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 대한 그리스도인들의 성경적인 관계
“내가 아버지의 말씀을 그들에게 주매 세상이 그들을 미워하였사오니 이는 내가 세상에 속하지 아니한 것 같이 그들도 세상에 속하지 아니하기 때문이니이다. *나는 아버지께서 그들을 세상에서 데려가시라고 기도하지 아니하오며 다만 그들을 악에서 지켜 주시라고 기도하나이다. *내가 세상에 속하지 아니한 것 같이 그들도 세상에 속하지 아니하나이다. *아버지의 진리로 그들을 거룩히 구별하옵소서. 아버지의 말씀은 진리이니이다.” (요 17:14~17).
그리스도인들은 세상에서 삽니다. 세상은 사탄과 그의 천사들에 의해 조정되고 통치됩니다. 이 세상은 태곳적부터, 사탄의 타락 시절부터, 사탄과 그 아래에 있는 그의 천사들이 계속해서 다스리는 곳입니다. 결국 이것은 하늘들과 땅의 창조가 이어지는 때까지 거슬러 올라 갈 것입니다. 이때는 하나님께서 권능의 위치에 사탄과 그의 천사들을 임명하신 때요, 그들이 차지하고 있던 그 때입니다(겔 28:14~26, 단 4:17~37, 롬 13:1).
6,000년 전 사람창조와 타락 후부터 계속해서 다스리고 있는 사탄과 그의 천사들은 타락한 사람들, 민족들 가운데서 다스리는 자들을 통해 수행되었습니다(단 10:12~20). 6,000년 전에 사람은 하나님의 모양과 형상을 따라 창조되었고, 사탄과 그의 천사들을 대신해서 홀을 붙잡도록 창조되었습니다(창 1:26~28). 그렇지만 구속이 요구되는 타락이었습니다. 그 타락으로 사람이 이위치를 차지하는 것으로부터 지연되었습니다.
사람창조에 이어 2,000년이 지나서 이스라엘 민족이 세워진 이후부터 타락한 사람을 통한 사탄과 그의 천사들의 다스림은 이방민족들로 제한받았습니다(단 10:21). 여기서 이스라엘의 민족은 야곱의 후손이요, 특별한 창조요, 민족들로부터 따로 구별되는 사람들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을 미워하는 세상(사람들)
요한복음 17:14절에 의하면 세상은 그리스도인들을 미워한다고 설명합니다. 그렇게 계시된 이유는 무엇일까요? 그것은 오늘날의 세상이 사탄과 그의 천사들로 다스려지고, 조정되고 있기 때문입니다.
어떤 것이 분명하게 오늘날의 세상 잘못이지만 세상과 그리스도인들 사이에는 오늘날 존재하는 증오가 없습니다. 세상과 그리스도인들은 서로 좋게 지내는 것으로 나타납니다. 성경에서 설명된 갈등은 실제로 오늘날 세상에 존재하지 않습니다.
그러면 이 갈등은 무엇 때문인가요? 대답은 간단합니다. 모든 사람은 요한복음 17:14절의 첫 부분을 읽어야 하고, 오늘날 세상에 있는 기독교를 바라보십시오. 그렇게 하면 그 사람은 순전히 성경적 견지에서 무엇이 잘못인지를 알 수 있습니다. 그 사람은 순전히 성경적 견지에서 왜 오늘날 세상이 그리스도인들을 미워하지 않는지를 알 수 있습니다.
다시 읽어볼까요? “내가 아버지의 말씀을 그들에게 주매 세상이 그들을 미워하였사오니…”한가지만의 근거, 그분의 말씀으로 세상은 그리스도인들을 미워하거나 아니면 미워하지 않습니다. 세상은 그리스도인들과 잘 지내거나 아니면 잘 지내지 못합니다.
말씀을 붙잡고, 선포하는 그리스도인들은 친구가 되려고 하는 세상을 찾을 수 없을 것입니다. 다른 면에서 말씀을 붙잡지 않고, 선포하지 않는 그리스도인들은 세상과의 문제가 아무것도 없을 것입니다. 이 둘은 손에 손을 붙잡고 걸을 수 있습니다.
환언(換言)하자면 말씀을 붙잡고, 선포하는 그리스도인으로서 살지 않고, 세상을 사랑한다는 말입니다. 그들은 세상과 똑같다는 사실입니다. 세상이 말씀을 붙잡지 않고, 선포하지 않는 그리스도인들을 미워할 근거가 없습니다. 모든 문제의 기본형은 단수입니다.
그것은 말씀이요, 말씀이요, 말씀입니다. 다른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봉사하는 것이 아닙니다. 소위 그리스도인 음악도 아닙니다. 소위 그리스도인 움직임이라고 불리는 어떤 형태의 운동도 아닙니다. 오직 그리스도의 말씀입니다.
