빵과 음료/새벽이슬처럼

어떤 예들

Hernhut 2019. 6. 3. 15:29


 

신실하게 믿는 이들이 가라지와 같이 될 수 있을까? 마술사 시몬의 경우를 생각해 보라(8:924). 마술사 시몬은 빌립의 복음전파로 구원받았었다(8:13). 한때 가라지였던 그가 그리스도를 믿었고, 침례를 받았으며, 밀알이 되었다. 믿기 전 그는 마술로 놀라는 사람들로 인해 생계를 이어갔었다. 그러던 시몬은 사도들이 사람들에게 손을 대어 성령님을 줄 수 있었다는 것을 보았을 때 놀랐다. 사도들이 행한 일이 마술보다 훨씬 더 좋았다. 그는 새로운 이 능력으로 자기의 마술을 바꾸고 싶었고 돈을 주고 사도들에게 새로운 능력을 사기를 원했다. 그는 사도들에게 뇌물을 주려고 했다. 얼마나 꼴불견인가! 그는 가라지다웠다. 베드로는 단호하게 대답했다.

네가 하나님의 선물을 돈으로 살 줄로 생각하였은즉 네 돈과 함께 망할지어다!”(8:20)

시몬은 밀알이었는가 아니면 가라지이었는가? 그는 가라지와 같은 특성을 가진 밀알이었다. 나중에 사도 바울은 에베소교회의 감독자들을 모아 그가 다시 에베소교회의 형제들을 보지 못할 것이라는 것을 알리고 술 마시지 않고 냉철한 그리스도인들이 되도록 당부했다. 에베소교회에는 바울에 의해 일으켜지고, 교회 안에서 믿는 이들을 돌볼 책임 맡은 이들이 있었다. 그들은 성숙한 밀알이 되어야 했다. 하지만 바울은 그들에게 말했다.

또 너희 중에서도 제자들을 끌어내어 자기들을 따르게 하려고 왜곡된 것들을 말하는 사람들이 일어나리라.”(20:30)

이와 같이 가라지 같은 일은 지도자들로부터 나올 것이다. 그들 가운데 어떤 사람은 보살핌 속에 있는 성도들을 끌어내어, 그들을 제자로 삼아서, 그들만의 작은 왕국을 가질 수 있다. 얼마나 끔찍한 일인가! 이것은 불가능해 보일지 모르지만, 바울은 그것을 예언했고, 결국 이뤄졌다. 바울은 나중에 디모데에게 말했다.

아시아에 있는 모든 자들이 나를 버리고 돌아선 이 일을 네가 알거니와 그중에 부겔로와 허모게네가 있느니라.”(딤후 1:15).

심지어 이것은 에베소교회 사람들도 포함되었을 것이다. 에베소교회의 믿는 이들은 겉으로 바울에게서 돌아섰을 뿐만 아니라 그들의 마음까지도 주님께 돌아섰다. 예수님은 사도 요한을 통해 에베소교회에게 편지를 쓰셨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너를 책망할 것이 조금 있나니 이는 네가 너의 처음 사랑을 버렸기 때문이라.”(2:4)

바울을 떠나는 것은 겉으로 나타나는 행동이었다. 주님을 향한 그들의 첫사랑을 떠나는 것은 그들의 내적인 상태였다. 사도를 떠나는 것으로 그들의 내적인 상태가 건강치 못해졌다. 나 또한 건강하지 못한 내적 상태가 감독자들을 떠나는 것으로 이어지는 것을 보았다. 밀과 가라지 문제는 단순한 것이 아니다.

이와 같이 가라지 같은 행동은 오늘날에도 여전히 일어난다. 재능이 있는 설교가들이 성경에 관해 말하면서까지 사람들이 자신들을 따르게 하는 것이 얼마나 쉬운가!나는 이러한 일이 일어나는 것을 참 많이 봤다. 그런 일은 항상 가련한 내적 상태로 수반된다. 그러나 어떤 사람을 따르라고 부르심을 받은 적이 없다. 사도바울은 나는 바울파에 속했다.”고 주장하는 고린도교회의 무리를 거절했다(고전 1:12). 바울은 그들에게 말했다.

그리스도께서 나뉘셨느냐? 바울이 너희를 위해 십자가에 못 박혔느냐? 혹은 너희가 바울의 이름으로 침례를 받았느냐? 내가 그리스보와 가이오 외에는 너희 중의 아무에게도 침례를 주지 아니한 것을 하나님께 감사하노니 이것은 아무도 내가 내 이름으로 침례를 주었다고 말하지 못하게 하려 함이라.”(고전 1:1315)

오늘날 이렇게 바울처럼 말하는 이들이 드물다. 왜냐면 현재 그들은 가라지 같은 행동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나는 나와 가까이 있는 이들과 나의 동역자들에 관해 어떤 긍정적인 말을 하고 싶다. 그들 가운데 누구도 배반에 대한 생각을 하지 않는다. 우리는 교파나 단체가 아니므로 배반할 것이 없다. 내가 왕이고, 교회들이 나의 왕국이었다면 그들은 배반할 가능성이 있다. 하지만 나는 아무도 지배하지 않고, 그들은 너무도 순수하다. 아무도 왕국을 원하지 않는다. 그래서 우리와 함께 있는 교회들은 모두 평화롭게 그리스도께 속해 있다. 가라지 생명의 열매를 맺는 그리스도인들의 부정적 영향은 개인적으로 그들에게 주지 못한다. 하지만 그들 주변의 많은 형제와 자매 그리고 결국에는 온 교회생활에 영향을 주었다. 보통 이것은 그들의 가르침에서 나오지 않는다. 자기들이 누구고, 자기들이 어떻게 사는 지에서 나오는 것이다. 순수한 마음으로 그리스도의 임재 안에서 사는 순수한 그리스도인들은 그들이 주변 사람들 안에 가라지 요소로 영향을 줄 것이라는 것에 조심해야 한다. 밀 생명의 실재 안에서 살도록 하실 하나님의 긍휼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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