람은 그것이 좋은 일을 하는 것을 의미한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하나님께는 그렇지 않다. 누가복음에서 한 관원이 예수님께 선하신 선생님이여, 제가 무엇을 하여야 영생을 얻으리이까?’라고 여쭈었다. 예수님은 그에게 어찌하여 나를 선하다 하느냐? 하나님 외에는 선한 이가 없느니라라고 말씀하셨다(누가복음 18:18, 19). 오직 하나님 자신만이 선하시다. 우리 예수님 보시기에 선을 행하는 것은 하나님을 찾는 것을 의미한다. 선을 행하는 사람은 하나님을 찾는 사람이다. 이들은 영광과 존귀와 불멸을 구하고 영생을 얻는 사람들이다. 요컨대, 우리가 하나님을 찾으면 그분은 우리에게 영생을 주실 것이다.

 

악을 행하는 자들

 

정죄에 관해 쓰면서 바울은 두 종류의 삶을 언급한다. 첫 번째는 영원한 하나님의 생명(조에zōē). 두 번째는 인간의 유한하고 타락한 삶, 그의 혼의 삶(프슈케psuchē). 모든 사람은 혼의 생명(프슈케 psuchē)을 가지고 있지만, 하나님은 그들이 영생(조에zoē)을 얻고 살기를 원하신다. 만일 사람들이 끈기 있게 계속해서 선을 행함으로써 영광과 존귀와 불멸을 추구한다면, 이 영생은 그들의 상과 축복이 될 것이다. 반대로, 만일 그들이 거룩한 생명을 저버리고, 이기적인 것을 추구하고, 진리보다 불의에 순종한다면, 환난과 고난은 그들의 영혼의 생명의 특징이 될 것이다.

 

로마서 2:9에서 바울은 더 나아가 환난과 고통 속에 있는 혼을 악을 행하는 자라고 부른다. ‘선을 행하는 것이 하나님을 찾는 것이라면, ‘악을 행하는 것은 하나님 없이 행하는 것이다. 사람들은 나는 살인하거나 도둑질하거나 다른 사람에게 해를 끼치는 방식으로 내 삶을 살지 않습니다. 무슨 악으로 나를 고발할 수 있느냐?’라고 말할 수 있다. 겉으로 보기에는 악한 일을 하지 않을지 모르지만, 하나님을 중심이 되지 않는 혼은 악한 혼일 뿐이다.

 

하나님을 중심에 두지 않은 혼은 그 결과로 고난을 겪는다(로마서 2:9). 어떤 사람이 강력한 CEO나 대학 총장이 될 수도 있고, 일 년에 수십만 달러를 벌 수도 있지만, 하나님을 중심으로 삼지 않는다면 그의 혼은 고통을 겪을 것이다.

그러한 지위와 환경을 얻는 데에도 고난이 필요하다. 그러한 지위와 상태를 얻은 후에도 여전히 고통이 있다. 왜 이런 것인가? 사람이 하나님 없이 하나님을 중심에 두지 않을 때, 환난과 고뇌가 그들의 혼을 무겁게 짓누르고, 그 결과 고통스러운 프슈케psuchē-생명이 초래한다.

 

하나님을 중심에 두지 않은 혼은 천연적으로 자기중심적이 될 것이다. 이 구절에서 그러한 혼은 이기적으로 야심적이라고 불리며, 이는 다툼의 존재를 암시한다. 이것은 이기적인 두 사업가 사이의 상황과 같다. 둘 다 사업을 하고, 돈을 벌고, 회사를 세우고 싶어 한다. 그러나 마음속으로는 다른 사람보다 더 많은 돈을 벌고 더 잘하고 싶어 한다. 이것은 다툼이며, 악한 혼의 열매이다. 그러한 혼은 환난과 고뇌만 겪을 뿐이라는 것을 보는 것은 어렵지 않다.

 

하나님은 편파적이시지 않다

 

하나님은 유대인과 헬라인에게 선한 일을 하는 모든 사람에게 영광과 존귀와 평화를 약속하신다. 하나님께는 편파적이시지 않다(로마서 2:10, 11). 바울은 정죄 가운데서 사람들이 하나님을 찾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그분을 중심으로 삼고, 그분 앞에서 살기를 원한다면,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영생을 주실 것이라는 길을 제시한다. 하나님께서는 그러한 사람들에게 그들이 누구이든 영광과 존귀와 평안을 더해 주실 것이다. 그들이 유대인이든 헬라인이든, 부자이든 가난한 사람이든, 높든 낮든 상관없으니, 하나님과 편파적이지 않으시기 때문이다. 세상의 모든 사람이 그렇듯이 주님을 사랑하는 사람도 환난과 고뇌의 시기를 겪게 될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의 공급과 지원은 그들의 영혼에서 고통을 지켜 줄 것이다. 예수님을 따르는 많은 사람은 자신의 삶이 환난이나 고난에서 벗어나지 않았지만, 그들의 혼이 영을 통해 지속적으로 지원되고 공급되었기 때문에 환난 중에서도 기쁨을 유지할 수 있었다고 간증할 수 있다.

 

우리의 혼이 더 이상 하나님을 찾지 않거나 그리스도를 우리 삶의 첫째 자리에 두지 않을 때, 우리는 신성한 생명의 공급을 잃어버리고 무의식적으로 자기 중심적이 되어 우리 자신의 재능과 능력과 노력에 의존하게 될 것이다. 이것은 우리의 혼이 고통받기 시작하는 순간이다. 우리가 하나님을 찾고 그리스도를 우리 삶의 첫 번째 자리에 두기로 마음먹는다면, 우리는 하나님 보시기에 선을 행하는사람이 된다. 이런 종류의 초점으로 우리는 영광과 존귀와 평화를 가져다주는 하나님의 신성한 생명을 받을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