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Brethren/연(輦)모임 메시지

신랑을 만나기 위한 준비

Hernhut 2014. 8. 22. 19:30

성도들은 그리스도의 재림을 어떻게 준비하나?

 

어느 날 모든 그리스도인들은 신랑을 만나러 갈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심판대 앞에 나타날 것입니다(25:1~46). 준비 전 사람들은 잘 하였도다. 착하고 신실한 종아....”라는 주님의 말씀을 듣도록 요구받을 것입니다(25:19~23, 19:15~19).

 

침례자 요한은 그의 사역과정에서 그리스도께서 그리스도인들을 다루게 되실 그분의 심판대에 대해 말했습니다. 그렇게 함으로 해서 침례요한은 추수 끝 무렵 타작마당에서 일어나는 사건들을 이끌어냈습니다.

 

나는 너희로 회개케 하기 위하여 물로 세례를 주거니와 내 뒤에 오시는 이는 나보다 능력이 많으시니 나는 그의 신을 들기도 감당치 못하겠노라 그는 성령과 불로 너희에게 세례를 주실 것이요 *손에 키를 들고 자기의 타작마당을 정하게 하사 알곡은 모아 곡간에 들이고 쭉정이는 꺼지지 않는 불에 태우시리라”(3:11~12).

 

타작마당은 곡식단을 털고, 알곡과 가라지를 가르기 위해 키질을 하는 곳이었습니다. 그곳은 곡식단을 느슨하게 묶어서 가져다 두는 곳이었습니다. 그곳에서 알곡과 밀짚과 그리고 검불(왕겨)의 혼합물들을 바람에 날려 검불과 밀짚과 쭉정이와 알곡을 분리하게 됩니다. 알곡들이 타작마당 위에 떨어지면 모아다가 창고에 저장했습니다. 그리고 밤이 이르면 어떤 사람이 현장을 지키면서 그곳에서 잠을 잤습니다.

 

타작마당에서 알곡과 가라지 , 검불은 분리되었습니다. 그와 똑같이 그리스도의 심판대에서도 일어날 것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의 일들은 불 속에서 재판을 받을 것입니다. 분리가 일어날 것입니다. “, , 그리고 귀한 돌들로 이루어진 사역은 불을 견딜 것이지만 나무, , 검불로 이루어진 사역은 불살라질 것입니다(고전 3:11~15).

 

이것은 요한도 말한바 있습니다. 검불과 가라지를 알곡과 분리하여 밀알은 모아다가 곳간에 들이고, 가라지와 검불은 불사른다고 말을 했습니다.

 

타작마당에서 일어나는 일들과 준비는 룻기에서 잘 나타나 있습니다. 룻은 추수 끝 무렵 보아스의 타작마당에서 그를 만나기 위해 세 가지 방법으로 자신을 준비했습니다. 룻은 자신을 씻고, 기름으로 단장하고, 보아스를 만나러 가기 전에 합당한 예복을 입었습니다(3:3).

 

타작마당에서 이런 방식으로 보아스를 만나는 것은 두 가지의 목적이 있습니다(3:9~18).

 

1) 상속의 구속이요,

2) 룻이 보아스의 아내가 되는 것입니다.

 

이런 만남은 한 밤중에 일어났습니다. 이것은 심판의 때를 말합니다. 이 심판의 때에 대해서 성경에서 한 밤중이라고 언급하는 곳이 또 있습니다(3:8, 11:4, 3:11~12).

 

룻의 준비는 오늘날 그리스도인들이 준비해야 하는 것과 같습니다. 룻은 타작마당에서 한 밤중에 보아스를 만나 구속된 상속과 그의 아내가 되기 위해 어떤 방식을 따라 자신을 준비했습니다. 오늘날 그리스도인들 또한 한 밤중에 그리스도의 타작마당에서 만나 구속된 상속과 그분의 아내가 되기 위해 어떤 방식을 따라 자신들을 준비해야 합니다.

