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Brethren/연(輦)모임 메시지

섬김과 관련이 있는 모세의 비전

Hernhut 2017. 8. 30. 18:00

모세가 호렙산에서 그의 비전에 관해 하나님과 대화한 것에 대해 감사한다. 모세는 하나님의 갈망과 그 자신과 관련된 가치 있는 공과를 배웠다. 이 공과는 세월이 흘러도 변치 않고, 오늘날 우리에게도 변하지 않았다. 신약성경의 가르침은 분명하게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가르치신 것과 꼭 맞는다.

 

하나님의 갈망과 관련된 비전

하나님의 갈망과 관련해 모세는 하나님께서 다른 민족들 중에서도 무엇보다 그분의 백성을 소중히 여기셨다는 것을 배웠다. 하나님의 백성들을 위한 하나님의 갈망은 결코 변하지 않았을 것이다. 하나님의 사랑은 영원하시다. 환경도, 사람의 상황도 그분을 흔들 수 없었다.

내가 확신하노니 사망이나 생명이나 천사들이나 정사들이나 권능들이나 현재 있는 것들이나 장래 있을 것들이나 높음이나 깊음이나 다른 어떤 창조물이라도 능히 우리를 그리스도 예수 우리 []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떼어 놓지 못하리라.”(8:38-39)

여기에 모세는 사도바울에게 아마 동의했을 것이다. 오늘날 그분의 교회로서 우리는 선택된 세대요, 왕가의 제사장들이요, 거룩한 나라요, 하나님의 소유된 백성이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그분의 놀라운 빛 안으로 어두움에서 불러내신 그분의 탁월함을 선포할 수 있다(벧전 2:9). 하나님은 우리 개개인을 사랑하신다. 그분은 단체적인 교회를 사랑하신다(5:2, 25). 이것은 변하지 않을 것이다.

모세는 하나님께서 모세의 백성들이 젖과 꿀이 흐르는 좋은 땅에서 살기를 원하셨다는 것을 배웠다. 주님은 그분께서 사랑하시는 이들에게 좋은 것을 주셨을 것이다. 바울이 우리를 위해 기도했을 때 그 같은 말을 했다.

그분께서 자신의 영광의 풍성함에 따라 자신의 []을 통해 너희 속사람을 능력으로 강건하게 하시며 믿음을 통해 그리스도께서 너희 마음속에 거하게 하시고 또 너희가 사랑 안에서 뿌리를 내리고 터를 잡아 능히 모든 성도와 함께 너비와 길이와 깊이와 높이가 어떠함을 깨닫고 지식을 뛰어넘는 그리스도의 사랑을 알아 [하나님]의 모든 충만하심으로 충만하게 되기를 구하노라.”(3:16-19)

우리를 위한 좋은 땅은 그리스도다. 근본주의 사람들은 이 좋은 땅을 세상에서의 부와 승진과 명예와 권세를 붙잡는 것이라고 가르친다. 그러나 나는 분명히 성도들과 함께하는 좋은 땅은 그분의 너비와 길이와 깊이와 높이라고 가르친다. 좋은 땅은 그분을 탐구하고 누리는 우리에게 주어질 것이다.

모세는 하나님께서 그분의 백성들이 이집트의 노예 신분으로부터 해방되기 원하셨다는 것을 배웠다. 파라오는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하나님의 백성들은 가게 했다. 바울은 신약교회의 믿는 이들에게 말했다.

그분께서 우리를 어둠의 권능에서 건져 내사 자신의 사랑하시는 [아들]의 왕국으로 옮기셨으니”(1:13)

또 하나님은 말씀하신다.

그것들로 말미암아 지극히 크고 보배로운 약속들이 우리에게 주어졌나니 이것은 너희가 이 약속들을 힘입어 정욕으로 인해 세상에 있게 된 썩을 것을 피하여 하나님의 본성에 참여하는 자가 되게 하려 함이니라.”(벧후 1:4)

그리스도께서 하신 것을 근거해 우리 파라오, 마귀는 선택의 여지없이 우리를 가게 해야 한다. 주님을 찬양한다. 우리는 해방되었다.

모세는 하나님께서 그분의 백성들이 자신을 섬기기를 원하셨다는 것을 배웠다. 이것이 하나님의 산으로 그들 모두를 데려가는 이유였다. 바울은 말했다.

우리를 붙들던 것 안에서 죽었으므로 이제 우리가 율법에서 구출되었나니 이것은 우리가 영의 새로운 것 안에서 섬기고 율법 자구의 낡은 것 안에서 섬기지 아니하게 하려 함이라.”(7:6)

요한은 마지막 책에서 말하기 시작한다.

“[하나님] 곧 자신의 [아버지]를 위해 우리를 왕과 제사장으로 삼으신 분께 즉 그분께 영광과 통치가 영원무궁토록 있기를 원하노라. 아멘.”(1:6)

우리의 신분은 영원한 제사장들로서 우리 아버지 하나님을 섬기는 것이다. 모든 방법에서 우리의 체험은 모세에게 주신 비전과 일치한다.

