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성하고, 비밀스러운 영역을 입증하기 위한 일곱 세대
우리는 아담의 임명된 아들 셋이 신성하고 비밀스러운 영역 전체를 대표함을 보았다. 그리스도 안에서 믿는 이들로서 우리는 이 영역 안으로 들어왔다. 우리가 셋으로 예표 된 이 영역을 입증하기 위해 우리는 생명 노선에 있는 일곱 단계를 체험할 필요가 있다. 일곱 단계는 에노스로 시작하여 노아로 끝나는 일곱 세대다. 에노스가 첫 번째 세대로 세어졌다면 실제로 노아로 끝나는 생명 노선은 여덟 세대다. 하지만 우리가 아버지와 아들이었던 므두셀라와 라멕에게 올 때 우리는 그들이 한 세대를 대표한다는 것을 볼 것이다. 라멕은 아버지 므두셀라 앞에서 죽었다. 므두셀라가 죽은 해는 큰 홍수가 일어난 해였다. 아들이 아버지를 앞서 죽은 것 때문에 그들은 한 세대로 생각해야 한다. 라멕은 므두셀라의 세대에 포함되었고, 우리는 실제로 한 사람의 두 방면을 대표한다는 것을 볼 것이다. 우리가 한 세대로 므두셀라와 라멕을 센다면 셋 이후 홍수가 올 때까지 인류가 일곱 세대인 것이다. 셋은 전체적인 신성하고, 비밀스러운 영역을 대표하고, 이 영역을 우리가 입증하기 위한 생명 노선의 일곱 세대가 있다.
학습을 위해 7일이 시작되는 일곱 세대
우리가 이 일곱 세대를 연구할 때 일곱 날로서 그들을 나타낼 수 있다. 하나님의 창조는 완벽해지는 일곱 날이 필요하셨다. 유사하게 우리는 신성하고 비밀스러운 영역을 입증하기 위해 일곱 날이 필요하다. 생명 노선의 다섯 번째 세대인 에녹은 “배웠다”를 의미한다. 생명 노선은 배우는 것을 포함한다. 생명 노선의 영적인 공과를 완전하게 배우기 위해서는 우리가 학습의 일곱 세대, 일곱 날이 필요하다. 참된 영적 배움은 세대에서 세대로 이어진다. 생명 노선의 세대는 노아로 끝이 난다. 노아의 이름은 “쉼, 안식, 휴식하다.”를 의미한다. 하나님께서 창조 안에서 일곱째 날에 휴식하셨고, 생명 노선의 일곱 번째 세대는 휴식을 상징한다. 창조하신 것과 마찬가지로 우리가 셋을 입증하기 위해서 일곱 날이 필요하고, 우리는 학습의 일곱 날을 가져야 한다.
배움의 첫 번째 날 : 영의 빛 비춤
생명 노선의 첫 번째 세대는 에노스다. 에노스는 “부서지기 쉬운, 영원히 살 수 없는”을 의미한다. 또 그는 사람의 나약함을 의미한다. 사람은 자기가 약하다는 것을 어떻게 알까? 영의 빛 비춤과 드러냄을 통해서다. 이것이 생명 노선에서 배우는 첫 번째 날이다. 성령님은 우리가 에노스라는 것을 볼 때까지 우리에게 빛을 비추시고, 우리를 드러내신다. 그런 후에 우리는 알게 된다.
“나는 약하다. 난 부서지기 쉽다. 난 하나님의 긍휼이 필요해.”
이것이 학습의 첫 번째 날이다.
배움의 두 번째 날 : 그리스도를 얻음
생명 노선의 두 번째 세대는 게난이다. 게난은 “얻다”를 의미한다. 배움의 두 번째 날은 그리스도를 얻는 것이다. 그리스도를 얻음은 우리의 약함을 아는 것을 통해 온다. 우리가 진정한 학습을 위해 우리는 첫날부터 두 번째 날까지 진행되어야 한다. 우리의 약함을 드러내는 것은 우리가 그리스도를 얻으리라는 것을 보장하지 못한다. 많은 사람은 그들의 약함에 관해 너무 지나치게 걱정하고, 우려하고, 안타까워한다. 그들은 자기들이 얼마나 부서지기 쉬운지를 비통해한다. 성령님은 우리가 비통해하고, 걱정하고, 너무 우려를 할 수 있으므로 우리의 약함을 드러내시지 않는다. 우리의 약함은 그리스도께 돌려야 한다. 우리의 약함은 우리가 그리스도를 얻는 것이다. 성령의 빛 비춤과 드러내심으로 우리는 그리스도 그분을 얻어야 한다. 이것이 학습에 대한 두 번째 날이다.
