빵과 음료/새벽이슬처럼

성도들과 함께 여전히 남아 있기를 결심하기(큐티)

Hernhut 2011. 12. 29. 11:37

성도들과 함께 여전히 남아 있기를 결심하기

 

 

“떠나서 그리스도와 함께 있기를 바라며 내가 둘 사이에 끼어 있느니라. 그것이 훨씬 더 좋으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육체 안에 거하는 것이 너희를 위해 더 필요하니라. 이같이 확신하므로 너희의 믿음의 진보와 기쁨을 위하여 내가 너희 모두와 함께 거하며 머무를 것을 아노니”(빌 1:23~25 흠정역).

 

바울은 비록 떠나서(죽어서) 주님과 함께 있는 것이 훨씬 더 낫다는 것을 알았을지라도 전진과 기쁨을 위해서 빌립보 형제들(교회)과 함께 있기를 바라고 있었습니다. 한 편으로 바울은 죽기를 각오했었고 몸을 벗고 또 주님과 가까이 있기를 고대했습니다. 내가 말하노니 우리가 확신에 차서 원하는 바는 차라리 몸을 떠나 주와 함께 있는 그것이라.”(고후 5:8). 여전히 바울은 죽는 것이 “훨씬 더 낫다”고 말했습니다. 그것은 육체의 한계들과 좌절감으로부터 해방을 의미하며, 그리고 약해지지 않고 주님의 임재를 누리는 것을 의미했습니다.

 

주님과 함께 있기 바라는 이런 절실한 소원을 그리스도인 역사 가운데 찾기란 극귀(極貴)합니다. 그들이 더 오래 살려고 하는 생각 대부분 교회가 계속 유지되도록 하는 필요로서 주어지고 있는 것입니다. 이것이 좋은 이유입니까? 특별하게도 만일 여러분이 진실로 어떤 사람을 보살핀다면 여러분은 그 사람을 보살피기 위해 살아있기를 원할 것입니다.

 

그러나 바울은 이 두 가지 가능성을 선택하는 가운데서 정말로 몸부림치는 경험을 했습니다. 하지만 부모는 항상 아이들이 그들을 필요로 하는 한은 계속해서 아이들과 함께 있기를 추구할 것입니다. 그가 개인적으로 얼마나 주님과 함께 있기를 원하는지 개의치 않고 빌립보 형제들(교회)을 보는 바울의 갈망은 그리스도 안에서 더 자라고 전진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므로 그는 그를 죽이려고 고통을 주는 시저를 허락하지 않았습니다. 나는 오늘날 이 땅의 교회와 또 인천 채플, 그리고 그리스도의 형제들에게 머물러 있습니다. 나 또한 주님과 함께 있기를 갈망합니다. 하지만 내가 이 땅에 머물러 있는 것이 이들에게 유익하기 때문에 그들의 신앙과 믿음에 대한 전진 그리고 그리스도 안에서 성숙해 가기를 기도합니다. 우리 한국의 자살률이 OECD보다 몇 배나 높고 이혼율도 훨씬 높다는 보고서가 나왔습니다. 미혼모에게서 태어난 신생아들이 버려지고 있습니다. 이것은 사탄에게 자기 자신을 내맡긴 결과입니다. 사람들이 바울이 그리스도 안에서 자라고 전진해 가는 갈망을 갖지 않고 세상의 방식과 자기 편리성을 추구했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