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Brethren/연(輦)모임 메시지

형체가 없고 비어있음

Hernhut 2014. 10. 16. 12:34

 

토후 와보후 tohu wavohu

 

처음에 [하나님]께서 하늘과 땅을 창조하시니라. *땅은 형태가 없고 비어 있으며(땅은 토후 와보후tohu wavohu가 되었고) 어둠은 깊음의 표면 위에 있고.......”(1:1, 2a)

 

성경은 창세기 첫 절부터 완전함으로 열립니다. 그리고 계속되는 서른 네 절(1:1~2:3)의 부분이 있습니다. 이 부분은 이어지는 모든 성경의 뼈대로 전조됩니다. 또 거룩하게 디자인 된 간결한 방식입니다. 이 부분의 숫자적 구조로 올바른 이해와 해석을 소유하는 것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습니다. 하지만 대개 그 반대가 그리스도인들에게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이 구절에서 6일 동안의 하나님의 사역이 보통의 정도에서 벗어나지만 창조만으로 이해했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6일 동안 창조사역에는 소홀히 하고 일곱 번째 날 휴식에만 집중합니다.

 

또 어떤 학파들은 창세기 1:1절을 완전한 시작으로 생각합니다. 이것을 따르는 학파는 회복을 시작하기 위한 창세기의 첫 장으로 이해합니다. 창조가 되고, 그 창조가 황폐가 되었지만 이것이 성경 처음 부분에서는 볼 수 없었습니다.

 

하지만 성경은 성경으로 비교됩니다. 모든 성경이 창세기에서 열리는 방식에서 보면 안식일로 이어진 창조와 회복만은 이 처음 부분에서 올바르게 이해할 수 없습니다. “형체가 없고, 비어있다는 구문은 히브리어 토후 와보후tohu wavohu를 번역한 것입니다.

 

이 두 단어는 구약성경 두 곳에서만 함께 사용되었습니다. 그곳은 이사야 34:11, 예레미야 4:23절입니다. 이 두 구절에는 질서정연한 상태로 있었던 것에 황폐함이 나타나 있습니다. 주의 시대에서 모든 민족들을 대표하는 에돔은 토후 와보후tohu wavohu가 될 운명이었습니다(34:11). 이 단어는 혼돈공허”(KJV), “적막함공허”(NASB)라고 번역되기도 합니다.

 

예레미야 4:23~28절은 창세기 1:2절에 있는 지구와 관련해 이미 일어난 이스라엘 땅과의 비교입니다. 이스라엘의 땅은 토후 와보후tohu wavohu로 변해가고 있었습니다. 예레미야 4:23~28절에서 볼 수 있는 것처럼 창세기 1:2a절에서 땅에 행하셨던 것처럼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땅에 같은 것이 되게 하시려 하셨습니다(4:14~22). 이 두 움직임의 이유는 같은 것입니다.

 

죄가 들어갔습니다. 전자는 사탄이 만든 죄요, 후자는 유대인들이 만든 죄입니다. 이사야 34:11, 예레미야 4:23, 그리고 이사야 45:18절에서 토후 와보후tohu wavohu를 사용합니다. 여기서 하나님께서 창세기 1:2a절에서 설명하는 형제가 없고, 비어있도록 땅을 창조하시지 않았다고 분명하게 말합니다. 이사야 45:18절은 하나님께서 비어 있지 않은 땅을 창조하셨다고 말합니다.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땅은 토후tohu가 아니었고, “형체가 없지도않았습니다.

 

창세기 1:2a절이 주제와 관련된 성경에 비추어 이해되어야 한다면(12:6, 8:20, 28:10, 고전 2:13) 죄 때문에 창조의 황폐하게 된 것이라고 해석할 수 있습니다. 1절에 있는 땅은 죄로 인해 토후 와보후tohu wavohu가 되었습니다.

 

창세기 1:2a절에 있는 있었다라는 단어는 존재를 의미하는 히브리어 동사 하야hayah입니다. 이 단어는 1장에서 27번 사용되었습니다. 사실 되었다라는 단어도 포함하면 훨씬 더 많이 사용되었습니다. 창세기 1:2a절과 예레미야 4:23절에서 볼 수 있는 황폐함은 죄가 들어갔기 때문에 일어났습니다. 이 황폐함은 궁극적으로 회복을 위해서 일어났습니다.

 

창세기 1:2b~25절과 예레미야 4:23~31절에서 계속되는 것을 볼 수 있는 회복은 이사야 35:1~10절과 마찬가지로 왕권의 목적을 위해 일어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런 후 모든 성경은 창세기 처음 부분의 이해와 완전히 일직선을 이룹니다. 모든 성경은 일곱으로 된 구조로 세워졌습니다. 창세기 1:1~2:3절에서 시작하는 변할 수 없는 방식을 따라 세워진 기초로 이루어졌습니다.

 

다시 말해서 하늘들과 땅은 창조되었고, 죄 때문에 물질적인 창조물들은 황폐하게 되었고, 하나님은 이 황폐화 된 창조물들을 회복시키셨으며, 그린 후 하나님은 일곱째 날에 안식하셨습니다.

