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Brethren/연(輦)모임 메시지

격려에서 배교까지

Hernhut 2014. 10. 14. 04:00

 

기독교에 무슨 일이 일어났는가?

 

그리스도인들은 히브리서에서 그들의 부르심과 관련해 반복적으로 경고 받았습니다. 이것은 이 책의 중심적인 주제요, 그리스도인 생활 안에 있는 중심적인 이슈입니다. 이것은 전 시대에 모든 그리스도인의 모든 활동에서 중심적인 장소를 차지하는 이슈가 되어야 합니다. 이 전체적인 문제는 하나님의 시야에서 그 중요함이 되도록 하나님의 말씀에서 시작했습니다.

 

 

우리의 확신의 시작

히브리서 3:13a절에서 그리스도인들은 오직 오늘이라 불리는 때에 서로 날마다(매일) 권면하여라고 말했습니다. 이것은 가데스바네아에서 이스라엘민족이 따랐던 유사한 행동방침을 쫓는 것을 어떻게 해서든 피하기 위해 행해야 하는 것입니다(3:8, 13b).

 

성경을 따라서 그리스도인들이 그리스도의 동료들로서 그리스도와 함께 보좌의 위치를 차지할 것이기 때문에 만약이지만 그리스도인들이 다가오는 시대에 그리스도 안에서 이 본질의 위치를 붙잡을 것이라면 오늘날 그들은 그들의 확신을 변함없이 끝까지붙잡는다는 것입니다(3:14).

 

참예자들이라기보다 오히려 동료들이라는 단어는 히브리서 3:14절에서 헬라어 메토코이metochoi에서 사용된 단어의 번역을 선호했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히브리서 1:9절에 있는 따르는 자3:1, 3:14절에 있는 참예하는 자와 같은 단어입니다. 이 두 구절에서 선호한 번역은 동료들이라는 단어가 될 것입니다.

 

다가오는 그날에 그리스도와 동료들이 되기 위해 확신의 시작을 변함없이 끝까지 붙잡는 것은 구약에 있는 틀에서 이해해야만 합니다. 갈렙과 여호수아는 끝까지 그들의 확신의 시작을 붙잡았습니다. 하지만 민족의 남은 자들은 그렇지 않았습니다. 그들이 부르심을 받은 위치를 차지하고, 대적을 전복시키고, 그 땅에 들어가는 것과 관련해 갈렙과 여호수아는 우리가 당장 올라가서 그 땅을 소유하자. 우리가 능히 그것을 이기리라”(13:30)라고 말했습니다.

 

나머지 사람들은 완전히 다른 태도를 보였고 그 문제에 대해 완전히 다르게 접근했습니다. 그들은 그 땅의 거주민들을 두려워했습니다. 그들은 밤에 슬피 울었습니다. 그들은 모세와 아론에게 불평했습니다. 그들은 새로운 리더를 세우려고 했으며, 이집트로 되돌아가려고 했습니다(13:32~14:4). 이것이 차이점이 있는 곳입니다. 문맥적으로 히브리서 3:14절은 이 틀 안에서 이해해야 합니다.

 

 

소망의 고백

히브리서 10:23~25절에 있는 그 같은 명령은 그리스도인들이 함께 모이는 것과 관련된 약간의 다른 방식에 따라 다시 말했습니다. 23절에서 그리스도인들은 “(약속하신 분께서 신실하시니) 우리의 믿음의 고백(소망의 고백)을 흔들림 없이 굳게 잡고라고 권고합니다. 그런 다음 두 구절에서 그리스도인들은 서로를 살펴보아 사랑과 선한 행위에 이르도록 격려하며 *어떤 사람들의 습관과 같이 우리의 함께 모이는 일을 폐하지 말고 서로 권면하되......”라고 말합니다. 그리고 그리스도인들은 그 날(우리 오늘날의 소망을 깨닫게 될 그날)이 다가옴을 너희가 볼수록 더욱 더 그리하자.”는 방식으로 서로 가운데서 그들의 일을 하는 것입니다.

 

문맥적으로 히브리서 10장에 있는 그리스도인들이 함께 모이는 중심적인 목적은 우리의 함께 모이는 것을 저버리지 않고 우리의 부르심의 소망과 관계된 것을 서로 권면하기 위한 것입니다(10:23, 25).