 

 

자기 자신을 씻음

씻음현재의 더러움에서 깨끗해짐과 관계있습니다. 구약성경의 제사장들의 사역의 범위 안에서 몸을 완전히 씻는 것은 처음 제사장 직분을 가지고 장막 뜰로 들어갈 때 행했습니다. 이것은 반복하지 못하는 단회적인 행위였습니다(29:4, 40:12~15). 그 다음 몸의 일부분은 제사장들이 놋제단과 성소 사이에서 사역하였음으로 장막 뜰에 있는 놋대야에서 씻었습니다(30:19~21). 그들의 손과 발은 그들의 사역을 수행함으로 때가 묻었고, 그 놋대야는 때 묻은 몸의 일부분을 씻기 위해 위 아래로 놓여 있었습니다.

 

구약성경에 있는 씻음은 두 장면으로 나타나 있습니다. 하나는 최초로 온 몸을 씻는 것과 다른 하나는 평생에 걸쳐 여러 번 몸의 일부를 씻는 것으로 이어집니다. 그것은 예수님께서 베드로에게 요한복음 13:8, 10절에서 말한 씻음을 말합니다. “.......내가 너를 씻기지 아니하면(여기서 씻음은 헬라어 닢토nipto로 일부분을 씻음을 의미함, 70인역에서 출애굽기 30:19, 21절에 사용하고 있다.) 네가 나와 상관이 없느니라(여기서 나와내 안에서의 의미가 아님)....... * 이미 목욕(여기서 씻다는 헬라오 로우오louo로 온 몸을 씻음을 의미함, 또 출애굽기 29:4, 40:12절에서 같은 단어가 사용됨)한 자는 발 밖에 씻(닢토nipto)을 필요가 없느니라 온 몸이 깨끗하니라 너희가 깨끗하나 다는 아니니라.”

 

베드로는 한 번 온 몸을 씻었습니다(로우오louo). 그는 계속해서 몸 일부를 씻을 필요가 있었습니다(닢토nipto). 이 계속해서 씻은 것을 제외하고 베드로는 그리스도와 함께하는일부분을 가질 수 없었습니다. 문맥적으로 그리스도와 함께하는 왕국과 위치 안에서 보이는 것이었습니다.

 

구약성경에서 이끌어 내어진 예표적인 가르침과 오늘날 그리스도인들의 삶 안으로 베드로에게 말씀하신 그리스도의 말씀을 가져오는 문제는 신약성경 제사장직분의 일부인 그리스도인들이(벧전 2:5) 그들이 구원을 받고, 이 제사장직분에 들어갔을 때 온몸을 씻음(로우오louo) 받았다는 것입니다. 그리스도를 위해 사역하는 제사장들로서 세상과 접촉함을 통해 오염되기 때문에 그들은 부분적인 씻음(닢토nipto)이 계속될 필요가 있습니다. 이 계속되는 씻음 외에 그리스도인들은 그분의 왕국에서 그리스도와 함께하는 부분을 가질 수 없습니다.

 

온 몸을 씻는 것은 피 흘리심을 기초로 하여 이루어졌습니다. 이것은 그리스도의 과거와 현재 사역과 관계가 있습니다.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구속을 위해 갈보리에서 피 흘리시고, 죽으셨습니다. 피를 적용하는 것은 온 몸을 씻었다는 것과 제사장직분에 들어갔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제사장직분을 수행한다는 것은 피의 적용과 유월절 어린양의 죽음을 적용한다는 의미입니다(12:1~51).

 

그리스도의 보혈은 오늘날 사역하시고 계신 그리스도와 함께 그분의 흘리신 보혈을 기초로 하는 하늘에 속한 장막의 긍휼의 보좌 위에 있습니다. 그리스도의 보혈은 우리의 유익을 위해 지성소 안에 있으며, 그리스도께서 곧 산출하실 왕들과 제사장들을 위해 계속된 씻음(로우오louo)을 영향을 줍니다(1:6, 5:10).

 

그러므로 그리스도께서는 그분께서 그분의 계획과 목적을 이루게 하시는 사람들을 통해 정결케 된(로우오louo) 사람들을 구별하십니다. 그리스도는 그분께서 부분적으로 씻는 것(닢토nipto)을 계속하여 구별할 수 있도록 방법을 부여하셨습니다. 하지만 대제사장으로서 그리스도의 사역을 통한 씻음은 자동적으로 일어나지 않는 어떤 것입니다.

