빵과 음료/새벽이슬처럼

길가토양

Hernhut 2019. 2. 19. 22:04

 

 

뿌릴 때에 어떤 씨들은 길가에 떨어지매 날짐승들이 와서 그것들을 먹어 버렸고(13:4)

 

종자를 뿌리는 자가 종자를 뿌릴 때 어떤 종자는 길가에 떨어진다. 오늘날에는 모종으로 이런 현상을 별로 발견하지 못하지만 몇 십 년 전만해도 이런 일은 비일비재했다. 우리의 마음이 단단하게 다져진 길가와 같다면 그것은 우리가 너무 바쁘기 때문이다. 결국 주님께서 우리에게 말씀하실 때 우리는 그분의 말씀을 들을 수 없다. 그분께서 우리 안으로 어떤 것을 뿌리실 때 우리는 그것을 받아들일 수 없다. 어떤 사람이 우리에게 주님을 사랑하는지를 묻는다면 우리 양심은 우리가 그렇다. 난 주님을 사랑한다.고 대답해야 하는 것이 마땅하다. 그렇지만 주님께서 우리 안으로 어떤 것을 뿌리시기 원하실 때 우리는 귀를 기울이지 않는다. 우리의 귀 기울이지 않음은 우리가 우리 삶을 계획하는 데 있어 너무 바쁘기 때문이다. 우리는 우리가 생각하는 것을 까다롭게 고르는 것은 가장 좋다. 우리가 영적인 이유 때문에 선택을 함에도 그것은 여전히 우리의 선택이다. 우리가 우리의 생각으로 가득할 때 주님께서 하시는 말씀을 듣기가 매우 어렵다. 주님은 길가토양이 이런 방식을 체험케 한다고 말씀하셨다.

 

어떤 사람이 왕국의 말씀을 듣고 그것을 깨닫지 못할 때에는 그 사악한 자가 와서 그의 마음속에 뿌려진 것을 채어 가나니 이 사람은 곧 길가에 씨를 받은 자니라.(13:19)

 

우리는 듣고, 깨닫지 않으면 주님께서 우리 안으로 뿌리려고 하신 것이 강탈당하게 될 것이다. 강탈당하게 되면 마치 주님께서 아무것도 뿌리시지 않은 것이 될 것이다. 이것은 예수님 외에 생각, 계획 등으로 바쁜 자들의 체험이다. 길가는 통행이 잦음을 의미한다. 통행은 계획하는 것이 많음을 의미한다.

나는 젊은이들이 어느 대학에 갈 것인지, 무슨 공부를 할 것인지를 결정하려는 것에 동의한다. 그들은 부모, 친구들, 교사나 교수들로부터 조언을 받는다. 그들은 학교, 학과, 등록금, 그리고 학교의 명성도 생각해야 한다. 그들이 영적으로 어릴지라도 그들은 학교가 교회 근처에 있다면 거기서 어떤 교제를 할 수 있다고 생각할 것이다. 하지만 그들은 바쁨과 생각으로 가득하다. 그들이 각 학교의 찬반양론의 득실을 비교하기 때문에 그들은 주님의 음성을 못 듣는다. 주님은 뿌리시기를 원하시지만 그들은 눈치도 채지 못한다. 대부분의 학생들은 주님의 뿌리심을 바탕으로 그들의 학교를 선택하는 경우가 거의 없다. 어떤 사람이 주님께서 내 마음 안으로 이 학교를 뿌리셨다. 그것 때문에 나는 이 학교가 나와 교회에 유익을 주리라고 확신한다. 나는 근처에 교회가 있기 때문에 여기에 온 것이 아니다. 하지만 주님께서 여기에 가라고 나에게 말씀하셨기 때문에 왔다.라고 말하는 사람이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이것은 길가토양에서 자유로운 것이다.

혼인을 하게 된 청춘남녀는 혼인 계획을 세우느라 아주 바쁘다. 살집을 찾고, 가구를 사고, 완벽한 가정에 대한 꿈을 이루기 위해 모든 것을 한다. 아주 소수만이 이 모든 문제에 대해 주님께 귀 기울이려고 느긋하게 움직인다. 너무 바쁠 필요가 없다. 이 모든 일에 있어 우리 안으로 주님께서 그분 자신을 뿌리시도록 할 필요가 있다. 우리는 길가토양을 떠나는 것이 필요하다. 우리는 주님께 귀 기울일 수 있는 곳으로 갈 필요가 있다.

주님은 항상 뿌리시고 계신다. 나는 50년 넘게 살았다. 주님은 여전히 내 안으로 뿌리시고 계신다. 비밀은 바빠지지 않는 것을 배우는 것이다. 내 나이에 많은 사람은 병원 다니는데 바쁘다. 나 역시 병원에 다닌다. 하지만 병원이 나를 차지하지 못한다. 많은 사람은 다이어트 하는데 바빠한다. 나도 먹고, 건강을 유지하는 데 관심 있지만 그것이 나를 지배하지 못한다. 나도 잠을 충분히 자려고 하지만 잠에 대해 초조해 하지 않는다. 주님은 계속 뿌리시고 나는 그분께 듣기를 원한다. 주님은 우리의 삶 모든 영역에서 우리 안으로 어떤 것을 뿌리시기를 계속하신다. 우리는 절대 졸업하지 않는다. 우리는 거듭남의 초기 단계에서도 그분의 계속되는 뿌리심이 필요하다. 거듭남의 실제를 갖기 위해 우리는 거듭해서 우리를 새롭게 하시는 주님이 필요하다. 우리가 주님을 사랑하지만 다양한 범주와 단계들로 그분을 사랑하는데 아주 많은 다른 방법들이 있다. 우리는 우리 삶에 그분의 뿌리시는 것이 필요하다. 그분의 뿌리심은 그분의 사랑의 깊이를 체험할 수 있는 것이다. 우리의 바쁨 때문에 주님의 사랑의 깊이를 놓치는 것이 정말 아쉽다.

우리는 사랑이 무엇인지를 우리가 안다고 생각하지 말아야 한다. 주님께서 우리 안으로 뿌리시는 사랑은 일반적이지 않다. 나는 30년간 넘게 주님을 사랑했다. 오랜 시간이 지났지만 주님은 여전히 내 안으로 소위 사랑이라는 어떤 요소를 뿌리시고 계신다. 이 사랑은 아주 심오하고 깊다. 나는 주님에 대한 나의 사랑이 10년마다 너무 다르다고 말할 것이다. 내가 처음 구원 받았을 때 나는 주님에 대한 사랑이 있었다. 그분에 대한 나의 사랑은 진지하고 진실했다. 하지만 그 때의 사랑은 견고하지 않았다. 지금은 감정적인 느낌을 사라지고 있다. 하지만 지금 가지고 있는 사랑은 심오하고 견고하다. 길가토양 때문에 많은 그리스도인은 주님에 대한 그들의 사랑을 잃어버린다. 내가 감사한 것은 내가 여전히 그분을 사랑할 수 있다는 것이다.

우리가 이것저것으로 계속해서 바쁘게 생활한다면 우리가 길가토양에 있다는 것이다. 바쁨과 계획이 있다는 것은 길가토양에 있는 삶이라고 정의된다. 결국 길가토양에 있는 것은 새들에 의해 강탈당해 주님에 대한 아주 귀중한 것을 잃어버리는 이유가 될 수 있다. 여기서 새들은 사탄으로 통칭되지만 세부적으로 세상의 이론, 학문, 교리, 종교, 문화, 즐거움, 신학, 철학 등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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