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도에서 우리는 모든 것과 우리를 창조하시고 모든 것이 계속 존재하는 하나님께 전적으로 의존한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기도에서 우리는 그분의 위대함과 선하심에 대한 그분의 이름에 찬양, 존귀, 영광, 경의를 표합니다. 우리는 그분을 모든 축복의 근원으로 인정합니다. 또한 그것은 우리 마음의 욕망을 쏟아내는 것입니다. 로마서 10:1에서 사도 바울은 『형제들아 내 마음이 이스라엘을 위하여 하나님께 구하는 것은 그들이 구원을 받는 것임이니라』고 말합니다. 우리의 기도는 우리의 마음에서 나와야 합니다.
하나님께 드리는 기도는 오직 하나님의 순종하는 자녀들에게만 허락됩니다. 요한복음 9:31에서 『이제 우리는 하나님께서 죄인의 말을 듣지 아니하심을 아노라 그러나 누구든지 하나님을 경배하고 그의 뜻을 행하면 들으시느니라』고 말씀합니다. 하나님께서 기도를 들으시지 않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사야 59:2에서 『그러나 너희 죄악이 너희를 너희 하나님에게서 떼어놓았고 너희 죄가 그의 얼굴을 너희에게서 가렸으므로 그가 듣지 아니하시느니라』고 말씀합니다. 무엇이든 우리를 하나님과의 교제에서 떼어놓아 하나님께서 우리의 기도를 듣지 못하게 하는 것은 매우 심각한 문제입니다. 하나님께서 기도를 듣지 않으실 때 하나님께 기도하려고 하는 사람들에게는 슬픈 상황입니다. 하지만 그것은 그들 자신의 잘못입니다. 왜냐하면 그들은 하나님께 순종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원한다면 순종할 수 있습니다.
그런 다음 잠언 28:9을 읽어보세요. 『법을 듣지 아니하는 자의 기도는 가증한 것이니라.』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뜻을 충실히 따르지 않는 자의 기도를 혐오스럽게 보십니다. 우리의 기도가 하나님께 혐오스럽게 여겨질 때 우리는 얼마나 안타까운 상황입니까? 이보다 더 절망적인 일이 있을까요? 베드로전서 3:12에서도 『주의 눈은 의로운 자에게 있고 그의 귀는 그들의 기도에 열려 있으나 주의 얼굴은 악을 행하는 자를 대적하시느니라』고 읽습니다. 주님은 그분의 충실한 자녀들의 기도를 듣고 싶어하시고 그분의 눈은 그들을 살피고 계십니다. 이것은 얼마나 위대하고 놀라운 축복입니까?
우리가 하나님께 기도할 때, 우리는 겸손해야지 독선적이어서는 안 됩니다. 우리 주님은 이 요구 사항을 아주 잘 보여주는 비유를 주셨습니다. 누가복음 18:9-14에서 우리는 이렇게 읽습니다. 『또 예수님께서는 자기가 의롭다고 믿고 다른 사람을 업신여기는 어떤 사람들에게 이 비유를 말씀하셨습니다. 두 사람이 기도하러 성전에 올라갔습니다. 한 사람은 바리새인이고 다른 한 사람은 세리였습니다. 바리새인은 서서 이렇게 기도했습니다. 「하나님, 저는 이 세리와 같지 않음을 감사드립니다. 저는 일주일에 두 번씩 금식하고 제가 가진 모든 것의 십일조를 바칩니다.」 세리는 멀리 서서 하늘을 쳐다보지도 못하고 가슴을 치며 말했습니다. 「하나님이여, 저는 죄인입니다. 내가 당신께 말씀드리건대, 이 사람이 저 사람보다 의롭다고 여겨져 집으로 내려갔습니다.」 누구든지 자기를 높이는 자는 낮아지고 자기를 낮추는 자는 높아질 것입니다.』 우리가 기도와 다른 예배에서 하나님께 나아갈 때 갖는 태도는 매우 중요합니다.
우리가 자신에 대해 큰 교만함과 오만함을 보이는 태도로 하나님께 나아가지만, 다른 사람에 대해서는 경멸과 멸시를 한다면, 하나님께서는 이런 종류의 기도를 멸시하실 것입니다. 우리의 기도는 세리의 태도와 같아야 합니다. 우리 주님께서 여기서 우리에게 가르치고자 하는 바에 따르면, 우리가 기도로 창조주께 나아갈 때 우리는 겸손해야 하며, 교만하거나 자기 주장적이어서는 안 되며, 겸손하고 허세가 없어야 하며, 우리의 기도는 마음에서 나와야 합니다. 고린도전서 14:15에서 『나는 영으로 기도하고 또한 이해로 기도하겠습니다』라고 말씀합니다.
