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Brethren/연(輦)모임 메시지

믿음으로 받는 구원(은혜의 구원)

Hernhut 2023. 4. 15. 00:28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에 관한 메시지는 성경에서 매우 간단한 용어로 사용된다. 사실, 개인이 종종 그것을 놓칠 정도로 간단하다. 

 

그리고 무한하신 하나님이 주신 단 하나의 참된 메시지를 놓치고 자신의 유한한 지혜와 지식으로 구원 문제를 다루려고 하는 사람은 결국 타락한 구원의 메시지로 끝날 수밖에 없다. 




타락한 인간에게 구원을 가능하게 하는 구원의 메시지는 고린도전서 15:3에 분명하게 언급되어 있다. 

 

"... 그리스도께서는 성경대로 우리 죄를 위해 죽으셨습니다." 




구원 메시지의 한 가지 핵심 사상은 "죽음과 피 흘림"(창세기 3:21; 22:8, 13)이며, 이는 하나님이 요구하실 뿐만 아니라 그분 자신이 공급하신 것이다(출애굽기 12:13; 히브리서 9:22). 

 

그리고 구원 메시지의 한 가지 핵심 단어는 "믿다" (요한복음 1:12; 3:15, 16), 이것은 하나님께서 요구하시는 한 가지일 뿐만 아니라 사람이 할 수 있는 유일한 것이다 (요한복음 3:18). 



어린양은 죽으셨고, 그분의 피는 흘려졌으며, 남은 모든 것, 즉 사람이 할 수 있는 모든 것은 단순히 그분을 위해 이미 행해진 것을 받는 것입니다. 

 

영원한 구원은 믿음(하나님의 아들을 믿음-에베소서 2:8, 9)을 통해 은혜(하나님께서 인간의 공로와 완전히 분리하여 하실 수 있는 것)에 의한 것이며, 전적으로 다른 분의 완성된 사역에 기초한다(요한복음 19:30). 

 

사람이 지금까지 해 왔거나, 현재 하고 있거나, 앞으로 행하게 될 어떤 것도 그의 영원한 삶과 관련이 있을 수 없다. 사람은 자신을 위해 이미 행해진 것을 믿음으로 받는 것 이상을 할 수 없다. 이것이 성경이 다음과 같이 말하는 이유다.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라 그리하면 구원을 얻으리라..." (사도행전 16:31) 

 

이 문장은 앞 구절의 질문에 대한 응답이다, 

 

"선생님, 제가 무엇을 해야 구원을 받을 수 있습니까?" (30) 



그리고 다른 기준계 내에서 이 질문에 대한 응답은 "아무것도!"다. 이것은 구원받지 못한 사람이 할 수 있는 일이 하나도 남아 있지 않기 때문에 단순히 응답해야 할 것이다. 또는 그는 영적으로 죽어 있고 영적 영역에서 행동할 수 없기 때문에 무언가가 남아 있다면 무엇이든 할 수 없다(에베소서서 2:1, 5). 

 

"선생님, 제가 무엇을 하여야 구원을 받으리이까?"라는 질문과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라 그리하면 구원을 얻으리라"라는 대답이 성경 전체에서 한 곳에서만 함께 나타난다는 점에 주목하는 것이 흥미롭다. 성경은 구속에 관한 정보로 가득 차 있지만, 사도 행전 16:30, 31은 창세기부터 요한계시록까지 영원한 구원에 관한 질문이 많은 단어로 묻고 대답되는 유일한 곳이다. 

 

따라서 완전히 성경적인 틀 안에서, 사도행전 16:30의 질문이 제기된다면, 오직 하나의 대답이 있을 수 있다. 

 

"믿으라..." 

 

사람의 생각, 사고, 의견은 순간이 아니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셨고, 그것이 문제의 끝이다. 