 

모세 그 자신과 관련된 비전

모세는 자신에 관해 아부 분명하게 되었다. 그는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권세의 지팡이가 쉽게 자신을 되돌리고, 물을 옛 뱀이 될 수 있을 것이라는 것을 알았다.

마찬가지로 바울은 우리에게 경고한다.

우리가 다시 너희에게 우리 자신을 추천하지 아니하고 오히려 우리를 대신하여 자랑할 기회를 너희에게 주노니 이것은 마음으로 자랑하지 아니하고 외모로 자랑하는 자들에게 너희가 무엇인가 대답하게 하려 함이라.”(고후 5:12)

우리의 자랑은 우리를 아주 신중하게 만들어야 한다. 우리가 자랑하는 것은 우리를 붙잡을 것이다. 그것들은 우리가 하나님께 받은 바로 그 은사일지도 모른다. 하나님은 바울에게 큰 계시를 주셔서 과거 시대에 숨겨진 하나님의 비밀의 모든 것을 열게 하셨다(1:26). 이 큰 은사 속에 숨어 있는 옛 뱀이 있었다. 바울은 쉽게 자랑할 수 있었다. 그래서 그는 말을 했다.

계시들이 넘침으로 말미암아 내가 분량 이상으로 높여지지 않게 하시려고 주께서 내게 육체 안에 가시 곧 사탄의 사자를 주사 나를 치게 하셨으니 이것은 내가 분량 이상으로 높여지지 않게 하려 하심이라.”(고후 12:7)

이 위험성은 실질적이다. 우리가 하나님을 섬기는데 합당하게 쓰임 받을 수 있기 때문에 옛 뱀의 꼬리를 겸손하게 붙잡는 것을 배워야 한다.

모세는 또 그의 손이 건강한 손이나 나병의 손이 될 수 있음을 배웠다. 그는 우리와 마찬가지로 두 본성을 가진 복잡한 사람이었다. 우리는 매우 혼란스러울 때가 많다. 우리는 심지어 우리의 나병의 방면인지, 신성한 방면이지를 알지 못한다. 우리는 하나님에 대해 천연적인 것인지 종교적인 것인지를 쉽게 혼동하고 대체한다. 바울은 우리에게 옛 사람을 벗어버리고 새 사람을 입으라고 경고한다(3:9-10). 바울은 또 우리를 격려한다.

이것은 육신을 따라 걷지 아니하고 /성령]을 따라 걷는 우리 안에서 율법의 의가 성취되게 하려 하심이니라.”(8:4)

우리는 우리가 마비된 우리의 나병 본성을 두려워 할 수 없다. 하지만 우리는 우리가 다른 사람들을 상처주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

마침내 모세는 세상의 물을 신뢰하지 말라는 것을 배웠다. 세상에는 보이는 것과 전혀 다르다. 사도요한 역시 우리를 경고한다.

세상에 있는 모든 것 즉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인생의 자랑은 [아버지]에게서 나지 아니하고 세상에서 나느니라.”(요일 2:16)

바울을 또 그의 동역자들 중 하나에게 말했다.

데마는 현재의 이 세상을 사랑하여 나를 버리고 데살로니가로 떠났으며 그레스겐은 갈라디아로, 디도는 달마디아로 갔고”(딤후 4:10)

이것은 우리 각자에게 함정이 놓여 기다리고 있다. 심지어 종교 세상도 세상이다. 우리는 모세가 배웠던 것을 배워야 한다.

 

영적인 동료들

하지만 하나님은 다 이루시지 않으셨다. 아직도 모세가 배워야 할 한 가지 더 남아 있었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셨다.

“{}의 분노가 모세를 향해 타올라 그분께서 이르시되, 레위 사람 네 형 아론이 있지 아니하냐? 그가 말을 잘하는 줄 내가 아노라. 보라, 또한 그가 너를 만나러 나오나니 그가 너를 볼 때에 마음속으로 기뻐하리라. 너는 그에게 말하고 그의 입에 말들을 줄지니라. 내가 네 입과 그의 입과 함께하여 너희가 행할 일을 너희에게 가르치리라. 그가 백성을 향해 네 대변인이 되리니 그가 곧 그가 참으로 네게 입을 대신할 것이요, 너는 그에게 [하나님]을 대신하리라.”(4:14-16)

이것은 중요한 포인트다. 우리가 얼마나 좋든 하나님은 우리가 충분치 않다고 말씀하신다. 그분은 항상 영적인 동료로서 아론을 우리에게 주실 것이다.

우리는 우리 자신들에 의해 일을 하지 말아야 한다. 우리는 항상 우리의 아론이 필요하다. 나는 이 목적을 위해 하나님께서 내게 주신 각별한 형제가 있음이 기쁘다. 그들이 할 수 있는 것이 문제가 아니다. 그것은 적절치 않다.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하신 말씀은 아론이 너의 입이 될 것이라는 것이 아주 분명했다. 그분은 여러분에게 말씀하실 것이다. 사실상 아론은 거의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아론은 다만 이스라엘 사람들의 지도자들에게 모세를 데려가는 중개인으로서 행동했다. 거의 모든 것은 모세에 의해 말해졌지만 아론 없이 모세는 아무 알도 할 수 없었다.