왜 그런가?
하나님의 말씀을 붙들고, 선포하는 그리스도인들을 증오하는 “이유”는 간단합니다. 사탄은 말씀이 계시하는 것을 극단적으로 증오하는 것입니다. 계시되는 하나님의 말씀이 어디를 향하고 있는가에 달려있습니다. 사탄은 이 시대의 신(god)입니다(고후 4:4). 그와 그의 천사들은 민족(나라)들을 통해 다스리고, 조정합니다. 민족들은 사탄의 조정과 다스림 아래에서 그와 그의 천사들과 그리고 구원받지 않은 사람들에 의해 조정과 다스림을 위탁받았습니다. 나라들은 그들의 미래를 붙잡는 것에 관해 말하는 그리스도의 말씀의 선례를 따를 수 있을 뿐입니다.
하지만 그런 말씀이 사라진다면 아무런 증오가 남아 있지 않습니다. 말씀 외에는 세상과 그리스도인들 사이에 존재하는 적의(敵意)에 대한 근거는 전혀 없습니다. 그것은 말씀이요, 말씀이요, 말씀입니다. 다른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그러면 무슨 일이 일어날까?
교회와 세상은 하나님께서 “그리스도 안에 있는” 새 창조를 다루시고 계시는 2,000년 제도의 맨 끝이라는 것을 그들 스스로 알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은 제도 동안 따로 떼어져 있고, 새 창조는 세워져 있으며, 하나님의 영은 제도 도처에서 특별하고 각별한 사역을 수행하시고 계십니다. 하나님의 영은 하나님의 아들을 위해 신부를 밖으로 불러내시고 계십니다. 신부는 그리스도와 공동상속자, 왕후로서 사탄과 그의 천사들을 억누르고 나서 다스릴 것입니다.
사탄과 그의 천사들은 이런 것들을 압니다. 그들은 오늘날 교회에서 선포되는 메시지를 듣고, 마음에 영향을 받습니다. 하지만 그리스도인들은 거의 자극을 받지 못하고 있습니다. 메시지를 전하는 사람들조차도 그저 사람들이 듣기 좋은 말만을 하고 돈과 건물과 심지어 권력을 가진 사람들의 생각을 만지는 메시지만을 전합니다. 얼마나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선포된 이것들을 들은 적이 있거나 알고 있습니까? 그런 질문에 대한 대답은 오늘날 기독교 도처에 존재하고 있는 문제라는 것입니다.
1) 기독교에서
교회사 연대표에서 마태복음 13장의 처음 4가지 비유와 요한계시록 2~3장에 있는 일곱 교회에게 보낸 편지에서 묘사된 것처럼 제도 끝 무렵에 있는 교회에 대해 2가지의 서술기법으로 묘사하고 있음을 볼 수 있습니다.
오늘날의 교회는 ① 완전하게 부패된 것으로(마 13:33), ② 가엾고, 비참하고, 가난하고, 볼 수 없고, 벌거벗었음(계 3:17b)으로 묘사되었습니다. 나중에는 부패한 교회가 “풍성하다.”, “재산이 증가한다.”, “아무것도 필요 없다.” 등을 믿도록 기만하게 됩니다(계 3:17a). 하지만 제도 끝 무렵의 완전하게 부패한 교회의 말은 하나님과 완전히 반대된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왜 이런 경우가 있습니까? 누룩의 일에 대한 본질적인 대답은 아주 간단합니다. 교회가 점진적으로 길을 잃었고, 순수에서 벗어났고, 순수한 말씀선포에서 떠났습니다(요 16:9~11). 교회는 서서히 세상의 길로 가고, 세상은 교회를 이겼습니다.
따라서 세상은 교회를 무장해제를 했습니다. 세상은 하나님께서 교회에게 주신 갑옷을 빼앗았습니다(엡 6:11~17). 다시 말하자면 교회는 세상에 의해 완전히 벌거벗겨진 상태가 되었습니다(계 3:17b).
어떤 사람이 이런 경우인 것을 믿지 않는다면 그가 해야 할 모든 것은 눈을 열고 주의를 바라보는 것입니다. 벌거벗겨진 교회는 세상으로부터 미움을 받지 않습니다. 세상과 교회 사이에는 어떤 경계선이 없습니다. 세상의 증오를 받지 않습니다. 세상에 속한 교회인지, 교회에 속한 세상인지 구분하기 어렵습니다. 동일한 어려움은 하나는 시작하는 곳을 아는 것이요, 다른 하나는 오늘날 세상의 끝을 아는 것입니다.
