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Brethren/연(輦)모임 메시지

바울의 양심의 증거

Hernhut 2023. 5. 6. 21:28

 

 

로마서 9:1

 

"나와 함께 증언하다"라는 문구는 "나와 함께 증거를 전달하다"로도 번역될 수 있다. 다른 말로 하면, 바울의 양심은 그의 증언과 일치했다. 이 동조하는 증거는 "성령 안에" 있었다. 앞의 "그리스도 안에"라는 문구가 그리스도와의 연합을 의미할 수 있는 것처럼, 이 문구는 성령과의 연합을 나타낼 수 있다. 이것을 "양심은 그 자체로 남겨진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영에 의해 알려지고 깨우쳐진 것"이라고 부른다.

"양심"에 해당하는 헬라어 단어인 수네이데시스suneidēsis는 세 개의 헬라어, 즉 순sun, 오니다oida 및 접미사 시스sis로 구성된다. 접두사로 사용될 때 헬라어 전치사 태양은 협회, 공동체, 친교 및 참여를 나타낸다. 이런 의미에서 "함께, 같이"로 번역될 수 있다. "알다"로 번역되는 가장 일반적인 두 가지 헬라어 중 하나인 오이다Oida는 종종 직관적인 지식, 내부에서 오는 인식 또는 인식을 나타낸다. 따라서 수네이데시스suneidēsis는 일종의 교제 또는 지식의 공생을 의미한다. 그러므로 "성령 안에"라는 구절은 바울의 양심이 그와 성령 사이의 공동 지식의 장소였음을 나타내기 때문에 훨씬 더 중요하다.

 

 

 

계시와 적용

 

로마서 91절에서 바울은 먼저 그리스도 안에서의 자신의 진실성에 관해 이야기한 다음 자신의 양심에 관해 이야기한다. "나와 함께 증거하다"에 해당하는 헬라어 표현은 "나와 함께 증거하다"로도 번역될 수 있다. 이것은 바울의 영이 건강했고 건전하게 운영되었음을 보여 준다.

 

계시와 인정

 

"양심"에 대한 헬라어 수네이데시스suneidēsissun(연합), oida(알다), 그리고 행동, 과정 또는 그 행동의 결과를 나타내는 접미사인 sis의 세 단어로 구성된다. Oida는 하나님께서 우리의 영 안에서 우리에게 주시는 계시에 근거하여 우리의 영 안에서 오는 하나님에 대한 우리의 주관적인 지식을 나타낸다. 하나님은 우리의 영 안에 계시를 주시고 우리의 영이 그것을 인식하고 붙잡을 때 그것은 주관적 지식(oida)이 된다. 하나님의 계시에 대한 우리의 주관적인 인식이 우리와 연합될 때, 그것은 우리의 양심으로 귀결된다. 따라서 우리의 양심은 더 많은 계시를 받고, 이 계시를 인식하고, 이 계시와 하나가 될 때 항상 변화하고 정련된다.

사람마다 계시와 인정이 달라서 모든 사람의 양심도 다르다. 예를 들어, 교회 저녁 식사에서 와인을 제공해야 하는가? 대답은 우리의 양심에 대한 우리의 인식의 문제다. 또 다른 예로, 식단을 채소로 제한해야 하는가, 아니면 고기도 먹어야 하는가? 바울은 로마서 14장에서 이 문제를 다루고 있다. 그것은 양심의 문제다.

성도로서 우리의 양심은 항상 주님 앞에서 우리의 주관적인 인식과 관련이 있다. 불신자는 "내 양심으로 너희에게 이르노니..."라고 말할 수 있다. 그러나 그들의 양심은 우리와 완전히 다른 차원에 있다, 왜냐하면 그들의 영은 아직 죽었고 그들은 하나님에 대한 내적, 주관적 인식이 없었기 때문이다. 우리의 양심은 우리의 영 안에서 하나님을 인식하는 것과 관련이 있다. 우리의 생활이 영적인 인식과 일치할 때, 우리의 양심은 옳을 것이다.

성도로서 우리의 양심은 항상 주님 앞에서 우리의 주관적인 인식과 관련이 있다. 불신자는 "내 양심으로 너희에게 이르노니..."라고 말할 수 있다. 그러나 그들의 양심은 우리와 완전히 다른 차원에 있다, 왜냐하면 그들의 영은 아직 죽었고 그들은 하나님에 대한 내적, 주관적 인식이 없었기 때문이다. 우리의 양심은 우리의 영 안에서 하나님을 인식하는 것과 관련이 있다. 우리의 생활이 영적인 인식과 일치할 때, 우리의 양심은 옳을 것이다.

 

선한 양심

 

우리의 양심은 우리의 영적 인식과 관련이 있다. 우리가 성령께 더 많이 나아갈수록 우리는 더 많은 계시를 받게 될 것이다. 우리가 그러한 계시를 더 많이 인식하고 붙들릴수록 우리의 양심은 더 건강해질 것이며, 우리는 하나님과 더욱 단합하게 될 것이다. 바울은 자신의 양심이 성령 안에서 그와 함께 증거했다고 말했다. 그러한 표현은 우리의 영적 인식이 성령의 지속적인 계시에 근거한다는 것을 보여준다. 그것은 또한 우리가 영으로 본 것과 일치할 때 이 하나 됨이 우리의 양심이 성령 안에 거하는 결과를 낳는다는 것을 보여준다. 우리와 우리가 영으로 본 것 사이에 단절이 있으면 우리의 양심이 성령 안에 거하기가 매우 어려워진다. 이러한 거함이 이루어지지 않으면 우리의 영적 성장이 저해되고 결국 생명의 열매를 맺을 수 없게 된다.

선한 양심은 성령 안에서의 과정의 결과다. 이 과정은 우리가 계시를 받을 수 있는 주님의 면전에서 생활하는 것에서 시작된다. 이 계시는 우리의 영 안에서 주관적으로 인식된다. 이 과정을 통해 우리는 하나님으로부터 '즉시' 말씀, 즉 우리의 현재 상태와 상황, 환경을 다루는 말씀을 얻게 된다. 이 말은 감정이 넘치고 우리를 깊이 감동하게 할 수 있다. 그것은 우리의 성격, 특정 관계 또는 직장에서의 상황과 같은 것들에 관한 것일 수 있다. 하나님의 이 말씀은 우리를 인도하기 위한 것이며, 우리가 그것들과 하나 될 때 선한 양심이 생겨 생명의 열매를 맺는다.

바울은 여기서 "나는 지금 나에 관해 이야기할 것이다. 나는 건강한 사람이다. 나는 성실하고, 거짓말을 하지 않으며, 양심은 활동적이고 건강하다. 내 양심은 전적으로 하나님과 관련이 있다. 나는 하나님의 계시와 그러한 계시에 대한 내 영의 인식에 모두 일치한다. 이것이 성령 안에 있는 나의 양심이요, 하나님과 한마음이 되는 양심이다."라고 말하는 것 같다.

 

하나님과 일치한 양심

 

하나님과 일치한 양심은 그분과 연합된 양심이다. 다시 말해, 성령 안의 양심은 하나님 안에 있는 양심과 완전히 일치한다. 이것은 하나님을 괴롭히고, 좌절시키고, 심지어 당황하게 하는 것은 무엇이든 우리를 괴롭히고, 좌절시키고, 당황하게 할 것을 의미한다. 하나님이 점점 더 우리 안에 구성됨에 따라 우리의 양심은 건강하고 합당해진다. 이것이 바울이 "내 양심이 성령 안에서 나와 함께 증거하느니라"라고 말했을 때의 상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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