빵과 음료/새벽이슬처럼

절망에서 군대를 조직하는 것 I (큐티)

Hernhut 2011. 12. 26. 18:11

절망에서 군대를 조직하는 것

 

 

“그러므로 다윗이 거기서 떠나 아둘람 굴로 피하매 그의 형제들과 그의 아버지의 온 집이 그 일을 듣고는 그들이 거기로 내려가 그에게 이르렀더라. 고난 중에 있던 모든 자와 빚진 모든 자와 불만이 있던 모든 자가 그에게로 모였고 그는 그들을 다스리는 대장이 되었더라. 거기에는 그와 함께한 사백 명가량의 사람이 있더라.”(삼상 22:1~2 흠정역)

 

우리는 절망이 닥쳤을 때 절망에 점령될 때가 많습니다. 그래서 전혀 그 절망으로부터 빠져나와서 절망에 대적하려고 하지 않습니다. 그렇지만 오늘 보는 이 말씀을 보면 고난에 빠진 다윗은 우리와 같은 모습이 아니었습니다. 절망에 잠겨있던 약 400여명의 사람들이 다윗에게 스스로 모여들었습니다. 그래서 다윗은 군대의 형태를 갖추게 했습니다. 다윗은 400여명의 대장이 된 것이지요. 하나님께서 다윗에게 이 사람들을 보내셨고 다윗은 불평하지 않았습니다. 사울이 용맹하고 힘세었던 어떤 사람들을 찾았을 때마다 그는 자신에게 그 사람들을 데려왔습니다. “사울의 평생 동안 블레셋 사람들과 심한 싸움이 있었으며 사울이 강한 자나 용맹 있는 자를 보면 그를 자기에게로 데려왔더라.”(삼상 14:52). 하지만 다윗은 이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다윗은 그에게 온 모든 사람을 받아들이고 훈련시켰습니다. 다윗과 사울은 얼마나 다른지요! 다윗에게 모여든 사람들은 어떠한 사람들이었습니까? 고난 중에 있던 자요, 빚진 자들이요, 불평불만이 있던 자들이었습니다. 아마 정상적인 사람이라면 이러한 사람들을 쓰지 않으려 했을 것입니다. 오늘날 청년실업이 가득하고 또 고용불안이 엄습하고 있는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그 가운데서도 고용하려는 사업자들은 스페시피케이션과 경력이 좋은 사람들을 채용하려는 입장에서 다윗에게 모여든 사람들의 모든 것은 아무 경쟁력은 없었을 것입니다. 그렇지만 다윗은 달랐습니다.

 

만일 내가 다윗이었더라면 말했을 것입니다. ‘잠깐만요. 하나님, 나는 난민 캠프나 치료센터를 운영하기를 원하지 않습니다. 당신께서 이러한 문제들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을 나에게 보내심으로 무슨 일을 하시고 계신 것입니까?’ 하지만 다윗은 나와 같이 하지 않았습니다. 절망에 빠진 이 사람들이 다윗에게 왔을 때 그는 그들을 안으로 데려와서는 음식을 먹였고 그들과 하께 일을 했습니다.

 

다윗은 그들에 대한 책임을 느꼈습니다. 아마도 그는 ‘비록 다른 사람들이 이런 문제로 이 사람들을 볼지라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그들과 함께 살고 일하고 모든 사람들이 하나님께서 나에게 주시고 또 그들이 가지고 있는 그들의 가능성에 놀라게 될 것이다.’라고 느꼈을 것입니다. 이스라엘에서 가장 용맹스럽고 가장 강한 사람들을 모집했던 사울과는 달리 다윗은 특히 주님께서 그에게 보내신 사람들을 받아들였습니다.

 

그러므로 다윗은 이 400여명의 사람들의 대장이 되었습니다. 그 그룹이 나중에 겉으로 보기에는 절망에 빠졌던 이 첫 번째 그룹으로 이뤄졌던 다윗의 강한 사람들로 불렸다고 나는 믿습니다. 우리 교회생활에서 우리는 이 공과를 배워야만 합니다. 우리 사회생활 속에서도 이 공과가 적용되어야 하고 또 고용 시장에서도 이공과가 적용되어야만 합니다. 우리는 다른 사람들보다 더 촉망받고 있는 사람들을 모집하지 말아야만 합니다. 대신에 우리는 주님께서 우리에게 보내시는 사람들을 받아들이고 채용해야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