2) 세상에서
교회를 무장해제 시키고, 적개심을 없애는 세상이지만 그들 자신의 숙명을 밀봉합니다. 이런 측면에서 세상과 비교되는 민족들은 교회를 무장해제가 되는 것으로 대량학살을 자행합니다.
말씀을 소유하고, 이 말씀을 믿고, 선포하는 교회는 민족들 가운데 존재하는 모든 것에 대한 자제력을 소유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말씀을 무시하는 무장해제된 교회는 완전히 중요한 또 다른 문제가 있습니다. 이와 같은 교회는 마태복음 5:13~16절에 적절하게 묘사되어 있습니다.
여기서 교회는 “세상의 소금”으로 볼 수 있습니다. 소금이 그 맛을 잃으면 아무것에도 쓸모가 없어 사람들의 발에 밟힐 뿐이라고 말합니다. 또 이런 교회는 통 밑에 둔 “세상의 빛”으로 볼 수 있습니다. 이위치를 차지하는 것은 하늘에 계신 아버지를 영화롭게 하지 못하는 것을 의미하고, 더 이상 빛을 밝힐 수 없음을 말합니다.
이와 같은 교회의 자제력은 사라졌습니다. 이 자제력을 제외하고 수치스런 순간에서 볼 수 없었던 지금까지의 세상의 조정과 영향력 아래에서 민족들을 붙드는 이 시대의 신을 알지 못합니다. 세계 곳곳에 만연되어 있고, 증가되어 가고 있는 동성애와 혼합교회, 번영신학, 동성결혼 등 각종 죄들을 그냥 인정하는 무리들이 많아지고 있습니다.
교회는 한편에서 이런 일들이 일어나도록 했습니다. 사탄 아래에 있는 세상은 다른 편에서 실현시켰습니다. 종말은 어떤 사람들이 갈망할 수 있는 어떤 것과 달라질 것입니다.
3) 최후의 문제
데살로니가후서 2:3~12절을 보십시오. 이 구절들은 “불법의 신비”가 이미 일하고 있지만 지금 막고 있는 힘이 사라진 후에 일어날 일을 말하고 있습니다.
이 막고 있는 힘이 사라지고, 죄의 사람(적그리스도)이 계시될 것입니다. 이 적그리스도는 모든 힘과 표적과 속임수를 가지고 사탄의 일을 하는 자입니다. 사탄의 자리에 앉아있는 이 자는 멸망이 완료되기 바로 직전에 이스라엘을 포함해 땅의 나라를 취할 것입니다(마 24:22, 계 13:2).
모든 이들에게 일들을 마무리하고, 이 자의 높여짐으로 이끌고, 이 자의 길을 닦는 것이 오늘날 세상에서 일어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이런 일은 세상에 속한 교회에서도 일어나고 있습니다. 세상에 속한 교회는 더 이상 말씀을 붙잡지 않고, 선포하지 않습니다. 광기로 가득하게 채워져 사탄과 그의 천사들 아래에서 세상의 문을 여는 것이 우리 주변의 모든 곳에서 볼 수 있습니다.
영적으로 말하자면 세상은 죽은 자입니다. 현실적인 목적을 위해 생명을 추구하는 교회는 세상과 같습니다. 둘 다 같은 것을 기다립니다(고전 11:31~32). 여기서 그리스도인들이 스스로 판단하려고 하면 판단 받지 않습니다. 그들이 판단 받으면 어느 날 주님께 “세상과 함께 정죄”를 받아 판단 받습니다. 부르심과 관계가 있는 그리스도인들에게 이것은 천년왕국과 연결되어 있고, 생명이 없고, 부르심이 없는 세상에게 이것은 영원과 관계있을 뿐입니다.
그것은 존재하는 중요한 문제로 되돌아가게 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저버리는 교회는 점차적으로 부패를 가져와서 세상과 짝하게 되는 것이 잇따라 일어납니다(약 4:4, 요일 2:15~17). 또 다른 면에서 무장해제를 시키는 세상과 같은 교회의 처지가 됩니다.
주님 앞에서 교회가 방해를 받고, 사라지는 것이 얼마나 더 악화 될까요? 시간만이 말할 것입니다. 교회가 등잔 아래에 있지만 빛이 꺼져가고, 사라졌을 때에는 어둠과 죽음으로 최악의 상황을 가져오게 됩니다. 이런 최악의 상황은 완전히 통제가 불가능한 하락을 가져오기 시작할 것입니다.
여러분은 여기에 있기 원치 않지만 여러분이 구원받지 않았다면 여러분은 그리스도의 심판대에서 세상과 함께 유죄선고를 받았기 때문에 그리스도인들 가운데 있지 않을 것입니다. 얼마나 참담한 처지가 될까요? 우리 그리스도인인 교회는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깨어있어야 할 것입니다. 主護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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