빵과 음료/새벽이슬처럼

비평가로부터 배우기

Hernhut 2025. 5. 18. 00:18

 

 

그는 다윗과 다윗 왕의 모든 신하들에게 돌을 던졌습니다. 모든 백성과 모든 용사들이 그의 좌우에 있었습니다. 시므이는 저주하며 이렇게 말했습니다. 나오라! 나오라! 피에 굶주린 자, 악한 자여! 여호와께서 사울 의 집의 모든 피를 네게 돌리셨도다. 네가 사울을 대신하여 왕이 되었고, 여호와께서 이 나라를 네 아들 압살롬의 손에 넘겨 주셨도다. 이제 네가 피 에 굶주린 자이므로 네 악이 드러났도다!( 사무엘하 16:6-8 )

 

한때 강했던 자의 약함에 묘한 기쁨을 느끼는 것은 인간의 본성입니다. 들판에서 한 송이 꽃이 다른 꽃들보다 높이 솟아오르면, 많은 사람들은 그 꽃이 베어지는 것을 보고 기뻐합니다. 사무엘하 16장의 이 구절들은 다윗 왕국의 위기를 기뻐하는 한 남자를 묘사합니다. 다윗의 아들 압살롬은 다윗이 죽을 때까지 왕위를 계승하기를 기다리지 않고 영리하게 왕국을 차지했습니다. 다윗이 예루살렘을 탈출할 때, 제멋대로인 아들의 잔혹한 손아귀에서 간신히 벗어나려던 참에, 그는 시므이라는 가혹한 비판자를 만났습니다.

 

시므이는 전 왕 사울의 먼 친척이었고, 사울 왕조를 계승한 다윗을 미워했습니다. 다윗이 예루살렘에서 쫓겨났을 때, 시므이는 그것이 하나님의 정의를 보여주는 훌륭한 사례라고 생각했습니다. 시므이의 뒤틀린 생각 속에서 다윗은 불법적으로 왕위를 차지한 피에 굶주린 자였습니다. 시므이는 다윗이 마땅히 받아야 할 것을 받았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는 다윗에게 저주를 퍼붓고 돌을 던지며 소리쳤습니다. 이 피에 굶주린 자, 이 악당아!시므이는 그 어떤 사람보다도 더 공격적이었습니다. 그는 다윗에게 남은 존엄성과 자신감의 조각조차 파괴하고 싶어 했습니다. 지도자가 고통받을 때 기뻐할 사람들은 항상 있습니다. 시므이는 오랫동안 다윗을 미워했지만, 다윗이 몰락했을 때 비로소 그 마음을 드러낼 수 있었습니다.

 

이것만으로도 다윗에게는 견디기 힘든 시련이었습니다. 이 비참한 상황에서 시므이는 기꺼이 다윗을 더욱 낮추었습니다. 찰스 스펄전은 이 시련이 다윗에게 얼마나 힘들었는지 이렇게 묘사했습니다. 비겁한 공격을 견디는 것은 매우 힘듭니다. 당신의 지위를 이용해 비겁한 공격을 가하는 사람에게는 반격하고 거친 말을 사용하기가 매우 쉽습니다. 비겁한 사람만이 사람이 쓰러졌을 때 공격합니다.

 

시므이의 비난을 분석해 보는 것도 흥미롭습니다. 사무엘하 16:7, 8에서 그가 한 말을 주목해 보십시오. 여호와께서 사울 족속의 모든 피를 네게 돌리셨으니네 악에 사로잡혔느니라.모든 것을 공평하게 바라보고, 겉모습만 잠깐 살펴보면 시므이의 분석이 맞는 것처럼 보입니다. 결국 다윗은 패배했습니다. 어쩌면 이것은 하나님의 심판이었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시므이는 틀렸습니다. 이 모든 일이 다윗에게 임한 것은 그가 사울이나 그의 가족에게 행한 일 때문이 아니었습니다.

 

시므이가 틀렸던 이유는 다윗이 사울과 그의 가족을 진심으로 사랑하고 은혜롭게 대했기 때문입니다.

시므이가 틀렸던 이유는 다윗이 피에 굶주린 사람이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그는 전사였지만, 피에 굶주린 사람은 아니었습니다.

시므이가 틀렸던 이유는 다윗이 사울과 그의 가족을 파멸시키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사울 자신이 그의 가족을 파멸시켰습니다.

 

우리는 다윗에게 가해진 모든 비난이 표면적으로는 사실이지만, 실제로는 거짓이었음을 봅니다. 지도자로서 다윗은 겉보기에 진실인 거짓 비평가의 공격을 받는 것이 어떤 것인지 잘 알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는 침착함을 유지하며 시므이가 그럴 만한 짓을 저질렀음에도 불구하고, 그를 원수처럼 대하지 않았습니다.

 

흥미롭게도, 시므이는 한 가지 점에서는 옳았습니다. 그는 다윗에게 주께서 왕에게 임하게 하셨다라고 말했습니다. 주님께서 다윗에게 이 일을 겪게 하신 것은 사실이지만, 시므이가 생각했던 어떤 이유 때문이 아니었습니다. 다윗은 하나님께서 이 시련을 통해 목적을 가지고 계심을 깨달았고, 순종하면서도 불순종하는 아이처럼 하나님의 징계에 자신을 맡겼습니다. 그는 가장 가혹하고 무례한 비판자, 심지어 대부분 틀렸던 비판자조차도 주님의 말씀을 들을 만큼 지혜로웠습니다.

 

리더가 된다는 것은 비판받는다는 것을 의미하지만, 비판 속에서 경건하게 항복하는 진정한 목적은 단순히 비판을 견뎌내는 것이 아닙니다. 가장 가혹하고 무례한 비판자, 심지어 대부분 틀리는 비판자로부터도 주님의 말씀을 들을 만큼 지혜롭게 행동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예상치 못한 곳에서 우리에게 말씀하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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