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장
가정생활과 교회생활 안에서의 머리됨
기도: 주님, 우리는 당신의 영광과 당신의 증거가 너무나 짧습니다. 그렇지만 우리는 예배하는 마음으로 당신께 옵니다. 우리의 모든 죄가 씻겼고 우리의 모든 단점들이 덮어졌음을 깨닫습니다. 주님 당신은 생명주시는 분이십니다. 당신이 하늘에 속한 모든 축복으로 우리에게 축복하시려고 준비하시는 분이십니다. 주님, 우리의 영을 엽니다. 주님, 우리의 마음을 엽니다. 주님, 우리에게 말씀하옵소서. 우리에게 나타내옵소서. 주님, 당신께서 아브라함에게 나타나셨을 적에 아브라함은 주님을 위해 모든 것들을 드렸습니다. 야곱에게 나타내셨을 때 야곱이 이스라엘이 되었습니다. 주님, 당신께서 나타내시고 드러내심을 위해 우리가 우리 자신을 드리기 원합니다. 우리는 인간의 격려와 충고가 어떤 가치가 없다는 것을 깨닫습니다. 주님, 우리에게 당신 자신을 주시옵소서. 주님, 우리가 어디에 있든지 우리 모든 영이 당신에게서 듣고, 당신을 만지고, 깨닫고, 체험하도록 활짝 열게 하옵소서. 주 예수 그리스도여, 이 모임을 축복하소서. 당신의 보혈로 이 모임을 덮으소서. 이 교제를 통해서 교회생활 안에서 더 건강하고 합당한 방식으로 나아가고, 당신의 임재를 누리고 어떠한 축복을 깨달으려고 여기에 오는 모든 사람들을 위해 부요하심으로 우리에게 말씀하시옵소서. 주여, 우리를 축복하소서. 우리의 교회를 축복하소서. 모든 자매들을 축복하소서. 오! 주 예수여, 감사를 드립니다. 항상 우리에게 축복하시니 감사합니다.
남편의 책임자 직분을 완벽하게 하기
성경에 따르면 하나님은 그리스도의 머리시오, 그리스도는 남자의 머리시며, 남자는 여자의 머리입니다. “그러나 나는 너희가 알기를 원하노니 각 남자의 머리는 그리스도시오, 여자의 머리는 남자요, 그리스도의 머리는 하나님이시니라.”(고전 11:3 흠정역). 만일그리스도께서 하나님께 왠지 부당했었더라면 하나님께서 직접적으로 우리의 머리가 되셨을 것입니다. 물론 그리스도께서는 항상 매우 합당하시기 때문에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머리가 되실 수 있습니다. 남편이 그리스도의 머리되심을 거절한다면 남편이 그리스도의 머리직분을 거절한 이후부터 아내가 자신의 머리로 그리스도를 취할 자유를 갖습니다. 그리스도의 머리직분을 거절하는 것은 연약함을 갖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습니다. 그리스도만으로 충만 되어 있는 남편은 없습니다. 모든 남편은 아주 약해지는 것을 체험할 것입니다. 남편이 약할 때 아내는 그리스도와 같지 않고 머리가 될 수 있는 것처럼 보이지 않음을 깨달을 것입니다. 남편의 약함만이 남편의 머리직분을 거절할 자유를 여러분에게 주지 않습니다. 만일 남편이 그리스도의 머리직분을 거절할 때만이 여러분은 이런 자유를 갖습니다. 아내는 합당한 머리직분으로 남편을 들어가도록 돕기 위해 여기에 있습니다. 때론 그리스도의 머리직분을 거절하는 원인이 되어 남편의 마음은 굳어져 있습니다. 남편은 주님과 교회와 관련되는 어떤 것도 원하지 않는지 모릅니다. 그 상황에서 자연적으로 자매들은 주님의 임재 안에서 걷는 것을 배워야만 합니다. 이 방법 안에서 아내는 남편을 도울 수 있습니다. 왜냐면 그녀 자신은 그리스도의 머리직분을 받기 때문입니다. 결론적으로 그리스도에게 아내의 굴복은 남편을 합당한 위치에 있게 할 것이고 아내의 머리로서 남편을 취해야만 합니다. 남편은 머리직분을 가져야만 합니다. 자매가 남편이 없다면 교회가 그 자매의 남편입니다. 어떤 의미에서 주님은 자매의 남편이지만 실제적으로 주님은 교회입니다. ‘나는 주를 사랑한다.’고 말하는 것은 가치가 떨어집니다. 여러분들이 실제적으로 교회를 사랑하는 방법을 알 때만이 여러분이 정말로 주님을 사랑할 것입니다. 여러분이 주님을 사랑한다는 구두의 선포는 일종의 미신에 빠지게 될 수 있습니다. 이것이 사실이 아닐 수도 있지만 아주 적은 무리는 다른 그리스도인들을 실제적으로 사랑하지 않고서 정말로 주님을 사랑할 수 있습니다. 자매가 결혼을 하지 않았다면 그녀는 그녀의 참된 남편이라는 것을 깨달아야 필요가 있습니다. 실제적으로 이것은 자매의 남편이 교회를 의미합니다.