우리의 기도는 화려하거나 다른 사람에게 인상을 주는 것이어서는 안 됩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런 기도에 인상을 받지 않으실 테니까요. 예수님께서는 마태복음 6:5, 7에서 『기도할 때 위선자들과 같이 하지 말라. 그들은 사람들에게 보이려고 회당과 거리 모퉁이에 서서 기도하기를 좋아하느니라. 진실로 나는 그들이 상을 받았다고 말한다. 기도할 때 이방인들처럼 헛된 말을 되뇌지 말라. 그들은 말을 많이 해야만 들으실 줄 생각하느니라.』 이런 기도를 하는 사람이 받는 유일한 상은 사람들에게서 받는 인정인데, 하나님께서 그의 기도에 귀를 기울이지 않으시기 때문이다. 우리는 또한 무언가를 거듭거듭 되뇌는 것과 같은 헛된 말을 되뇌지 말라는 경고를 받는다. 이런 종류의 기도는 허세가 있어서 우리를 위선자로 만든다.
우리의 기도는 믿음으로 구해야 한다. 우리의 기도에 관하여 야고보서 1:6-7은 『오직 믿음으로 구하고 조금도 의심하지 말라 의심하는 자는 바람에 밀려 요동하는 바다 물결과 같으니 그 사람은 주께로부터 무엇이든지 받을 줄로 생각하지 말라』고 말씀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믿어야 하며, 우리가 그분께 충실하고 순종한다면 그분은 우리의 기도를 들으시고 응답하실 것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아무것도 받지 못할 것입니다. 예수님은 마가복음 11:24에서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무엇이든지 기도할 때에 구하는 것은 받은 줄로 믿으라 그리하면 받을 것이니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우리의 기도에 응답하시기를 기대한다면 믿음이 있어야 합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대변자이시며 하나님과 함께 중개하시는 분이시기 때문에, 예수님은 요한복음 14:13에서 『내 이름으로 구하는 것은 무엇이든지 내가 이루어 주리니 이는 아버지께서 아들 안에서 영광을 받으시게 하려 함이니라』고 말씀하십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드리는 요청은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또는 그리스도의 권위로 이루어져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기도에 응답하시기 위한 또 다른 요구 사항은 우리가 다른 사람을 용서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마가복음 11:25-26에서 『너희가 서서 기도할 때에 누구에 대하여 원망하는 것이 있거든 용서하라 그리하면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서도 너희 허물을 용서하시리라 그러나 너희가 용서하지 아니하면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서도 너희 허물을 용서하지 아니하시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다른 사람을 용서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가요? 우리가 용서하지 않으면 어떤 일이 일어날지 주님께서 이보다 더 분명하게 말씀하실 수 있을까요? 주님은 우리를 용서하지 않으실 것입니다. 우리는 영원히 잃어버려질 것입니다. 이사야 59:2에 따르면, 우리를 하나님으로부터 『분리』시키는 것은 우리의 죄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하늘의 왕국에 갈 수 없습니다. 우리는 모든 사람을 용서하는 태도를 키워야 하나님께서 우리를 용서하셔서 우리가 하늘의 왕국에 갈 수 있습니다.
우리가 다른 사람을 대하는 방식도 하나님께서 우리의 기도를 들으시는 방식에 영향을 미칠 수 있습니다. 베드로전서 3:7에서 우리는 『남편들도 마찬가지로 이해심을 가지고 아내와 함께 살며 아내를 연약한 그릇으로 존중하고 생명의 은혜를 함께 상속받는 자로 여겨야 합니다. 이는 여러분의 기도가 막히지 않게 하려는 것입니다』라고 읽습니다. 우리의 기도는 아내, 남편, 자녀, 친척, 친구, 지인 또는 낯선 사람을 대하는 방식에 따라 방해받을 수 있습니다.
우리는 곤경에 처해 하나님이 필요할 때만이 아니라 정기적으로 기도해야 합니다. 데살로니가전서 5:17에서 『쉬지 말고 기도하라』고 말씀하신 것처럼 말입니다. 또한 야고보서 5:17에서 『의로운 사람의 간절한 기도는 큰 효력이 있느니라』고 교훈합니다. 우리의 기도가 효과적이기를 기대한다면, 그것은 간절해야 하고 우리는 의로워야 합니다. 우리는 기도할 때 온 힘을 다해 하나님께 큰 감정과 강렬한 헌신을 보여야 합니다.
우리가 구하는 것은 하나님의 뜻에 따라야 합니다. 요한일서 5:14은 『우리가 그의 뜻대로 무엇이든지 구하면 들으십니다』라고 말합니다. 하나님께 드리는 우리의 요청은 그의 뜻과 모순되어서는 안 되지만, 그와 일치해야 합니다. 우리는 그의 뜻에 반하는 것이나 우리 쪽에서 이기적인 것을 구해서는 안 됩니다. 우리의 기도는 하나님께 들으려면 『영과 진리로』 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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