배움의 세 번째 날 : 아버지에 대한 찬양
생명 노선의 세 번째 세대는 마할랄렐이다. 마할랄렐은 “하나님은 영광이시다.”를 의미한다. 우리가 처음 이 세 세대를 함께 묶는다면 우리는 하나님의 사역이 여기에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배움에 대한 첫 번째 3일은 우리가 하나님 자신을 알게 하고 체험하도록 하는 것이다. 에노스, 게난, 마할랄렐 이 세 사람으로 우리는 성령 하나님의 사역을 빛 비춤을 갖고, 아들 하나님을 얻고, 아버지 하나님을 찬양한다. 이 배움의 3일을 통과한 후 우리는 하나님께서 영광이시라는 것을 알게 된다. 이것이 배움의 세 번째 날이다.
배움에 대한 네 번째 날 : 사람이 되기 위해 내려감
이러한 체험을 한 후 우리는 네 번째 세대요, 배움의 네 번째 날 야렛에게 온다. 야렛은 “내려가는, 내려놓는”을 의미한다. 성경에서 숫자 4는 창조, 특히 창조의 머리로서 사람과 관계가 있다. 야렛이 네 번째 세대라는 것이 중요하다. 야렛으로 우리는 사람이 되는 방법에 대한 참된 공과를 배워야 한다.
하나님에 대한 모든 체험을 한 후 네 번째 날에 우리는 내려가는 것을 배워야 한다. 심지어 우리가 하나님께서 영광이시라는 것을 아는 것조차도 우리는 자신을 너무 높이려고 하지 말아야 한다. 우리는 내려가는 것을 배워야 한다. 우리는 특별해지는 곳, 하나님의 풍성에 머물러 있지 말아야 한다. 우리가 처음 3일 동안 배운 모든 풍성으로 내려가는 방법을 배우고, 참된 사람이 되는 방법을 배워야 한다. 우리는 모든 이와 함께 있는 방법을 배워야 한다. 우리는 다른 형제, 자매들과 함께 있는 방법을 배워야 한다. 이것이 배움에 대한 네 번째 날이다.
배움에 대한 다섯 번째 날 : 책임을 짊어 짐
생명 노선의 다섯 번째 세대는 에녹이다. 에녹의 이름은 “배웠다”를 의미한다. 우리는 에녹이 책임을 대표한다고 보았다. 성경에서 숫자 5는 책임을 의미한다. 숫자 5는 하나님의 수 1에 하나님의 창조를 대표하는 사람의 수 4를 더한 것을 상징한다. 숫자 5는 사람이 하나님께 책임이 있음을 상징한다. 다섯 번째 세대, 에녹의 세대는 책임의 세대다. 이 에녹은 지식의 노선에 있는 가인의 아들 에녹과 다르다. 가인 노선의 배움은 도시를 건축했다. 이것은 지식 노선에서 배우는 것이 사람들에게 어떤 것을 하게 한다. 하지만 생명 노선에서 배우는 것은 사람들이 어떤 것을 보게 한다. 우리가 생명 노선에서 배우는 것 무엇이든 통제하고 조절하는 비전이 된다. 우리가 보는 비전은 보는 것에 대해 책임지는 것이기 때문에 우리의 삶을 통제하고, 조절한다. 이것이 생명 노선에 있는 에녹의 체험이다. 이것이 배움에 대한 다섯 번째 날이다.
하나님과의 동행
성경이 우리에게 에녹에 관해 말하는 것은 아주 중요하다.
