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Brethren/연(輦)모임 메시지

에녹 : 두 에녹의 책임에 대해 배움

Hernhut 2018. 6. 26. 13:45


 

빠름과 느림을 배움

 

우리가 체험할 생명 노선의 다음 사람은 지식 노선에 있는 사람과 비교하는 것이 필요하다. 우리는 지식 노선 인류사에서 가인으로 시작했음을 보았다. 가인이 그의 형제를 살해한 후 주의 임재에서 멀리 떠났었다. 하나님의 임재를 떠났을 때 가인은 유랑하는 자가 되었다(4:16-17). 그는 유랑하는, 방랑하는을 의미하는 놋 땅에 거주했고, 거기서 에녹이라는 아들을 낳았다. 에녹이라는 이름은 배웠다를 의미한다. 에녹이 태어나자마자 가인은 도시를 건축했다.

그가 자기 아내를 알았더니 그녀가 수태하여 에녹을 낳으매 가인이 한 도시를 세우고 자기 아들의 이름을 따라 그 도시의 이름을 에녹이라 부르니라.”(4:17)

첫 번째 아들이었고, 에녹이라고 부르는 도시가 되었다. 지식 노선에 있는 모든 것은 배우는 것을 포함해 몹시 빨랐다.

생명 노선에도 에녹이라 불린 사람이 있다.

야렛은 백육십이 년을 살며 에녹을 낳았고”(5:18)

생명 노선에 있는 야렛의 아들은 지식 노선에 있는 가인의 아들과 같은 이름이다. 두 노선에 에녹이 있다. 두 노선에 있는 에녹 역시 배웠다를 의미한다. 가인의 아들 첫 번째 에녹은 지식을 배우는 것을 대표한다. 가인의 아들 에녹은 교리의 에녹이다.

야렛의 아들 두 번째 에녹은 생명을 배우는 것을 대표한다. 야렛의 아들 에녹은 체험의 에녹이다.

지식 노선의 에녹은 빨리 왔다. 그는 가인 다음 첫 번째 세대가 되었다. 하지만 생명 노선의 에녹은 몇 세대 후에 왔다. 두 노선의 에녹을 상징하는 것은 배우는 것에 대한 과정의 의미한다. 생명 노선 안에서 배우는 것은 지식 노선에서 습득하기보다 훨씬 더 어렵고, 더 느리다.

우리는 자기에게 질문해야 한다.

난 어떤 에녹일까?”

빨리 기록되는 에녹, 늦게 기록되는 에녹이 있다. 이 두 에녹은 배웠다를 의미한다. 일반적으로 젊은이들은 자신들이 어떤 것을 배웠다고 생각하기를 좋아한다. 하지만 영적인 배움은 아주 빠르거나 쉽지 않다. 지식 노선에서 배우는 것은 빠르지만 그 배움은 참된 것이 아니다. 참된 배움은 생명 노선에서 배우는 것이고, 시간이 걸린다. 생명 노선에 있는 것은 아주 천천히 일어난다. 생명 노선의 배움은 영적인 것을 포함해 길고, 어려운 과정이 있다.

 

생명 노선에서의 배움과 느린 과정

 

창세기 5장에 기록된 계보는 생명 노선에서 배우는 것이 얼마나 긴지를 우리에게 보여준다. 아담은 130년을 살고서 셋을 낳았다. 그리고 그는 800년을 더 살았다(5:3-4). 아담의 삶은 930년이나 살았다. 그는 인류사의 1/6을 견뎠다. 그 뒤 셋은 에노스를 낳기 전에 105년을 살았고, 에노스를 낳고서 807년을 더 살았다. 셋의 삶은 912년을 살았다. 셋 또한 거의 아담만큼이나 살았다.

성경에서 이 서술이 에노스, 게난, 마할랄렐, 야렛으로 이어진다. 각 사람은 기록된 것처럼 아들을 낳기 전에 많은 세월을 살았고, 그 후에도 많은 세월을 살았다. 성경은 아들을 낳기 전후로 몇 년간 살았는지를 말하고, 그리고 총 몇 년을 살았는지를 말한다.

야렛은 백육십이 년을 살며 에녹을 낳았고 에녹을 낳은 뒤 팔백 년을 살며 아들딸들을 낳았더라. 야렛의 전 생애는 구백육십이 년이었으며 그가 죽으니라.”(5:18-20)

심지어 생명 노선의 서술조차도 느리다. 하지만 가인의 노선에는 년수조차도 언급되지 않았다. 모든 기록이 빠르다.