 

사람은 여섯째 날에 창조되었고, 죄 때문에 황폐의 상태로 빠졌습니다. 하나님은 오늘날 6일 간(6,000)사람을 회복하시고 계시며, 일곱째 날(일곱 번째 1,000년 동안)에 안식의 날을 안식하실 것입니다(벧후 1:15~18, 3:3~8). 성경 전체에서 나중 회복은 이전 회복의 패턴을 따른 것입니다. 모든 성경은 처음에 소개되고, 변할 수 없는 방식으로 세워진 것과 같은 것입니다(1:1~2:3). 모든 성경은 사람창조, 타락, 회복, 그리고 하나님의 사람들이 기다리는 안식 곧 천년왕국으로 이어집니다(4:9, 3~4).

 

창세기 1:2b~25절에서 회복에 관해 한 가지 것만 이해되어야 합니다. 이 회복은 완전한 회복이었습니다. 창세기 1:2a에서 볼 수 있는 앞의 황폐화된 세상, 있었던 세상의 흔적은 지금 있는 하늘들과 땅에서 볼 수 없습니다.

 

완전한 회복은 있었던 세상과 관계있는 어떤 모든 흔적을 제거했을 것입니다. 또 그것은 황폐하게 된 상태도 사라지게 했을 것입니다. 다시 말해 오늘날 지질학은 완전한 회복 때문에 앞에 존재했던 어떤 형태의 창조물들, 그 창조물들의 황폐하게 됨을 볼 수 없습니다. 다만 거룩한 사역을 통한 회복을 창세기 1장에서 볼 수 있는 것은 앞에서 존재했던 창조와 황폐함의 모든 흔적이 사라지게 했을 것입니다.

 

이런 측면에서 오늘날 하늘들과 땅에 의해 덮여있는 시대에 세속적인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역사와 과학 즉, 화석기록, 공룡들, 지형학적 형성과정 등은 창세기 1:2b~25절에서 볼 수 있는 회복의 면이 모두 있어야 합니다.

 

벨렉의 시대를 땅의 지형학적 변화 이후를 제외하고 창세기 1:6~8절에 있는 땅의 회복에 이어지는 1,656년 노아의 홍수가 일어난 것은 창세기 1:2a에 있는 황폐함이 있는 세상이 아니요, 그 때 이전의 세상도 아니요, 이전 본질의 숫자적인 것에 대한 설명에 의존해야 합니다.

 

전체적인 성경으로 보아 창세기의 이 부분의 올바른 해석은 다음 두 가지 방식을 통해 분명하고, 의심할 여지없이 나타나 있고, 이해될 수 있습니다.

 

창세기 1:2a절에 있는 히브리어 토후 와보후tohu wavohu는 성경을 성경에 비추어 해석할 수 있는 이사야 34:11, 45:18, 예레미야 4:23절에서도 사용되었다는 것이요, 구약성경 역사의 전형적인 본질(고전 10:6, 11)은 분명하고도 거룩하게 일곱으로 된 배열로 세워졌다는 것입니다.

 

성경은 구속의 책입니다. 창세기의 처음부분을 올바르게 보는 것만이 처음부터 전체적으로 하나님의 구속적인 메시지를 분명하게 반사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구속의 메시지는 계시된 목적을 위해 거룩하신 개입을 통해 전체적으로 황폐화된 창조회복이 수행되었다는 것입니다.

 

반면 부정확한 견해는 부정적인 결과만 가질 뿐입니다. 말씀의 처음부터 창조만을 전달할 때 완전한 메시지를 전달하지 못합니다. 회복만으로도 완벽한 전달이 될 수 없습니다. 말씀 전달은 처음부터 창조와 회복을 같이 전달해야 합니다. 성경학자 그랜트는 땅의 창조와 황폐함 그리고 사람 창조와 타락 사이에 유사점이 존재한다고 말했습니다.

 

같은 소주제로 시작하는 성경은 창세기와 요한복음입니다. 처음 창세기에서 볼 수 있는 일곱 구조는 요한복음에서도 볼 수 있습니다. 이것과 다른 이유 때문에 창세기가 구약성경 첫 부분에서 시작한 것처럼 요한복음은 신약성경 처음 부분에서 시작해야 합니다.

 

창세기에서 이 일곱 구조는 황폐화된 물질적인 창조의 회복이 다루어집니다. 마찬가지로 요한복음의 일곱 구조는 창세기에서 전조되었던 회복 즉 타락한 사람의 회복을 다룹니다. 창세기와 요한복음 2장은 같은 주제를 다루고 있습니다. 창세기는 수많은 주제를 다루고, 요한복음은 8표적을 다룹니다.

 

따라서 창세기는 창조만 다룰 수 없고, 회복만을 다룰 수도 없습니다. 이런 측면에서 토후 오보후tohu wavohu를 다루는 문제는 문법적인 문제입니다. 창조만 전체적인 성경의 중심 주제로 시작하여 구속의 메시지에 일치시키지 못할 것입니다. 회복만으로도 역시 창조와 같습니다.

 

정확하게 맞는 유일한 해석적 견해는 일곱 구조로 거룩하게 세워진 것뿐입니다. 창조(완전한 시작, 완벽한 창조) 창조의 황폐 황폐화된 창조의 회복 안식입니다. 主護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