“에녹은 육십오 년을 살며 므두셀라를 낳았고 므두셀라를 낳은 뒤 삼백 년 동안 하나님과 함께 걸으며 아들딸들을 낳았더라. 에녹의 전 생애는 삼백육십오 년이더라. 에녹이 하나님과 함께 걷더니 하나님께서 그를 데려가시므로 그가 있지 아니하더라.”"(창 5:21-24).
에녹만이 365년을 살았다. 365년은 창세기 5장의 생명 노선에 있는 모든 세대 중 가장 짧은 생명 기간이다. 생명 노선에 있는 다른 모든 사람은 더 오래 살았다. 왜 에녹은 비교적 짧은 시간 동안 살았을까? 성경에는 우리에게 말하고 있다.
“에녹이 하나님과 함께 걷더니 하나님께서 그를 데려가시므로 그가 있지 아니하더라.”(창 5:24)
하나님과 함께 걷는다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가? 에녹을 통해 우리가 보는 것은 하나님과 함께 걷는 것은 책임을 진다는 것과 관계가 있다. 에녹은 책임을 진 사람을 배웠다. 우리가 생명 노선에 있는 과정의 결과로 에녹을 본다면 에녹이 앞의 네 세대를 통해 대가를 치르는 것을 배웠다는 것을 의미한다. 에녹은 말할 수 있었다.
“나는 내가 약하다는 것, 그리스도를 얻는 방법, 하나님께서 영광이시라는 것, 또 내려가 사람이 되는 방법을 안다.”
이러한 모든 체험으로 에녹은 또 말할 수 있었다.
“나는 대가를 치렀다. 이제 나는 배운 사람이다.”
이 배운 사람은 셋 이후 다섯 번째 세대, 책임의 세대다. 에녹은 하나님께 책임질 수 있는 사람이었다. 성경은 우리에게 말하지 않는 것이 있다.
“에녹은 자기가 본 비전과 그가 체험했던 진리에 대해 책임질 수 있었다.”
성경은 단지 에녹의 책임을 지는 것을 나타내는 세 단어 “하나님과 함께 걸었다”고만 말한다. 우리가 생명 노선에 있는 에녹에게 올 때 우리는 진짜 영적인 사람에게 온다. 성경은 두 번 우리에게 “에녹이 하나님과 함께 걸었다.”고 말한다. 이 구문이 두 번 사용된 이유는 하나님과 함께 걷는 것이 두 방면이기 때문이다. 창세기 5:22절은 우리에게 말한다.
“므두셀라를 낳은 뒤 삼백 년 동안 하나님과 함께 걸으며 아들딸들을 낳았더라.”
또 창세기 5:24절은 우리에게 말한다.
“에녹이 하나님과 함께 걷더니 하나님께서 그를 데려가시므로 그가 있지 아니하더라.”
하나님과 함께 걷는 것에 대한 첫 번째 방면 : 아들과 딸들을 낳음
에녹은 하나님과 함께 걸으므로 아들들과 딸들을 낳았다. 이것은 영적인 이가 될 것이라는 우리의 개념과 완전히 대치된다. 우리는 어떤 사람이 하나님과 함께 걷는다면 그가 아이들을 낳지 못할 것으로 생각한다. 어떤 이들이 아이를 낳지 못하면 하나님과 함께 걷는 것이 불가능할 수 있다. 다른 말로 우리는 “하나님과 함께 걷는 것이 보통 인간 생활에서 벗어나는 것으로 생각한다. 우리의 생각은 우리가 산에 가고, 기도원에 가서 오랜 시간 기도한다면 하나님과 함께 걷게 되리라는 것이다. 하지만 에녹은 수도자나 기도원에 가는 이가 아니었다. 그는 계속해서 정상적인 생활을 했다. 그는 결혼했고, 아들들과 딸들을 낳았다. 이것은 영적인 사람이 되는 것은 아주 정상적이라는 것을 우리에게 보여준다.