가인이 에녹을 낳았고, 도시를 건축했다. 에녹이 빠른이라는 이랏을 낳았다. 이랏은 므후야엘을 낳았고, 므후야엘은 므두사엘을 낳았고, 므두사엘은 라멕을 낳았다. 그 후 라멕은 세 명의 아들을 낳았다. 또 다른 이름 뒤에 한 이름만 있다. 년수를 세지 않았다. 지식의 노선과 생명의 노선에는 에녹이 있다. 하지만 지식의 노선에 있는 에녹은 세상에 속한 배움을 획득하는 것은 적은 시간이 걸렸다. 생명 노선에서 영적인 배움을 획득하는 것은 더 느리고, 더 어려운 과정이다.

 

생명 노선에 있는 세대를 셈

 

1) 처음 세 세대: 하나님의 사역

생명의 노선에 우리가 올 때 성경의 기록은 아주 느리고, 조심스럽다. 창세기 5장은 생명 노선인 셋으로 시작한다. 셋은 부활한 아벨의 그림이요, 묘사한다. 셋은 지명된 사람이다. 그리고 그는 생명 노선의 총체적인 체험을 대표한다. 우리가 처음 믿었을 때 우리는 셋의 영역으로 인도되었다. 우리는 이 영역을 신성하고, 비밀스러운 영역이라 부른다. 셋 이후 각 세대의 수는 중요해졌다. 셋은 생명 노선의 총체적인 체험을 대표하므로 그는 세대로 세지 말아야 한다. 생명 노선에 있는 세대를 세는 것은 에노스로 시작한다. 처음 세 세대는 하나님의 일을 대표한다. 우리가 셋의 영역으로 인도된 후 하나님은 세 단계의 자기 일로 우리를 인도하신다.

첫 번째로 그분은 우리의 무능과 약함을 우리에게 보여 주신다. 이것은 에노스의 단계다. 두 번째로 그분은 우리에게 놀라우신 그리스도를 얻게 하신다. 이것은 게난의 단계다. 세 번째로 그분은 우리를 하나님의 찬양과 영광으로 인도하신다. 이것은 마할랄렐의 단계다. 하나님은 우리와 이 세 가지 일을 하시고 계신다. 그분은 우리가 누구인지를 우리에게 보여 주시고 계시며, 그분은 우리가 그리스도를 얻는 이유가 되시고, 우리가 하나님의 영광을 알도록 인도하신다.

 

네 번째 세대 : 합당한 인성

 

하나님의 일을 대표하는 세 세대 후 네 번째 세대가 있다. 성경에서 숫자 4는 창조물의 머리로서 사람의 숫자다. 우리가 하나님을 체험한 후 합당한 사람이 되기를 배워야 한다. 이것은 야렛의 단계다. 주 예수님은 참 야렛이다. 믿는 이들로서 우리는 야렛의 모습을 따른다. 우리는 인간이 예수님처럼 되기 위해 주님의 형상을 따르는 것이다. 하나님은 우리가 합당한 인성을 갖기를 갈망하신다. 우리가 영접한 하나님의 모든 풍성은 이 한 가지 질문에 의해 시험을 받게 될 것이다.

우리가 참 사람인가?”

하나님은 야렛, 참되고, 진짜이고, 합당한 사람을 갈망하신다. 야렛이라는 이름은 버리는, 내려가는, 내려놓는을 의미한다. 야렛의 의미가 내려가다인 것처럼 하나님께서 참 인간이 되셔서 이 땅으로 오신 것이다. 그분이 예수님이시다.

참 사람은 내려가는 사람이다. 참 사람은 가까이하기 쉽고, 은혜가 충만하고, 긍휼이 충만하다. 또 그는 생명과 진리의 움직임으로 가득하다. 우리가 에노스, 게난, 마할랄렐의 단계에서 얻은 하나님의 신성하신 모든 속성은 우리 인간의 미덕을 통해 전람되어야 한다. 이것이 야렛의 단계요, 합당한 인성의 단계다.

 

다섯 번째 세대 : 책임을 지기 위해 배울 값을 치름

 

우리가 하나님의 사역, 야렛의 합당한 인성에 대한 단계를 체험한 후 우리는 생명의 노선에 있는 다음 단계인 에녹을 체험하러 온다. 우리는 에녹이 배웠다를 의미한다는 것을 안다. 에녹의 단계는 생명 노선에서 배우는 단계다. 성경에서 숫자 5는 책임을 상징한다. 에녹이 셋 이후 다섯 번째 세대였기 때문에 그는 책임의 단계가 된다. 생명의 노선에서 배운 사람은 책임 있는 사람이다. 에녹의 단계는 참된 배움을 위해 대가를 치르고, 이 배움이 책임을 짊어지기 위한 것임을 아는 단계다.

