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담과 이브의 두 번째 아들을 낳았을 때 그의 이름을 아벨이라 지었다. 아벨은 “자만심, 허영심”을 의미한다. 그들의 두 번째 아들 아벨의 이름을 부르면서 말했다.
“모두 허영심이야. 이 아들 역시 일하지 못할 거야. 하나님께서 절대 이 두 아들로 서펜트(나아스)의 머리를 상하게 하고, 전에 있었던 땅으로 회복시키는 것이 불가능할 거야. 모두 소망이 없어.”
두 아들 중 하나도 서펜트(나아스)의 머리를 상하게 하게 하지 못하게 될 것이었다면 하나님의 약속은 어떻게 된 걸까? 무엇이 예전의 아름답고, 평온한 상태로 회복된 창조의 소망을 본다는 것이 어떻게 된 걸까? 이와 같은 아름다운 하나님의 창조는 잘못된 나무에서 나는 하나의 작은 열매를 먹음으로 황폐해졌다.
아담과 이브는 처음에 있었던 것으로 돌아가기를 기다렸다. 하지만 첫째 아들은 일을 해내지 못했고, 그들이 모든 현실이 절망 가운데 있을 때 둘째 아들이 태어났다. 그들은 또 타락 후 인간 존재가 무의미하다는 것을 알았다. 가인에게 실망한 후 아담과 이브는 인산의 삶이 헛되고, 허영심이었다는 것을 알았다. 이것이 두 번째 아들을 아벨이라고 이름 지었던 이유다.
가인의 태어남은 격앙과 기대였다. 아벨의 태어남은 실망과 헛됨이었다. 가인은 “내가 얻었다.”를 의미한다. 아벨은 “모든 것이 쓸모없다.”를 의미한다. 이 두 이름은 아주 의미 있는 것이다. 가인과 아벨 즉 “얻음과 허영심”은 생명의 두 방식을 대표한다. 가인과 아벨은 인류 역사에서 지식의 노선과 생명의 노선에 대한 시작이다. 가인의 노선은 확신으로 시작한다. 아벨의 노선은 헛됨으로 시작한다. 지식의 노선은 “내가 얻었다.”로 시작하고, 생명의 노선은 “내가 소유하지 못한다.”로 시작한다. 생명의 두 방식은 이 두 이름으로 특징짓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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