에녹은 아들들과 딸들을 낳았다. 그는 영적인 사람이었고, 생명 노선에서 배운 사람이었다. 그의 삶은 지극히 정상적이었다. 에녹의 삶은 생명 노선의 다른 사람들과 같았다. 왜 그는 정상적인 삶을 살았는가? 그의 아버지 야렛에 대해 배웠기 때문이었다. 그는 내려가는 방법을 알았다. 에녹이 영적인 사람이었을지라도 내려가는 인격이었다. 그가 내려가는 인격이었을 때 하나님과 함께 걸었다. 어떤 이들은 하나님과 함께 걷기 위해 그들의 인격이 특별하게 돼야 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영적인 사람은 비정상적으로 살지 않는다. 에녹은 정상적이었다. 그의 생활은 다른 모든 이의 생활과 같았다. 영적인 사람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이 아니다. 영적인 사람이 되고, 하나님과 함께 걷는 것은 정상적인 사람이 되는 것이다.
우리가 생명 노선에서 에녹 세대에 오는 유일한 길은 야렛을 통해서다. 이것이 배움에 대한 다섯 번째 날이다. 우리는 내려가는 것을 배우고, 정상적인 사람으로 사는 것을 배워야 한다. 우리가 정상적일수록 더 좋다. 우리는 우리의 생활이나 특별한 인격이 되게 하지 말아야 한다. 우리는 영적이기 때문에 다르게 행동하려고 하지 말아야 한다. 에녹은 진실로 영적인 사람이었다. 그는 하나님을 얻고, 그가 없었기 때문에 가장 높은 영적인 삶을 대표한다. 성경은 에녹으로 가장 높은 영적인 생활이 정상적이었음을 우리에게 보여준다. 하나님과 걷는 것은 정상적인 삶을 사는 것이다. 우리는 정상적이기를 배워야 한다. 이것은 우리가 학생이라면 열심히 공부해야 한다는 의미다. 우리가 직장인이라면 부지런히 일해야 한다. 우리가 결혼할 나이가 되었을 때 결혼을 해야 한다. 결혼한 후에는 아들들과 딸들을 낳아야 한다. 주님을 따르고, 섬기는 것조차도 우리는 정상적이어야 한다. 이것이 하나님과 함께 걷는 것을 의미한다는 것에 대한 첫 번째 방면이다.
하나님과 함께 걷는 두 번째 방면 : “그는 없었다.”
에녹이 정상적이었다고 우리가 보고 난 후 성경은 우리에게 하나님과 함께 걷는 또 다른 방면을 보여준다.
“에녹이 하나님과 함께 걷더니 하나님께서 그를 데려가시므로 그가 있지 아니하더라.”(창 5:24).
22절에서 에녹은 하나님과 함께 걸었고, 아들들과 딸들을 낳았다. 그토록 그는 정상적이었다. 24절에서 에녹은 하나님과 함께 걸었고, 그는 없었다.
문자적으로 이것은 그가 휴거되었음을 의미한다. 하나님께서 그를 데리고 가셨기 때문에 그는 더 땅에 존재하지 않았다. 에녹이 하나님에 의해 데려가기도 전에 휴거가 되어 없었다. 이 말은 무엇을 말하는가? 그것은 인간의 언어가 그의 생활을 묘사할 수 없었다는 의미다. 그는 없었다. 그는 아주 정상적이었다. 하지만 아무도 그를 이해할 수가 없었다. 아무도 그를 설명할 수가 없었다. 우리의 삶은 사람들이 “저 사람들은 다르다.”고 생각하도록 해야 한다. 우리의 삶은 특별하다. 우리가 하나님과 함께 걸을 때 사람들은 우리를 이해할 수 없다. 우리의 생활 방식은 그들의 생활 방식과 다르다. 세상의 다른 모든 사람이 추구하는 것을 우리는 추구하지 않는다. 모든 사람이 관심 두는 것에 우리는 관심을 두지 않는다. 사람들이 자신들이 어떤 것들을 얻으려고 하지만 우리는 그렇게 하지 않는다. 에녹이 정상적인 삶을 살았을지라도 일반적인 것은 아무것도 없다. 그는 달랐다. 이것이 하나님과 함께 걷는 두 번째 방면이다.
“난 당신을 좀처럼 이해하지 못해. 당신이 사는 방식은 어떤 삶이죠? 왜 당신은 다른 사람들과 그렇게 다르죠?”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이런 말을 듣고, 그들이 말하게 하고, 생각하게 하고, 보게 해야 한다.