 

룻은 스스로 행동해야 했습니다. 룻은 타작마당에서 보아스를 절박하게 만나려고 스스로를 준비해야 했습니다. 그리스도인들은 그리스도의 타작마당에서 그분을 절박하게 만나기 위해 스스로 준비해야 합니다.

 

룻의 경우 그녀는 자신을 씻었습니다. 오늘날 그리스도께서 씻어 주시시지만 룻처럼 그리스도인들은 행동해야 합니다. 우리가 우리의 죄를 고백함으로 우리 자신을 심판하는 것 뿐입니다(고전 11:31~32). 그러면 그리스도는 우리의 유익을 위해 그분의 보혈로 씻어 주십니다. 만일 우리가 우리 죄를 자백하면 저는 미쁘시고 의로우사 우리 죄를 사하시며 모든 불의에서 우리를 깨끗케 하실 것이요”(요일 1:9).

 

기름부음을 받음

오일은 선지자들, 제사장들, 왕들을 기름 부을 때 구약성경에서 사용되었습니다. 이런 방식에 따라 오일이 사용되는 것과 선지자, 제사장, 그리고 왕들이 헌신하는 곳에서 봉사하도록 그들에게 권한을 주시려고 오시는 성령 사이에 연결되었습니다.

 

예를 들어 사울은 이스라엘에서 첫 번째 왕으로 기름부음을 받았습니다(삼상 10:1, 6). 이어서 하나님께서 아말렉과 관련해 명령하신 것을 사울이 거절했습니다. 그 후 사울을 대신해 다윗이 기름부음 받은 왕이 되었습니다(삼상 16:13).

 

분명하게 보여지듯이 오일은 두 구절에서 하나님의 영을 상징하는데 사용됩니다. 성령은 그들의 기름부음에 이어서 사울과 다윗 위에 왔습니다. 성령은 그들이 임무를 수행해야 했던 권한을 부여했습니다.

 

마태복음 25:1~13절에 있는 열 처녀 비유는 이 같은 전체적인 문제를 중심으로 다룹니다. 여기서 구약성경에서 사용되었던 것과 똑같은 상징적 방법으로 오일이 사용되었습니다. 모든 처녀들이 오일을 소유했지만 슬기로운 5명의 처녀만이 여분의 비축한 오일을 소유했습니다. 신랑이 오시는 소리가 한밤중에날 때 5명의 처녀만이 신랑과 혼인잔치에 들어가게 되었습니다(25:6~46).

 

다시 말해 실제에서 모든 그리스도인들은 성령을 소유합니다. 성령께서 모든 그리스도인 안에 거하십니다. 하지만 모든 그리스도인들이 여분의 오일을 비축하지는 못합니다. 모든 그리스도인들이 성령으로 충만하지만은 않습니다. 그리스도인들이 부르심을 받는 한밤중에 성령으로 충만한 자들만이 신랑과 혼인잔치에 들어가게 될 것입니다.

 

이것이 한밤중에 보아스의 타작마당에서 그를 만나기 위해 룻의 준비의 두 번째 부분에 포함되어 있는 것입니다. 룻은 그녀 자신이 기름부음을 받지 않고는 보아스를 만나기 위한 합당한 준비를 할 수 없었습니다. 이런 방식으로 열 처녀도 비축한 여분의 오일을 소유하지 않고는 한밤중에 신랑을 만나기 위해 합당하게 준비할 수 없었습니다. 오늘날 그리스도인들 역시 성령충만 없이 한밤중에 주님을 만나기 위해 합당한 준비를 할 수 없습니다.

 

갈라놓을 수 없는 관계가 이 세 부분 사이에 존재하기 때문에 룻의 세 번째 그리고 네 번째 준비를 보게 될 때 이것은 모두 분명해질 것입니다.

 

 

의복을 입다

룻이 씻고, 기름을 발랐을 뿐만 아니라 합당하게 옷을 입었습니다. 룻은 신랑을 만나러 나아가고 있었습니다. “옷을 입으라라는 나오미의 말은 그 때를 위한 특별한 의복만을 말할 수 있습니다. 사실상 이 사건은 보아스와 룻의 결혼으로 끝내는 것을 기대한 것입니다. 룻이 입어야 했던 옷은 가까운 때에 반향을 일으켰을 것입니다.