머리직분의 본성(본질)
머리직분을 깨닫는 것은 높은 것입니다. 사탄은 자신이 결코 머리직분을 깨닫지 못했기 때문에 사탄이 되었습니다. 성경에서 우리는 사탄의 한 가지 실수가 하나님과 동등 되기를 그의 갈망이었다는 것을 봅니다. “내가 구름들이 있는 높은 곳 위로 올라가 내가 지극히 높으신 이와 같이 되리라, 하였도다. ”(사 14:14 흠정역). 사탄은 누구도 죽이려고 하지 않았습니다. 사탄은 혁명조차도 없었습니다. 사탄은 “민주주의”를 원했습니다. 이것 때문에 사탄은 사탄이 되었습니다. 어떤 이들은 이 말에 동의하지 않을 것입니다. 사탄은 그저 공산주의 내지 제국주의 등 우리가 억압되는 것을 추구한다고 주장할지 모릅니다. 하지만 그런 논리는 잘못된 것입니다. 머리직분을 깨닫는 것은 아주 높은 문제라는 것을 보여줍니다. 민주주의는 인간 존재가 가질 수 있는 가장 높은 정부형태입니다. 민주주의는 사람들의 능력에 따라서 성공을 얻고, 발전시키며, 또 자라도록 라는 풍성한 권리를 사람들에게 줍니다. 민주주의의 기본적인 기능은 기회를 모든 사람들에게 주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여러분은 정치적으로 힘이 있는 사람부터 관공서에 이르기까지 선거를 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사람이 능력과 갈망을 가지고 있는 한 그는 백만장자가 될 수 있습니다. 하지만 민주주의의 부정적인 방면은 부정적인 것들이 또한 발전하도록 허락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범죄와 타락 또한 이 사회에서 존속합니다. 아주 부정적인 의미에서 사탄은 민주주의의 창립자였습니다. 사탄은 미카엘, 가브리엘 위에 있었던 세 천사장 중에 가장 높은 자리에 있었습니다. 미카엘이 모세의 몸에 대해서 사탄과 다투었을 때 미카엘이 그를 질책하지 않고 대신 “주님께서 너를 꾸짖기 원한다.”고 말을 했습니다. 미카엘은 자신의 입장을 깨달았습니다. 미카엘은 하나님께서 미카엘보다 더 높도록 사탄을 창조 하셨던 이후 내내 사탄을 질책할 입장이 아니었습니다. 사탄은 하나님의 지배하에 있던 우주 안에서 서열 2위였습니다. 어느 날 사탄은 하나님과 동등 되기 원했고 사탄은 입장을 잃었습니다. 사탄이 그가 갈망했던 것을 얻었더라면 우주 안에는 머리가 둘이 되었을 것입니다. 사탄이 그의 입장을 잃은 것 대신 땅으로 떨어지게 되었습니다. “오 아침의 아들 루시퍼야, 네가 어찌 하늘에서 떨어졌는가! 민족들을 약하게 만든 자야, 네가 어찌 끊어져 땅으로 떨어졌는가! 네가 네 마음속으로 이르기를, 내가 하늘로 올라가 내가 하나님의 별들 위로 내 왕좌를 높이리라. 또 내가 북쪽의 옆면들에 있는 회중의 산 위에 앉으리라. 