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렛은 백육십이 년을 살며 에녹을 낳았고… * 에녹은 육십오 년을 살며 므두셀라를 낳았고 *므두셀라를 낳은 뒤 삼백 년 동안 [하나님]과 함께 걸으며 아들딸들을 낳았더라. *에녹의 전 생애는 삼백육십오 년이더라. *에녹이 [하나님]과 함께 걷더니 [하나님]께서 그를 데려가시므로 그가 있지 아니하더라.”(창 5:18, 21~24).
창세기는 시작의 책입니다. 창세기를 소개하는 히브리 원문은 “처음에”를 의미하는 “베레쉬트bereshith”로 시작하고 헬라원문(70인역)은 “엔 아르히(아르케)en arche”로 시작합니다. “엔 아르히(아르케)en arche”는 요한복음 처음 부분에도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 책의 제목 창세기는 “시작”에 대한 단어에서 나온 것이지만 히브리 원문보다 오히려 헬라원문에서 나온 것입니다. 오히려 “창세기”는 “탄생, 기원, 노선, 세대, 계보와 관계있는 헬라어 제네시스genesis에 대한 번역입니다.
이런 측면에서 헬라 번역본 제네시스genesis라는 단어는 창조역사와 그 이후의 역사의 하늘들과 땅의 세대와 관계있을 뿐만 아니라(창 2:4) 아담의 세대(창조, 다음 노선, 그리고 그 역사)와도 관계있습니다(창 5:1). 계속되는 아담세대에 관한 제네시스genesis라는 단어는 노아와 그의 세 아들, 아브라함의 아버지 데라에게도 사용되었습니다(창 6:9, 10:1, 32, 11:10, 27).
제네시스genesis를 사용하는 앞의 모든 구절들은 “사람의 세대”를 말하는 것이 될 것입니다. 아담이라는 그 이름 자체가 하나님이 지으신 아담의 이름이라기보다 단순히 히브리어 “사람”을 의미하는 말입니다. 헬라어 제네시스genesis에서 유래되는 책의 제목은 시작이라는 관점, 책을 연다는 의미에서 지어졌을 뿐만 아니라 “세대들”을 통해서 일어나는 역사를 의미하기도 합니다. 다시 말해 하늘들과 땅이 창조되고, 사람이 창조되는 것뿐만 아니라 계시를 통해 보여주는 것을 의미합니다.
따라서 창세기 2:4절에 있는 “세대들”에 대한 생각은 앞의 구절들에 대해 되돌아보는 것뿐만 아니라 막 일어나고 있었던 것을 보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창세기 1:1~2:3절의 기록은 창조와 하늘들과 땅의 역사를 짧게 소개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말하는 창조, 타락, 6일 동안의 회복, 그리고 일곱 번째 날의 안식은 사람의 역사 즉, 사람이 창조되고, 타락하고, 6,000년 동안 회복되고, 7,000년째에 있을 안식을 기다리고 있음을 말합니다(창 1:26~31, 히 4:4~9, 벧후 3:3~8).
창세기 1:1~2:3절에 있는 창조, 타락, 회복과 안식에 대해 분명함을 보지 못하고, 이해하지 못한다면 성도들은 사람을 둘러싸고 있는 계시에 관해 건축할 수 있는 재료를 소유하지 못할 것입니다. 모든 문제는 처음 열리는 뼈대에서 시작되었습니다. 이후의 성경은 뼈대에 덮을 힘살, 살, 그리고 피부를 공급하여 해석을 한 것이 됩니다. 하나님께서 이것들을 처음에 공급하시기에 적절하다고 보셨습니다.
창세기 5:1절에 있는 “아담의 세대”는 사람의 역사가 이어진 “하늘들과 땅의 세대”에서 본 것과 관계가 있습니다. 10세대를 다루고 있습니다. 이 계보 안에 있는 사건들의 뼈대는 창세기 34절(1:1~2:3)의 하늘들과 땅의 계보에서 똑같이 볼 수 있습니다. 사람창조는 창세기 1~2장에서 볼 수 있습니다. 3장에서 이어지는 역사는 사람타락으로 시작했고, 안식에 이어 회복과 관계있는 내용이 성경 나머지 부분에서 다루어지고 있습니다.