 

우리의 학습과정

 

생명의 노선에서의 학습은 더 높은 학습이기 때문에 심하게 요구한다. 우리가 영적인 행동을 하기는 쉽지만, 책임을 지기 위해 우리가 학습하기는 정말 쉽지 않다. 영적인 학습은 과정의 결과다. 먼저 주님께서 우리가 아무것도 아니라는 것을 우리에게 보여주셔야 한다. 그런 다음 주님은 우리가 그리스도를 얻을 수 있음을 우리에게 보여주셔야 한다. 그러면 우리는 깨닫게 된다.

하나님께서 놀라우시구나!”

그런 후 우리는 내려가는 것을 배우고 합당한 사람이 되어야 한다. 우리가 내려간 후에 하나님은 말씀하실 것이다.

이제 너는 대가를 치르므로 책임지는 것을 배워야 한다.”

셋 이후 다섯 번째 세대 에녹은 생명 노선에서 배우는 단계를 대표한다. 이 배움은 대가를 치르는 것에서 온다. 우리가 대가를 치를 때에만 우리가 생명의 노선에서 책임을 지는 사람이 될 수 있다.

성경에서 숫자 4는 사람의 수요, 숫자 1은 하나님의 수이다. 숫자 5는 하나님에 대해 책임지는 사람을 대표한다. 에녹이 대표하는 책임은 하나님의 요구에 맞는 사람의 삶을 의미한다. 우리가 에녹의 단계에 있을 때 하나님께서 갈망하시는 것이 무엇이든 간에 바로 우리의 삶이 된다. 이것은 과정의 결과로 일어날 수 있을 뿐이다. 우리는 생명 노선의 이전 단계를 통해 자라는 사람이 될 필요가 있다. 먼저 우리는 우리가 누구인가를 보고, 그리스도를 얻고, 하나님께서 영광이심을 알고, 우리가 참 인간이 되기 위해 내려가고, 이러한 모든 단계를 거친 후 우리는 참된 학습을 위해 대가를 치르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대가를 치를 필요성

 

참된 학습은 우리가 책임을 질 때이다. 예를 들어 우리가 성경을 읽고 연구하는 것을 책임지고 있는가? 우리가 교회 생활에서 우리의 기능 발휘로 합당하게 책임을 지는가? 우리는 복음 전파하는 것을 책임지고 있는가? 기도에 대한 책임을 지고 있는가? 목양에 대한 책임을 지고 있는가? 이러한 질문 중 한 가지의 대답이 (No)”일 때 우리의 그리스도인 생활을 하는 우리는 아직 에녹이 아니다. 우리는 배운 것이 아니다. 우리가 영적인 것을 배울 대가를 치르지 않은 것이다. 이 모든 항목은 그리스도인 생활에서 대가를 치를 것을 요구한다. 우리의 모든 영적인 생활이 감동뿐일 때 우리가 아직 생명 노선의 더 이른 단계에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더 이른 단계는 우리가 배우기 위해 대가를 치르는 사람 안으로 자라게 해야 한다. 에녹이 되는 것은 성숙하는 것이다. 에녹이 되는 것은 내가 하나님에 대한 책임 있는 사람이다.”라고 말하는 것이다. 우리가 배울 때 책임 있는 사람이 되기 위해 대가를 치른다는 것을 의미한다.

에녹이 되는 것은 높은 것을 학습하는 것이고, 이 배움은 빨리 습득되지 않는다. 가인 노선에 있는 에녹을 좋아하지 않는다. 생명 노선의 에녹은 많은 시간이 지난 후에 태어났다. 야렛의 아들 에녹은 가인의 아들과 이름이 같지만, 완전히 다른 훈련을 한 영적인 사람이었다. 하나님의 갈망은 너무 쉽고, 빠르게 자라는 에녹을 세우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의 갈망은 생명 노선의 모든 단계를 통과한 에녹을 세우는 것이다.

먼저 우리는 하나님을 체험하고, 합당한 인성을 체험하는 단계를 통과한 후에 생명 노선에 있는 에녹이 될 준비가 된다. 그러면 우리는 참된 학습을 할 대가를 치를 사람이 된다. 이것이 우리가 책임 있는 사람이 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