성경은 우리에게 에녹이 하나님과 함께 걸었고, 아들들과 딸들을 낳았다고 첫 번째로 말을 한다. 이것은 그가 다른 사람들과 똑같았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런 다음 곧바로 성경은 에녹이 하나님과 함께 걸었고, 그가 있지 않았다고 우리에게 말한다. 아무도 이해할 수 없고, 설명할 수 없었던 어떤 것이 그에게 있었음을 말해준다. 그는 너무도 달랐다. 하지만 특정한 방식으로 다르지 않았다. 이것이 에녹이 된다는 의미다. 우리는 정상적이지만 일반적이지 않다. 사람들이 우리와 함께 있을 때 그들은 다른 어떤 것을 느낀다. 성경은 이를 설명하기 위해 “향기”라는 용어를 사용한다(고후 2:15). 우리가 일반적이지 않다고 사람들이 말하는 우리에게서 풍기는 “향기”가 있다. 우리와 함께 대화한 후에 사람들은 깨닫는다.
“이 사람은 특별해. 그가 행동하는 방법, 말하는 방법, 사는 방법이 달라.”
이것은 우리가 있지 않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리스도인으로서 우리를 특징짓도록 해야 하는 것이 무엇인가? 우리는 정상적이고, 있지 않은 것이다. 사람들이 이해하지 못하는 우리에 관한 어떤 것이 있다. 모든 사람과 같이 우리가 아들들과 딸들을 낳았기 때문에 우리가 정상적이지 않다고 그들은 말할 수 없다. 하지만 우리가 하는 것이 누구도 하지 않는 방식을 살기 때문에 그들은 우리가 정상적이라고 말할 수도 없다. 우리는 있지 않다. 이것이 하나님과 함께 걷는 것을 의미한다.
주 예수님은 땅에 계셨을 때 이 방법을 사셨다. 주님은 정상적인 인간의 삶을 사셨다. 사람들은 그분께 다가갈 수 있었다. 사람들은 그분께 말을 걸 수 있었다. 그분은 심지어 세리들과 죄인들과도 친구가 되셨다. 하지만 같은 시간에 사람들은 그분에 관해 의문이 생기고, 궁금해 했다. 사람들은 질문했다.
“이는 누구인가? 어떤 종류의 사람인가?”
사람들은 그분을 이해할 수가 없었다. 그들은 그분께 놀라고, 감탄했다. 이것이 에녹의 삶이다. 우리가 하나님과 함께 걸을 때 한 편으로는 우리가 아주 정상적이다. 다른 한 편으로는 우리는 무척 다르다. 이것이 생명 노선의 배움에 대한 다섯 번째 날이다. 우리가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말하면서 너무 느슨하고, 부정확한 것에만 매달려 훈련 받았다. 이것은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이들과 다를 바가 없는 것이다. 대개 그리스도인들은 교회를 알기 위해 교리를 알아야 한다고 말한다. 하지만 그것은 잘못된 것이다.
우리가 처음 그리스도 안으로 믿었을 때 우리는 세으로 상징하는 신성하고 비밀스러운 영역 안으로 인도되었다. 여기에는 교리나, 종교적 실행이나 날과 절기가 없다. 이 영역에 배움의 일곱 날이 있다. 처음 세 날을 통해 우리는 하나님을 체험한다. 네 번째 날은 우리가 참된 사람이 되러 내려가는 것을 배운다. 우리가 다섯 번째 날에 올 때 신성하고 비밀스러운 영역은 분명하게 나타난다.
에녹은 신성하고 비밀스러운 영역 안에 사는 사람이었다. 그의 삶은 아주 정상적이었지만 아무도 이해할 수 없었다. 이것이 놀라운 그리스도인 생활이다. 우리가 신성하고 비밀스러운 영역에 거하고, 다섯 번째 날을 통과하는 것으로 이와 같은 삶을 살 수 있다. 우리는 아주 정상적이고 이해하고 접근하기 쉽지만 우리가 하나님과 함께 걷기 때문에 아주 특별하고 비밀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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