우리는 서로를 인정해야 한다. 우리는 우리 자신만으로 충분치 않다. 우리는 서로 우리의 아론들의 이름이 될 수 있어야 한다. 함께 만나고, 일을 하고, 서로 친구가 되는 것이 좋지만 그것으로 충분치 않다. 우리는 진짜 영적인 동료들이 필요하다. 우리는 많은 형제자매들과 좋은 교제를 가질 수 있지만 많은 아론들, 많은 동료들을 갖지 못한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추구하시는 것을 얻도록 서로를 강화할 때에만 동료들이 있다. 그것은 아론과 모세가 이집트로 돌아가서 아론이 이스라엘 사람들의 지도자들에게 모세를 만나게 한 이유다(4:29). 그들은 하나님의 목적을 위해 전진하는 일을 했다. 다른 사람들은 이런 방식으로 모세와 함께 일을 할 수 없었다.

주님, 성경을 함께 읽고, 함께 추구하고, 서로 격려하고, 주님의 증거를 위해 함께 싸울 진짜 영적인 동료들을 우리 각자에게 주옵소서.

 

영적인 섬김(봉사)

마지막으로 모세는 이집트로 가서 하나님의 백성을 좋은 땅으로 이끌 준비를 하고 있었다. 이 시점에서 성경은 놀랄만한 어떤 것을 말한다.

“{}께서 길 옆의 여관에서 그를 만나 그를 죽이려 하시니”(4:24)

이것은 이치에 맞지 않는 것처럼 보인다. 모세가 주님을 섬기려고 80년을 준비하였는데 주님께서 그를 죽이려고 하셨다. 다행스럽게도 모세는 유능한 아내가 있었다. 성경은 말한다.

그때에 십보라가 예리한 돌을 취해 자기 아들의 포피를 베어 그의 발 앞에 던지며 이르되, 당신은 참으로 내게 피 흘리는 남편이로다”(4:25)

우리가 모세의 역사를 생각할 때 우리는 환경 때문에 그가 이집트에서 태어났고, 즉시 죽었어야 했으며, 파라오의 통제를 받아야 했다고 알고 있다. 그의 부모는 그를 구하려고 필사적이었다. 그것은 모세가 할례를 받지 않았기에 가능하다. 이것이 아마 모세가 파라오의 집안에 받아들여질 수 있었고, 이집트 사람들 가운데 살 수 있었던 이유다. 할례가 이스라엘 사람들이 죄는 표시였기 때문에 이집트 사람들은 할례를 받은 그를 죽였을 것이다. 실제로 모세가 무할례자였다면 그가 그의 아들을 할례할 필요가 없었을 것이라는 것이 된다. 이것은 하나님의 커다란 분노의 이유였다. 십보라는 빨리 할례를 하지 않은 것이 잘못된 것인지 옳은 것인지를 알았다. 그녀의 빠른 행동 때문에 하나님은 풀어주셨다.

신약성경에서 우리는 할례를 받았다고 말한다.

또한 그분 안에서 그리스도의 할례로 말미암아 육신의 죄들에 속한 몸을 벗어 버림으로 손으로 하지 않은 할례로 할례를 받았느니라.”(2:11)

오직 속으로 유대인이 유대인이요 할례는 율법 자구 안에 있지 아니하고 영 안에 있는 마음의 할례니라. 이런 사람에 대한 칭찬은 사람들에게서 나지 아니하고 [하나님]에게서 나느니라.”(2:29)

우리의 영적 할례는 사실이다. 우리는 육체를 베어냈다. 하지만 거기엔 실제적인 위험이 있다. 우리는 우리의 할례의 실제 안에서 살지 못할 것이지만 대신 우리의 육체 안에서 섬기려고 할 것이다. 하나님은 이것을 용인하지 않으실 것이다. 우리는 육신적인 죽음을 체험하지 못하겠지만 십보라처럼 우리가 영적인 할례를 인식하고, 우리의 마음을 다룰 때 영적인 죽음을 체험할 수 있다.

하나님을 섬기는 것은 두려운 일이다. 절대 여러분의 육체로 그분을 섬기지 말라. 여러분이 옳다고 생각하는 것에 따라 절대 그분을 섬기지 말라. 하나님을 따라서만 하나님을 섬기라. 십보라의 빠른 행동 없이는 주님께서 모세를 죽이셨을 것이다. 하나님과 절대 놀아나지 마라. 80년 후 하나님은 다른 어떤 사람을 기꺼이 고르셨고,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셨다. 하나님은 육체적인 방식으로 그분을 섬기는 우리 중 어떤 이를 취하시지 않을 것이다. 모든 섬김은 영과 진리 안에서 해야 한다. 주여 우리가 이 모든 공과를 배울 수 있도록 우리에게 긍휼을 베푸소서.