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인과 아벨의 삶은 그들의 다른 이해도에 의해 정해졌다. 가인은 하나님의 명령에 대한 이해 때문에 정해졌다. 반면 아벨은 하나님의 공급에 대한 계시로 정해졌다. 그들 사이에 있는 중요한 차이는 가인이 수고의 열매를 수확할 수 있었지만, 아벨의 삶은 그를 부끄럽게 할 뿐이었다. 아벨의 삶은 어떤 것도 산출하지 못했다. 그는 자기의 삶과 수고로 어떤 열매도 수확할 수 없었다. 아벨은 가인에게 의지해서 사는 사람이 되었다. 이때까지 사람들은 고기를 먹지 않았었다. 아벨은 자신의 목동 노릇을 의지해 살 수 없었다. 그는 들에서 수확하기 위해 수고한 가인을 의지해서 살 수 있었다. 가인은 아벨을 살리고, 돕기 위해 어떤 것을 수확해야 했다. 가인의 삶은 표면적 성공을 한 사람이었고, 생산력이 있는 사람이었다. 하지만 아벨의 삶은 영광이 없었다. 우리가 세상에서 하는 모든 것에는 “열매”, “결과”로 판단한다. 열매와 결과는 우리의 수고로 산출된 가시적인 어떤 것이다.
우리가 소설 읽기를 즐거워한다면 우리는 열심히 일할 수 있고, 결국 작가가 될 수 있다. 우리가 음악을 좋아한다면 훈련을 하여 음악가가 될 수 있다. 우리가 어떤 일을 아주 좋아하고, 그것을 위해 열심히 일한다면 결국 우리는 어떤 것을 취할 것이다. 우리가 자기를 투자한다면 우리는 전람할 어떤 것을 가질 것이다. 하지만 우리가 주님을 사랑한다면 보여 줄 것이 아무것도 없다. 주님을 사랑하는 것은 이런 면에서 유일하다. 우리가 주님을 사랑할 때 트로피는 없다. 우리가 얻는 가시적인 것은 아무것도 없다. 우리가 주님을 따르기 원한다면 처음부터 우리는 이것에 관해 아주 분명해야 한다. 우리는 분명하게 알아야 한다.
“내가 주님을 따를 것이라면 표면적으로 볼 것이 아무것도 없다. 아무도 나를 이해하거나 인정할 사람이 없다. 내 삶은 다른 사람들이 이야기할 주제 거리가 될 뿐이다. 다른 모든 사람은 그들이 사는 것 어떤 것을 보여줄 수 있을지 모르지만 내 삶은 다를 것이다. 나는 계시에 따라 살 것이다.”
이것이 아벨의 삶이었다. 아벨의 이름이 “자만심, 허영심, 빈”이라는 의미가 된 이유가 이것이다. 아벨의 삶은 계시의 생명이다. 그의 삶은 표면적 성공의 생명이 아니다.
우리가 그리스도의 계시를 따를 때 우리는 우리 모든 삶이 어떤 사람에게서 절대 인정받지 못할 것이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 다른 사람들은 우리의 삶이 의미 없고, 덧없음을 느낄 것이다.
아벨의 삶은 공허했다. 그의 삶은 덧없었다. 우리가 아벨 노선에 있다면 우리 또한 아벨의 깨달음을 가질 것이다.
“내 삶, 내 이름은 덧없음, 빈약함, 자만심, 허영덩어리야. 나는 하나님만 갈망해. 난 아무것도 없어. 하나님뿐이야. 내 이름은 가인이 아니야. 왜냐면 난 아무것도 얻지 못해. 가인은 자신을 위해 어떤 것을 가질 수 있어. 하지만 난 어떤 것도 가질 수 없어. 내 이름은 아벨이야. 내 삶은 껍데기뿐이야. 사람들이 내 삶을 볼 때 내 존재가 무의미하다고 생각할 거야. 하나님 이외에 개가 가진 것이 아무것도 없기 때문이지.”
우리는 어떻게 이러한 비전을 보고 아벨의 노선에서 살까? 그 열쇠는 우리 영 안에 있다. 우리가 우리 영을 만질 때마다 주님에 대한 비전은 우리 영 안에 있다. 영 안에 있는 인격은 비전이 있는 인격이다. 우리가 우리 영을 만질 때 아벨이 자기 아버지에게서 들은 이야기에서 어떤 것을 본 것처럼 우리 또한 어떤 것을 볼 것이다. 우리는 우리의 미래에 관해 놀랄지도 모른다. 아벨의 노선에 있는 우리는 미래가 없다. 우리가 우리의 이름이 덧없음, 빈약함, 자만심, 허영덩어리라는 것을 안다면 이 땅에서 더 얻을 것이 없다는 의미다. 우리의 삶은 예수 그리스도를 위한 것이 될 뿐이다. 그리스도는 우리가 갈망하는 모든 것이다. 우리가 이런 깨달음으로 산다면 주님은 우리와 함께 거하시는 방법을 가지실 것이다. 우리의 삶은 주님에 대한 우리의 비전과 그분의 구원으로 정해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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