 

요한복음 3:16은 성경에서 가장 단순한 형태로 언급된 전반적인 구원 메시지로 개인들에 의해 종종 간단히 말해서 ‘복음’이라고 불린다. 하나님은 타락한 인간에 대한 사랑으로 말미암아 - 목적을 위하여 그분의 형상대로 그분의 모양대로 창조되셨기 때문에(창세기 1:26-28) — "독생자를 주셨으니(고린도전서 15:3)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사도행전전 16:31)." 

 

사람이 구원을 얻게 한 모든 것은 다른 분이 한 것이다.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구속받는 자는 "허물과 죄로 죽었고"(에베소서 2:1) 자신을 위해 행동할 능력이 전혀 없었기 때문에 다른 분에 의해 이뤄져야 했다. 

 

그리스도는 죽으신 분이고, 그리스도는 사람을 구원하기 위한 사역을 행한 분이며, 하나님은 아들의 완성된 사역을 만족하신다. 

 

그리스도께서 아홉째 시간이 가까워지면서 "큰 음성"으로 십자가에서 부르짖으셨을 때, "다 이루었다"(누가복음 23:46; 요한복음 19:30), 그는 헬라어 본문에서 테텔레스타이Tetelestai라는 한 단어를 사용했는데, 이 단어는 "다 이루었다"로 더 잘 번역될 수 있다. 테텔레스타이Tetelestai는 "끝내다", "완료하다"를 의미하는 텔레오teleo의 완료시제 용법아다. 그리고 완료시제는 과거 시간에 완료된 행동을 말하며, 그 행동의 결과는 완성 된 상태로 현재 시간으로 확장되고 존재한다. 

 

그리스도가 오셔서 행한 사람을 구속하는 모든 사역은 그때 이미 완성되었다. 이것은 그리스도께서 "큰 음성"으로 하신 선포였다. 그리고 그 선포와 관련된 것 때문에, 더 이상 그분이 십자가에서 그분의 고통을 계속할 필요가 없었다. 그러므로, 그분께서 "다 이루었다"고 외치신 직후, 그분은 영을 버리셨다. 직역하면 '숨을 내쉬시고' 숨을 거두시고 기꺼이 목숨을 버리시니" (누가복음 23:46). 

 

갈보리에서의 그리스도의 사역은, 그분께서 "다 이루었다"고 외치신 시점부터 그분께서 그 당시에 존재한다고 선포하신 바로 그 완성된 상태로 존재해 왔다. 그것은 과거의 시간에 완성된 사역으로 존재해 왔으며, 그것은 완성된 상태에서 현재까지 확장되고, 앞으로 영원을 이루는 동일한 완성된 상태로모든 시대에 확장될 것이이다. 

 

아무것도 추가 할 수 없으며 아무것도 제거 할 수 없다. 즉, 갈보리에서 그리스도의 완성된 사역과 관련하여 어떤 것도 바뀔 수 없다. 

 

하나님이 사람을 구원하는 방법은 바로 그래야 했다. 일단 그리스도의 사역이 끝나면, 그분의 사역은 지금과 영원을 통해 항상 완성된 상태로 계속 존재해야 하는 방식이다. 

 

그리스도의 완성된 사역으로 말미암아 구원은 "돈도 값도 없이"(이사야 55:1) 사람에게 주어진다. 그리스도의 완성된 사역을 떠나서는 구원이 없다. 

 

"그를 믿는 자는 심판을 받지 아니하나 믿지 아니하는 자는 이미 정죄를 받은 것이니라, 직역하면 '이미 정죄 받았느니라' 불신으로 말미암아 과거에 정죄받고 현재 그 정죄받은 상태에 살고 있으며, 이는 그가 하나님의 독생자의 이름을 믿지 아니하였음이라"(요한복음 3:18). 

 

"허물과 죄로 죽은" 유한한 사람이 그분의 아들을 통해 무한하신 하나님의 완성된 사역에 한 가지를 더하거나 뺄 수 있다는 것은 완전히 불가능하고 생각조차 어리석은 일이다. 

 

사람이 할 수 있는 모든 것은, 아들을 믿음으로써, 그를 대신하여 이미 행해진 것을 단순히 받는 것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