빵과 음료/복음칼럼

인류의 두 노선에서의 전쟁

Hernhut 2018. 5. 14. 14:34

1장에서 하나님은 그분의 창조 가운데 두 생명의 방식을 묘사하셨다. 이 두 생명의 방식은 에덴동산에 있던 생명 나무와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로 예표 되었다. 사람들은 두 번째 나무가 악의 나무라고만 가끔 생각한다. 실제로 이 나무는 선과 악을 포함하는 지식의 나무다. 지식의 나무는 논리의 나무다. 이 논리는 선하다는 것과 악하다는 것을 우리에게 말한다. 생명은 한 노선이요, 지식과 논리는 또 다른 노선이다. 우리가 살아야 하는 것은 두 나무, 두 노선뿐이다. 우리는 생명을 따라 살거나 아니면 무엇이 선한지, 무엇이 악한지를 이해하는 것에 따라 살고, 지식을 따라 살 것이다. 우리가 생명의 노선으로 살지 않을 때마다 우리의 삶은 자동으로 우리의 논리에 의해 결정될 것이다. 모든 사람은 논리의 어떤 양식에 따라 산다. 우리의 논리는 우리의 문화, 우리 부모의 가르침, 심지어 성경의 교리에서 나올 수 있다. 우리가 무엇이 선인지, 무엇이 악인지에 따라 살 때 우리는 우리의 논리로 사는 것이다. 이것은 생명의 노선에 따라 사는 것과 다르다.

인류 역사의 시작부터 사람은 선악을 알게 하는 노선으로 계속해서 타락해 왔다. 그 역사의 중심에서 하나님은 지식의 노선 밖으로 나와서 생명의 노선 안으로 들어오도록 어떤 사람들을 계속해서 부르시고 계시다. 아담이 지식의 나무에서 나는 것을 먹어 타락했을 때 모든 인류는 그 노선 안으로 이끌려졌다. 하지만 아담 밖에 계신 주님은 그분께서 잃은 것을 회복하시기를 갈망하신다. 하나님은 사람이 생명 나무로 되돌아오기를 갈망하신다. 아담의 첫 번째 두 후손에게는 두 노선이 있었다. 하나는 가인의 후손이요, 다른 하나는 아벨의 후손이다. 가인은 지식의 노선이었고, 아벨은 생명의 노선이었다. 가인이 아벨을 죽인 후 아담은 셋이라는 또 다른 아들을 얻었다. 셋은 실제로 아벨 노선의 연속이었다.

가인의 후손과 셋의 후손은 이 두 구별되는 노선이다. 셋에서부터 노아까지 생명을 따른 노선이다. 노아 시대 이후 사람은 그칠 줄 모르고 계속해서 타락했다. 그래서 하나님은 아브라함을 부르셨다. 아브라함의 후손에게도 다시 두 노선이 있었다. 한 노선은 이스마엘이요, 다른 노선은 이삭이다. 이삭은 생명의 노선이었다. 이스마엘과 이삭은 끊임없이 서로 대항하려고 애를 썼다. 이삭에게도 두 노선이 있었다. 한 노선은 에서요, 다른 노선은 야곱이었다. 야곱은 생명의 노선이었다. 이 두 형제는 서로 대항했다. 온 인종의 역사가 두 노선 사이에 전쟁하는 역사다. 하나님께서 땅 위에 두 노선을 두셨기 때문에 인류는 늘 싸움하고 있다. 모든 인간 존재는 이 두 노선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

우리는 우리 자신에게 질문해야 한다.

내가 생명의 노선 안에 있는가? 아니면 선과 악을 알게 하는 지식의 노선 안에 있는가?”

우리가 생명의 노선 안에 있다면 하나님께서 갈망하시는 것에 따라 사는 것이다. 우리가 지식의 노선, 논리 심지어 좋은 논리를 따라 살고 있다면 하나님께서 거절하시는 합당치 않은 노선 안에서 사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