창세기 4, 5, 10~11장은 아담, 노아, 그리고 노아의 아들들의 세대들을 보여주는 족보가 있습니다. 이 족보들은 아담에서 아브라함까지 확대되어 가는 과정을 다루고 있습니다. 이 기간은 인류역사 처음 2,000년, 20세대를 소개되는 기간입니다.
4장은 일곱 세대를 통한 가인의 계보(창 4:17~24)와 세 세대를 통한 셋의 계보를 기록하고 있습니다(창 4:25~26).
5장은 “아담의 계보”로 다시 돌아갑니다. 셋은 아담에서 노아까지 10세대를 가루고 있습니다. 5장은 11번째 세대, 노아의 세 아들 셈, 함, 야벳을 소개함으로 끝이 납니다(창 5:1~32).
10장은 5장에서 멈췄던 아담 세대로 회복됩니다. 여기서는 노아의 세 아들들의 역순 세대들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창세기 5~11장에 있는 세대 목록을 보여 준 아들들은 출생 역순 리스트입니다(창 5:32, 11:26). 이것은 성경의 다른 부분에서도 볼 수 있습니다(창 5:32, 7:11, 10:21, 11:10, 26, 32, 12:4).
많은 사람들은 9장에서 함의 아들, 가나안에게 노아가 저주한 것에 관해 질문합니다(창 9:18, 24~27). 가나안은 함의 아들들 중 넷째였습니다(창 10:6). 그는 함의 가장 어린 아들이었고, 사람들을 믿도록 이끄는 자였습니다. 사람들은 노아가 처음 세 아들들은 간과했고, 가장 어린 넷째를 저주한 것을 궁금해 합니다.
그 문제의 진실은 노아가 함의 세 아들들 중 가나안만 언급되어 있고(창 9:18) 그를 저주했다는 것입니다. 정해진 순서상 마지막으로 보여준 것처럼 가나안은 홍수 후 2~3년 내에 일어난 사건은 함의 행동과 관계가 있었습니다. 창세기 9장에서 노아는 홍수에 이어서 자신도 모르게 포도주를 마신 것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홍수 이전에는 알콜이 든 포도주는 존재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홍수 후의 포도주는 알콜이 들어 있어 그 포도주를 마심으로 사람들을 취하게 만들었습니다.
창세기 11장은 셈의 계보들을 다루고 있고, 10장에서 언급했던 그의 다섯 아들 중 하나를 통해 세대를 구성합니다. 5장에 있는 것처럼 아브라함까지 열 세대를 통해 계보를 다루고 있습니다.
아담에서 노아까지 열 세대요, 노아의 아들 셈에서 아브라함까지 열 세대입니다. 처음 열 세대는 1,056년이 걸렸고, 두 번째 열 세대는 노아가 502살이었을 때 셈을 낳고 아브라함이 태어나기까지 450년이 걸립니다(창 5:32, 7:6, 11:10, 27, 32, 12:4).
홍수 이전은 사람들의 수명이 길어 거의 1,000년을 살았습니다. 이 수명은 보기에 둘째 날 땅이 회복되는 동안 대기 위에 두었던 물로 산출되었고(창 1:6~8) 1,656년 후에 노아 시대 동안 홍수가 일어나게 되었습니다(창 7:11~24).
아마도 대기 위의 물은 기압에 영향을 주었고, 그것은 유해한 태양광선을 차단할 수 있었습니다. 창세기 5장에서 사람의 평균수명은 죽음을 보지 않고 하늘로 올라간 에녹을 제외하고 912년이었습니다. 홍수 이전에 노아가 처음 세 아들을 낳은 때가 500살이었습니다(창 5:32).