 

이렇게 하는 그리스도인들은 어떤 방식에 따라 이 소망에 관련해서 아는 것이 많을 것입니다. 그들은 그리스도인들의 부르심을 둘러싸고 있는 사실에 대한 어떤 전형적 지식을 제외하고 권고할 수 없기 때문에 서로서로 이 소망을 설명하고, 많은 이야기를 해야 할 것입니다.

 

다른 말로 히브리서 3:13, 10:23~25절을 보건대 그리스도인들은 그들의 부르심을 둘러싸고 있는 것들을 그들 가운데서 설명하고, 말하기 위해 함께 모이는 것입니다. 그들은 앞에 놓인 하늘에 속한 땅과 사탄과 그가 부리는 천사들과 영적전쟁을 통해 그 적들을 이기는데 필요한 것과 그들 앞에 놓인 소망에 관해 말하기 위해 함께 모입니다. 그 소망은 사탄과 그의 천사들을 대체하여 함께 보좌에 오르는 그리스도와 그리스도인으로서 맏아들의 권리를 발휘하고, 왕들 중의 왕, 주들 중의 주와 함께 하늘에 속한 땅을 차지한 것입니다.

 

이것으로 보아 그리스도인들은 서로 권고하기 위해 매일 모여서 시간을 보내는 것입니다(3:13). 그들은 앞에 있는 목표에 그들의 눈을 고정해 지키는 것을 중요하게 여깁니다. 그들은 그들이 그 날이 가까움을 볼수록 더 더욱 서로에게 계속 권면합니다. 오늘날은 인류에 할당된 6(6,000) 끝 무렵에 이르러 있습니다. 이런 시대에 살고 있는 우리이기 때문에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더 더욱 서로 권면해야 할 때입니다. 아주 빠르게 일곱 번째 날(마지막 1,000, 천년왕국, 주의 날)이 다가오고 있습니다.

 

 

하지만

오늘날 그리스도인들이 이런 목적을 가지고 함께 모이나요? 결코 그렇지 않습니다. 전반적으로 그리스도인들은 이 모든 문제에 관해 전혀 알지 못합니다. 이것은 그들이 말하거나, 토론하지도 않고, 그들의 생각의 최고봉의 어떤 것도 더 더욱 아니요, 그들의 행동을 다스리는 것도 아니요, 매일 서로 권면하도록 하는 것도 아닙니다.

 

따라서 미안한 말이지만 그리스도인들은 히브리서 10:23~25절에서 말한 것을 완전히 무시하는 목적을 위해 함께 모입니다. 이것은 완전히 그 손상시키는 일을 하는 누룩입니다.

 

상태가 개선될까요? 그리스도인들이 어느 날 깨어날까요? 오늘날 제도에서는 아닙니다. 성경에 따르면 오늘날 제도는 왕국말씀에 대한 관심을 그리스도인들이 이해하는 것과 드러내는 것과 관련해 총체적인 배교로 끝날 것입니다. 그것은 교회가 수세기동안 움직이고 있었던 것과 같은 방향으로 흐를 것입니다.

 

교회가 수세기동안 이 방향으로 움직이고 있었을 뿐만 아니라 오늘날 교회도 계속해서 이 방향으로 움직이고 있습니다. 사실상 1세기동안 그리스도인들 가운데 널리 붙잡고 있었던 믿음에서 교회가 완전히 떠나게 되었습니다.

 

그리스도는 “.......마침내 전부를 뜨게 한 누룩과 같으니라”(13:33)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리스도의 동료는 또 그리스도의 재림하실 때에 그분은 땅에서 믿음을 찾을 수 없다고 말합니다(18:8). 우리는 이것을 액면그대로 받아들일 필요가 있습니다. 과거와 현재 뿐만 아니라 미래도 아시는 그리스도의 전지하심으로 제도 끝에서 존재할 것과 똑같은 문제를 말씀하셨습니다.

 

그리스도의 말씀에 의하면 제도 끝 무렵 부패의 과정이 일어날 것입니다(13:3~33). “믿음을 둘러싸고 있는 메시지는 이 부패의 맛을 보았던 교회에서 더 이상 듣지 못할 것입니다. 이 메시지를 대해서 모든 교회는 요한계시록 3:14~21절에 있는 라오디게아교회와 같을 것입니다. 主護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