 

오늘날 그리스도인들이 준비하는 것을 가리키는 룻의 준비는 마태복음 22:1~14절에 있는 혼인잔치의 비유에서 볼 수 있습니다. 이 비유에서 사람은 어떤 왕의 아들의 결혼잔치에 합당치 않은 옷을 입고 나타납니다. 이 사람은 혼인예복 없이 나타납니다. 그런 그는 잔치자리에 들어가는 것을 거부당했을 뿐만 아니라 어두운 바깥으로 쫓겨났습니다.

 

여기서 어두운 곳이라는 말은 달란트비유에서도 나타납니다(25:30). 달란트 앞의 비유는 관점은 다르지만 열 처녀 비유와 똑같이 다루고 있습니다(25:1~13).

 

마태복음 22:2절에 있는 어떤 왕그의 아들은 다름 아닌 바로 아버지 하나님과 그분의 아들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요한계시록에 있는 어린양의 혼인을 둘러싸고 있는 잔치와 같은 장면입니다. 우리가 즐거워하고 크게 기뻐하여 그에게 영광을 돌리세 어린 양의 혼인 기약이 이르렀고 그 아내가 예비하였으니 *그에게 허락하사 빛나고 깨끗한 세마포를 입게 하셨은즉 이 세마포는 성도들의 옳은 행실이로다 하더라 ”(19:7~8) 여기서 신부는 그녀가 만들어서 준비하여 가지고 있던 의복을 입는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이 옷은 진열된 옷이라기보다 그녀 스스로가 만든 옷임이 분명합니다. 신부가 만든 옷은 고운 세마포로 만들어졌습니다. 그리고 이 고운 세마포는 특별하게 성도들의 , 의로운 행실라고 말합니다.

 

룻처럼 그리스도인들은 장차 신랑을 만나기 위해 합당한 의복을 스스로 입어야 합니다. 의로운 행실, 성도들의 웨딩예복은 그들의 부르심으로 신실함에서 뿜어져 나옵니다. 웨딩예복이 만들어지는 동안 사역은 신실함에서 나오고, 또 합당한 그 목표를 위해 믿음을 가져옵니다(11:17~19, 31, 2:14~26, 벧전 1:9).

 

성령으로 충만하지 않은 그리스도인(룻의 두 번째 준비, 즉 기름을 바름)은 웨딩예복을 만드는 의로운 행실을 수행할 위치에 있지 않습니다. 성경은 그리스도인들이 두 방법 중 하나에서 그리스도의 임재 안에 나타날 것을 분명하게 계시합니다. 어떤 사람들은 웨딩예복을 소유할 것이고, 또 다른 사람들은 그렇지 않을 것입니다. “옷 입었다.”벌거벗었다.”라는 단어는 이 두 다른 방식 안으로 각 사람들의 모습을 구별하기 위해 성경에서 사용되었습니다(3:17~18, 8:35). 두 무리 안에 있는 그리스도인들은 마태복음 22:10~13절에 따라서 다루어질 것입니다.

 

합당하게 옷을 입은 그리스도인들(웨딩예복을 소유한 사람들)은 한 가지 방식을 따라 다루어질 것입니다. 또 합당치 않은 옷을 입은 사람들(혼인예복이 없거나 벌거벗은 사람들)은 완전히 다른 방식으로 다루어질 것입니다.

 

합당한 옷을 입은 그리스도인들은 혼인잔치에 들어가게 될 것입니다. 이들은 어린양의 아내가 될 것이고, 그분의 왕후가 될 것이요, 그분의 왕국에서 그리스도와 함께 공동 상속자로서 위치를 차지하기 위해 그 잔치에 들어갈 것입니다.

 

벌거벗은 사람들은 혼인 잔치에 들어가는 것을 거부될 것입니다. 이들은 어린양의 아내가 되지 못할 것입니다. 따라서 그들은 땅 위에서 그리스도의 일부로서 다스리지 못할 것입니다. 主護村成壬鉉

 

본 메시지는 마지막시대를 예비하기 위해 "새벽이슬처럼 연(輦)모임에서 전달된 것입니다. 브시드린교회에서도 같은 메시지가 전달될 것입니다. 그리고 성경카페에서는 함께 할 형제자매들을 모십니다. 지원해 보십시요. 카톡ID:mbcigospe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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