홍수 때 대기 위의 물이 쏟아짐으로 상태들이 완전하게 변했습니다. 홍수 이전의 수명은 즉시 약 절반으로 줄었고 그 이후의 세대들의 수명은 급감했습니다(창 5:3~32, 11:10~26).
아담에서 아브라함까지의 20세대 중의 처음 아담은 930살을 살았지만 그 세대의 끝 아브라함은 175살을 살았습니다. 다가오는 메시야 시대에는 홍수 이전의 상태가 회복될 것이고, 수명도 회복이 이루어 질 것입니다(사 65:17~25, 행 3:21).
아담으로부터 7번째와 10번째
창세기 5장에 있는 계보의 10사람은 아담에서 노아까지의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들 중 둘 만을 그 족보 자체에서 따로 분리하여 언급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바로 에녹과 노아입니다. 이런 면에서 다른 8명은 아무도 선택받지 못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중요한 사건들이 일어나게 하심으로 개입하신 에녹과 노아는 일곱 번째와 열 번째 사람들이었습니다.
이 두 사람의 정말 중요한 사건은 완전성을 보여줍니다. “일곱”은 관점에 있어 완전함을 보여주고, “열”은 서수(序數)의 완전을 말하는 숫자입니다. 이런 의미로 두 숫자 모두 성경에서 여러 번 나타나 있습니다. 일곱째 사람 에녹은 살아서 땅에서 하늘로 옮겨졌습니다. 에녹과 다르게 열 번째 사람 노아는 그의 가족들과 함께 안전하게 땅에 거주하는 사람들에게 닥칠 하나님의 심판으로부터 통과했습니다.
이 심판이 지나고 난 후 노아와 그의 가족들의 새로운 시작이 되었습니다. 이 새로운 시작 끝에서 다른 측면의 또 다른 열 번째 사람 아브라함을 볼 수 있습니다.
은혜의 뼈대 안에 있는 이 사건들의 중요성은 관찰력이 있는 사람들이 이해하기 쉬워야 합니다. 땅에서 하늘들로 올라간 “에녹”은 오늘날 이 세상이 끝날 무렵 땅에서 하늘들로 옮겨질 교회를 예표할 수 있습니다. 이 기간은 오순절(AD 33)에서부터 시작해서 계산할 수 있습니다.
죽음과 피 흘림인 대속의 희생을 통한 “구원”은 앞 두 장(창 3, 4장)에서 볼 수 있고, 창세기 5장에 있는 일곱 번째 사람에서 볼 수 있었던 것처럼 구원받은 사람은 살아서 땅에서 옮겨졌습니다.
홍수를 안전하게 통과한 열 번째 사람, “노아와 그의 가족들”은 7년 대환란을 안전하게 통과하는 이스라엘을 전조할 수 있습니다. 이것은 2,000년 동안 이스라엘을 하나님께서 다루시는 것과 관계가 있습니다. 아브라함이 태어남을 시작해서 확장되고, 메시야 왕국이 도래함으로 끝이 나게 됩니다.
유대인의 이전 제도는 오늘날의 제도가 성립되고, 자연스럽게 전개되는 7년의 짧은 완전함으로 해석되었습니다. 오늘날의 제도가 완료되었을 때 하나님은 이스라엘에게로 돌아오실 것이고, 이전 제도의 마지막 7년이 완료될 것입니다. 그런 후 다니엘 70주 예언에 따라 그 때에 메시야 시대가 도래해 완료될 것입니다(단 9:24).
옮겨진 에녹
오늘날의 제도는 자연스럽게 흘러가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영은 2,000년 동안 하나님의 아들을 위한 신부를 산출하는 그분의 사역을 완료하십니다. 이 사역이 오늘날의 제도에서의 중점적인 목적입니다. 그러한 후 하나님 아들의 신부가 창세기 5:24절에서 땅에서부터 옮겨진 에녹을 통해 전조(前兆)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실제로 창세기 24장에서 볼 수 있는 것처럼 그 때에 그리스도는 자신의 신부를 만나러 나가시고, 성령은 신부를 옮기실 수 있습니다.
