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러분을 격려하도록 디자인된 마지막부분과 비교했을 때 이 부분은 오히려 더 무서워 보일 수 있다. 여러분이 어떤 누가 교회행정을 할 수 있다는 관점을 붙잡는다면 역할을 할 수 있는 직무분석표는 가장 중요하다. 이 사역을 위해 하나님께 은사를 받은 사람들이 필요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형제들의 프로파일이다.
사도행전 6:1-7절을 읽어보라. 이 구절들은 가르치는 구절이라기보다 오히려 일어난 것에 대한 이야기에 대한 것이다. 하지만 이 구절에서 우리가 배울 수 있는 것과 놀라운 예가 있음을 본다.
예루살렘교회는 급속하게 자라고 있었지만 그 교회에는 그리스 유대인과 히브리 유대인이라는 두 무리가 있었다. 이 두 무리 사이에는 이미 천연적인 어떤 팽팽한 신경전이 있었음이 분명하다. 그 교회 안에 있었던 한 가지 문제처럼 보이는데 그것은 그리스말을 하는 과부가 날마다 분배되는 돈이나 음식으로 무시당했다는 것이다. 그것은 가련한 교회행정의 결과였던 개연성이 짙다. 이 과부들은 매일의 필요를 교회의 너그러움에 의존했었을 것이다. 분배의 유익이 전혀 존재하지 않았다. 모임 곳곳에서 불안의 요소들이 드러나게 되었고 그것은 억제된 것이 틀림이 없다. 그 때 교회행정의 어떤 조치가 일어나게 되었다.
사도들은 그것을 감독하고서 그것을 분류했다. 하지만 그들은 그들이 그런 분리 없이 다른 우선순위에 간섭할 때 교회가 자랄 수 없음을 보았다(2, 4). 그래서 교회모임 후 그들은 이 실행을 맡을 7명의 형제들을 임명했다. 이 이들이 맡은 임무는 중요한 일이었다.
이 일곱 명의 형제들에 관해 뭐라 말했는가? 그들은 모두 그리스 이름을 가지고 있다. 그래서 마치 어떤 교회의 정치적 민감성을 가지고 선택된 것처럼 보인다. 그 중 빌립은 다소 이름이 있는 복음전파자가 되었고, 스데반은 순교한 지도자가 되었다. 나머지 형제들은 알려지지 않았지만 분명한 것은 그들이 그 일을 계속했고, 문제를 해결했다는 것이다. 하나님은 그들의 중요한 사역을 해방시키고, 불평들을 종식시켜 사도들과 함께 더 성장시키도록 교회를 축복하셨다.
하지만 사도들은 성령님과 지혜가 충만해야 선택받을 수 있음을 분명하게 말한다. 어떤 누구도 성령님과 지혜의 충만 없이는 이 기본적인 임무를 행하지 못할 것이다. 그와 반대로 그들은 아주 특별한 그리스도인이 되어야 한다. 이것은 그 문제의 까다로운 특성이나 이 행정업무가 잘 실행되어야 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어느 쪽이든 그 일은 영적인 역량을 가진 형제들을 필요로 했다.
몇 년 후 바울이 교회를 돌보는 방법에 관해 디모데에게 편지를 썼을 때 그는 디모데에게 지도자들, 장로들을 선택하기 위해 어떻게 형제들의 프로파일을 확인해야 하는지를 전달했다. 디모데전서 3:1-7절을 읽어보라. 지혜롭다. 성숙한 그리스도인들을 임명하는 것이 이치에 맞다. 그러고 나서 집사들을 임명하는데 장로들과 대등한 위치에 두고 있다. 각지 교회를 발전시키려고 교회 안에서 집사들은 실제적인 봉사를 더 하게 된다. 교회의 행정을 맡은 형제들은 이 용어에 대해 가장 잘 현대적인 이해를 갖고 있다. 우리가 염려하는 것은 교회행정을 맡은 형제들인데 그들의 프로파일 지침서가 거의 다 장로의 프로파일을 복사하고 있다는 것이다.