내가 구름들이 있는 높은 곳 위로 올라가 내가 지극히 높으신 이와 같이 되리라, 하였도다. 그러나 너는 끌려가 지옥으로 곧 그 구덩이의 옆면들로 내려가리로다.”(사 14:12~15 흠정역). 그래서 온 우주는 심판아래에 놓이게 되었습니다. 교회생활 안에서 우리는 머리직분의 문제를 못 볼지도 모릅니다. 우리는 교회가 조직이 아니라 유기체이라는 것을 기억해야합니다. 우리가 교회 민주주의를 생각하기 쉽지만 우리들 중 많은 이들이 유기체로서의 교회를 보지 않습니다. 이것은 강조해서 말하는 것인데 사탄을 따르는 것이 분명합니다. 우리는 모든 사람들이 원하는 것이 무엇이든 할 수 있는 자유가 있고, 무엇을 하든지 말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고 생각합니다. 이것이 민주주의고 사탄이 이용하는 것입니다. 유기체는 자연계의 질서를 가지고 있습니다. 이 질서는 질서를 따라서 시작되는 것이 아니라 생명을 따라서 시작되는 것입니다. 조직과 유기체는 조직되어 있습니다. 하지만 유기체는 생명을 따라서 조직되고, 조직은 인간의 교묘함을 따라서 조직되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나의 몸은 유기체입니다. 나의 손은 언제나 나의 손에 있었습니다. 나의 얼굴에게 점프하도록 해 코가 되도록 할 권리가 없습니다. 손은 코와 동등 되게 창조되었다고 말을 할 수 없습니다. 동등 되게 창조된 것이 아닙니다. 손은 단순히 손입니다. 이것은 인간의 교묘함을 통한 것이 아닙니다. 그렇지만 몸이 건강한 유기체이기 때문입니다. 유기체 즉 몸은 교회생활과 가정생활에 관련될 수 있습니다. 가정생활에서 남편은 아내의 머리입니다. 남편이 좋든 나쁘든, 지배적이든 굴복적이든 남편이 그리스도의 머리직분 아래에 있는 한 남편은 아내의 머리가 될 가치가 있습니다. 아내는 남편에게 자신을 머리 숙이기를 배워야할 필요가 있습니다. 만일 남편의 머리직분이 가련하다면 머리직분을 대체하는 것이 아니고 아내가 머리직분을 완전하도록 끌어올려 주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우리는 국회의원들이 대통령을 완벽하게 만드는 것이라고 말 할 수 있습니다. 국회의원이 대통령을 선출하지 않지만 가끔 국회의원은 대통령이 되도록 합니다. 대통령을 추천하든지 국회의원을 추천하든지 표로 대결을 합니다. 그들은 더 많은 표를 얻는 사람이 되기 위해 다툽니다. 그들은 대통령에 걸맞지 않는 행동을 하고 있어서 대통령을 바꿉니다. 이것은 혼란을 불어 일으킵니다. 국회의원은 대통령을 완벽하게 할 목적으로 선출합니다. 만일 대통령이 잘못이 있다거나 너무 멀리 떨어진 정치를 한다면 국회의원들은 대통령을 바른 정치를 펴도록 안내하고 또 대통령을 저지합니다.
지배하지는 못해도 완벽하게 하다.