오늘날의 제도는 그 때에 끝이 날 것입니다. 하나님은 다시 이스라엘로 오셔서 메시야 시대를 도래케 하심으로 이전 제도를 완료하시고 이 이스라엘민족을 다루시는 것을 완료하실 수 있습니다.
에녹에 관해 계시된 이 장면은 오늘날 제도 끝 무렵 교회의 옮겨짐을 다루는 첫 번째 유형입니다. 이것은 휴거에 적용하여 다루어져야 합니다. 이 유형은 그 문제에 대한 본이 되게 하는 기본적인 것입니다.
이 유형은 제도가 완료되는 끝 무렵 땅에서 옮겨가는 사람을 보여줍니다. 앞의 또 다른 사람은 또 다른 제도가 완료되는 끝 무렵에 멸망의 세상을 통해 가고 있음을 보여줍니다.
전자는 “그리스도 안에 있는” 새 창조 곧 그리스도인들과 관계가 있고, 후자는 야곱의 엉덩이 살에서 나오는 옛 창조 곧 유대와 관계가 있습니다. 이 전체적인 것은 오늘날의 제도 끝 무렵 교회의 옮겨짐을 보여주는 것을 따르는 사람들과 대환란을 통과하는 이스라엘에 대한 많은 유형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그려진 이 구약성경의 그림은 신약성경에서 관련된 성경을 체크할 수 있고, 비교할 수 있습니다. 그러면 우리는 하나님께서 계시하신 모든 소유를 가질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공급하신 모든 체크와 균형들을 갖고 성경을 연구하는 것은 이런 의미를 통해 사람이 이 미래에 대해 계시된 사건들을 정확히 이해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입니다.
진리에 대한 오해와 진실
거기엔 실수가 휴거와 관계있는 가르침에 변함없이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중요한 두 영역들이 나타납니다. 다른 무엇보다도 더 정해진 방식에 따라 성경을 연구하는 것과 관계가 있습니다. 또 두 번째로는 이스라엘과 교회 사이에 합당한 차이를 인정하는 것과 관계가 있습니다.
1) 예표, 실제와 관련된 성경
휴거나 휴거에 이어지는 심판보좌를 둘러싸고 있는 구약성경의 모든 예표가 합쳐졌을 때 완전한 구약성경의 예표는 신약성경의 실제와 비교되었습니다. 이렇게 비교되는 신약성경은 주로 두 곳이 있는데, 한 곳은 데살로니가전서 4:1~5:28절이요, 다른 한곳은 요한계시록 1:1~4:11절입니다. 이런 예표가 합쳐지고, 이런 방식으로 연구되었을 때 교회가 7년 대환란 이전 제도 끝 무렵에 옮겨진 일을 휴거로 보는 것이 불가능할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2,000년제도 도처에 퍼져있던 모든 그리스도인들이 포괄적으로 휴거된다고 보는 것이 불가능합니다. 다시 말해 신실한 그리스도인들과 신실하지 않은 그리스도인들이 이 땅에서 옮겨졌다고 보기는 불가능하다는 것입니다.
제도 도처에 퍼져 있던 모든 그리스도인들과 비교되는 “그리스도 안에 있는” 한 새 사람은 하나님께서 이 새 사람을 다루시는 제도 끝 무렵 옮겨질 것이고, 이 새 사람과 비교되는 신실한 그리스도인들과 신실하지 않은 그리스도인들의 경계선은 휴거에 이어지는 심판대에서 일어날 것이고, 선택적으로 부활을 거치지 않고, 심판대 앞으로 휴거하게 될 것입니다.
