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세기 5:5절에 의하면 아담은 930살을 살았다. 어떻게 사람이 그렇게 오래 살 수 있는가? 930년이면 거의 인류 역사의 ⅙의 세월이다. 이것은 가인의 노선과 대조가 된다. 가인의 노선, 지식의 노선은 아주 빨리 움직인다. 가인은 에녹을 낳고, 에녹은 이랏을 낳았다. 이랏은 “빠르다”를 의미한다. 성경은 지식의 노선의 사람들이 얼마나 오래 살았는지를 우리에게 말하지 않는다. 하나님께서 아주 조금 돌보시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하나님은 창세기 4:18절에 말씀하신다.
“에녹에게 이랏이 태어났는데 이랏은 므후야엘을 낳고 므후야엘은 므두사엘을 낳고 므두사엘은 라멕을 낳았더라.”
그들의 나이가 세어지지 않았다. 보아하니 하나님은 지식의 노선에 있는 이들을 빨리 살고, 빨리 죽게 하신 것이다. 하나님은 그들이 몇 년을 사는지에 관심을 두지 않으신다. 하나님은 그분의 목적을 위해 그들의 발명품들을 사용하실 수 있으시지만, 그분은 그들의 나이를 세지 않으신다. 반면에 아담의 나이를 세셨다. 성경은 아담이 130살에 셋을 낳았다고 기록한다. 그가 셋을 낳은 후 800년을 더 살아 전부 930살을 살았다. 이것은 생명의 노선에 있는 모든 이의 나이를 세셨음을 우리에게 보여준다.
사람들은 장수할 수도 있지만 그들의 년수가 지식의 노선에 있다면 그들은 하나님의 눈에서 세어지지 않은 것이다. 하나님은 생명의 노선에 있는 년수만 세신다. 사람이 창세기 4장의 원칙으로 가인의 노선, 지식의 노선으로 산다면 그들이 사는 년수는 얼마나 될까? 답은 “제로”다. 우리가 세상에서 어떤 노인에게 물을지도 모른다.
“어르신의 연세가 어떻게 되세요?”
그는 몇 살이라고 대답해야 하겠지만 창세기 4장에 의하면 그의 대답은 틀렸다.
그가 대답해야 하는 정답은 “제로”다. 창세기 4장에 많은 사람이 살았지만 우리는 그들이 얼마나 살았는지 알지 못한다. 성경은 그들의 삶이 하나님의 시각에는 가치가 없었기 때문에 그들의 년수를 기록하지 않는다.
하지만 창세기 5장에서 우리는 생명의 노선으로 들어간다. 생명의 노선에 있는 이들의 삶은 가치가 있다. 하나님은 구체적이고 계획적으로 그들의 년수를 세신다. 하나님은 그들의 나이가 얼마나 되었는지에 관심을 가지신다. 성경은 생명의 노선에서 아들을 낳기 전 몇 년을 살았는지, 아들을 낳은 후 몇 년을 살았는지를 나타낸다. 그런 다음 성경은 그들이 모두 얼마나 살았는지를 정확하게 우리에게 말을 한다. 생명의 노선에 있는 이들의 년수만이 하나님에 의해 주의 깊게 세어졌다.
우리는 분명한 비전과 이해력을 가져야 한다. 첫째로 앞 세 장에서 우리가 본 것처럼 모든 땅은 사탄의 통제 아래에 있다. 우리가 세상에서 추구하기 원하는 것이 무엇이든 사탄에 의해 사용되어 끝날 수 있다. 둘째로 하나님은 우리가 생명의 노선에서 살기를 갈망하신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생명의 년수를 세시기를 갈망하시지만, 그분은 우리가 생명의 노선에 사는 년수만 세신다. 우리는 이 땅에서 오랫동안 살 수 있다. 하지만 이 많은 년수 가운데 우리가 구원받은 후까지도 생명의 노선에서 얼마나 살까? 우리가 생명의 노선에서 보내는 년수가 하나님의 시야로 세시는 유일한 년수다.
년수年數: 햇수(-數). 해의 수(數)
'빵과 음료 > 복음칼럼' 카테고리의 다른 글
우리의 갈망 : 영적인 것을 얻을 준비가 되는 것 (0) | 2018.05.26 |
---|---|
에노스가 게난을 낳음: 우리의 약함에서 얻음 (0) | 2018.05.25 |
주님과 함께하면 항상 새로운 시작이다. (0) | 2018.05.23 |
하나님의 기억하시지 않는 능력 (0) | 2018.05.23 |
하나님의 새로운 시작 (0) | 2018.05.2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