계속해서 디모데전서 3:8-13절을 읽어보라. 여기에 아주 흥미로운 점이 몇 가지가 있다. 집사들의 특성과 처신은 그들이 영적인 지도자들이 된 것처럼 비난의 여지가 없어야 한다(8). 그들은 성도들이 그리스도 안에서 깊게 믿음을 붙잡도록 해야 한다. 이것은 중요한 문제인데 사실 그들의 봉사는 더욱 더 그들의 믿음을 자라도록 도울 것이다(9, 13). 그들은 임명되기 전에 시험을 받아야 한다(10). 그리고 그들은 그들의 가정생활의 확장이다(11, 12).
짐작건대 바울은 교회행정의 지도자 직분을 말하고 있고, 격려하고 있는 것이다. 교회행정 사역을 맡는 것은 아주 신중해야 한다. 교회행정을 맡은 형제들이 중요한데 그것은 그들의 사역이 교회 건강하게 하고 활력을 주는 일을 하기 때문이다. 오늘날 많은 교회들이 성경적으로 지도자들이나 장로들 그리고 집사들을 임명하지 않는다. 자격이 없는 성도들도 교회행정과 사역을 맡아 교회를 건강하고 활력 있게 할 수 없다. 그들은 교회를 손상시킬 뿐이다. 성경적인 지도자, 장로, 집사들의 임명은 오늘날과 너무도 다르다.
교회행정이 너무나 자주 기계적으로 행해져 왔다. 우리가 흔히 습관적으로 3번을 채우고, 실행에 대한 제한적 규약을 따라왔다. 그리스도인의 교회행정은 이와 다르다. 그리스도인 교회행정 배경에는 영적인 사역이 있다. 교회행정의 영적 사역은 왕국의 다가옴을 거대한 결과를 가질 수 있다는 것이다. 교회행정의 영적 사역은 성령의 창조성을 요구하고, 경건한 특성을 가진 사람들을 필요로 한다. 교회행정의 영적 사역은 오늘날 교회를 신뢰하는 성도들을 돕고, 많은 좌절감을 내다 버리게 할 수 있다. 만일 잘 실행되었고, 참된 성도들로 돌이켰다면 교회행정은 교회들이 건강하게 될 수 있도록 영적인 지도자들에게 그들의 우선순위를 집중하는 것을 해방 받을 수 있다.
그 중요성은 계속해서 성장해 가고 있다. 이것은 부분적으로 교회가 지난 수년 동안 어느 정도 증가했다. 수많은 교회들이 양적으로 가시적으로 성장해 왔다. 하지만 질적으로, 내용적으로는 그리 많이 성장을 한 것이 아님을 나는 믿는다. 왜냐면 교회들마다 교회행정을 실행하는데 너무도 기계적이고, 습관적이고, 비성경적이라는 것이다. 교회행정이 성령 안에서 유기적으로 실행되어야 한다. 그럴 때 내용적으로 교회가 풍성해지는 것이다.
교회행정의 생명은 훨씬 더 많이 복잡하다. 교회행정에는 사안들을 포함한 상당히 많은 서류들이 있다. 아이들을 보호하고, 재정을 사용하는 규범, 실행지침서, 건강과 안전.... 등등이 교회행정을 맡은 형제들이 해야 할 사역이다.
하지만 오늘날 교회들은 교회행정을 맡은 형제들을 임명하지 않고, 채용해 왔으며, 그로 인해 고용법의 문제가 되었다. 차별법이 우리 모두에게 영향을 주었다. 교회 안에서 뭔가 잘못된 사람들이 과거보다 고소할 공산이 더 커졌다. 그러므로 그 위험을 평가할 시간을 주어야 한다. 교회들은 영적인 교회행정으로 돌아가야 한다. 이것이 실행되지 않고는 교회가 양적으로 가시적으로 성장을 맛볼 수는 있지만 교회의 장성한 분량에는 이르지 못할 것이다. 오늘날 많은 교회들이 세상과 혼합되어 교회가 세상인지, 세상이 교회인지, 우상이 하나님인지, 하나님이 우상인지 알 수 없게 만들어 가고 있다.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정신을 차리고 교회생활, 그리스도의 몸 생명을 살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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