적어도 창세기에 있는 두 유형은 멸망의 시대 앞에서 옮겨진 신실한 그리스도인들과 신실하지 않은 그리스도인들을 보여줍니다. 하나의 유형은 홍수 이전의 에녹의 옮겨짐이요, 다른 하나는 초원의 도시가 멸망하기 이전의 롯의 옮겨짐입니다(창 5:1~8:22, 18:1~19:38). 또 룻기에서 추수 끝 무렵 타작마당에 있는 보아스 앞에 나타나는 룻을 둘러싸고 있는 유형은 생생한 그림으로 추가되었습니다(룻 3:1~4:22). 여기서 휴거와 심판대를 둘러싸고 있는 사건들은 대환란 이전에 일어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실제에서도 똑같은 것을 계시하는 것입니다. 예표는 정해진 것입니다. 그래서 실제는 상세하게 그 예표를 따라야 합니다. 데살로니가전서 4:1~5:28절과 요한계시록 1:1~4:11절에 있는 그리스도인들은 땅에서 현존하고 있지만 6,000년 인류에서 옮겨져 주의 시대(거룩한 곳) 안에 있게 되었다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요 8:56). 이 그리스도인들은 인류가 끝날 때까지 땅(거룩한 곳)에 존재하게 됩니다(욜 3:14~17, 살후 2:2~3).
데살로니가전서 4:1~5:28절에서 신실한 그리스도인들과 신실하지 않은 그리스도인들이 땅에서 옮겨지고, 동시에 주님의 시대에 존재한다는 것을 알 것입니다.
요한계시록 1장은 똑같은 진리를 말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모든 그리스도인들이 동시에 땅에서 옮겨져 주의 시대에 존재할 것이 아주 분명합니다. 이들이 존재하게 될 곳은 바로 아시아에 있는 일곱 교회로 대표됩니다.
구약성경의 그림과 신약성경의 실제에서 볼 수 있는 똑같은 그림은 혼인잔치의 비유, 달란트비유, 므나의 비유 등에서도 존재합니다(마 22:1~14, 25:14~30, 눅 19:11~27). 신실한 종과 신실하지 않은 종은 동시에 같은 장소에서 다루어집니다. 그분 앞에 부르심을 받고 참여하는 때에 그분의 모든 종들에게 그분의 소유를 맡기셨다가 주인이 돌아오신 후 왕국의 연회를 베푸십니다.
이런 비유에서 볼 수 있는 것처럼 주인의 종들은 같은 장소, 같은 곳에서 다루어집니다. 이곳은 주인이 영접하기 위해 가셨던 왕국 위치와 관계있습니다.
휴거를 둘러싸고 있는 오해가 나타나고, 다른 부분에서 성경적인 교리에 대한 오류를 볼 수 있을 때 단순히 그런 오류와 오해를 하게 되는데 그 사람은 정해진 방식대로 성경을 연구하지 않기 때문에 그런 일이 일어납니다.
2) 이스라엘과 그 교회
각 성도들이 합당한 방식으로 성경을 연구 한다면 그들은 이스라엘과 교회 사이에 있는 분명하고 정확한 차이를 보는데 문제가 없을 것입니다. 이런 방면에서 이스라엘과 교회 사이에 있는 정확한 차이를 보고도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주로 정확하게 성경을 연구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해서 성경적인 연구의 합당한 초석을 놓지 못하는 것은 상부구조를 건축할 때 변함없이 문제들을 산출하게 될 것입니다. 이스라엘과 교회 사이에 있는 차이와 관계가 있는 예표가 신약성경의 실제와 동시에 서로 결속되고, 연구된다면 개인적인 체험의 어려움은 사라지기 시작할 것입니다.
예를 들어 교회와 이스라엘과 관련 있는 예표체계는 창세기 23:1~25:34절, 41:1~45:28절, 그리고 출애굽기 2:1~40:38절에서 볼 수 있습니다. 이런 예표들이 교회와 이스라엘과 관련 있다는 것을 신약성경의 실제와 비교하여 연구할 수 있습니다. 이 예표들은 각 성도들이 맞부딪치는 어려움들과 관련된 성경을 함께 연구하게 될 것입니다. 이런 방식으로 성경을 연구를 하게 되면 우리의 어려움이 점점 사라지기 시작할 것입니다.
