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세기 생명 노선에 있는 이름들은 교리적이지 말아야 한다. 이 이름들은 우리의 체험을 위한 것이다. 생명 노선과 관련이 있는 이 모든 이름은 아주 많은 진리를 담고 있지만, 우리에게 있어 그 이름들은 교리적일 수도 있다. 우리는 주님께서 라오디게아에 있는 교회에 말씀하신 것을 기억해야 한다.
“나는 부자라. 내가 재산을 불렸으니 아무것도 부족한 것이 없다, 하면서 네 비참한 것과 가련한 것과 가난한 것과 눈먼 것과 벌거벗은 것을 알지 못하기 때문이라.” (계 3:17).
라오디게아 교회는 무슨 잘못이 있었는가? 라오디게아는 높은 진리의 위치를 차지한 교회였지만 실제가 없었다. 라오디게아 사람들은 진리가 있었지만 진리에 대한 체험이 없었다. 이것이 주님께서 그들을 꾸짖은 이유다.
“네가 부자라고 말하지만 너는 네가 정말로 얼마나 가난한지를 모른다.”
우리가 너무 많은 것을 알고, 너무 많은 것을 말한다면 아주 조금 누리고 체험하게 되는 라오디게아가 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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