이 원칙 또한 아내에게서 공급받습니다. 남편이 좋지 못한 머리직분으로 있을지 모르지만 남편이 그리스도를 거절하지 않는 한 아내는 그리스도의 머리직분 아래에 있도록 남편을 도와야 합니다. 아내는 남편의 머리직분을 바꿀 수 없습니다. 세상에 속한 사회는 남녀가 결혼을 했을 때 그들은 즉시 결혼생활을 조정하는 사람을 정하려고 다투기 시작합니다. 대부분 아내가 이기고 가족을 조정합니다. 아내는 많은 무기가 있습니다. 눈물, 화, 자신의 엄마에게 쪼르르 달려가는 협박 등등......많습니다. 이것은 건강한 것이 아닙니다. 아내가 가족을 조정하는 일에서 져야만 합니다. 아내는 남편의 머리직분을 완벽하게 배워야만 합니다. 나는 아내가 이것을 하기에 어렵지 않다고 믿습니다. 왜냐면 기본적으로 대부분의 남편은 이미 “항복”했기 때문입니다. 만일 남편이 그가 원하는 방법이 아닐 때 화를 낸다면 남편은 돕기 어렵게 될 것입니다. 하지만 대부분의 남편은 이것을 좋아하지 않습니다. 대부분의 남편은 평안한 생활을 원하는 게 틀림없습니다. 남편들은 세밀한 것과 밀접한 관계가 아닙니다. 나이 든 사람은 더 단순합니다. 남편은 아내가 시중드는 것이 무엇이든지 불평 없이 먹고 행동합니다. 왜냐면 만일 자신이 아내를 만지면 문제가 생긴다는 것을 배웠기 때문입니다. 아내는 이미 이겼습니다. 난 이것이 좋다 나쁘다 말하지 않고 있지만 이것은 대부분의 부부에게 사실적인 경우입니다. 이 경우에서 남편을 완벽하게 하는 것은 아주 쉽습니다. 남편은 아내를 이길 수 없습니다. 심지어 예수님께서 교회를 “이길” 수도 없습니다. 우리는 엉성합니다. 하지만 주님은 우리에게 오래 참으십니다. 가정생활 안에서 여러분이 남편의 사람-몸, 혼, 영-을 돕고 있는 한 앞에서 말했던 것처럼 여러분의 남편의 머리직분을 완벽하게 하는 것은 어렵지 않습니다.
교회생활 안에서의 머리직분
교회생활 안에서의 머리직분에 관해 말씀을 나누는 이 기회가 쓰임 받기 원합니다. 교회생활 안에서 민주적인 모든 생각은 사탄적입니다. 여러분은 ‘우리가 왜 그것을 그렇게 하고 있는가?’라고 묻지 말아야만 합니다. 여러분은 장로의 머리직분을 질문하지 말아야만 하고 장로가 그리스도의 머리직분 아래에 있다는 것을 질문하지 말아야만 합니다. 교회생활 안에서 사무에 대해 질문하는 것은 장로들이 그리스도의 머리직분 아래에 있다는 것을 여러분이 신뢰하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이것은 그리스도의 머리직분을 모욕하는 것입니다. 어떤 방법으로든 장로에게 질문하는 것은 매우 심각한 것입니다. 장로들이 옳고 잘못이든 간에 여러분은 그것을 만지지 말아야만 합니다. 비록 장로가 잘못되어 있다 하더라도 그것은 옳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여러분이 그것을 만진다면 비록 그가 옳을지라도 결국 그것은 잘못될 것입니다. 장로들이 지체들에게 항복하는 교회를 만들지 마십시요. 이것이 한 번 일어나면 교회가 증거하는 것이 끝입니다. 장로들을 위협하고 여러분이 원하는 것을 하도록 그들에게 압박을 가하는 것은 사탄적인 것입니다. 교회생활 안에서 우리는 머리직분을 깨달을 필요가 있습니다. 우리가 머리직분을 깨달으면 우리는 어떤 위협이든지 미워할 것입니다. 우리는 교회생활 안에 있는 어떤 민주적인 생각을 미워합니다. 예를 들어 몸생명 안에서 “뇌”처럼 어떤 사람이 기능을 갖는 것은 축복입니다. 그 사람은 온 몸을 위해 직접 움직일 수 있습니다. 여러분은 유기체 안에서 여러분이 해야 할 것에 대해 말할 수 있는 사람이 아무도 없다고 생각할지 모릅니다. 하지만 손가락은 손에 의해서 항상 조절되고 있습니다. 