A.D. 33년 오순절 이전에는 유대인과 이방인, 두 부류만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오순절을 둘러싸고 있는 사건 이후에 세 부류가 있었습니다. 그들은 유대인들과 이방인들 그리고 그리스도 안에 있는 한 새 사람입니다.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그는 새로운 창조물이라. 옛 것들은 지나갔으니, 보라, 모든 것이 새롭게 되었도다(새 창조).”(고후 5:17)
A.D. 33년 오순절 이후 세 번째 부류가 존재하게 되었습니다. 그 때부터 두 부류가 아니었고 세 부류가 되었습니다. 전처럼 유대인들과 이방인들만이 아니었고, “하나님, 그리스도의 교회”도 있었습니다(고전10:32).
현 제도에 있는 모든 성도들은 “그리스도 안에 있는” 위치를 차지하게 되고, 영원한 새 창조의 지체가 되고, 한 새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엡 2:13~15).
고린도전서 5:17절에 따르면 유대인이나 이방인들이 구원받았을 때 이전 창조와 관계있는 것들은 지나가고, 새 창조가 되고, 한 새 사람의 일부가 됩니다. 이 한 새 사람, “그리스도 안에 있는” 사람들은 유대인들과 이방인들 사이에서 어떠한 차이도 존재하지 않습니다(갈 3:28).
이전의 두 부류에 속해 “그리스도 안에 있는” 성도들은 이제 완전하게 새 부류의 지체들입니다. 그들은 이제 완전히 새 창조의 일부입니다. 그들은 이전 창조와 관련되어 존재했었지만 이제 더 이상 옛 창조와 관련이 없는 사람들입니다. 유대인이든 이방인이든 이전 창조와 관계있는 것들은 “옛 것들”로 여겨지고, “지나간 것들”입니다.
하나님께서 계획하신 교회에는 구원받은 유대인들과 구원받은 이방인들 사이에서 구분되어야 할 절대적인 차이가 없습니다. 그 동안 알려진 차이들은 하나님 자신이 “무너트리신” 것을 “나누는 중간 담”을 세우려고 하는 사람의 헛된 시도에 지나지 않습니다(엡 2:11~15).
구원받은 유대인들이 새 창조를 넘어 옛 창조와 관계있는 것들을 갖기 위해 추구할 여지가 없습니다. 옛 창조들은 이미 “지났기” 때문입니다. 이전 것들은 “그리스도 안에 있는” 한 새 사람과 아무런 관계가 없습니다.
마찬가지로 구원받은 유대인들이 한 새 사람, 민족으로부터 분리된 일부로 보기 보다는 오히려 유대민족의 구원받은 일부로 자신들을 보는 것은 완전하게 어울리지 않는 것입니다. 민족을 구성하고 있는 구원받지 않은 유대인들은 그들의 “육에 의한 동족”이지만 “그리스도 안에 있는” 동족은 아닙니다(롬 9:3).
유대인과 이방인 사이에 있는 차이가 존재하지 않는 것은 “그리스도 안에 있는” 이 새 창조로부터 나옵니다. 하나님의 영은 오늘날 하나님의 아들을 위해 신부를 찾으시고 계십니다. 이 찾으심은 완료되었고, 이 에녹에 대한 실제에서 이 새 창조는 노아체험에서 볼 수 있는 실제를 통과하기에 앞서 야곱의 엉덩이에서 나온 옛 창조 이스라엘과 함께 옮겨질 것입니다.
유대인들과 그리스도인 사이의 차이가 확실하게 나타나지 않았을 때 각 성도들이 기다리고 있는 것과 마찬가지로 휴거에 대한 포괄성과 휴거의 시기에 대한 문제를 갖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미 말한 것처럼 이 문제는 예표로부터 시작합니다. 성경은 성경으로 성경을 비교함으로 연구되어야 합니다. 이런 방식이 아니면 거의 성경이 오류로 드러나게 될 것입니다. 말씀을 연구하는 다른 방법이 없습니다. 主護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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