손은 선택하지 못하지만 팔이 움직일 때 손이 움직입니다. 손은 머리에 의해서만 책임지게 할 수 없습니다. 만일 손이 머리에 의해 책임지기를 원한다면 그것은 팔에게 책임지게 해야 합니다. 여러분의 몸 안에서 각 지체들의 기능은 생명 안에 아주 많습니다. 몸생명 안에 있는 지체들은 정말 유기체이지만 그것은 대부분 조직적입니다. 생명과 기능에 따른 조직이요, 기술적인 것을 따른 것이 아닙니다. 장로가 교회생활 안에서 목표를 취하고 여러분이 민주적인 생각을 가질 때 여러분은 그들의 말에 좌절을 맛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여러분이 혐오스러운 민주주의를 깨닫는 것은 교회생활과 이끌고 책임지는 것에 있다면 여러분은 좀 더 휴식하게 될 것입니다. 우리 중 아주 적은 무리는 정말로 이끄는 것을 이해합니다. 그리스도만이 모든 것을 압니다. 그리스도께서 통과하신 과정에서 그분의 굴욕은 너무나 기묘한 것이었습니다. 창세전에도 그분은 하나님의 경륜 안에서 일어났을 것이라는 것을 완전히 깨달으셨습니다. 그분은 온 우주를 계획하셨습니다. “주께서는 지혜로 땅의 기초를 놓으셨으며 명철로 하늘들을 굳게 세우셨도다. 그분의 지식으로 말미암아 깊음들이 터져 오르며 구름들이 이슬을 내리는도다.”(잠 3:19~20 흠정역). 그분은 사람들에게 일어날 것이라는 것을 아셨습니다. 아담의 타락은 그분께 놀라운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분께서 이 땅에서 사시기 전 인류 역사 4,000년은 오시고, 고통을 당하시고, 죽으시는 그분을 위한 준비였습니다. 그분께서 얼마나 많은 고통을 당하셨는지 아는 사람이 아무도 없습니다. 그분의 십자가를 지신 그날 밤 겟세마네 동산에서 있었던 그분의 길이 우리는 얼마나 어려웠는지를 어렴풋하게나마 압니다. 비록 그리스도께서 온 과정을 획책당하셨고, 또 그분이 그 날 밤 동산에서 되었던 일을 아셨다 하더라도 그분께서 기꺼이 마신 잔을 옮겨 주시도록 하나님께 기도하셨습니다. “그들에게서 물러나 돌을 던지면 닿을 수 있는 곳으로 가사 무릎을 꿇고 기도하며 이르시되, 아버지여, 만일 아버지의 뜻이거든 이 잔을 내게서 옮기시옵소서. 그러나 내 뜻이 아니옵고 오직 아버지의 뜻이 이루어지기를 원하나이다, 하시니 하늘로부터 한 천사가 그분께 나타나 그분을 강건하게 하더라. 그분께서 고뇌에 차서 더욱 간절히 기도하시니 그분의 땀이 큰 핏방울같이 되어 땅에 떨어지더라.”(눅 22:41~44 흠정역). 그분은 그분의 땀이 커다란 핏방울같이 떨어진 그 지점에서 눈물을 흘리시며 우시고 기도하셨습니다. 그렇지만 예수께서는 하나님의 머리직분에 아직 완전히 항복하지 않으셨습니다. 심지어 그리스도의 부활과 승천은 하나님의 권능 아래에서 있었습니다. 예수님께서 부활하심 후 그분께서 하나님께서 자신을 왕위에 오르도록 부르시기를 기다리셨습니다. 예수님은 그분께서 승천 하실만한 자격을 가지고 계셨습니다. 그러나 그분은 하나님께서 그분을 부르심을 기다리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왕위에 오르신 것은 그분의 광과(업적) 때문이었다고 여기지 않으셨습니다. 빌립보서 2:9절을 읽겠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도 그분을 높이 올리시고 모든 이름 위에 있는 이름을 그분에게 주사”(빌 2:9 흠정역). 여기서 예수님을 높이신 분이 하나님이시오, 모든 이름 위에 있는 이름을 예수께 주신이도 하나님이시라고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 모든 것들은 하나님의 머리직분 아래에 있습니다. 교회생활에서 우리가 교회 안에 있는 높으신 머리되심을 깨닫는다면 우리는 경건한 두려움을 가질 것입니다. 우리는 우리가 하나님을 미워할지 모르는 것에 두려워할 것입니다. 우리는 항상 “이유”를 알아내기를 좋아하는 민주주의적인 사회 안에서 일으켜진 사람들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절대로 “왜”라고 묻지 않으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부활 후 하나님께서 그분을 높이시도록 기다릴 필요가 없었지만 그분은 하나님을 기다리셨습니다. 우리의 명철에 따라 그분은 이미 모든 것들을 이루셨고 그래서 그분은 하늘들로 오르셔서 오른편에 계셨습니다. 대신에 그분은 기다리셨습니다. 우리는 마리아가 동산에서 그분을 만지려고 했을 때 그리스도의 신성함을 볼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마리아에게 말했습니다. “예수님께서 그녀에게 이르시되, 내게 손을 대지 말라. 내가 아직 내 아버지께로 올라가지 아니하였노라. 다만 내 형제들에게 가서 그들에게 이르되, 내가 내 아버지 곧 너희 아버지, 내 하나님 곧 너희 하나님께로 올라간다, 하라, 하시니”(요 20:17 흠정역). 분명히 예수님은 하나님의 올라가게 하실 순서를 기다리셨습니다. 이 머리되심은 교회가 산출된 것입니다. 그리고 머리되심의 훈련은 교회가 건축되게 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값이 싼 것이 아닙니다. 그리스도께서 이 땅으로 내려오신 것을 생각하십시요. 예수님은 목수로 사셨습니다. 예수님은 십자가 위에서 죽으셨습니다. 후에 그분은 부활하셨고, 예수님은 올라가실 하나님의 순서를 기다리셨습니다. 그 다음 그분은 보좌 위에 앉으셨고 모든 이름위에 있는 이름을 받으셨습니다. 그분의 머리되심은 값싼 것이 아닙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교회는 값싼 방법으로 산출되지 않았습니다. 교회가 값싼 방식으로 산출된 것은 머리됨을 요구 합니다. 만일 그리스도께서 부활하신 후 하나님이 그분을 부르시는 것을 기다리지 않았더라면 온 과정은 실패했을 것입니다. 하나님의 순서를 기다리지 않는 다는 것은 반란하는 사탄의 원칙을 따르는 것이었을 것입니다. 사탄의 원칙을 따르는 것이 일어나지 않았다는 것을 주님께 찬양하십시오. 우리는 교회건축 안에서 이 원칙을 깨달아야 합니다. 우리는 교회생활 안에서 머리되는 것에 집중해야만 합니다. 만일 우리가 이것을 한다면 우리는 축복될 것입니다. 교회생활 안에서는 어떤 목소리도 갖지 않아야 함을 배우십시요. 교회가 예정하는 것이 무엇이든지 그것과 일치시키십시요. 여러분이 영이 있다면 장로들은 훨씬 더 영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여러분이 신뢰하기를 배워야합니다. 여러분이 장로들에게 ‘주님께서 그것을 하도록 나에게 말하지 않았다’고 말한다면 여러분은 장로들의 영을 거절하고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주님께서 어떤 것을 여러분에게 말씀하셨다고 생각한다면 여러분은 주님께서는 훨씬 더 장로들에게 말씀하신다는 것을 깨달아야만 합니다. 우리 모두 교회생활 안에서 머리되는 것에 주목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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